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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의 가족여행 2부 도전의 길 4(7월25일~31일)

매직랜즈 2020. 11. 25. 14:09

725일(토) 헤어핀도로와 에이랑게르 피오르

 

1992년 제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810일 황영조가 한국선수단에 12번째 금메달을 안겨줌

1978년 영국에서 시험관 아기 탄생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베트남전 패전으로 아시아에 대한 군사개입 않겠다-박정희 대통령 자주국방의지 다져!!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들고 로비에 갔다 ( 로비에서만 무선 인터넷이 되기에... ). 어제 온 한국인 관광객들이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 에이랑게르 피오르드를 보고 베르겐 근처까지 간다고 한다. 무척 빡빡한 일정 같다.

오늘 아침은 누룽지이다. 쌀도 다 떨어졌고 반찬도 별로 없다. 드디어 큰 아들이 영양실조 걸리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기를 사서 좀 구워 먹어야겠다.

 

840분 숙소인 호텔을 나섰다. 밤새 비가 내렸는데 지금까지 그치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는 멋진 피오르드 감상을 제데로 못할 것 같다.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데 먼저 출발한 한국 관광객들이 걱정된다.

잠깐의 고민 끝에 오늘 에이랑게르 피오르드 보는것을 취소하고 도시인 릴레함메르와 오슬로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자유 여행의 편한 점이 이런것 아닌가.( 릴레함메르와 오슬로를 본후 서쪽으로 이동하는 일정인 베르겐으로 다시 돌아올때 에이랑게르 피오르드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많이 돌아가는 길이지만... )..

 

열심히 달려간다. 릴레함메르를 70Km 정도 앞두고, 호텔에서 170Km쯤 왔는데, 도로가 정체되더니 차가 전부 멈춘다.

아니 또 배타고 가는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내륙도로에 배를 타고 가기는 만무하고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차창을 열고 밖을 보니 차들이 되돌려 나온다. 반대 차선에서 운전하여 오던 한 친절한 할머니가 나에게 '앞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다'고 쉽게 수습될거 같지 않으니 차를 돌리는게 좋겠다고 한다. 미쉘린의 지도책을 보니 돌아 가는 길이 있긴하다. 좀 더 기다려 봐도 돌아가는 차들만 늘어나고 있다.

170Km 달려 왔는데, 다시 170Km 달려간다. 원점으로. 중간에 큰 슈퍼 (Coop )에 들러 쌀, , 과자,, Mr Lee라면, 삼겹살, 계란등을 사고 닭다리와 요기할 점심거리를 사서 차에서 먹는다.

왕복 340Km를 가벼운 산책으로 생각하고 다시 돌아온 이유는 예이랑게르 피오르드를 가는 루트가 너무 멋지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다. 특히 가는 도중에 있는 트롤스팅겐 산으로 올라가는 헤어핀 코스의 도로는 아찔하면서 스릴감을 주는 도로라 하여 도전 정신을 불러 일어킨다. 특히 트롤 스팅겐의 '트롤'은 스웨덴 민요에 나오는 미운 요정이라고 하는데 ( 스팅겐은 사다리 라는뜻 ) 트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간다.

 

어제 우리가 묶었던 호텔을 지나서 '온달스네스'로 가는 ( 트롤스팅겐 바로 못가서인 )도로에서 본 주변 경관이 너무 좋다.

도로 양 옆의 푸른 초지 뒤로 바로 큰 산들이 병풍을 치며 늘어서 있는데 유명한 산수화에 있는 산을 옮긴것 같다.

아침에 많이 내렸던 비 때문에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수량도 크게 증가하여 멋지고 산 중턱에 걸려있는 구름의 모습도 너무 좋다. 심산유곡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저 앞의 계곡 속으로 들어가면 무릉도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온달스네스를 지나자 바로 트롤스팅겐 산이 나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00M 가 넘는 높이의 큰 폭포에서 흘러 내리는 폭포수는 도로까지 흘러 나온다.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너무 험하다. 캠핑카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무척 힘들것 같다.

말로만 듣던 '헤어핀 도로'이다. 급 커브를 틀면서 올라가는데 그 급커브는 마치 머리핀의 둥근 부분을 연상케 하기에 붙여진 이름 같다. 차들이 교행 할 수 없어 올라가는 차와 내려오는 차들은 서로 적당한 공간에서 양보를 하며 길을 가고 있고 추월이란 있을 수 없다. 내 앞에는 미니 버스가 가고 있는데, 힘이 드는지 연신 배기구로 매연을 뿜는 통에 추월도 안되고 매연 땜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올라가던 중 마침 중간 대피소 구간으로 버스가 들어간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차를 주차 시켜 놓고 가본다. 물길이 아래로 내려가는 직전의 장소에 철제 난간을 설치하였는데, 그기에 서니 다리가 후덜덜하다. 그렇지만 멋진 장소이니 만큼 증명사진 한 장 찰칵!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의 골든 코스'라 불리는 길.

Ligge에 도착하여 약 10분정도 바다 건너에 있는 Eidsal까지 가기위해 페리를 탄다. ( 105 크로네 - 6미터이하 57kr,

2 Voksen 48 kr - 분명히 4명 있는 걸 봤는데 2인분만 받는다. 지난번에 이어 미스테리다.. )

Eidal에서 에이랑게르 까지 가는 길은 산을 하나 넘는데 완만한 오르막길로 시작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마감한다.

아까와는 반대이다. 내려오는 길에서 본 예이랑게르의 풍경도 멋지지만 아까 본 트롤스팅겐 산에는 견줄 수 없다.

 

 

헬레쉴트로 가는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 540분경 ) 이곳에서는 헬레쉴트와 또 다른 도시로 가는 두 노선이 있다.

헬레쉴트가는 배는 630분에 있다. ( 표 발행하는 사람이 이번엔 할아버지이다. 차안을 스~윽 한번 보더니 패밀리티켓 495크로네를 징수한다. 징수원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노르웨이 페리!! - 작년에 다녀온 분 여행기에는 차 230, 성인 110kr/인 으로 되어 있던데... )

배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고 차내에 들어와 컴퓨터를 꺼내 오늘의 일기를 조금 써본다.

 

배에 승선 한 후 갑판에 올라가 주변의 멋진 풍경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계속해서 누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배가 출항하여 갈수록 더 멋진 풍경이다. 뉴릴랜드에 갔을때 남 섬의 '밀포드 사운드'란곳에 가서 이런 배를 탔었는데, 그곳에서는 물개도 나타나는 매우 큰 피오르드 ( 바다라고 했으니 그곳도 피오르드 이겠지.. )이었는데 이곳도 규모는 적지 않다.

