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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의 가족여행 3부 낭만의 길 1(8월1일~7일)

매직랜즈 2020. 11. 26. 12:34

81일(토) 야간 1,000km 운전

 

1981년 해외여행 자유화 시작

1976년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해방후 사상 첫 금메달 획득

1834년 영국 노예해방 선언

 

덴마크의 히르칠스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기온은 영상 8도 정도로 쌀쌀하다. 내가 초 저녁 잠이 많다고 큰 아들이 먼저 운전 하겠다고 한다. 아들들을 앞에 앉히고 난 뒷좌석에서 눈을 붙인다. 밤길 운전하는 아들이 불안하여 아내는 좌불안석이다.

난 바람막이 옷에 붙어있는 모자를 눌러 써고 눈을 가리고 잠을 청한다. 잠은 안 오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차피 운전대는 아들에게 맡겼고, 차를 열심히 달리고 있고, 아내는 계속 전방을 주시하면서 아들에게 조심하라고 말을 걸고 있고...

 

밤길이라 차도 없고 해서 덴마크를 단숨에 통과하였다. 연료가 반 정도 있었지만, 중간에 불 켜진 주유소가 있어서 디젤 한번 넣고 ( 258 덴마크 크로네) 운전수 교대..

역시 독일이 땅 덩어리가 크다. 오늘의 목적지로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으로 잡았는데, 독일 땅을 한참이나 통과한다. 그것도 시속 150Km의 속도로 계속 달렸는데..

독일에서도 주유 한번 ( 35유로 ,31리터 ) 다시 운전은 아들이..

 

도로 사정이 너무 좋고 새벽길이라 차도 별로 없어 약 1,000Km의 길을 10여 시간 만에 달려 왔다.

네델란드의 민박집에 도착하니 낮 1( 중간에 1시간 정도 자고, 아침 식사를 한다고 휴식하고, 기름 넣은 시간을 제외하면 평균 시속 100Km 이상으로 10시간을 달린 셈이다 )

이곳 민박집은 오는 도중에 아침 8시경 전화했는데 빈 방이 있다고 한다. ( 없으면 더 달려가서 프랑스의 호텔에 오후에 체크인 할려고 생각했다 ) 아내는 여자 전용 방에 우리는 남성 전용 방에.. 여행 중 처음으로 부부 이산가족이다..

77일 북유럽을 가기위해 1박했던 곳이다. 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북유럽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달란다.

맨 먼저 휘발유 사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맛있게 끓여주는 라면과 밥을 먹고 ( 굳이 식사비를 안 받으신다 ) 샤워하고 맥주 한잔을 하니 잠이 쏟아진다. 꿀맛 같은 낮잠을 세 시간 정도 자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사진 한 장 찍은거 없고, 여행하며 본 곳이라곤 깜깜한 고속도로인데 오늘 하루 아주 편하게 보낸것 같다/

여행의3부 프랑스편은 이렇게 야간 운전으로부터 시작되는 구나..

 

오늘의 운전거리 982Km ( 1,000Km 채워야 하는데... ) 누계 9,835Km

 

82일(일) 비운의 화가 고흐를 찾아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전 발발

1980년 컬러TV 국내 시판

 

암스텔담의 민박집에서 아침 식사 후 출발은 0930. 목적지는 프랑스의 샹티이성 ( Chantilly ). 아들이 먼저 운전한다.

출발 할때 시작한 비가 네델란드를 벗어날 때 까지 계속 내린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지역을 통과할 즈음 계기판은 누계 운전 거리로 만Km를 넘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대략 25일 만에 만 Km를 달렸으니 매일 꾸준히 400Km씩 달린 셈이다.

지나고 보니 대단한 체력으로 달린 것 같다.

 

프랑스로 접어들자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 요금을 받는다.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접어들자 고속도로 출입 톨게이트가 나오고 자동 발권으로 표를 받는다. 고속도로는 편도 기준 3차선이어서 교통이 매우 원활하다. 3차선은 캠핑카 등의 큰 차량이, 2차선은 승용차 주행차선 및 캠핑카의 추월 차선, 1차선은 승용차의 추월 차선으로 운용 되는 것 같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연료 주입하고 ( 주유 47유로,45리터 )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뷔페식인데 이것 저것 고르고 닭다리가 보이길레 3개를 시켰더니 반마리+ 감자칩 가득해서 접시로 3개가 나온다.. 이게... 아닌데... 요금도 많이 나왔다 65유로. 남은 빵들은 종이에 싸서 가지고 간다. 다시 달리고 한 시간쯤 후에 요금 징수 톨게이트가 나온다. 영수증을 받아보니, Dourges에서 고속도로 진입하여 샹티이성 가는 출구인 N.8 Senlis 까지 144.5Km 요금은 11.8유로 로 되어있다.

프랑스의 도로에서 일부 차량이 우리 차 앞을 신호도 없이 불쑥 끼어 들기도 한다. 참 매너가 없다. 그런 차는 여성이 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도로 접어들자 차선은 좁아지지만, 도로상에 화살표로 추월할 수 있는 구간이 표시되어 있다.

샹티이성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여성이 운전하는 지나가는 차에 위치를 물어보니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로 신나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프랑스인들은 모국어를 사랑해서 영어를 알지만 외국인이 물어보면 불어로 대답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영어를 잘 못한다. 이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샹티이성에 가까이 가자 바닥이 돌로 된 길이 나온다. 운전하기 무척 불편하다. 성 입구의 주차장에서 주차료를 지불하고 차를 주차한다. 성 입장료는 성인 11유로 학생 9유로이다 ( 성안을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투어하는 ' 그랑 샤토 ( Grand Chateau 기준 ) 왠만한 1급 박물관 못지 않게 소장품이 다양하다. 이 성의 성주 콩데공이 소장하던 각종 회화와 집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왕인 루이14세를 초청하여 대 연회를 연적이 있는데, 궁중 요리사 ' 바테르 '는 왕에게 바칠 생선이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아 자살했다고 한다. 그 참...

