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가족여행 3부 낭만의 길3(8월13일~19일)
8월13일(목) 파리 디즈니랜드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1989년 11월 장벽 붕괴
1955년 국내 최초의 성전환 수술
1910년 플로랜스 나이팅게일 90세로 사망
232년 중국 삼국시대 촉한 시대의 전략가 (제갈공명 ) 사망
파리에 입성을 하니 마음이 너무 느긋해 진다. 긴장감도 많이 풀어져 버려서 아침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딩굴 딩굴 거리다 10시경에 아파트를 나선다. 이곳 민박집은 전문적으로 하는 집이 아닌 곳인데 저번 깡 지역에 놀러온 파리 현지 한국인들에게 소개 받은 집이다. 프랑스 온지 8년이 넘었는데 남편 분은 사업차 한국에 다시 나가셨고 두 딸과 함께 지내는 분이 방2개를 비워서 한 가족만 민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집이다. 음식 솜씨도 깔끔하시고 예쁜 요키 한 마리가 있어 두고 온 우리 강아지들 생각이 많이 난다..
어제 차량 반납하면서 예비 열쇠와 서류를 반납하지 않았기에, 지하철로 한 구역인 시트로엥 사무실에 반납하고 디즈니랜드로 향한다.
파리의 지하철 표는 보통 1~2구역 표를 사면 왠만한 곳을 다 다닐 수가 있지만 디즈니랜드는 5구역이라 5구역 1일권을 샀다. ( 13.2유로/인 ) 다소 비싼 편이지만 디즈니 랜드가 워낙 교외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15구역을 가서 다시 전철을 15구역 가야하는 다소 먼 길이다. 지하철 안내도에는 지하철 아브로 코마르탱 역에서 내려 전철 오베르역에서 갈아타게 되어 있는데 이 두곳이 한구간을 전철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걸어서 통로로 이동하는 곳이어서 좀 헷갈린다. 갈아타는 곳에서 방향을 몰라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전철 타는 곳까지 안내를 해주며 전광판을 보는 법 까지 말해준다. 메르시 보꾸 ( 멸치 많이 볶아라 가 아니고 대단히 감사하다는 불어임을 다 아시겠죠? ) 친절에 감동 먹었다.
디즈니랜드는 전철 A4호선의 종점이다. 역에서 내리니 디즈니 랜드가 바로 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매표소마다 줄을 100미터씩은 서 있다. 우리도 그 줄에 합류해 오랜 기다림 끝에 넉 장의 표를 구할수 있었다. ( 민박집 주인 이야기로는 시내의 몇 군데 지하철 역에서 디즈니랜드 표를 판매한다고 한다.- 우리가 탄 역에서는 판매를 안했을 뿐이고.. )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 공원 두군데가 있는데 디즈니 공원은 주로 아이들 탈거리가 많은 곳이어서 어른인 우리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만 입장한다 ( 51유로/인 ).
본토인 미국에서도 이렇게 붐비지 않았는데 평일인데도 각 장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1관이라고 크게 붙어 있는 곳은 별로 줄이 없어서 '그래 1관부터 보자 '하고 들어 갔더니 식당가이다...ㅋㅋㅋㅋ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먹고 보자.. 패스트푸드 이것 저것을 시켜 먹는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맥도날드나 패스트 푸드를 거의 먹지 않았다.. 손 꼽을 정도이다..
식사를 하고 그래도 줄이 덜 서있는 곳에서 약 30분 기다렸다가 들어갔더니 디즈니 애니메이션중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30분 가량 상영해 주는곳이다. 백설 공주, 미녀와 야수, 킹라이언등을 편집하여 주요 부분만 상영해준다. 바로 옆 상영관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만화가가 화면속의 동물과 대화를 하면서 만화를 그리고 그 기법을 소개해 주는 방식.
에니메이션관을 나와 비교적 줄을 적게 선 곳으로 가서 그냥 줄을 섰는데 이곳은 헉!, 청룡열차와 비슷한 ' 크러쉬 코스트 '라는 곳이다. 거북이 등 모양의 탈것에 네 사람이 타고 위,아래로 사정없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비틀고 하는 곳인데, 큰일 났다. 그렇지만 태연하게 한번 도전 해본다. 50대는 없는것 같다. 심장 질환이나, 혈압있는 사람, 폐쇠 공포증있는 사람은 타지 마라고 되어 있다. 5분간 이 기구 탈려고 두시간을 기다린다. 처음 한시간은 기대 속에 , 그다음은 건물내로 들어가길레 바로 타나보다 했는데 또 그속에서 한시간....... 타고나니 정신이 없다. 그냥 눈 꼭 감고 온몸에 힘주고 있는데, 급 강하할때는 온몸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다. 속으로 왜 탔는지 후회 열심히 한다. 그나마 시간이 짦아 다행이다.
이 지역으로 온 두 번째 목적인 아웃렛 쇼핑 장을 가기위해 4시반경 디즈니랜드를 나섰다. 아웃렛 매장은 전철 한구역만 가면 된다. 한국 사람들 목소리도 들린다. 통로 길이가 몇 백 미터정도 되는 아웃렛 매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위해 방문 하였는데, 고객 서비스차원에서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중년가수의 노래도 들린다. 별로 상품을 살 맘이 없는 우리는 ' 쓸만한 물건이 별로 없네 ' 하면서 그냥 배회하다가 돌아온다. 역시 시내의 명품점을 둘러봐야 할것 같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간을 체크해보니 약 1시간 20분 걸린다. 시내 곳곳에는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아마 여기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자전거의 상태가 매우 좋아 보인다. 우리 나라 에서도 잘 시행 되었으면 좋겠다.