1시간 이상 이동하는데 아침에 내린 비덕분인지. 흘러내려오는 폭포의 수량이 엄청나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이랑게르 피오르드의 압권은 7선녀 폭포이다. 7가닥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선녀란 별명답게 예쁘게, 힘차게 , 또는 수줍게 다양한 모습으로 흘러내린다. 안내 방송에 7선녀에게 구혼하다 거절당한~ 브라브라 ( 갑판이라 잘 못들었다.ㅎㅎ ) 한국어 방송도 나온다고 어떤 이는 말했는데 안나오네...

 

1시간의 항해 후 도착한곳은 헬레쉴트. 저녁 8시가 다되어 간다. 이곳은 왠지 숙박비도 비쌀것 같고 방도 구하기 힘들것 같아, 내일 이동해야하는 릴레함메르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로 차의 방향을 돌렸다, 30Km 에 있는 Hornindal이라는 도시에서 호텔을 발견하고 들어갔더니 방 두개에 40만원에 인터넷은 로비에서만 ( 무엇보다 중요한건 베이컨을 구울 수 없다는거 ) 다시 다른 곳으로 간다. 주변에 침대 표시와 방갈로 표시가 보여 몇 군데 들렀지만, 어떤 곳은 주도로에서 10Km이상 들어가는 으스스한 느낌이 나서 가다 중단하고, 어떤 곳은 표지판보고 들어가면 없고, 어떤 곳은 예약이 완료되었고..

 

다시 차를 몰아 인근 도시인 Stryn이란 도시로 갔다. 강변 아니 해변 가에 크고 멋진 호텔이 보인다. 무작정 들어갔다. 인테리어가 일반 호텔과 차원이 틀린다. 직감적으로 특급 호텔이란 걸 알았지만, 접수에 물어본다. 방있나고..

접수원이 예약했냐고 물어본다. ( 예약했냐고 물어보는 폼이 틀리다 ) 예약 안했다고 하자 , 방은 있는데 하나에 60만원 이란다! ( 약간 건방진 투로 ). 순간 확 내질러? 하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오늘 산 베이컨을 구어 먹을 수 없을거라는 소박한 핑계를 가지고 호텔 문을 나섰다. 시간은 9시를 넘어가고 있고.. 북극권과는 달리 저녁에는 캄캄해지는 밤이 오는 지역이고.. 아내는 당황해 하지만 난 애써 태연한척한다.. 근처 캠핑장에 가니 방갈로도 만원 !! ( 여기 접수원이 7Km만 더 가면 캠핑장이 있고 그기엔 틀림없이 방이 있다고 희망을 준다!! ' Kleivenes Camping ' 이곳도 방갈로는 다 찼다면서 약간 머뭇거리다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왠 아파트? 접수계 뒤로 지붕이 잔디로 덥힌 전통적인 가옥이 보이는데 2층을 쓰란다. 가격은 원래 25만원 받는건데 늦게 왔으니 19만원만 내란다. 아싸~ 가오리..

내부가 너무 훌륭하다. 다락방에 침대 4개가 있고 아래엔 큰 침대 하나 2층 침대 하나, 욕실, 주방, 거실이 있는 지금까지 지낸 곳 중 가장 넓은 곳이다. 아내가 서둘러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난 다시 접수계로 가서 수건과 벼개 커버 침대 커버를 구입하여 ( 만이천원 ) 올라왔다. 오늘 저녁은 베이컨 구이, 소셰지 구이. 쌀밥, 김치... 너무나 훌륭하다. 아들들의 눈빛이 살아있다. 오랜만에 고기를 봐서인지 내가 하나라도 더 먹으면 큰일날것 같은 분위기이다. 공평하게 각자의 그릇에 분배하였다. 커피마시고 맥주 한 캔을 마시니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이곳 Stryn은 조금 과장하면 물반 땅반인 도시이다. 계획에 있었다면 이곳에서 2,3일 지나면서 고기도 잡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곳이다 ( 캠핌장 출입구에 큰 고기 하나가 걸려 있는거로 봐서 낚시가 잘 되는 곳인거 같다 )

내일은 천천히 출발하기로 하고 이런 저런 생각하다보니 밤 12시가 되어가고 깜깜해진다 ( 신기하게도 북극권을 벗어나고 부터는 백야가 사라져 버린다 )

오늘의 운전 거리 504Km ( 릴레함메르 가다 돌아와서 -_-;; ) 누계 7,213 Km

 

726일(토) 동계 올림픽의 도시 릴레함메르

 

1984년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 갤럽 사망

1950년 충북 황간면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발생- 121명의 민간인이 미군에 살해됨-2001년 클린턴 대통령 사죄

1885년 조선 성종때 서거정이 역사서 동국통감 완성 ( 56)

 

숙소가 너무 맘에 들어 늦잠을 잤다. 다락방에 깨끗한 침대가 4개나 있었는데 텅 비워 놓았다. 봉이 김선달 이라면 다시 싸게 숙박 손님을 받았을 텐데...

--  스트린은 지도에서 보듯이 정말 물 반 고기 반 ,  아니 물 반 땅 반인 호반의 도시이다 . --

 

아내가 아침밥을 하는 동안 캠핑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낙시를 많이 하는 지역인지 캠핑장 출입구 기둥에 다랑어 같은 고기가 걸려 있다. 정말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아침은 Mr Lee 라면과 베이컨구이 계란 반숙, 소세지 구이, 김치등이다. 아내는 누룽지 죽을 먹고 우린 라면.

커피 한잔하고,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며 11시쯤 캠핑장을 나선다. 이렇게 아침에 늦게 출발 하는것도 오랜만이다.

큰 아들이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작은 아들이 탔다. 우린 뒤에 앉으니 마치 효도 관광을 나온 사람들 같다.

오늘의 일정은 1994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릴레 함메르를 들렸다가 오슬로 까지 가는 일정이다. 루트가 대략 Stryn~ Grotli ~ Lom ~ Otta ~ 릴레 함메르 ~ 오슬로 이다. 특히 Stryn에서 Grotli로 가는 길은 험한 산을 하나 넘어 가는 루트인데 어제의 헤어핀 만큼은 아니지만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중간에 간이 주차장겸 전망대가 있어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절경이다. 긴 터널을 3개 통과하니 내리막길이다.