샹티이성 근처에 성같이 생긴 멋진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마굿간이다. 매일 3차례의 말쇼가 있다고 해서 ( 1130, 1530, 1730) 우리는 1730분 쇼를 볼려고 예정하고 샹티이성 구경후에 갔는데 요즘은 1530분 한차례만 한다고 해서 내일 볼까하고 고민하다, 나중에 프랑스 일주 끝 무렵에 다시 오자고 생각하고 천재 화가 고흐가 생을 마감한 ' 오베르 쉬르 우아즈 ( Auvers_sur_Oise )로 간다.( 샹티이성에서 40분 거리 )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길거리에 주차한다.( 떠날 때 까지 약 두 시간 이상을 주차딱지나, 견인을 걱정했다 ).먼저 들른 곳은 고흐가 자살하기까지 2개월 동안 머물던 ' 라부 여관 ' 이라는 하숙집이다 ( 성인, 학생 5유로 ) 집이 좁아서 가이드 투어로만 견학이 가능한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는 불어로만 설명하고 있다. 안내 표지판에는 영어, 불어, 일본어로 설명한다고 되어 있다. 고흐의 생애와 작품을 설명하는 비디오를 10분간 상영해 주는데, 자막의 글씨가 작아 잘 안보인다. ( 자막 역시 불어, 영어, 일본어 - 일본의 위력이 대단하다. ) 고흐의 방이 있는 3층 올라가는 계단과 복도는 삐꺽 거리고, 벽에는 크랙이 있어 이곳도 머지않아 관광객들에게 폐쇄될것 같다.

고흐와 고흐를 너무 좋아했던 동생 테오는 마을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데 공동묘지로 가는 길은 그의 그림에도 나와 있는 교회와 권총 자살을 시도한 넓은 밀밭 길을 지나서 있고 묘지 입구에 고호묘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무덤 위에는 생전에 다정했던 형제애를 나타내듯 두 무덤 사이의 꽃나무 덩굴이 함께 어울려 있다.

아래의 글은 고흐에 대해 어느분이 표현한글이다.

좁은 지붕 아래 작은 방에는 침대와 작은 책상, 의자밖에 없어서

당시 화가의 쓸쓸한  삶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오베르 쉬르 와즈의 초록색 밀밭에서 고뇌하는 한 사내를 만난다

. 오른쪽 귀를 잘라버린 그는 닳아 뭉툭해진 붓으로 캔버스를 하염없이 덧칠한다

잿빛 구름이 초침처럼 빠르게 흐르더니 황금색 들판에서 날아오른 까마귀떼가 캔버스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정적을깨는 한발의 총성과함께 까마귀떼의 울음소리가 밀밭에 파문을 그린다

비로소 평안을 찾은 고흐가 동생 테오도르와 함께 밀밭 옆의 공동묘지에 누워 영원한 휴식을 즐긴다

라부여인숙 3층에 있는 고흐의 침실

 

 그러나 고흐의 광기는  너무도 소박한 그곳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리쉬가 피어있는

오베르성의 뜰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밀밭에 들어가보니 문득 부는 바람에 언듯 광기가 서려있는 것 같다. 

 오베르 쉬르 와즈는 그렇게 고흐와 함께 시간을 초월해서 나즈막한 언덕과 밀밭,

그리고 오베르 교회와 함께 다녀온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뇌리에 그냥 살아있다.

 

 

오늘 머물 숙소 걱정을 해야할 시간이다. 여행 책자를 보니 이곳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지베르니 ( 화가 모네가 만년을 보낸 마을 )에 현지인 민박 시설이 있다고 되어 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책에 있는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여 간다. 국도에서 좀 벗어난 전형적인 시골길을 약 20Km정도 가니 민박 의뢰한 마을이 보이는데 집 찾기는 쉽지 않다. 전화하여 마을 성당에서 만나 민박집으로 가니 아주 훌륭한 프랑스 전통 집이다. 집안에는 큰 셰퍼드가 줄도 묶이지 않은채로 돌아다닌다. 주인인 니콜라여사 이야기로는 순한 개이니 안심하란다. 나무 토막을 물고와서 우리 앞에 내려놓고 장난치잔다. 발로 나무토막을 한번 차니 물고 와서 다시 내려 놓는다. 재미있다.

 

저녁을 해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안되며 자기가 식당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리콜라 여사가 차로 앞장을 서며 좌회전, 가다 또 좌회전, 가다 우회전 하여 호텔에서 하는 식당에 갔는데 분위기가 좋다.

코스 요리로 ' 지베르니 코스 ' 2인분과 ' 모네 코스 ' 2인분을 시켰다 ( 당근 맥주 500CC도 시켰다 ) 음식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좋다. 일요일 저녁이어서 인지 현지인들도 많이 와 있다. ( 모두 25만원, 약간 쎈 가격이긴 하지만 뭐~~ )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헷갈리는데, 아내는 정확히 기억한다. 운전하는 아들에게 여기서 좌회전, 여기서 우회전, 모래 쌓아 놓은 곳에서 우회전.... 놀랍다...

 

철문에 키를 넣고 살짝 돌리니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셰퍼드가 나무 토막을 물고 와서 놓는다. 무시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의 운전 거리 596Km, 누계 10,431Km

 

83일(월) 모네와 잔다르크

 

2005년 황우석 교수팀, 개 복제 세계 첫 성공

1983년 삼성반도체, 64KD램 개발 성공

1492년 콜럼버스 제 1차 탐험 출발 ( 스페인 )

 

집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뒤쪽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수양 버들이 늘어져 매우 운치가 있는 집이다.

 

알고보니 큰 개가 두 마리다. 두 마리다 온순한 편이다. 첨엔 겁이 좀 났지만 괸찮아진다. 물고 온 나무 막대를 잔디밭에서 힘껏 던져줬더니 힘차게 달려가서 다시 물고 온다.

이곳 숙박비는 180유로 . 약간 센 느낌이긴 하지만 좋은 집에서 기분 좋은 하루 밤을 보냈다. 여행 안내 책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고 ( 니콜여사 ) 객실도 청결하다. 예쁜 정원에는 물레방아가 있으며 안락한 분위기이다. 모네의 정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 ' 라고 되어 있다 .