저녁은 민박 주인이 예고한 데로 삼계탕이다.!!
말복이라 삼계탕을 준비하셨다는데, 인삼주가 없어서 못사고, 대신 백세주를 한병 사오셨단다. 엄청난 감동이 밀려온다.
아내와 같이 한잔하면서 아이들과 이렇게 삼계탕을 먹으니 너무 좋다....
8월14일(금) 비너스와 모나리자의 루브르
1999년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제 3도시 말모에를 연결하는 다리 ( 전장 16Km-차와 기차가 다니는 2층구조 ) 완공
1989년 트랜지스트 개발한 공학자 윌리엄 쇼클리 사망 ( 1956년 트랜지스트 개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
1960년 김일성, 남북 연방제 제의
오늘은 파리 시내를 가이드 투어 하는 날이다. 현지 한국인 가이드 업체 중 가장 열성적으로 가이드를 진행해주는 ' 자전거 나라'의 전용 차량 투어를 프랑스 여행 중 인터넷으로 신청해 두었다 ( 예약금 십만원 + 가이드비 270유로 - 4인 이하 가족 기준 ) .
9시 정각에 가이드가 차량을 가지고 민박집 1층으로 왔다. 가이드는 경상도 남자인 최준호씨 ( 세례명 가브리엘 ). 머리가 다소 길고 첫 인상이 다소 말을 붙이기가 힘들어 보이고 말이 없어 보이는 스타일이다. 속으로 오늘 투어 별로이겠는데, 하고 생각 했는데 큰 판단 착오 였다.
루부르 박물관이 9시30분부터 개장한다고 루부르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주차비가 엄청 비싸다. ( 가이드 투어 요금에 포함 되어 있는데 12시간인 경우 약 50유로 정도.. 우리는 네 시간가량 주차했는데 15유로 정도 든것 같다 )
입장료 9유로 내고 입장한다. 이곳은 대한항공이 협찬하여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하다.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국익을 위한 활동에 많이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1년에 관광객이 약 8500만명이 이곳 루부르를 찾아오는데, 그 관광객들이 오는 주요 이유중 하나는 모나리자를 보러 오기 위해서 이다.
모나리자가 유명하기 전에는 라파엘로의 작품 ' 성가족 '이라는 그림이 유명했는데, 1911년 도둑이 들어와서 성가족을 훔칠려 보니 그림이 너무 커서 그 옆 구석의 모나리자를 가져 갔는데 도난 후 1주일이 지나서야 도난 사실을 박물관 측이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 자리에 한동안 라파엘로의 일명 ' 남자모나리자 '라고 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 한다. 그후 더 유명세를 탄 모나리자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세 차례나 자리를 옮긴바 있다. 지금은 일본인들이 협찬하여, ' 가나안의 혼인 잔치'라는 큰 그림이 테마인 방에서 더 유명세를 누리며 방탄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제대로 사진을 찍을수도 없다. 모나리자는 미국과 일본에서 전시회를 연적이 있는데 연일 뉴스로 공수장면을 생중계를 하고 난리법석을 피웠는데 막상 전시한 결과 미국인은 평균 7초를 일본인은 평균 5초를 보았다고 한다.
루부르에서 제일 먼저 입장한 곳은 나폴레옹 3세의 방.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내부에는 큰 샨델리아가 달려 있는데, ( 지금은 전기시설로 등을 켜지만 ) 옛날에는 초를 꼽았는데 초가 약 20분간 탄다고 한다. 그후엔 샨데리아를 내려서 초를 바꿔설치 하는데, 이 이유로 프랑스의 극장에서 하는 코메디나 일반 극은 20분간 상영된후 다시 상영한다고..
찾잔의 모양이 특이하게 위로 봉긋하게 올라있다. 차가 뜨거울땐 찻잔에 차를 조금씩 부어 식혀 마셨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을 넘어가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도 이방에 있는데, 멋진 말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알프스 산이 높아서 말이 올라갈 수도 없어 노새를 타고 올라가고 만성 위장병으로 배에 한 손을 넣고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 사실적인 그림은 루부르의 회화관에 걸려 있었다. ( 들라로쉬 작품 )
우리가 보기엔 그다지 수준작이 아닌 도자기들이 자랑스럽게 많이 전시 되어 있다. 얼마전에 유흥준 ( 전 )문화재 청장에게서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에 관해 강의를 들은적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잠깐 했더니 가이드가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많이 알려야 한다고, 특히 도예 문화는 우리 것이 일본으로 전수된 것이며 더 훌륭하다는 것을 프랑스인에게 많이 알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공감이 간다.
메소포타미아관에 가니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이 세겨진 돌 조각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이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런 법도 있다고 한다. 양자로 입양된 아이가 장성하여 친 부모를 찾아 나설 경우 눈을 뽑고 보내 줘야 하며, 친부모가 찾아와서 아이를 요구 할때도 아이의 눈을 뽑은 후 보내 준다고...헉~~ 법전 상부 조각에는 앉아있는 신이 함무라비에게 자를 전해 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대륙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알렉산더 대왕이 길가에 누워있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당신의 소원을 들어 줄테니 이야기 해봐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대왕은 지금 내가 쬐고 있는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 주시는게 제 소원입니다. 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조각으로 표시되어 있다. 주변의 부하들은 디오게네스를 한방에 보낼듯한 화난 표정으로 있고...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신발에 날개를 달고 서있는 조각도 눈에 보인다.