릴레 함메르에 도착하니 지도도 없고 알고 있는 주소도 없고 약간 막막하다. ( ‘세계를 간다여행 책자에도 자세한 안내가 없다 ) 주유소에 들러 동계올림픽이 열린 올림픽 파크 위치를 물어 몇 번 헤멘 끝에 동계 올림픽 주 경기장에 도착했다. 별로 볼 것이 없다. 경기장 내부를 전시실로 해서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았는데 ( 유료 ) 사람들이 거의 안들어 가는 분위기여서 우리도 패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경기장의 하이라이트는 스키 활강대. 이곳에 성화 점화대도 있다. 주 경기장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와 있다. 스키 가상현실 체험관도 있어 작은 아들이 탔다 ( 60kr ) 활강대를 구경하고 있는데 제트기 소리같은 쒸~익 하는 소리가 나서 활강대를 보니 스키를 타고 그 급한 경사를 한사람이 내려오고 있다. 이 여름에...

점프 하는 동작이 예술이다. 스로프를 내려와서 잔디밭으로 착지한 후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보호복 상의를 벗는데 할아버지다!! 잔디에 착지 할때의 마찰 때문인지 보호복의 엉덩이 부분이 구멍이 나있다!ㅋㅋㅋ

 

이젠 오슬로로 가야한다. 오슬로가 수도여서 인지 가는 고속 도로 곳곳이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도심 30Km 전방부터 오랜만에 추월 차선도 있어 시속 130~140을 오랜만에 밟아 본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도 호텔 찾느라 무척 헤메었는데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호텔 찾는데 약 30분이상 도심을 헤메고 몇 군데 호텔에서 물어 물어 오늘 묶을 Thon Hotel Munch에 짐을 푼다 ( 1박 이인실 두 개 35만원 )

차는 인근 지하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 1180Kr ) 간단히 짐을 푼 뒤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거하게 먹어서 인지 다들 점심 먹자는 말이 없어 오늘 점심은 건너 뛰었다.

저녁 식사는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중국집에서 한다. 주방장에게 부탁하여 어려운 설명을 한후 아내는 야채,닭 가슴살 샐러드를, 우리는 스프링롤, 해물 볶은밥, 소고기 스튜, 그리고 맥주 콜라 물을 시켰다 ( 14만원 )

 

오는 길에 큰아들과 아내 사이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무슨 중요한 일로 다투는게 아니라 사소한 일이 여행에선 서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게 되고 평소에 약간 맘에 안 들었으나 크게 못 느낀 부분이 조그마한 자극에 의해 감정이 고조되어 서로 언쟁을 벌이게 되는게 여행지에서의 다툼의 중요한 원인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식사를 하면서 내가 중재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여행기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가 여행 중 불협화음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체여서 사물에 대한 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때의 컨디션의 차이, 외로움, 자격지심, 이런 여러 가지의 요소가 어울려 다툼이 일어나는 것 같다 ( 공자님 말씀처럼 객관적으로 쓰네... )

 

오늘 외에도 지금까지 약 40일 동안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했다. 오늘도 내가 중재를 하고 큰 아들에게 맥주 한잔 먹이고 해서 식사가 끝날 즈음엔 거의 풀어졌다.

 

처음엔 저녁 식사를 않겠다던 두 사람이 적당히 저녁을 먹었다. 내 가슴이 뿌듯해 진다.

 

727일(월) 아문센과 난센이 숨쉬는 오슬로

 

198563빌딩 준공- 동양최고 높이, 입체 영화관에선 개관기념으로 미국영화 창공을 날아라상영

1914년 한글학자 주시경선생 38세로 사망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 지나니라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 보수적 입헌 왕정을 자유주의적 입헌 왕정으로 바꾸게됨 )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 할려는 데 작은 아들이 복통을 호소한다. 직감적으로 오늘 아침에 먹은 걸쭉한 요구르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우린 안먹었는데 작은 아들이 유난히 좋아한다 ) 서둘러 정로환을 먹이고 안정을 취하게 했으나 쉽게 가라않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조금 안정을 취하니 나은 적이 있었다. 어제 호텔 잡기가 어려워 이곳 뭉크호텔을 1박만 예약했는데, 체크 아웃도 해야하고...

 

일단 차로 이동하여 비겔란 공원쪽으로 갔다. 차안에 아내와 아픈 작은 아들을 남겨두고 큰 아들과 비겔란의 조각들을 감상하는 아비가 되었다.

공원 입구에 양측으로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조각품 중 크기도 작은 한 남자 아이의 조각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읶다. ' 신나타겐 ( 심술쟁이 )'이라고 관광객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이조각의 한쪽 손은 하도 만져서 반질발질 광택이 난다. 바로 건너편에는 같은 크기의 찡그린 여자아이의 조각도 있는데 작품 수준이 떨어지는것도 아닌데 찬밥 신세이다...

20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작품 설명을 해 놓은 조각이 하나도 없다. 하나의 조각을 완성하려면 적게는 며칠 많게는 몇 달씩 걸렸을덴데, 작품을 구상하며, 또 실제 작업을 하면서 어떤 주제로 그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고 작업했을텐데, 작품의 해설은 철저히 관객에게 맡긴 비겔란 ( Gustav Vigeland )은 어떤 성격의 인물이었을까 궁금해 진다.

차로 돌아오니 작은 아들의 상태가 약간 호전되었지만 오늘은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다는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내의 다른 호텔에 투숙하여 두 사람을 머물게 하고 다시 관광에 나섰다.

오슬로 1( 시내 교통-지하철, 버스, 트램 무료 195Kr ) 티켓을 샀는데 차를 가지고 이동한다. 오늘 구경할 부분을 주로 외곽에 있는 박물관에 초첨을 맞추고 ( 내일 전부 시내만 관광 할려고 ) 움직인다.

 

오후에 간 박물관은 뭉크박물관 ( 입장료 성인 75Kr ), 바이킹호 박물관 ( 50Kr ), 프람호 박물관 ( 50Kr ) , 해양 박물관 ( 40Kr ) , 콘키티호 박물관 ( 60Kr ) 인데 티겟 덕분에 전부 무료 입장했고, 오슬로 티켓에 있는 관광객용 주차 허용권 까지 있으니 충분히 본전 뽑은 셈이다. 24시간용이니 내일 오전까지 사용할 수 있다.

' 절규 ' 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뭉크 ( 1863~ 1944 )'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의 근원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2122일에 쓴 그의 일기에 " 나는 태양이 지는 시간에 친구와 길을 가다 하늘이 핏빛으로 불게 물들고,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위로 불타는 구름이 드리워졌다 "라고 표현되어 있고 그날의 일기를 중심으로 이 작품 ' 절규 '가 그려졌다고 한다. 젊은 관광객들이 작품 앞에서 양손을 뺨에 데고 절규의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의 그림들이 상세한 부분은 생략 하고 대충 그린 것 같으나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며 마음을 움직인다.