아침은 간단한 서양식으로 마치고 집에서 가깝다는 모네의 정원으로 갔다 ( 프랑스인들은 언어 구사 할때의 표현 만큼이나 과장이 좀 있는 듯 하다. 집에서 1Km 정도의 거리라고 했는데, 모네의 집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Km 정도를 걸어 가서야 모네의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

 

민박 여주인에게서 구입한 입장권 ( 4.5유로/)으로 줄 서지 않고 입장한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벌써 사람이 많다. 화려한 정원을 가꾸기 위해 많은 정원사들이 열심히 가꾸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많은 종류의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모네의 대표작 ' 수련 '을 그린 연못이다 ( 수련은 연꽃인가? 종류가 틀린지... ) 멋진 풍경이다.

버드나무 인것 같은 나무가 물가에서 수염을 늘여 내리고 있고, 연못에는 잘 가꾸어진 수련이 수면위에 살포시 잎사귀를 펴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네는 파리에서 가난한 화가 생활을 하다, 43세에 이곳 지베르니에 이사를 오고 50세에 이집을 장만 했다고 한다.

현재는 모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모네의 집에는 의외로 많은 일본 그림들이 걸려 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모네가 일본을 엄청 좋아했다고.. 바로 그 일본 옆에 일본 문화의 원조 대한민국이 있는 줄은 몰랐나보다. ( 파리에 가서 자전거 나라 투어를 하면서 왜 모네가 일본을 좋아했는지 알게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대부분이 일본의 그림과 도자기에서 큰 영감을 얻고 있었다 ) 기념품가게에서 나는 모네에 대한 책자 한권을 사고 ( 한국가면 거의 안보게 될건데... ), 아내는 몇 가지 작은 선물을 산다.

주차장으로 걸어오는데 단체 여행 온 한국 중학생들이 쉬지 않고 조잘거리면서 온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얼굴이 부어 있는데 표정은 무척 밝다. 물어보니, 연합 수련회 같은데서 모객을 하여 온것 같다.

 

다름 목적지는 프랑스 구국의 영웅 잔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화형식을 당한 루앙이라는 도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이다.

잔다르크 교회는 외관이 마치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 유명함과는 달리 교회 내부는 무척 소박하다. 좋은 관광용 소재임에도 입장료도 없고 내부엔 기도를 하는 의자 여러개와 심플한 교단, 창문의 약간 화려한 느낌을 주는 전통적인 스태인드 그래스가 전부이다. 내심 잔디르크의 일생과 그 드라마틱한 삶의 역경들이 전시 되어 있는줄 알았는데 그런 내용은 없어 아쉽지만 조용히, 숙연히 내부를 감상한다.

루앙이라는 도시도 아기자기하게 볼 것이 많다. 교회에서 노틀담 성당까지 걸어서 간다. 이곳 노틀담 성당도 다른 곳의 노틀담 성당 만큼 규모가 크다.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앉아서 감상하다 되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길가에서 샌드위치 몇 개 사서 점심 대용으로 먹는다. ( 다해서 10유로 - 최고 싼 점심 먹었다 )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우리가 3일 머물게 될 한국인 민박집. ( Caen )에서 약 40분 들어간 위치에 있는 시골인데, 몽셀미셀, 생말로, 코끼리 바위의 에트르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했던 오마하 비치 등의 관장지에서 두루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선 식사는 우리가 알아서 하고 요금은 인당 18유로/. 가까이 오니 집 입구엔 천하대장군, 지하 여장군이 서 있다.

제법 넓은 전통적인 프랑스 시골 농가를 보는 느낌이다.

잔디 밭에 주차를 하고 짐을 내린다. 공기가 무척 깨끗하다. 젊은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다시 깡 시내로 나가서 3일 동안 먹을 부식과 김치등을 사고 ( 한인 슈퍼 ), 오다가 까르푸에서 고기와 계란 등을 사고 돌아온다. 파리에 살고 있는 한인 가족 여러명이 우리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여 휴가를 보낸다. 그들을 보니 아직 결정하지 않은 파리의 민박집 예약이 생각이 난다. 워낙 두 달 여행의 끝부분이라 일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해서 이곳 민박집과 파리 민박집은 예약을 안하고 나왔다가 이곳은 며칠 전 예약을 확정하였고 파리는 아직 미확정이다.

이곳 민박 주인이 다리를 놓아서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파리 시내에 교통 편한 곳에서 믿을 만한 분이 전문적인 아닌 민박을 한다고 하여 그분과 통화를 하고 파리에서의 5박 민박집을 확정한다. 맘이 홀가분 해진다.

 

텃밭의 상추를 맘데로 가져 가셔도 좋다고 하여 세 뿌리를 뽑아 왔는데 아내와 민박집 주인이 질겁을 한다. 상추는 입사귀만 뽑아서 먹으면 다시 잎이 나는데, 이렇게 뿌리채 뽑으면 안된다고....다시 가져가서 심겠다고 하니 한번 뽑으면 다시 자라지 못한답니당~~

도시 촌사람인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요........

모처럼 푸짐하고 제데로 된 저녁을 먹었다. 상추에 삼겹살, 미역국.... 이렇게 숲속의 한가로운 시골에서 한 잔의 맥주와 함께 날이 저문다..ㅎㅎㅎ

 

오늘의 운전거리 311Km, 누계 10,744Km ( 엔진 오일을 갈아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점검을 해 보니 양은 충분한것 같다 ) 오는 길에 연료 주입 ( 49유로 45리터 )

 

 

84일(화) 몽생미셸과 생말로

 

2003년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투신자살 - A4 넉장의 유서 발견, 석연치 않은 죽음..

1986년 준공을 11일 앞둔 독립기념관 화재

1964년 월남파병안 국회 통과 - 925일부터 맹호부내와 청룡부대 월남전선 투입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 발발 ( 4개월 예상 전쟁이 4년진행되고 900만명이 사망 )

1875년 안데르센 사망- 덴마크 전 국민이 상복을 입음

 

이곳 민박집은 주인은 어떻게 이렇게 이역만리 까지 와서 이런 농촌에서 생활을 하는가 무척 궁금하다. 머릿속에선 소설이 한편 써 지고 있는 중이다.

오늘 관광할 장소는 대한 항공 덕분에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몽셀 미셀과 해적의 도시 생 말로이다.