하니발과 시저!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던 두 영웅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조각도 있다. 아마 전시 기획자가 한쪽은 로마를 점령했던 사람이고, 시저는 로마를 발전 시킨 인물이어서 대비를 위해 그렇게 배치한듯하다.
루부르궁의 역사가 전시된곳도 있다. 프랑스인들은 17세기에 이르러 서야 포크와 니이프를 사용하였고, 왕의 삶도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궁 내부 왕의 침실도 야전 사령관 처럼 긴급 출동할수 있게 원형탑 내부에 비상 대기할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차츰 4각의 별실 구조로 바뀌는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의 조각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있는데, 비너스는 머리는 올림머리이고 몸매는 다소 육체미를 한 여성처럼 건강해 보이고 ( 아름다운 S라인은 아닌듯.. ), 똥배가 좀 나왔다. 이 건강미 넘치는 8등신의 미인은 1820년 미도스섬에서 발견당시 코 부분만 없는 거의 완벽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팔에는 사과를 든 형태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운송 도중 파손되어, 다시 접합 시킬려 했으나 오히려 팔이 없는게 더 완벽스러워 보여 지금의 형태로 전시한다고. ( 코는 완벽한 성형 수술로 표시가 안난다. )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는 조각이 계단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BC 190년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와 서 있는 날개가 달린 니케(승리의 여신)를 표현하고 있다. 머리 부분과 양 팔뚝은 없어졌다. 1863년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 로도스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에 대한 전승을 감사하여 사모트라키섬 카베이로 신역(神域) 가까이에 세운 상(像)인데 발견 당시 100여개의 돌조각이었는데, 완벽한 복원술로 100여개의 돌조각이었다는 표시가 전혀 없다. 계단 중간에 설치한 것은 은근히 자기네들의 복원 기술을 뽐내는 것 같다.
가이드가 다시 열변을 토한다. 직지 심경을 우리나라에 돌려 줄려고 미테랑 대통령이 박물관 사서에게 지시를 하니 박물관 사서왈 ' 한국은 이것을 가져가면 5년 내에 훼손시켜 가치를 크게 손상 시킬것이므로 프랑스에 있는게 더 안전하게 보존 할수 있다 '고 이야기하여 아직 반환이 안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국보 1호를 불태워 버린 유일한 나라인 우리이기에 할말이 없다. 더구나 석굴암을 보존한다고 옛 사람들의 지혜를 무시하고 유리 벽등을 만들어 손상 시킨바도 있고, 팔만 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항온 항습 장치를 해서 곰팡이가 끼게 한 사람도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할 말도 없지만, 빨리 문화재 복원 및 보존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박물관 학과 다니는 학생들에게 점수가 모자라서 그런과에 갔냐고 하지 말고 그들을 복돋아줘야 한다고 가이드는 역설 한다.( 자기는 에너지 관련 학과 나왔다함 ) 억수로 공감이 된다......
파울로 베로네세가 그린 가나안의 혼인잔치 :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성모마리아의 요청으로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표현한 명화.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한 귀퉁이에 지친듯한 표정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의 모래시계는 세월이 흐름을 , 강아지는 충성을, 고양이는 음탕함을 표현한다고 한다. ( 그림을 읽는법 )
황제의 대관식 ( 다비드의 작품-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로 다소 정치적인 성향이 잩은 어용 화가 ) : 나폴레옹은 이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고. 평생 좋아하며 어려워했던 조세핀이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있고 자기는 위에서 내려 보며 왕관을 씌워 줄려 하고 있다. 그림 속에는 교황 비오 7세도 그려져 있는데 교황임에도 알아보기 힘든 위치에 있다. 교황이 대관해야 하는게 원칙인데 나폴레옹은 스스로 대관을 하고 조세핀에게는 본인이 직접 관을 씌워준다.
메두사호의 뗏목 : 루이18세의 정치가 잘못되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듯한 시대상을 투영한 명화. 배의 돗의 방향으로 봐서는 배가 큰 파도 속으로 들어갈 듯하며 저 앞에는 희망이 보이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외에 여러 작품에 대해 알차게 잘 이야기해준다. 정말 작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관람하니 더욱 알찬 느낌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 나와서 처음으로 한국인 식당으로 간다. (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인 통닭집에 간적은 있다 ) 부대찌개, 군만두, 갈비찜 정식등을 시켜 골고루 맛을 본다. 정말 맜있다. 그기다 소주 한잔!! 크~ 소주야, 반갑다. 얼마만이냐?~ 거의 혼자서 다 마셨다.. ( 5인 기준 약 20만원. 유럽의 한인 식당은 가격이 쎈 편이다. 우리음식이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보니 )