바이킹호 선박 박물관 안에는 멋진 모습의 바이킹호가 있는데 큰 감흥은 오지 않는다. 배 모습만 멋질 뿐 다른 특별한 것은 없는 느낌이다. 바로 옆에 노르웨이 민속 박물관이 있으나 여행을 하면서 너무 많이 본 부분이므로 생략하고 바다 관련 박물관 세 군데가 모여있는 박물관들로 이동한다.

플롬호 박물관에는 플롬호를 인양하여 박물관을 건립하는 과정을 표현한 사진들이 어떻게 박물관을 건설 했는지 보여주고 있고, 다른 배들과 달리 무척 튼튼하여 관광객들이 배안 이곳 저곳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 아마 이곳도 얼마후엔 배안 구경을 못하게 할것 같다. 여행을 다녀보면 처음엔 사진도 찍게하고 만지게하고 하던 유물들이 접근 못하게하고 사진도 못찍게 하는것을 많이 느꼈다. 루부르의 모나리자는 80년대 중반에 갔을때는 사진도 찍고 방탄 유리도 없었는데 몇 년전에 갔을때는 자동 이동하는 무빙워크에 사진도 못찍고 방탄 유리까지... 지금은 또 어떤 장치를 해 두었을까? 우리나라의 석굴암도 어릴때는 만져보고 내부 관람이 가능했는데... )

 

아문젠과 난센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존경심이 대단하다는걸 이 박물관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행적과 유품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다.

해양 박물관은 내부에 특별히 전시된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해양 관련 회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보았더니 바다를 주제로한 회화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작품들을 보니 거친 바다와 싸워 나가는 노르웨이인들의 기상이 작품을 통해 느껴진다.

콘티키호 박물관은 제목부터가 흥미로운데, 만년 청년 토르 헤이에르달이 파피루스로 만든 선박 라2세호를 타고 , 6명의 선원들과 함께 페루에서 폴리네시아까지 8,000Km101일일간 표류했다. 배의 돗에 붉은 태양처럼 표시되어 처음에는 일본인 관련이 있는가 했는데, 그냥 태양을 뜻한다고 한다. 특히 이스트 군도에서 가져온 다양한 유물도 함께 전시 되어 있고

1951년 오스카상을 받은 기록영화 콘티키호의 모험도 상영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오슬로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케르스 후스성. 성이 매우 견고하여 9차례의 침공에도 한번도 함락된적이 없는 성이라 한다. 한동안 방치된 이성을 재건한 사람은 여자와 전쟁과 건축을 즐긴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라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해 위병이 근위병같은 복장을 하고 근무하고 있는데 이 친구 졸리는지 군기든 자세로 10미터 정도 걷는다..

내려다본 오슬로 시내는 그리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오슬로 시청사의 모습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아마 차로 이동하지 않았으면 오늘 오후에 본 여러 박물관중 몇 개는 못보았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간단한 식사와 맥주 한잔!! ~. 작은 아들이 다 나아서 기분이 좋다. 뜨거운 물 몇잔과 충분한 휴식으로 배 아픔이 나아졌단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강행군을 한것 같다.. 프랑스로 내려가선 천천히 여유롭게 다녀야 겠다

 

2일간 Stryn ~ 릴레함메르~ 오슬로 ~ 오슬로 외곽 관광 : 542 Km, 누계 7,754 Km

 

728일(화) 가고가도 끝이 없는 24Km 터널

 

2004년 현대 자동차 누적 수출대수 1,000만대 달성!

1971년 사법파동 시작 ( 검찰이 판사2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자 153명의 판사가 사표제출 )

1794년 프랑스 공포정치가 로베스피에르 ( 검소,단정, 엄격함을 강조 )처형으로 공포정치 막을 내림

 

오슬로에서의 2박 동안 호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첫날 Thon Munch Hotel35만원 어제의 Gyldenlove Hotel40만원.

두 호텔의 격식이 조금 차이가 난다. 전자는 조식이 간단한 콜드 조식 후자는 베이컨구이 등이 있는 정식 조식, 방안의 샤워 용품 수준 등이 차이가 난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짐을 차에 두고 관광에 나선다. ( 호텔 인근 건물 지하 주차장 150Kr/하루 - 어제 저녁에 주차시켰다. ) 호텔 앞에서 19번 트램을 타고 중앙역에서 내렸다. 오슬로 관광은 어제 왠만한 곳은 차로 이동하였으므로 오늘은 중앙역을 기점으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관광지가 다 있다.

 

처음 들린 곳은 중앙역 바로 앞의 오슬로 대성당. 그러나 대대적인 공사 중이어서 외부만 한 바퀴 돌았다. ( 혹시 출입구가 있을까봐... ) 그 옆의 명동 거리인 카를 요한 거리를 걸어가면서 사람 구경 , 상품 구경을 하고 어제 아침에 갔다가 월요일 휴장이라 못 들어간 국립 미술관에 개관까지 약 15분 정도 기다리다 ( 10시 개관 ) 들어갔다. ( 무료 , 사진 촬영 불가 )

 

뭉크의 절규 원본이 소장되어 있고 ( 전시실 입구에 몇 관에 있다는 안내 표지까지 있다. 어제 뭉크 미술관에서 본 절규는 가짜라는 이야기군...) 그 외 피카소, 고호, 모딜리아니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호의 귀 잘린 자화상이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는 원본처럼 보이는데 잘 모르겠다.

그 외에도 여러 노르웨이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되어있고 전시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천국에서 쫒겨 나가는 아담과 이브의 그림이 있다.

바로 옆은 오슬로 대학이 있는데 대학 앞에 뭉크의 동상이 서 있다 ( 이 대학에서 재직한것 같다. 책을 들고 서 있는거로 봐서.. )

10분 거리에 오슬로 시청이 있다. 매년 말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이곳에서 열린다. 시청사 내부 홀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유화 벽화가 있다 ( 24 X 12.6미터 ). 신나게 사진 찍고 감상하던 중 한국에 있는 후배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온다. 오슬로 시청사에서 국제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 2층에는 각 나라에서 보내온 선물과 여러 가지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다시 걸어서 10분정도 가니 입센 박물관이 나온다 ( 입센의 집을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유료이지만 오슬로카드로 무료.. )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별로 볼게 없다. 자료가 별로 없어 화장실에는 자료 신문으로 도배를 했다..