어제 저녁 이곳 민박 주인이 우리가 3일 동안 들러야 할 곳의 상세 설명을 해줬다. 책에 나와 있지 않는 장소와 먹거리까지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니 가야 할 곳이 머리에 각인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거의 매일 내가 먼저 일어나 가족들을 독려했는데, 오늘은 내가 늦장을 부렸다. 아침에 메일을 쓰고 다시 자리에 누운 탓이다. 감자 농사가 잘 되었다고 이곳 주인이 감자를 많이 주는 덕에 미역국에도 감자, 오늘 아침 반찬에도 감자가 올라온다. 아침 먹고 출발한 시간은 10.

이곳에서 몽셀미셀까지는 약 한 시간 30분 거리이다. 도착하기 약 10Km전방에서 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분의 여행기에서 멀리서 보면 화장실에서 응가한 모습이라더니 정말 그런것 같다.ㅋㅋ

옥수수밭 사이로 계속 달려가니 차량들을 여기 저기에 정차시키고 사진 찍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도착 3~4Km 전방 부터는 차가 기어가기 시작한다. 주차장까지 약 2Km를 엉금 엉금가니 대규모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주차료 4유로를 내고 주차한 후 몽생 미셀 ( Mont St-Michel )까지 약 1Km정도는 걸어서 들어간다.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꾸준히 몽생 미셀 수도원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로마의 바티칸이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도 엄청 붐볐는데 그기는 입장객들을 시간을 정해놓고 입장을 시켜 그렇게 사람이 극심히 몰린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이곳은 주차비만 낼뿐 입장료도 없고 통제도 없어 정말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이 인산 인해이다. 밀려서 들어간다. 처음엔 사람들이 경사로로 자꾸 올라 가길레 우리는 떠밀려 같이 올라가면서도 이렇게 까지 올라가야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의외로 아내가 적극적으로 올라 가자고 한다. 떠밀려 올라가기를 40분 정도, 또 줄을 서서 수도원 입장 티켓을 구하기까지 40분 정도 정말 힘들게 수도원에 입장한다. 내 앞에 줄선 사람 사이로 얌체 관광객 부부가 새치기를 할려다 혼난다. ( 언덕 아래를 구경하다 대열을 이탈했다고 변명하지만 아무도 호응을 안 해줘서 머쓱해 하더니 줄 뒤로 갔다 ) 성인 8.5유로 25세 이하 5.5유로.

이곳 수도원은 썰물 때는 육지로 변하고 밀물 때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섬이 갑자기 물에 잠겨 수도원을 방문한 순례자들이 많이 희생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도로와 제방이 설치되어 있다. 대천사 미카엘이 사제의 꿈에 나타나 이곳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했으나 워낙 오지여서 실행을 않다가 966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삼각형 바위산 위에 수도원이 지어지고 그 아래로 각종 마을과 시설들이 들어온 순서대로 모형물이 있어 이곳의 건설 역사를 알 수가 있다.. 내부에 각종 회랑들도 아름답다.

 

수도원 내부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조용히 앉아서 미사를 지켜보는데 마무리 할 즈음인 모양이다. 성찬 의식이 거행될려고 하자 사람들이 앞으로 나선다. 모험심 많은 작은 아들도 대열에 합류하여 성찬 의식에서 나누어 주는 빵 한 조각을 받으려 했지만 의식을 주도하는 주교 ( ? )앞에 가니 주교가 아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더니 십자가만 긋고 성찬은 나누어 주지 않는다. ( 아마 성당 다니냐고 물은것 같다 )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많이 찾아온다. 초등 학생처럼 깃발을 앞세운 가이드 뒤로 얌전히 따라 다닌다. 정말 그들의 위력이 대단하다. 정문으로 내려 오는 길도 밀려서 내려 온다. 떠날려니 아쉬워서 자꾸 뒤를 보게 된다.

 

 

다음 이동할 곳은 민박집 주인이 추천해준 캉클 ( cancale )이란곳. 생 말로를 가다가 중간에 해변으로 빠지는 곳이다.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이곳에 굴 양식장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관광명소로 되었다. 남들 먹는 굴 한 접시를 먹을까 생각했으나 영어 달력에서 알파벳 ‘R’이 들어가지 않는 달은 굴을 먹지 않는게 좋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어 굴 먹는것은 생략한다. ( 5월부터 8월 까지 R이 안들어 가는 달은 날이 더워져서 굴이 상하기 쉽기 때문 )

 

캉클의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생말로를 향해 간다. 네비게이션에 생말로를 입력하니 20군데 정도가 나오는데 찾기가 어렵다. 할수 없이 인근 지역을 등록하여 출발한다. 등록한 인근 지역을 지나서 부터는 이정표를 보고 가는데 이 마저 생말로 시내로 접어들자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하다. 길 한 블록 건너 오른편에 바닷가가 보이는데 그리로 차를 돌려볼까 하다 그냥 계속가보니 책에서 보던 멋진 성벽이 보인다. 주차장이 만원이어서 주차장에도 줄을 서서 한 대 빠져나오면 한 대 들어가고를 반복하다 우리도 그렇게 주차하였다.

성벽 앞쪽에 해적들이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가까운 바다에 만든 요새가 보인다. 썰물 때만 갈수 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즈음 바다가 갈라져 육지로 되어 있다. 진도 앞바다도 못가봤지만 여기서 이런 구경을 하다니.. 요새 쪽으로 가서 구경하는데 금방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30분쯤 지나자 요새는 완전히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변한다 정말 신기한 장면을 눈으로 보았다.

음식점에 들러 민박집 주인이 추천해주는 갈레뜨 ( Galette )를 간식으로 먹는다. 밀전병 위에 치즈를 넣고 버섯과 계란을 올린 것인데 맛도 좋은 편이다.