노틀담 성당으로 간다. 성당의 십자가 위에 수탉이 있다. 수탉은 회계의 뜻이라 한다. ( 배드로는 첫 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배반 )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1163년 순리 주교의 요청으로 착수하여 200년 걸려 완성한 성당이다. 성당 외부의 장식물 중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나오는 종치기 곱추 화지모도와 집시처녀 에스메랄다의 조각도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공사 시 인부들을 괴롭힌 반장이 빗물 받이중 하나로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성당 내부엔 화려한 스태인드 그래스가 눈에띤다.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본 것이지만 특히 구조상 아무른 버팀 구조없이 자연스런 원형을 유지하며 설치되어 있는것이 특이하다. 외부엔 여러 성인들 조각품이 설치 되어 있는데 그중 데니스 성인이 눈에 띈다. 순교하면서 자기 목을 들고 수 Km를 옮겨가서 돌아가셨다는 ( 조각에도 자기의 목을 들고 있다. 생드니의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데 파리 인근 지역이어서 프랑스 지방 여행 중 이곳을 가볼까 생각했었지만 못가봤다 )
내일이 성모 승천일이어서 노틀담 성당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준비 되고 있다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더러운것은 참아도 보기 싫은 것은 못 참는다고 한다. 처음 에펠탑을 설치 하고자 했을떄 수백 미터의 고철 덩어리를 세운다고 난리를 피며 반대를 했는데, 구스타프 에펠이 300미터짜리 국기 게양대를 세운다는 한마디의 말로 시민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공사 현장 같이 보이는 외관의 퐁피두 문화 센타도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 디자인이어서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은 각종 문화센터가 있어 프랑스의 주요 문화 예술의 공간이 되었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콩코드 광장으로 간다. 1789년 당통과 로베스 삐에로 주도의 프랑스 대 혁명으로 공포정치가 실현 될떄 단두대 ( 길루틴 )이 설치된 장소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당시 조그마한 잘못이나 투정을 하여도 바로 목이 잘리는 정치 현실이 계속 되었고, 당통마저 처형 시킨 삐에로는 당통의 예견되로 6주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이 공포 종치를 종식 시킨 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 그 당시 국경 수비 대장이었다 함 )
오늘 여행의 종착지는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수했는데 나폴레옹은 살아 생전에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고난후 이 문을 통과 하였다. 반면 히틀러, 드골은 살아서 이문을 통과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드골은 영국 망명시절 연합군이 프랑스를 수복하자 귀국할려 했으나, 연합군은 프랑스를 3등분하여 통치할려고 생각하고 ( 독일처럼 ) 드골의 귀국을 반대하였으나, 드골은 비밀리에 귀국하여 지지 세력을 규합해서 개선문을 통과 함으로써 정통성을 국민에게 인정 받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막은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패망한 후 한반도 정세는 프랑스의 상황과 비슷하였지만 우리는 나라가 분열되고 만 현실에 맘이 쓰리다. 정치적인 노선 보다 나라를 위한 큰 틀에서 나라를 보는 시각이 정치인이나 국민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걸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이드는 우리에게도 훌륭한 문화 유산이 많이 있기에 이를 잘 활용할려면 특히 박물관학이나, 고고학,등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을 한다. 훌륭한 젊은이다.
8월15일(토) 긴 여행의 달콤한 휴식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새마을호 운행 개시, 육영수 여사 문세광에 피격 사망
1945년 대한민국, 일제에서 해방. 일왕 히로히토 항복 방송.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
176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오늘은 하루 쉰다. 큰 아들의 감기가 나아가더니 작은 아들에게 옮겨 엄살이 심한 작은 아들이 하루를 쉰다는데 관광하겠다고 나갈수가 없다. 핑계 삼아 오늘 하루를 집에서 쉬기로 하고 그동안 못한 자료정리, 짐 정리등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저녁에는 민박 주인이 삼겹살을 해 주셔서 너무 맜있게 먹었다. ( 귀한 소주도 한 병 사오셨다. ㅋ~~~ )
이 집은 파리 16구의 ( 16구는 신흥 부촌이라고 한다. 파리의 귀족들이 많이 살던 동네인데 지금은 유태인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 아파트인데, 돌로 된 집이라서 그런지 내부가 그리 덥지 않다. 오늘 낮 파리 기온이 꽤 높아서 시장 다녀온 분이 더워서 혼났다고 하는데 집 내부는 선선하다. 참 돌집이 신기하다...
8월16일(일) 인상파 화가와 오르세 박물관
1977년 엘비스 프레슬리 43세로 사망 ( 심장병이 사인이지만, 지나친 약물 복용으로 몸은 엉망인 상태였슴 ) 그가
출현하자 당시 청소년이던 비틀스의 존 레넌은 “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고, 폴 매카트니는
“ 구세주가 나타났다 ” 라고 표현하기 까지 했다.
1961년 한국 경제인 협회 ( 전경련의 전신 ) 창립
1925년 찰리 채플린의 ‘ 황금광 시대 ’ 개봉 ( 채플린 각본,연출,주연- 금광을 찾아 알래스카로온 채플린, 굶주린 채플린은
구두의 소가죽을 끓여 먹는다- 폭소와 감동을 일으켜 흥행 대박됨 )
오늘은 오르세 미술관과 파리 시내투어를 하는 날이다. 원래 일정에는 오르세를 먼저 관람할 계획이었지만 조정하여 몽마르뜨 언덕부터 먼저 가기로 했다. 파리를 중심으로 약 100Km 이내에는 높은 산이 없는데 그중 유일하게 높은 곳이 몽마르뜨 언덕이다. ( 해발 130m ) 언덕에 올라가니 파리 시내가 잘 보인다. 언덕위에는 성심성당이 있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뜻의 성당이어서 내부에서의 사잔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고 발각되면 그날 찍은 원본은 다 날라간다. 내부에서 강조되는것은 두가지. 하나는 팔을 넓게 벌리고 모든걸 포용하는 듯한 예수의 천정화, 다른 하나는 베드로 성인인데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로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발 앞부분 발가락이 뭉개져 없어지고 있다.