인근에 있는 왕궁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오후 130분에 열리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 근처의 스시집 ( 이곳도 중국인이 하는 집이다. )에서 미소 스프 2, 김밥 두 줄, 초밥 7개짜리 하나, 베이컨과 계란이 들은 빵 하나를 시켰다. ( 무심코 맥주 한잔도 시켰는데 맥주는 팔지 않는다고... ) 9만원 정도. 시간이 남아서 커피 큰 사발에 하나 시켜 나눠 먹으면서 오랜만에 대화를 한다. 큰 아들과 아내는 언제 다투었냐는 듯이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내 성질에는 좀 오래 가는 편인데...

 

왕궁에서 하는 근위병 교대식 시간이 되자 관광객들이 몰린다. 스톡홀름에서 본 교대식 보다 간단하다. 의장대도 없다.

군기도 빠진것 처럼 보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다. 교대식 중에도 어떤 관광객이 가로 질러 지나가는데도 별다른 제제가 없다.

교대식을 마치고 다시 트램으로 호텔 근처까지 와서 오늘의 목적지인 베르겐으로 출발!

 

베르겐까지는 약 500Km의 길로 베르겐 근처까지 가서 숙박을 한 후 다음날 시내로 들어가 관광할 생각이다. ( 대 도시에서는 근처의 캠핑 촌 방갈로를 이용 하는게 경제적이기에.. )

베르겐 근처까지 운전 하여 가는 길에 이곳의 도로에 대해 몇 가지 느낀게 있다. 첫째는 오슬로와 베르겐은 이 나라 1,2위 도시인데 ( 서울~ 부산 처럼 ) 도로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왕복 각 1차선 밖에 없고 그 나마 곡선길이어서 불편하다.

두 도시 간에는 별로 교류가 없는 것 같다. 운전하여 가는 동안 어떤 때는 약 30분 이상을 앞차, 뒷 차 없이 운전한 적도 있고 전체적인 교통량이 별로 없다.. 이해가 힘든 부분이다.

 

둘째는, 놀라운 느낌!

베르겐을 약 235Km 앞두고 귀가 약간 찡할 정도의 고도로 차가 올라 갔는데, 그기서 부터 약간의 급경사길이 나타나더니 ( 예이랑게르 피오르드 앞의 프레이 스케톨렌산 오를때의 헤어 핀 같은 도로 )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베르겐 전방 130Km 까지 계속 내리막길이다. 어떤 곳은 분명히 강 바로 옆을 지나고 있다가 터널로 접어들며 한참을 터널 속에서 내려가는데도 출구에선 여전히 강 바로 옆을 달리고 있다. ( 강이 아니라 바다의 지류인 피오르드의 한 부분이겠지만.. )

 

그리고 길이 24Km의 터널도 통과한다. 이 터널이 이 구간의 유일한 내리막 경사가 없는 구간인데, 정말 지겹도록 긴 터널이다. 중간에 큰 대피소가 3군데 ( 불빛이 훤해 외부로 나가는 줄 알았다 ) 과속 단속 카메라도 설치되어있고 도로 안내 표지판도 터널내에 설치 되어 있다. 1Km 마다 터널 내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왠만한 도시 시내 끝에서 끝까지가 25Km 정도가 안 될텐데...

5Km의 내리막 터널도 있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지나니 11.5Km의 내리막 터널이 나오는데 계속 내려 가기만 하니 마치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같은 느낌이다.

베르겐 130Km 전방 정도에 가자 내리막길은 평지 길로 바뀐다. 정말 대단한 길이다. 25Km의 평지 터널을 제외하더라도 ( 이 터널도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이것 같았다 ) 80Km를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아마 세계에서 여기만 존재하는 길이의 내리막길 인거 같다.

오는 동안의 경치도 너무 훌륭하다. 심산 유곡에 들어온 기분이다. 토목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오면 많은걸 배우고 갈 듯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100Km를 계속 오르막으로만 가는 길이다.

 

긴 터널 세 개를 통과하다보니 8시가 지났다. 침대 표시가 보여 숲속으로 1Km정도 들어가 보니 전망 좋은 특급호텔!

오늘 산 베이컨과 계란 상할까봐 ( 이런 호텔에서는 음식 못하니까 ) 다시 나와 조금 가니 방갈로 표시가 있어 들어갔는데 시설이 훌륭하다 ( 8인실로 다락방까지 있다. 두 가족이 오면 딱이겠다, 넓은 실내 공간에 샤워실, 사우나실까지 갖춘 시

) 20만원.. 현금 결제를 해줬으면 한다. 그렇지만 나도 현금이 별로 없어 카드로 결제한다.

 

오는 길에 Coop에서 산 베이컨, 계란, 통조림 콩 ,피망 등으로 밥과 함께 저녁을 먹으니 참 좋~..식탁위에 꽃이 피어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해본적이 언제 이던가?

 

글을 쓰면서 맥주 한 캔으로 분위기를 띄워 정서를 가다듬는다.

 

오늘의 운전 거리 374 Km, 누계 8,128 Km

 

729일(수)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 간 뤼세

 

198132세의 찰스황태자와 20세의 다이애나 스펜스양이 결혼

1948년 한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런던 올림픽, 621일 서울역 추발한 선수단은 부산에서 배를타고 요코하마를 거쳐

72일 홍콩 도착하여 인도,이집트,로마를 경유하는 장거리 비행하여 728일 파김치상태로 런던에 도착함.

811일 김성집이 역도에서 첫 동메달획득, 참가 58개국중 24

1890불꽃의 화가’‘태양의 화가빈센트 반 고흐 37세로 권총 자살

 

아침부터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는 그냥 빈대 떡이나 파전 부쳐서 먹으면서 하루 휴식해도 좋은데... 아침은 스프와 빵 그리고 계란, 피망으로 간단히 먹고 출발. 비 온다고 안 갈수는 없는 일. 베르겐까지는 130Km정도. 가다보니 또 길이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50Km는 더 내리막 길 인것 같다. 베르겐은 조그마한 도시여서 3시간 정도면 왠만한 장소는 관광이 가능한 곳인것 같다.