민박집 주인은 몽셀 미셀의 야경을 꼭 보라고 추천하였으나, 야경 보고 오면 밤 12시쯤 될터, 가볍게 포기하고 8시쯤 숙소로 돌아 온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갈레뜨 먹을때 한잔, 숙소 와서 한잔..~~~

 

오늘의 운전거리 236Km, 누계 11080Km

 

85일(수) 자유의 시작점 노르망디

 

1862년 본명 노마 진 베이커인 마릴린 몬로 36세로 사망 ( 약물 과다 복용?? )

1850년 프랑스 작가 모파상 출생

527년 이차돈 순교

 

오늘은 일기 예보상 비가 온다고 했던 날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 비가 올 조짐은 전혀 없다. 어제처럼 아무도 깨우지 않으니 자동으로 다들 일어난다. 오늘은 갈 곳이 많다. 이곳 민박집에서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것이기에 이 부근 노르망디 지역은 오늘 중 왠만한 곳은 다 다녀야 한다.

첫 목적지는 코끼리 바위로 유명한 에트르타 지역! 이곳 카우빌 ( 소가 많이 있어서? )에서 갈려면 캉 지역을 거쳐서 옹플레르를 지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현수교라는 유명한 노르망디 대교를 지나서 가게 된다. 중앙이 휘어서 올라가는 곡선을 이루는 라인도 멋지지만 , 상판을 지탱해주는 와이어 라인에 전등을 설치한게 인상적이다. ( 전기쟁이라고 보이는게.. ) 통행료 5유로 ( 돌아 올 때도 냈다 )

에트르타에 도착하니 관광객이 너무 많아 주차하기가 만만치 않다. 밀려서 밀려서 해변에서 가까운 최적의 주차장에 왔는데 마침 차 하나가 주차장에서 빠져나온다. 아내가 먼저 내려 자리 지키고 나는 돌아가서 주차하는 주차작전 성공. 몇 십 미터 나가니 해변이 눈에 들어오고 그 해변의 양측에 좌청룡 우백호 처럼 코끼리 바위 두 개가 우뚝 서 바다에 코를 담그고 있다.

난 조금전 까지는 하나의 코끼리 바위를 이쪽 혹은 저쪽에서 봐서 모양이 틀린가 하고 생각했었다. 한쪽 바위의 위 초지에는 골프장이 있고 다른 쪽은 교회가 보인다. 당근 왼쪽의 골프장이 있는 코끼리 바위 대가리 ( 표현이 좀 점잖치 못하다. 성함에 대가리가 들어가는 어느 분이 생각나서..ㅋㅋ )를 향해 올라간다. 오른쪽 바위는 내가 보기엔 머리를 내리고 물을 먹고있는 낙타처럼 느껴진다.

코끼리 바위 상단보다 높은 곳 골프장에서 티샷을 하고 카트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졸라 부럽다. ~~ 나도 남들 못하는 관광하고 있기는 한데... 코끼리 바위 머리에 올라가니 왼편에 또 다른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아니 몇 마리인겨?..

할수없이 올라온게 아깝기도 하고 골프치는 모습도 구경할 겸 다른 코끼리 바위로 등산한다. 오랜만에 땀좀 흘린다. 노부부가 퍼팅을 하고 있다. 들어가면 ' 나이스 버디 ' 하고 큰 소리 쳐 줄려 했는데 철조망 너머의 한국 프로가 지켜봐서 주눅이 들었는지 1미터 퍼팅도 놓친다. 나랑 내기하면 1미터 퍼팅도 못 넣는 어느 분 생각이 또 난다..ㅋㅋ

담에 반드시 이곳 코끼리 바위 위 골프장에서 운동한번 해야겠다..

큰 코끼리가 세 마리 있고 보기에 따라서 코끼리로 보이기도 하고 사자머리로 보이기도 하는 바위가 몇 있다는 걸 확인하고 하산한다.

 

아침에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차안에서 점심 대용으로 먹으며 다음 목적지인 아름다운 항구도시 옹플레르로 향한다. 옹플레르에 다가가니 여기도 주차할 곳이 없이 차가 밀려 밀려 간다. 항구 가까이 도심한가운데에 왔건만 주차할 곳이 없다. 크게 볼것도 없고 하여 차를 돌려 다음 목적지인 도빌 지역으로 이동한다. 옹플레르와 도빌은 25분 정도의 거리여서 큰 부담이 없다.

도빌 지역에 주차를 하고 도심 이곳 저곳 걸어보니 특별히 맘에 와 닿지 않는다. 코끼리 때문이겠지...

여행 중 즐겨먹는 과일인 자두와 통조림 몇 개를 슈퍼에서 사고 아이스 크림 하나씩 먹고 다음 목적지이며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지역 아로랑슈 레뱅 지역으로 이동. 여기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어렵게 확보한 자리를 아내가 지키게 하고 주차를 하려고 후진하던 사이 뒷 따라오던 엉덩이에 뿔난 프랑스 처자가 그 자리에 새치기로 먼저 파킹을 하며 씨익 쪼갠다. ~ 그냥... 마침 다른 자리가 나서 큰 충돌을 할려다가 엄숙한 상륙 작전지여서 참는다.

 

그 치열했던 전투가 벌여졌던 해변가로 가보니 상륙 작전에 사용했던 크고 작은 상륙정들이 여기저기 바닷가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어 치열했던 상륙 작전시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곳도 간만의 차가 심한 지역인데 우리가 간 시각에는 물이 완전히 빠져 나가서 인지 백사장이 무척 넓게 보인다. 수 많은 휴양객들이 194466일의 상륙작전 덕택에 지금 이 자리에서 웃고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변가로 내려가 상륙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날 영문도 모른채 전장에 끌려나와 목숨을 희생했던 젊은 용사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묵념을 올린다. 아래 글은 어느 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인용한 것임.

 

노르망디 상륙작전 [上陸作戰, Normandy Invasion] : 194466일 개시한 연합군의 북유럽 상륙작전

2차 세계대전에서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미국의 아이젠하워장군은 육··공군 합동으로 프랑스 북부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사상최대의 진격함대를 조직하는 일을 맡았다. 상륙작전이 성공할 경우 대규모의 연합군이 동쪽으로 진격해, 프랑스를 지나 나치 독일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때, 독일 육군 원수 롬멜은 독일의 방어 시설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 해안에 수중 장애물·방공호·지뢰를 설치하고 있었다.

영국의 프랑스 북부 공격은 처음에 정한 5월이 아닌 그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의 'D-데이' 66일에 시작되었다.