300여개의 작은 나라로 되어있던 독일을 통일 시킨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모시던 빌헬름왕을 황제로 만들어 유럽을 좌우지 할려고 술책을 꾸민다. 그 당시 스페인 국왕을 선임할 기간이었는데 그 권한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에 있었으나, 독일은 ' 이번엔 우리가 한번 추천하자'고 딴지를 걸어 이에 노한 나폴레옹3세는 앞뒤 안 가리고 먼저 선전포고를 하여 독일을 공격하였으나 1주일 만에 독일에게 항복하고 굴욕적인 평화 협정을 조인하고 만다. 파리에 입성하는 비스마르크의 군대에게 파리 시민들은 투석등으로 저항하며 황제의 협정을 거부하자, 독일 군대는 파리 외곽을 둘러싸고, 나폴레옹3세는 군대를 보내 파리 시민을 제압할려 했으나, 오히혀 군대가 파리 시민에게 동조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3세는 독일에 병력 요청을 하여 파리 외곽을 더욱 봉쇄하여 파리 시민은 한동안 모든 살아 움직이는 짐승을 먹는등의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버티던 중 진격한 독일 병사들에게 약 2만명이 무자비하게 목숨을 잃는다. ( 파리 코민테른 사건 )
성심성당은 이런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며, 보국의 의미가 있어 전면에 쟌다르크와 루이9세의 동상이 지붕위에 있다. 가이드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국인 가족이 뜬금없이 다가오더니 ' 저기요, 저 성당 이름이 뭐예요? 입장료 받아요? 볼만 한가요? 하고 묻는다. 공부 좀 하고 오시지....
몽마르뜨 언덕 주위에는 무명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이 면세 특구로 지정된 바있어 가난한 화가들이 물감과 압상스라는 화가들이 좋아하는 독한 술을 싸게 살수 있었기에 이곳으로 몰려 들었다고 한다. 많은 실력있는 무명화가들이 아침 시간인데도 열심히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래의 고호나 모네가 이들 속에 숨어 있어리라.. 그리는 화가와 그려진 그림의 화풍이 비슷한거 같다. 어떤 깨끗하고 우아한 복장의 부인이 그리는 그림은 아름답고 맑게 보이고 지저분한 화가의 그림은 알수 없는 형태의 그림인 경우가 많다. 몽마르뜨 언덕 이곳 저곳은 많은 이야기가 피어나고 스타를 만들고 스타들이 지냈던 스토리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로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가 있다. 19세기말 몽마르뜨에는 인상파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연인이자 회화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여인이 수잔 발라동이다. 르노아르나 모네등이 그림의 모델로 많이 그렸다 한다.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사생아를 낳게 되는데 그가 모리스 위틀로로 오르세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많이 전시 되어 있다. 모리스 위틀로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유로운 생활에 거추장 스런 존재여서 수잔은 우유에 술을타서 재웠던 일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 치료도 받은 경험이 있어 그의 그림은 대체로 우울하고 황량한 그림이 많다.
장 마레의 벽을 뚫고 나오는 남자' 라는 조각 작품이 실제의 벽에서 빠져 나올듯 하다.
아내가 월남 쌀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여 13구역의 중국인이 하는 쌀국수 집에 간다. 우리 나라에 진출한 쌀 국수와는 스타일이 조금 틀리며 국물이 진하고, 면이 굵으며, 맛이 좋다. 가격도 저렴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중국인들은 한군데서 뿌리를 내려 그 곳에서 장사가 잘되면 친구들을 불러서 근처에서 장사를 하게 하고, 그렇게 하여 차이나 타운이 형성된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으로 간다. 오늘 주차는 참 기분좋게 편한 장소에 단번에 주차하게 된다. 몽마르뜨는 차량이 통제 되는 지역인데 올라가서 주차하였고, 쌀국수집은 바로 그집 앞의 노상 주차장에 자리가 나고, 오르세 주차장도 주차장 맨 앞쪽으로 진짜 출입이 편한 자리에 주차를 하였다. 가이드는 이런 일이 처음이란다.. 좋은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된단다~~ㅎ g
오르세 미술관은 1986년 기차역으로 사용하던 곳을 약간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개관을 하였는데 20년 만에 프랑스의 3대 미술관으로 발전하였다. 단지 루부르 박물관 지하 수장고의 일부 물품을 전시 하였을 뿐인데...
이곳의 회화는 주로 인상파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의 대표적인 특징은 빛과 색체, 주제 를 강조하였고, 일본 그림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
1823년 국전에서 마네는 그 당시 금기시 되던 신이 아닌 일반 여성의 누드화를 제출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데, 그 작품이 '올림피아'이다. 올림피아는 창녀인데 목걸이는 그녀의 직업을 나타내고 있고 귀의 양란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림에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들고 있는것은 남성을 상징한다고..
당연히 심사위원들은 너무나 놀라고 작품을 매도하는데 ' 에밀 졸라 '는 작품을 극찬하며 마네의 작품을 적극 지지한다.
마네는 감사의 표시로 '오필리아'그림이 배경으로 된 에밀 졸라의 초상화를 그려 준다.
인상파의 화가들은 주로 실외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드가는 실내 작품을 많이 그렸다. 특히 회화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찰라의 움직임을 느낌을 가미하여 그린 작품이 많다.
엄청 쇼킹한 작품도 있다. 구스타프 쿠베르의 세상의 기원 ( the origin of the world )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여성의 하체만 특히 음부를 세밀하게 그려 포르노 수준정도인데 이런 작품이 버젓이 미술관에 걸려있다. 그 앞에 3초만 서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을만한 그림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걸 들은적이 있다. 보는 사람이 생각이 이상하면 포르노화이고, 순수하면 명화라고.. 나는 명화라고 생각하고 싶다구요...