 

도착한 곳은 성 마리아 교회 근처인데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차를 돌리고 있는데, 캠핑카를 탄 어떤 아저씨가 차를 빼면서 자기 자리에 주차하라고 한다. 비가 오는데 무척 고맙다. 차를 그곳에 주차 하는 중에 그 아저씨 다시 와서 자기 주차권 시간이 아직 30분 이상 남았다며 준다. 나처럼 인정 많은 분인가 보다.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성 마리아 교회 내부를 둘러보고 ( 무척 소박한 교회이다 ) 우산을 쓰고 베르겐 시내로 들어간다. 비가 오니 일단 박물관 관람이 좋을 듯 하여 '한자 박물관'으로 간다. ( 학생 할인 안되며, 50Kr/) 1702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인데 내부에는 그당시 활동하던 상인들의 생활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공동 생활 시설 ) 그 당시 베르겐의 번영을 가져다준 말린 대구도 전시되어 있다. ( 로포텐 제도에서 구경 못했던 대구 말린것을 이곳에서 구경한다. )

박물관을 나오니 빗 줄기가 좀 약해졌다. 배도 출출하고 해서 인근의 어시장에 가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여행기들을 보면 새우 샌드위치는 비릿하다 하여 구경만 하고 꼬치 구이4( 새우 둘, 고기 둘 240kr ), 연어구이 한 조각+으깬 감자 ( 75kr ),새우 한 접시+감자 ( 75kr ), 킹 크랩 다리 한 접시 ( 150 Kr )를 먹으니 포만감이 온다.

돌아가는 길에 베르겐의 중심부이며 예쁜 목조 가옥이 늘어선 브뤼겐을 지나가면서 감상하고 호콘왕 저택을 구경한다.

비가 와서 베르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플로뤼엔산에 케이블카 타고 올라 가는건 취소 한다. 바람도 많이 불고 해서 올라가고 싶지 않다. 슈퍼에 들러 이곳의 명물인 한자 맥주 6개를 산다. 상표 그림에 오fms쪽은 대구 말린것 ( 노르웨이 ),왼쪽은 독수리 ( 독일 )가 그려져 있는데 옛날 한자 동맹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한자동맹 [Hanseatic League] : 중세 중기 북해 ·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

오후 130분에 베르겐을 출발하여 오늘의 목적지는 뤼세 피오르드! 가는 도중 카 페리를 세 번이나 탄다.

해저 통과 터널도 4Km , 6Km등 세 번 있다 ( 터널 통행료 85Kr 징수하며 , 힌번은 자동 징수대앞을 앞차 따라 지나가다 요금을 못냈는데 , 다른 분들 여행기를 보면 그곳은 안내어도 된다고 한다. 그래도 모범 시민으로써 약간 찝질하다. ) 해저 터널은 경사도가 심한 내리막을 지나 약간의 평지 그리고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데 양 방향 모두 오르막 구간에서 추월 차선이 있다. 이때 대형차들을 지나쳐야 앞으로의 길에서 기본 속도를 낼 수 있으므로 오르막 추월 차선에서는 자동차 경주 수준으로 가속하여 달린다.

 

배 타는 구간은 Halhjem ~ Sandvikvag 까지 한번 ( 요금 부스 직원이 두명? 하길레 응! 했더니 차 185, 성인2100 하여 285Kr을 받는다 ) , Arsvagen ~ Mortavika 구간 한번 ( 세명? 하길레 응!하니 차 156, 성인399하여 255Kr을 받는다 ) 중간 거점 도시인 스타방게르를 통과하여 마지막 페리 승선 구간인 Lauvik ~ Oanes 구간은 몇 명? 하고 묻길레 4! 했더니 차 57, 성인 372 하여 129Kr을 받는다. 징수원 맘데로 인것 같다. 앞 두 구간은 차를 주차하고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 40분 정도 이동 ) 마지막 구간은 차에서 대기한다 ( 별도의 실내시설이 없다 )

스타방게르에서 뤼세로 이동하는 구간의 1/3정도는 양차선이 2차선으로 포장이 잘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리 경부 고속도로를 보는 기분이다. 수도나 제2도시에서도 볼수 없던 큰 도로를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나름 이유가 있겠지.. 스타방게르를 지나서부터 날이 맑게 게이기 시작한다. 내일의 뤼세 등반시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일찍부터 숙소를 찾는다. 두 군데 정도 들렀다가 최종 결정된 곳은 뤼세 피오르드 등산로 직전에 있는 호텔!

거의 방이 없을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4인실. 방갈로보다 좁은 4인실 방을 25만원 주고 고맙다고 하면서 배정 받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주변에 숙소가 별로 없어 먼 곳에 다시 나가기엔 몸이 피곤하고, 경치가 너무 좋고, 내일 등산이 좀 편한 위치이기에 별 불만 없다. ( Prekesto lhytta Mob ) 아침도 준단다..

 

저녁 식사는 간단히 컵 라면과 과일로 먹고 내일의 맑은 날씨를 기원하며 취침!!!!!!!!

 

오늘 운전 거리 374Km , 누계 8,128 Km

급유 32L/330kr

 

730일(목) 너무 힘들었던 등산 뤼세 피오르

 

1977년 백건우.윤정희 부부 피랍중 탈출

1971년 서울외곽에 그린벨트 첫 지정 -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에 불과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김

1898년 독일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83세로 사망 : 40여개의 나라로 구성된 독일을 1871년 역사상 최초의

민족국가인 독일제국을 창건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쇠와 피를 통해 결정된다

 

오늘은 노르웨이란 그림에 '화룡점정'하는 날이다. 4대 피오르드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 뤼세 피오르드를 등반하는 날이다.

어제의 일기 예보와 달리 아침에 비가 오지 않는다. 호텔 1층 로비에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물음이 있고 핀으로 꼽게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다녀 갔는지 우리나라 지도가 핀으로 촘촘하다.

호텔의 조식을 먹고 930분경 등산을 시작한다. 큰 아들이 먼저 앞장을 서고 우리가 뒤를 따라 간다. 정상적으로 오르는데 두 시간 내려가는데 두 시간 코스라고 쓰여 있다. ( 해발 270미터에서 출발하여 약 3,800M를 걸어서 해발 604미터의 프레이케스톨렌 까지 가슨 코스라는 안내판이 있다 )

올라가는 중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배낭속의 중국제 우의를 꺼내 입는다 ( 하나에 1,000원짜리인 일회용인데 부피가 작은 수첩정도여서 휴대에 간편한 장점이 있지만, 잘 찢어지는 그야말로 일회용이다 )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자갈길의 다소 미끄러운 구간이 나온다. 작은 아들 손을 잡고 조심 조심 올라간다. 비바람이 강하다. 작은 아들은 도로 내려가자며,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그렇지만, 우리 여행의 큰 목적 중의한 군데 여서 그럴수는 없다. 올라가다 아내는 발을 잘못 디뎌 한쪽 발이 진흙에 빠져 신발이 더러워지고, 양말은 버리고 다른 양말을 신었다.( 스타일 다 구겼다고 오늘은 절대 자기 사진 찍지 마란다. )

 

 

 

마침 내려오는 사람 한명이 우리가 머뭇거리는걸 보며, 작은아들에게 " 30분만 가면 되는데, 안가면 크게 후회할거야 "하고 독려를 해준다. 어렵게 정말 어렵게 세시간만에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큰아들은 비 오기 전에 멋진 사진을 찍었다. 정상 200미터쯤 전부터는 발 아래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있다. 무협지에서 보면 주인공이 악당 무리들에게 쫒기어 악당 두목의 최후의 일격을 받고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여기 같은 곳일것 같다. ( 물론 주인공은 떨어지다 천우신조로 옛 무림 고수가 남긴 영약과 비급을 얻죠!ㅎㅎ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건지.. )조심 조심 목적지에 가니 비 바람이 매우 강하다. 이제 와서 비 바람이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아찔한 바위위에 섰다.