156,000명의 병력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영국 기습 부대가 주요 교량을 점거하고 나치의 통신망을 두절시키는 동안

미국 공수사단이 생메르에글리즈 시 근처에 야간 상륙하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연합군 공격부대가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라고 암호명을 붙인 노르망디 해안의 5곳에 상륙했다.

그중 4곳은 빨리 손쉽게 점거했지만, '피의 오마하'에 상륙하던 연합군은 독일군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해질녘 연합군은 5개 해안지역 모두에서 상당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독일군을 격퇴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공군이 동쪽의 센 강과 남쪽의 루아르 강에 있는 거의 모든 다리를 폭파했기 때문에 교두보에서 포위된 독일군 전위부대의 병력 보강이 빨리 이루어지지 못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영국군은 상륙 첫날 캉을 점령해야 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오전 9시경 해안 수비대를 물리쳤지만

해안의 교통이 매우 복잡했고 현장의 지휘자들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탓에 오후가 될 때까지 캉을 향해 진격하지 못했다. 마침내 캉으로 진격하려고 할 때 침공 지역에 있던 유일한 독일의 기갑 사단이 해안에 도착, 영국군의 진격을 막았고 다음날에는 2번째 기갑사단이 도착했다.

결국 1개월 이상의 격전을 벌인 뒤에 영국군은 79일 캉을 점령했다.

 

이 상륙 작전의 성공이 일본의 멸망과 우리 나라의 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해안 근처에 194566일 기념 박물관이 있다. ( 성인 6.5 학생 4.5유로 ) 당시의 상륙 작전 전반에 대한 자료를 알차게 전시해 놓았다. 7분 짜리 영화도 상영하는데 화면과 화면 하부, 상부를 모두 이용한 입체적인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젊은 이들의 피와 땀을 흘렸는데, 지금은 그 당시와 다른 가치관과 생각으로 열강들이 움직이고 있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며 유럽이 어떻게 행동할까?

-- 상륙정을 타고 이동하는 병사들과 부교를 설치하여 장비를 육지로 내리는 장면 --

 

아이젠아워는 군대 시절 고문관 비슷하게 군 적응을 잘 하지 못한 장교였다고 한다. 다른 장교들이 주어진 과업을 실천하느라 바빠서 교육, 훈련등이 나오면, 서로 안가는 사이 바쁘지 않았던 아이젠 아워가 각종 교육과 훈련등을 많이 다닌 덕에 식견이 넓어지고 다른 이들보다 통찰력이 높아져 상륙작전을 전체 지휘하고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까지 되었다고 한다.

알찬 관광과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하루 였다. 내일이면 이곳 캉 지역을 벗어난다. 숙소로 돌아와 남아있던 삼겹살과 고기를 다 처분하고 포만감에 또 맥주 한잔!!

 

오늘의 운전 거리 403Km , 누계 11,483Km ( 아침에 주유한번 37유로 ,34리터 )

 

86일(목) 고성을 찾아서 르와르 고성지대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 클린턴과 10차례 성관게 연방 대배심에서 6시간 30분 증언

1977년 대한항공 747여객기, 괌공항 인근 산악 지역에 추락 (226명 사망 , )실종

1993년 대전 엑스포 개막

1945년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 오렌지빛 섬광과 엄청남 불덩이가 치솟으며, 도시 60% 파괴, 반경 500미터의 모든 생명체

즉사. 89일 나카사키에 2차 투하.

1902년 시인 김소월 출생

1610년 허준, 동의 보감 25권 완성

 

오늘은 약간 장거리를 움직여야 하므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르와르에 있는 고성지역을 볼 생각이다. 3일 동안 지냈던 이곳 한인 민박집 주인은 어제 저녁 늦게 돌아왔다. 몽셀 미셀이나 에트르타를 차를 가지고 오지 않고 관광하고자 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자기 집에서 1박 하게하고 관광하는 12일 가이드를 겸하고 있어 어제는 몽셀 미셀의 야경투어까지 마치고 12시가 넘어 돌아왔다고 한다. 안채에 여자분이 한분 사시는것 같은데 이곳 주인의 아내인지 얼굴은 못봤고 자세한 스토리는 모르겠다. 암튼 이역만리 프랑스의 시골에 뿌리를 내리고 사시는 이 민박집 주인이 잘 살고 늘 건강하시길...

 

오늘의 첫 목적지는 르와르 고성지대의 블루아 ( Blois )성으로 잡았다. 르와르에는 약 20여개의 각각 다른 특색을 지닌 성이 있어 모두 다 보기는 힘들며, 그중 몇 개를 골라야 하는데 이동 동선에서 편리한 이성과, 누구나 꼭 보고 가는 슈농서성, 그리고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음모의 성 앙부아즈성 까지 3군데를 들를 생각이다.

 

850분에 출발하여 약 30분간은 거의 시골 마을길로만 통과를 한다. 장거리라 빨리 가야하는데, 마을의 정취를 느끼기엔 마음에 여유가 없다. 주유소에서 급유 ( 42유로,38리터 )를 하고 나니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블루아 까지 가는데는 고성 지대의 전초기기인 투르까지 한번 ( 14.5유로 ) 그리고 블루아까지 한번 ( 5.2유로 ) 총 두 번의 고속도로 요금을 낸다. 고속도로 시스템을 이해하기 힘든다. 어떤 곳은 통과 할때만 요금받고 어떤 곳은 출발지에서 티켓을 받고 도착해서 정산하고.. 어떤 곳은 고속도로 같은데 요금을 받지 않고...

어제 까지의 고속도로는 제한 속도가 110Km/h 이었는데, 오늘은 130Km/h의 길이다. 아마 이 고속도로가 우리 경부 고속도로와 비슷한 주 고속도로의 기능을 하는것 같다.

요금이 약간 비싸긴 하지만 워낙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운전하기엔 무척 편하다. 3차선의 길이고 제한 속도가 130Km/h로 표시되어 있어 보통은 140으로 다니고 추월 차선에선 150~ 160Km/h로 달린다.

그냥 달리면 지루하니 잘 달리는 자동차 한 대를 목표로 하여 뒤를 따라 간다. 그 차가 추월하면 나도 추월하고, 주행차선으로 들어가면 같이 주행차선으로 들어가고... 2등도 그리 나쁜건 아니다.