구스타프 쿠베르는 내가 보지 않은 것은 절대로 그릴수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과 만종이라는 작품을 본다. 밀레는 작품내에 수평선을 잘 그려 넣는데 이 수평선은 이상과 희망을 표시한다고 한다. 만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넘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 충격적이다. 감자가 든 바구니엔 원래 굶어 죽은 농부 부부의 아이가 들어있고 그 아이를 매장하기 전에 기도하는 그림인데, 밀레는 친구의 조언으로 아이의 그림위에 감자를 덧칠하여 그려 명화가 되었다 한다. ( 그림을 X-ray분석기로 분석한 결과라고.. )
그 외에도 쉐라라는 작가는 점묘법으로 '서크스'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운동감이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고, 르노아르는 가난했지만 풍요롭고 아름다운것을 표현 할려고 하였고, 고호로 부터 여자를 가장 객관적으로 봤다는 평가를 받은 드가의 작품들 등등 여러 가지의 작품을 설명과 곁들여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2층의 조각 전시실에 가니 로댕의 지옥의 문'이라는 조각 작품이 있다. 그의 유명한 조각 ' 생각하는 사람'도 이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속에 있는데,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묘사한 작품이다. 로댕은 지옥의 문을 제작하는 도중 만난 지성과 미모의 여성 카미유 클로텔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데 카미유 클로텔의 조각 능력은 로댕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고 한다.
지옥의 문 바로 옆에는 울며 매달리는 카미유 클로텔과 그 앞에서 마귀처럼 묘사된 아내에게 끌려가는 로댕의 조각도 있다.
오르세 미술관을 뒤로 하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에펠탑으로 간다.
"에펠탑은 부인용 모자의 장식 핀처럼 정교하게 파리위로 뻗어 있다. 우리가 탑에서 멀어지면, 탑은 꼿꼿하게 수직으로 파리에 군림했다. 우리가 탑에 접근하면, 탑은 우리 위로 몸을 기울였다. 1층 전망대에서 보면 탑은 위쪽으로 나사처럼 올라갔
고, 꼭대기에서 보면 탑은 다리를 쫙 뻗고 목을 접어 넣은 채 오그라들었다. " - 볼레즈 상드라르 -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이탑은 처음에 파리지엥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친다. 파리지엥들은 '더러운 것은 참아도 보기 싫은것 안 이쁜건 못참는다'라는 특징이 있다. 에펠은 320미터짜리 국기 게양대를 우리가 갖게 된다는 말로 설득하고 20년후에 판단하여 보기 싫다면 자진 철거하겠다고 약속한다. 시의 예산이 부족하여 에펠은 자비를 들여 공사에 착수하고 나중에 20년 동안 관람 수입을 받기로 하였으며, 한명의 안전 사고도 없이 완공하였다. 네 개의 기초 중 세느 강변에 위치한 두 개의 기초공사는 Top-Down공법으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공사 시작시 열열히 반대했던 모파상 같은 문인은 에펠탑이 완공되자 파리 시내에서 탑이 안 보이는 곳을 찾다가 이 탑의 1층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 1층에서는 탑이 안보이니.. )
약속한 20년이 지나 철거를 해야하나하는 갈림길에 있을떄 철거를 적극 반대한 이도 모파상이다. 탑 1층 커피숍에서 탑과 정이 들었나 보다.
높은 지역이 없는 파리에서 지금은 에펠탑에 라듸오 및 TV중계소가 있어서 이젠 꼭 있어야할 시설물로 되어버렸다.
에펠은 에펠탑으로 명성을 얻어 미국 자유의 여신상 구조물 공사 및 설치 공사에도 참여 하는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다운 탑이라는 생각이든다.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파리에 다녀간 사람은 한번 더 파리로 오게 될 것이고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 것이다"
언제 다시 올수 있을까? 귀국하기도 전에 벌써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난다. 유럽은 신비한 대륙이다.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다른 곳은 한번 다녀가면 다시생각이 잘 안나고 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없는데, 유독 유럽은 귀국하는 비행기속에서도 다음 여행의 꿈이 시작된다.. 그 이유가 뭘까?..........
8월17일(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87년 루돌프 헤스 전 나치 부총통 ( 서열 3위 ) 감옥에서 93세에 자살
1901년 서울시내 전등 시점식 거행-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전기가 점등된이후 한성전기회사는 동대문 발전소에
200KW 발전설비를 설치, 전차와 전등에 전력을 공급하게 됐다.
1807년 미국인 로버트 플턴, 세계 최초의 증기선 ‘ 클레몬트호 ’ 시운전 성공 - 뉴욕의 허드선 강에서 24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한 전장 45미터의 증기선을 띄워 32시간 240Km 여정을 성공함.
오늘은 여행후 처음으로 아내와 나만 시내 관광을 다니기로 했다. 두 아이는 두달 동안의 여행에서 피곤했던 몸을 하루 푹 쉬고 싶단다. 특히 둘쨰는 감기가 아직 다 낫지 않아서 더욱 쉬고 싶어 한다.
며칠 전 산10장짜리 까르네 중 한 장을 지하철 투입구에 넣으니 동작을 안한다. 다른 한 장을 넣어도 마찬가지이고 아내것도 그렇다. 창구에 앉아있는 역무원 여자에게 말하니 영어를 못하면서 딴전을 피운다. ( 6장 있는 표를 보여주니 4장은 어디있냐고 제스처를 하며 불어로만 이야기한다. ) 화가 나서 보는 앞에서 6장을 찢어버리니 당황해 한다. 나도 당황했다. 다시 까르네 10장을 기계에서 뽑았다.
제일 먼저 가 본곳은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파리시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퐁피두 문화 예술센타.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데 찾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알고 보니 그 건물을 가운데 두고 주위를 맴맴 돌은 꼴이었다. 덕분에 세느 강변에서 유람선을 바라보며 파리의 강과 하늘을 바라보며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고 자유로운 파리 기운을 느껴본다.