여기 오기전 한국에서 뤼세 피오르드의 사진을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을 정도의 바위였는데 막상 그 위에 서니 비 바람이 치는데도 오히려 담담해 진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차지만 팔을 크게 벌리고 사진 하나 찍는다. 찰칵!! 날씨가 변화 무쌍하다. 나를 포기 시킬려다 안되겠는지 날씨가 다시 맑아지기 시작한다.

사진을 몇장 찍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내리막길이 오르막길 보다 더 어렵다. 나에게도, 작은 아들에게도.. 제일 어렵던 중간 자갈길에서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 우리가 워낙 천천히 내려가기 때문에 중간에 몇 번씩 뒷 사람들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 도로에서 차로 남의 차를 추월만 하다 오늘은 다른 이들을 추월 시키는 큰 차 같은 느낌이다. ) 갑자기 인명 구조용 핼기가 나타나더니 착지할 곳을 찾으며 저공 비행을 한다. 우리 앞 10미터에 나이드신 할머니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고 누워있다. 구조 요원들이 핼기에서 내려 구조하여 다시 날아간다.. 부디 가벼운 상처이기를...

등산길은 중간 중간에 길 안내 표시가 잘되어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남들 4시간 만에 왕복하는 코스를 우리는 여섯 시간 걸렸을 뿐!! 사람들이 친절하여 내려 올떄 좀 힘들어하면 서로 손을 내민다. 참 고맙다.

한국인 관광객도 몇 명 보인다. 우리가 한국말을 하면서 내려오자 올라가던 한국 청년이 우리말을 알아듣고 "노르웨이 현지에 사시는 분이세요? " 하고 묻는다. 노르웨이에 14일정도 있었으니 현지인으로 보일만한건가?ㅎㅎ

 

등산을 종료하고 다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이자 덴마크로 가는 카 페리를 타야하는 크리스티안순 이라는 도시를 향해서 출발! 당초 생각에는 오전에 서둘러 등산을 종료하고 덴마크로 넘어가서 숙박해야지 하는 생각이었으나, 무리한 생각 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아들이 운전 하는 동안 컴퓨터로 다운 받았던 다른 분의 여행기를 차안에서 보니 크리스티안순 조금 못가서 등대가 있는 노르웨이 땅끝 마을인 'Lindesnes'에 들른 기록이 있어 우리도 그 곳을 당연히 가야지하고 네비의 목적지를 변경한다. 등산에서 하도 다리에 힘을 많이 썼던지 다리 근육이 뻐근하다. 차내에서 다리를 치고 안마를 하니 아내가 "한물 갔네 "하고 놀린다.

 

오늘은 이곳 노르웨이에 와서 제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가는 길에 장대비가 쏫아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한다. ( 우리의 떠남을 아쉬워 하는 것 같다 . 하긴 노르웨이 북쪽 땅끝인 노르카프에서 남쪽 땅끝인 'Lindesnes'까지 14일 동안 전국 방방곡곡 3,500Km를 운전했는데... 이 비는 밤 늦게까지 거센 바람과 함께 내렸다.)

북쪽 끝에서도 하룻밤 잤으니 ( 엄청 비싸면서 시설은 별로인 로카 호텔 ) 남쪽 땅끝 마을인 'Lindesnes'에서도 하룻밤을 잘려고 도로 표지판을 보니 침대나 방갈로 표시가 전혀 없다. 할수 없이 'Lindesnes'에서 크리스티안순 방향으로 약 10Km 가니 Mandal이라는 작은 도시에 침대 표시가 있어 그 표시의 주인인 주유소에 들렀더니 아파트가 있단다. 아내와 같이 먼저 시설을 확인해 보니 훌륭하다 ( 10미터 앞에 해변가가 있고 그기에 요트가 정박하고 있으며. 발코니에는 길이조정 가능한 천막 캐노피가 되어 있는 해변가의 운치있는 곳이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내부가 넓은 현대식 아파트 타입인데 침대가 1층에 4개 이층에 5개나있다. 우리는 2층을 비워두며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가격은 어제 잔 좁고 답답한 뤼세피오르드 입구의 호텔과 같은 25만원!

 

아내가 서둘러 밥을 하고 난 아내의 더러워진 운동화 한쪽과 가족들의 운동화를 칫솔로 열심히 청소!! ㅋㅋ

저녁 메뉴는 컵 라면, , 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 너무 맛있고 기분 좋다. 커피 한잔 마시고, 한자 맥주 한 캔하고..

'창밖에는 비오고요~ 바람 불고요~ '노래가 생각난다.

 

내일이면 노르웨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덴마크로 떠난다. 여행의 제 2부 막 내리고 3부를 시작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겨.. 식구들은 다소 지루해 한다. 한 달 여행이 제일 적당한 기간 인것 같다고.. 난 여건만 허락된다면 6개월짜리 여행도 하고 싶당~~ )

 

오늘의 운행거리 214 Km 누계 8,733 Km ( 노르웨이에서 약 3,500Km 주행 )

오늘 디젤 446Kr 주입 ( 40리터 )

 

731일(금) 노르웨이 최 남항 린데스네스

 

2000년 산악인 엄홍길 ,히말리아 8,000m급 봉우리 14좌 완등 ( 아시아 처음, 세계 7번째 )

1980년 문공부, 신군부에 비판적이었던 정기 간행물 172개 등록 취소

1877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축음기 발명 ( 당시 이름은 토킹 머신 )

 

정말 이곳 아파트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은 곳 이다. 거실 창이 바다 쪽으로 나 있어 전망도 좋다. 두 가족이 같이 여행한다면 최적의 숙박지가 아닐까 한다. 이런 숙소에서는 출발 시간이 늦어지기 마련. 10시쯤 어제 못간 린데스네스에 잠시 들렀다가 배를 타고 가도 오늘 중에는 덴마크의 내륙 중간 정도는 갈수 있을 것 같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리던 큰비는 밤 사이에도 거친 바람과 함께 계속 내렸는데 지금은 가랑비가 내린다. 등대가 있는 린데스네스는 여기 만달에서 배를 타는 크리스티안순과는 반대 방향으로 약 10Km가면 된다. 여행 책에도 없고 이번 여행 중 여행 사이트에서 검색하여 발견한 곳이기에 충분한 자료 조사는 없이 가는데, 네비게이션으로 10Km가니 위치 안내는 종료되었는데 땅 끝 마을은 안 보인다. 주변 주유소에서 한번 물어보고 가다가 캠핑장에서 물어 물어 간다. 네비가 종료되고도 산길, 해안 길을 28Km나 더 가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28Km의 길을 가면서 갈등이 많았다. 가족들은 왜 잘 모르며 자료 조사도 안된 곳으로 가면서 시간 낭비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말 하는것 같고, 나도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이렇게 쓸데없는 곳으로 가는가, 이거 배는 잘 탈수 있나 하는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내리던 가랑비도 그쳐가니 다행이다.