 

불루아에 도착하여 성과 약간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 차들이 많아 주차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 성으로 입장한다, ( 성인 8유로, 학생 4유로 ) 기대를 많이 해서 인지 성의 외관은 그렇게 수려하지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엔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다. 이곳의 성주였던 프랑수아 1세는 곳곳에, 특히 중앙 계단에 자신의 심볼 마크로 불 도마뱀과 그 위에 왕관 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곳은 파리에서 인기를 얻어 왕위에 오를려고 했던 기즈공이 자객들에게 체포되어 그의 동생과 함께 살해된 곳이기도 하다. 해라크래스가 소를 때려잡는 작은 조각이 눈에 띈다.

 

성의 이곳 저곳을 감상하고 오늘은 일찍 숙소를 잡을까하고 ( 어제 밤 꿈자리에 숙소를 잡지 못해 고생했다. 노르웨이와 프랑스는 숙소잡는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은근히 많았다. ) '굴러라 유럽'책에서 소개된 캠핑장 두 곳 ( 30Km 정도 떨어진 )을 갔는데 한곳은 4박 이상을 해야 방을 줄 수 있다고 하고 다른 한곳은 방이 없단다. '에이, 나중에 호텔에 묵지 뭐'하고 생각하고 오늘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슈농서 성으로 향한다. 슈농서 성 근처의 캠핑 촌에도 갔으나 허탕.

 

몽셀미셀 정도는 아니지만 무척 많은 관광객들이 왔다. 주차장에서 부터 주차요원들이 관리를 한다. ( 입장료 성인 12,학생 8유로 ) 표 파는 아가씨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레 영어 소개 책자 줄려나 보다하고 ( 지금까지 늘 그랬으니 ) 한국이라고 했더니 반갑게도 한국어로 된 ' 방문 안내서 ' 라는 소개 책자를 준다. 너무나 신기하다. 근위병실, 성당, 침실, 독서실, 화링, 주방, 프랑수아 1세의 침실과 루이 14세의 응접실, 다섯 왕비의 침실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성으로 걸어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두 마리의 여성 스핑크스가 출입구 양측에서 마주보고 있다. 마치 이 성의 유명했던 두 여성을 상징하는듯 하다. 이 성은 16세기에 창건된 이래 6명의 여 성주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두 번째 성주인 ' 디안 드 푸아티에 '이다. 당시 왕이던 앙리 2세의 총애를 받아 왕보다 20세 연상이면서 사랑을 독차지 했다니...

 

( 앙리 2세의 성향이 궁금하다 ) 앙리 2세가 돌연사하고 나자 왕비였던 카드린 드 메디시스는 그 동안의 쌓였던 원한을 풀듯 디안을 성에서 추방하였다. 성을 에워싼 두 개의 정원이 있는데 각각 그들의 이름을 붙여 카드린과 디안이란 아름이 붙여져 있는데 , 한국에서 올때부터 어느 정원이 더 멋질까 궁금 했었는데 막상 두 정원을 세밀히 본 결과 두 정원 다 어차피 후세가 관리하는 거라 어느곳이 더 멋지다고 이야기 하기 힘들고 둘다 예쁜 꽃과 나무로 관리가 잘되어 있다, 성은 호수에 둘러 싸여 있어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척 보기 좋은 경관이다.

성 내부에는 여러명의 여 성주들이 묶었던 화려한 침실들과, 다양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붐비는 곳은 지하에 있는 주방이다. 내려가는 계단이 좁고, 공간이 크지 않아서 인지 혹은 여성 관람객들이 특히 주방을 보고 싶어하는지 ( 후자인것 같다 ) 주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다른 곳보다 더 열심히 구경하는 것 같다 )

관람이 끝나니 저녁 6. 이제는 진짜 숙소를 구해야 할 시간이다. 슈농서 성을 워낙 열심히 구경을 해서인지 나와 기족들은 다른 성을 볼 생각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하루를 단축할 겸 ( 내일 오후에 상떼밀리옹의 와인 시험 행사를 참가할 수 있다면 완전히 하루를 버는 셈이다 ) 내일 이동할려던 계획을 바꾸어 오늘 이동을 하다 적당한 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이곳을 벗어난다.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많이 있다던 자동차용 호텔이 눈에 뜨지 않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연료를 넣고 ( 41유로 )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 27유로 ) 지도 검토를 해보니 가까운 곳에 푸아티에 ( Poitiers ) 라는 도시가 보여 그기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푸아티에로 가니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면서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도심 근처에 호텔은 잘 안보이고 몇 군데 물어 보고 헤메던 차 큰 아들이 호텔을 발견했다. 무조건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니 방이 있단다. ~~~

시설도 좋다. 숙박비는 방 두 개에 아침포함 116유로!! 한국인 민박집 수준이다. 방에 짐을 풀고 나니 맘이 탁 풀린다..

 

인터넷을 사용할려니 이곳 인터넷은 WIFI 라는 무선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접속이 좀 어려워 포기!

어제 밤 꿈자리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찌 오늘의 이런 힘든 상황이 그대로 맞는지....

이곳 푸아티에 지방은 전혀 알지 못한 곳이었는데, 슈농소성의 여성주 ' 디안 드 푸아티에 '가 우리에게 이곳에 머물게 하려고 숙소를 구하기 힘들게 했는지....

 

맥주 한잔으로 오늘 하루를 접는다.

 

오늘의 운전 거리 544Km, 누계 12,037Km

 

87일(금) 잊지못할 와인투어 쌍떼밀리옹

 

1993년 해군의 세 번째 잠수함 최무선호 진수

1941년 인도의 시인 타고르 80세로 사망- 일제시대 우리국민에게 동방의 불꽃이라는 희망의 시를 보내준 시인

1876년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무희 마타하리 출생

 

어제는 무척 피곤했던 하루였던것 같다. 맥주 한잔마시고 자리에 눕자 마자 잠이 들었는데, 한번도 깨지 않고 날이 밝아 일어났다. 호텔의 간단한 아침을 먹고 850분 출발!!