건물의 주요설비가 밖으로 노출되어 마치 가설 공사장인양 착각하게 하는 건물이다. 뒤편에는 설비 배관들이 주류로 나와있고 전면에는 비상 계단및 엘리베이터 피트등이 눈에 보인다. 앞의 광장이 넓어서 각종 행위 예술이 이루어 지는 곳인데, 오늘은 행위 예술을 하는 이가 별로 안보인다.
측면 옆에는 큰 분수대가 있는데 여러 가지 모양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서 마레지구라는 골목길이 예쁘고 다양한 상점등이 있는 거리를 가본다. 상점들은 주로 유태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는 빵 가게에 들러 볼일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앉아서 크르와상을 비롯한 몇 가지 빵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마치 파리지엥이 되어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순간이다.
빵 가게를 나와 골목 여기 저기를 둘러 보다 보니 골목 저 너머로 퐁피두 문화센타가 보인다. 다시 그곳으로.. 예전에 이곳에 갔을떄 분수대 근처의 계단에 앉아 가족들과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행위 예술을 본 기억도 나거니와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파리의 하루를 보내는 곳이어서 이제 파리지엥이 된 우리도 그기서 좀 쉬어볼까 하고 간다.
분수대 난간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을 쬐며 파리의 공기를 마신다. 옆에 앉은 아가씨는 팬티를 안 입었는지 많이 내려온 골반 바지 뒷 부분에 엉덩이가 노출이 심해 거의 주요 장기까지 보일정도의 노출인데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비둘기가 우리의 한가로운 자유를 방해한다.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비둘기들이 특히 이곳에 많은 것은 이곳이 많은 사람의 휴식처이며 관광객의 식사 장소여서 그런거 같다.
아내가 쇼핑하러 샹젤리제 거리로 가보잔다. 일단 개선문으로 가서 개선문의 위용을 구경한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가 사방 팔방으로 뻗어 있어 이곳 개선문이 파리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개선문까지는 별도의 지하 통로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단 횡단을 하고 있어 우리도 같이 합류한다 ( 안되는데... )..
벽에 세겨진 전쟁 영웅 명단에 실제 전쟁에 참여했던 빅토르 위고의 아버지 네오폴 위고의 이름이 실수인지 세겨지지 못해서 빅토르 위고는 몹시 섭섭해 하고 이근처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개선문의 중앙 바닥에는 향이 피워져 있어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나도 잠시 묵념..
샹제리제 거리로 돌아 나올때는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나온다. 파리에는 공중 화장실이 잘 안보인다. 아내가 여기 저기 둘러보는 동안 나도 화장실을 찾아 여기 저기를 둘러본다. 제법 큰 나이키 신발 매장이 보인다. 나이키 신발을 신었던 적이 있으므로 보무도 당당히 들어가서 화장실을 찾아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찾아 보지만 화장실은 안보인다. 비상 계단 표시가 있어 혹시 계단 쪽에 화장실을 숨겼을까 하고 무심코 계단 문을 여는 순간 비상 경고음이 강하게 온 매장안에 퍼진다. 무척 놀랐다. 계속 울리는 경고음 통에 정신이 없다. 보안 요원들이 뛰어 올라 오고 있는데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나이키 매장을 조금 지나 하겐다즈 아이스 크림 집이보인다. 그기엔 화장실이 있다. 운동하러 다닐떄 하겐다즈가 보이면 몇 번 사서 먹어줘야 겠다.
아내가 원하는 선 그래스 가게는 잘 보이지 않고 여성 화장품 점이 보인다. 여자 종업원들의 복장이 특이하다. 검은 상하의에 앞에는 서부의 건맨처럼 벨트를 차고 그기에 각종 화장 도구를 꼽아놓고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애초 향수가 목적이 아니었는데 향수를 몇 개 사고 나온다.
바토무슈라는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갈 계획이었으나 ( 가이드 투어시 제공 받은 표가 있어서 ),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아내가 그냥 집으로 가잔다. 아들들이 기다린다고...
이제 내일이면 두 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글을 쓸 시간이 없을지 모른다. 두 달 동안 끝까지 여행을 완주한 가족들에게 고맙고 매일 이렇게 일기를 쓰게 용기를 주신 한국의 선후배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
언제 다시 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많지만 ,현재는 마라톤을 완주한 주자처럼 완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있다..
8월18일(화) 잘있어라 유럽, 또오마 유럽
2004년 한국축구 아테네 올림픽에서 56년만에 8강 진출 ( A조 예선 말리전에서 3-0으로 뒤지다 3:3이 됨 )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 미류나무 가지치던 미군 2명 살해됨- 김일성 사과함 )
1227년 징지스칸 사망
오늘은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날이다. 저녁 9시 비행기이기에 낮에 관광을 할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아침을 먹고 큰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신 개선문 성격의 의미가 있는 라테팡스로 가기로 한다. 지하철 종점 라테팡스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자 거대한 라테팡스 건물이 보인다. 개선문처럼 생긴 건물이지만 주로 사무공간이 많은 오피스 건물이다. 중앙에 뻥 뚤린 곳에는 누드 엘리베이터가 관광용으로 설치되어 있다. ( 라테팡스 엘리베이터 성인 10유로, 학생 8.5유로. )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위를 쳐다보니 엘리베이터용 와이어 로프를 잡고 있던 로봇 팔이 있는데, 승강기가 일정한 거리로 접근하자 자동으로 로프를 놓고 승강기가 운행하는데 지장이 없게 자동으로 비켜준다. 평상시에는 로프의 이탈을 막기 위해 로프를 잡고 있는것 같다. 옥상에 올라가니 저 멀리 직선서리로 개선문이 보인다. 이곳과 개선문과는 약 5Km떨어져 있다고 한다.