 

도착하니 거센 바람과 함께 화강암으로 된 멋진 바위산이 우리를 반긴다. 바닷가가 고향이기에 이런 바람이 싫지는 않다. 그렇지만 매우 센 바람이다. 네델란드의 대제방을 통과 할떄의 그 바람과, 북쪽 끝 노르카프의 살을 에는 칼 바람 못지 않게 거세다. 방향 표시판의 화살표에 노르카프까지 2,518Km라고 써져있어 감회가 새롭다. 이 몸은 노르웨이만 3600Km를 달려온 사나이라구~

입구에서 인당 50Kr을 내고 입장하여 ( 학생 할인 없슴 ) 등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지금 까지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의 바다를 많이 봐 왔지만 바다라는 실감은 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등대를 보니 정말 바다인것 같다.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을려니 바람이 너무 거세 찍을 수가 없다. 찍는 사람도 몸이 기울어지고 서 있기가 힘들다.

등대 내부의 2층으로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 보니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한다.

 

 

근처의 망원경이 있는 전망대에는 바닥에 각 방위마다 그 방위의 주요 도시이름이 세겨져 있다. ( 서울은 멀어서 표시 안되어 있다-긍정적인 생각!! ) 등대에서 내려와 등대 박물관에 들어가니 노르웨이의 등대를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등대의 역사부터 흥미 있는 자료가 많다. 바로 옆 전시실에는 등대의 등과 각종 등대에 얽힌 자료들이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둘러서 이곳 까지 온 보람이 있다. 가족들도 만족하고 있어 다행이다. 특히 북쪽 끝 노르카프를 다녀왔다면 이곳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 등대에서 사용하는 각종 전등 ---

 

어제 땅끝 마을 근처에서 하룻밤 잤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것 같다. 숙박지였던 만달에서 이곳까지는 38Km의 길이니 근처라고 하기엔 좀 거리가 있다. 그리고 이곳 땅끝 마을 오는 곳곳에 캠핑장 표시가 많이 있다. 주 도로에서 표시가 안되어 있어 내가 스스로 캠핑장이 없다고 판단했을 뿐.... 돌아 오는길에 요트를 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요트 주차장이 특이해서 사진 하나 찍고, 근처의 말 방목장에서 예쁜 말이 우리 차를 향해 다가와서 사진 한 장 !

이젠 대망의 노르웨이 국토 대 종단의 마무리를 위해 ( 너무 거창 하네~ ) 크리스티안순으로 간다. 도시입구 근처에서 통행료 10Kr을 자동 징수대에 넣었는데, 왜 받는지 모르겠다. 부두에 도착하니 130분경. 이미 50여대의 차량이 줄을 서 있다. 수속 창구에는 근무자가 없고, 관광객에 의한 학습 효과로 길들여진 갈매기와 참새만 열심히 차들 주위를 배회한다. 빵 몇 조각을 던져줬더니 많은 갈매기들이 모여든다. 2시경 수속을 시작하는데 여권 검사도 한다. 덴마크의 히르칠스까지 요금이 4명에 36만원! 엄청 쎄군...

4시 반 출항할 배를 탈 예정인데 어제의 강풍과 폭우로 바다의 풍랑이 거세어 7시 이후에나 출항 할수 있을거라고..

차를 주차해 놓고 7시에 오라고 한다. 이거야 원! 덴마크의 히르칠수까지는 4시간 걸린다는데 이거 한 밤중에 떨어지게 생겼다.

크리스티안순은 작고 예쁜 도시이다. 배가 연착 되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 지날 도시였을 텐데.. 그렇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므로 근처의 중국집에 간다. 볶은밥, 탕수육 작은거, 튀긴 국수, 만두, 그리고 맥주를 시켜 골고루 나눠 먹는데 모두 맛이 좋다.. 오랜만에 중국집에서 입맛 도는 음식을 먹었다 ( 그러나 식사비는 15만원 이란거... ) 식사 후에 둘러본 거리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도시에 예쁜 건물이 많고 휴양하기 좋은 도시인거 같다. 바닷가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 중이고 그 곁의 분수대가 있는 공원에선 귀여운 아이들이 퐁당퐁당 물 장구 치며 놀고 있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우리도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7시까지 돌아 오라고 했지만 적혀 있는 시간은 430분이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4시경 돌아와 보니 차가 엄청 늘었다.

주차장에 약 500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돌아간 차도 많다. 이 많은 차가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우리는 그중 일찍 온 편이므로 우리가 타고 이동하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 하고 위안해 본다. 차안에서 잠을 자다, 프랑스에 대해 책을 보다 딩굴 딩굴 거리는데 안내 방송도 없고 시간은 8시를 향해 간다.

차 밖을 내려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트바이 타고온 친구들은 정비를 하고 있고, 캠핑카를 타고 온 사람들 중에는 의자를 꺼네서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고, 우리 앞차의 아저씨는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잔다.

이거 오늘 갈수는 있는가? 의구심이 들어 줄 맨 앞으로 가니 직원이 있다. 덴마크에서 오고 있고, 여기서 1010분전에 출항할 예정이라고.. 덴마크 도착하면 1시정도 될것 같다...

우리가 줄을 일찍 선 덕분에 차도 일찍 주차하고 선실로 올라가서 푹신한 의자가 있는 자리를 선점하였다. 3시간 30분 가량 가는 배라 지정석이 없기에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통로에 자리 깔고 눕기도 한다. ( 그게 더 편해 보인다.. )

새벽 한시에 도착할 예정이니 어디 숙소예약도 안되어 있고 난감하다..

만약을 대비해 잠 좀 자 둘려니 잠이 안 온다..

 

오늘의 운전거리 120Km, 누계 8,853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