 

오늘 와인 관광을 하러가는지 최성수가 알고 있는듯하다. 그동안 아들 mp3의 신곡들을 들었는데 차의 시동을 켜자 휴가갔던 최성수가 돌아와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며 분위기를 띄워준다. 오늘은 왠지 일이 잘 풀리는 하루가 될 듯한 마음이다. 출발하여 50Km쯤 가자 호텔 표시인 침대가 보인다. 어제 그렇게 찾아도 안보이더만... ( 그래도 고속 도로상에 호텔이 많이 있는거 같지는 않다. 투르에서 상태밀리옹까지 두 개 정도 있는것 같다. ) 푸아티에에서 상태밀리옹 근처인 Virsac인터체인지까지 고속도로 요금 18.8유로. 도착하니 1130분이다.

-- 샹떼 밀리옹 입구의 대형 포도주 병, 길가의 어느 샤또 표시판 --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 5유로에 저녁 7시까지 주차 가능 ) 관광 안내소에 가서 와인 투어 신청을 한다. 다양한 종류의 투어 상품이 소개되어 있다. 45분짜리 지하 기념물 관광 ( 6.5유로 ),1시간 30분 하는 시내 관광 ( 10유로 ) , 3시간용 버스타고 포도 농장들 구경하고 농장에서 와인 시음하는 코스 ( 커플 32유로, 개인 18유로 - 우린 2시 부터 시작하는 이 코스를 선택함. ), 하루 코스 ( 35유로/)등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듯하다. 일단 투어 시작까지는 두 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안내소에서 추천해주는, 이 마을의 제일 높은 곳인 첨탑으로 올라가 ( 입장료 1유로 ) 마을 전체를 조망해 본다. 사방이 포도 밭이다. 경관도 참 멋지다.. 내려와서 마을의 붐비는 중심가의 한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와 와인 한잔을 시켜 분위기를 올린다.

2시에 관광 안내소로 가니 가이드인 프랑스인 줄리아양이 약 25명의 우리 일행과 버스로 간다. 프랑스어로 한번 영어로 한번씩 해설을 해주는데,

...............

점심 먹고 와인까지 한잔하여 졸리고,

줄리아양의 영어 발음이 프랑스식이라 잘 알아듣기 힘들고,

내 영어 실력도 별 볼일 없고 해서 대충 대충 듣는다.

 

 

수도사 성 에밀리옹이 은둔 생활을 하고자 이곳에 동굴을 판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라고 하며, 대략 130개의 포도 농장이 있다고 한다 ( 샤또 ) 버스로 약 한 시간을 돌며 전반적인 이곳 샤또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반은 졸며 들었다.

포도 나무가 우리 나라의 포도 나무 보다 훨씬 키가 작고 포도 알갱이도 작다. 아마 대량생산을 위해 그렇게 품종 개량을 한듯하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 벼를 키 작고 이삭 많이 열리는 통일벼로 개량한 것처럼..

2002년에는 습도가 높아서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었고, 2003년은 건조하여 좋은 와인이 별로 없단다.

포도밭 앞쪽에 장미 나무를 심은것은 장미의 생장에 따라 포도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 잘 이해가 않되는 부분.. )

저장고 안으로 들어간다. 캐나다의 쿼백시에 수출할 와인이 포장이 되어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수확한 포도를 이곳 저장고에 넣어 18~20도를 유지 시켜 최소 5주를 숙성을 시키는데 ( 내가 물어본 내용임 ) 그 후 오크통으로 이동하여 보관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90%의 양은 일반 와인이 되고 10%의 남아 있는 와인을 다시 압축 가공 처리하면 맛 좋고 등급이 높은 와인이 된다고...

장소를 옮겨 오크통이 보관되어 있는 와인고로 이동한다. 와인고 양측에는 이곳 주인 여성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붙어 있다.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듯하다. 같은 시기에 수확한 품종이라도 오크통에 따라서도 맛이 틀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오크통 업체를 과감히 새로운 업체로 선정 하기도 한다고...좋은 와인은 좋은 오크통속에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 이분의 철칙중 하나 인것 같다.

이곳에서는 세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는데 2006년도산 두 종류의 맛을 보여 주며, 와인을 감별하는 법, 맛을 느끼는 법등을 알려주지만, 솔직히 와인의 맛을 느끼기가 참 어렵다. 관광객 몇 사람에게 질문을 하니 붉은 체리맛이 난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의 맛을 이야기 한다. 책에서 읽은 것 처럼 맛을 보고 난후 평을 " 숲속의 길을 거닐고 있는데 한줌이 바람이 불며,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있다 "는 등의 경지에 오를려면 얼마나 마셔야 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판매를 한다. 앞 두종류는 14~16유로, 맛을 보여 주지 않은 한 가지는 40유로라고 한다. 한국에서 CANTENAC이라는 상표를 못봤는데 혹시 판매를 했냐고 물으니 아시아 에이전트가 있는데 그분이 한국에 판매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주인의 열정과 정성이 느껴져 기회가 된다면 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 시간의 와인투어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와서 간단히 여기 저기를 둘러보니 숙제 하나가 남았다. 내일 둘러볼 라스코지역의 동굴 벽화를 보기 위해 그곳까지 이동 해야 하는지, 이 근처에서 숙소를 잡아야하는지 고민하다 다시 한번 ' 굴러라 유럽'에 있는 가까운 캠핑장을 가본다. 오늘은 단번에 숙소를 정했다. 야호~~~ 방가로인데 욕실,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 방을 준다 ( 105유로. 아침 포함 ) 아내가 준비해 주는 참치 김치찌개를 먹으니 좋긴 한데 2%가 부족하여 한 시간 있다가 짜장라면을 하나 먹는다. 이곳 캠핑장은( Camping Domaine de la Barbanne ) 여러 가지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만 ( 수영장, 미니골프-(유치한 퍼팅장이 있는 ),호수등등 . 숙소 시설은 그렇 저럭 ( 우리 방갈로는 모텔이라고 부르는데 주방 시설이 내부에 없다 ) 그래도 헤메지 않고 시내에서 2Km내에서 이런 시설을 찾게해준 ' 굴러라 유럽'에 땡큐!!

와인의 고장에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들고....

오늘의 운전거리 257Km , 누계 12,294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