파리 시내의 대부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가슴이 후련하다. 옥상에서 경치를 감상하다 최상층으로 내려오니 앤디워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학원에서 포토샾을 공부할 때 이 사람 작품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변형된 작품을 만들어 본적이 있기에 더 흥미를 끈다. ( 특히 마를린 몬로의 얼굴의 칼라를 변형시켜 포토샾의 다양한 기능을 익히는 시간에 이 분의 작품을 많이 활용했다 )
그런데 아침에 마신 우유 탓인지 속이 무척 불편해진다. 가족들을 두고 화장실에 가서 중요한 거사를 치른다.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바또무슈라는 세느강 유람선도 탈겸 연인들의 다리라고 하는 퐁네프의 다리를 거닐고 유람선을 타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여행책자를 보다 그만 화장실에 두고 나오고 말았다 ( 나중 지하철 역에서 알았지만 이미 늦었고 다시 입장료내고 위로 올라가서 책 찾기도 그렇고... ) 예전에 친한 분과 미국 출장 갔다가 그분과 화장실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그분이 여권과 돈이 든 앞으로 둘러메는 가방을 두고 나오는 것을 내가 발견하고 돌려 드린 기억이 난다.
지하철을 타고 퐁네프의 다리가 있는 퐁네프 역으로 간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면 바로 보이는 이 다리는 세느 강변에 세워진 30여개의 다리중 가장 오래된 다리인데 퐁네프는 ‘ 새로운 다리 ,라는 프랑스어이다. 앙리4세 때인 1607년에 완공되었으니 400년이 넘은 다리인데도 아직 차량들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튼튼한 다리이다. 다리 위에는 말을 탄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세느 강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귀국일이어서 그런지 이 모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픈 욕구가 난다.
이 다리로 온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인 세느강 유람선 ’ 바토 무슈 ‘를 탈려고 강변을 한참 거닐었는데, ( 루부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도 지나쳐 간다 )
바토무슈 승강장은 보이지 않고 다른 유람선 승강장만 보인다. 오늘 밤 비행기에서 피곤해 지칠만하게 걸은 우리는 결국 바토무슈는 다음번 파리에 왔을때 타기로 하고 ( 몇 년전에 왔을때 타 보았고 유람선을 타고 가다보면 강변에서 자유로이 거닐며 연인과 다정히 키스하고 있는 선남 선녀 들의 모습도 많이 보았었다 ) 퐁네프 다리 아래에서 아이스 크림으로 더위를 식히고 주변의 정취를 느껴본다. 결국 바토무슈 승차권 넉장은 민박집 주인에게 넘겨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인정 많은 여주인이 물이나 술에 타서 먹으면 좋다고 민트향 농축액과 복숭아맛 농축액 몇 병을 선물로 준다. 여기 있는 며칠 동안 작은 아들이 감기 기운이 있을때 뜨거운 물에 타 먹여 봤는데 괜찮은것 같았다.
짐이 많기에 지하철로 공항에 가기는 무리여서 운전 아르바이트하시는 한국인을 불러서 ( 민박집 주인과 알고 지내는 분 )
70유로에 공항을 가기로 한다. 6박 7일 동안 정들었던 이 집을 떠날려니 많이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지만 우리의 삶의 터전은 서울이기에 작별을 하고 공항으로 간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물 샾에서 가볍고 부담 안가는 선물을 좀 산다. ( 단가는 얼마 안되는 선물이지만 많이 사니 금액적 으로는 약간 부담이 가지만.. ) 면세처리를 하고 공항에 가서 서류 접수를 해서 도장을 받고 서류를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한다. 예전에 로마 공항에서는 면세 처리를 할때 물건 보여주고 아주 절차를 귀찮케 하고 창구가 붐볐는데 이곳 드골 공항에선 물건을 보여 주지도 않아도 그냥 도장 쿡 찍어준다.
대한 항공 수속 카운터에는 대부분 현지인들이 수속을 하는데 역시 일하는 속도가 우리 나라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능률이 떨어진다. 약간의 문제가 생겨도 한국인 직원을 불러 자문을 받고를 반복하다보니 수속 시간이 제법 걸린다.
수속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그놈의 맥주 한 병으로 약간 우울한 기분을 달래본다.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듀~~~~ 유럽!!!
8월19일(수) 한국
1997년 북한 경수로 착공
1987년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 전대협 ) 발족
1979년 소련 우주선 소유즈 34호, 우주 체재 175일 기록세우고 귀환
60일간의 짧지 않는 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우리나라에 왔다! 비행기내에서 거의 자지 못하고 영화 몇 편 보고 뒤척거리다 보니 서울이다. 유럽에선 그리 느끼지 못했던 신종 플루의 분위기를 공항에서 느낀다. 수속하는 분들이 방역 마스크를 쓰고 비장한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무겁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유럽으로 나올 때 탔던 콜 밴 기사분에게 전화를 하여 다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지나간 60일의 일정이 길가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같이 어우러졌다가 사라지곤 한다.
유럽에선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지내 왔는데 서울에 오니 너무 덥다.
여행기를 마치게 되니 시원섭섭하다. 그래도 의지와 정열을 가지고 기록을 열심히 한닥에 제데로된 여행을 한것 같아 기쁘고 또 이 여행기가 읽혀져서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좀 휴식을 취한 후에 자료를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여 책을 낼 준비를 해야겠다.
책을 내기엔 모든 분야에서 부족한 나인데 이렇게 여행기로 나마 책이란 걸 내게 된다니 가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