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0년대

두 달간의 가족여행1부 1(2009.6월21일~6월30일)

매직랜즈 2020. 11. 16. 17:04

타사 내 계정에 올렸던 많은 내용들이 해킹으로 인하여 사라져버렸다. 오랜기간 관리해오던 게정인데.... 그동안 카페등에 올렸던 글들을 우선 퍼와서 보관하기로 한다. 

 

 

 

 

 

60일 여행기 본격적으로 올립니다.

편의상 3부로 나눴구요.

1부는 정열의길 ( 스페인/포르투갈 )

2부는 도전의길 ( 북유럽 )

3부는 낭만의길 ( 프랑스 )로 나누었습니다.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6월21일 (일) 드디어 출발 (인천~마드리드)

역사속 오늘

1948년 미국 콜롬비아사 LP레코드 첫 공개 ( 80년대 CD에 자리 내줌 )

1527년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사망

 

새벽 4시에 기상했다. ( 오전 9시10분 비행기 )

우리 강아지들 ( 며칠전 아시는 분에게 두달 맡겼다. - 미안해~~~ )

면도하고 볼일보고 나머지짐들 다 정리히니 5시.. 너무 일찍 일어났다. 콜밴을 6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영등포에서 인천공항까지 52,000원.. 내릴떄 55,000원드렸다

공항가는길에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택시 경력 38년째 란다.. 옛날 코로나 택시시절부터...

비행기는 한번도 안 타봤지만 국내 여행은 많이 해보셨다네... 내가 약간 부끄러워 지는 느낌이다.

 

내 핸드폰은 3G가 아니어서 공항에서 임대폰 로밍을 했다.

아내는 3G여서 그냥 가지고 가고...

 

부치는 짐에 모기약 스프레이 한통을 넣었는데, 검색대에서 걸려, 티켓팅하는 승무원에게 줬다..

핸드캐리 짐이 검색대 통과하는데 열어보란다. 잉~ 나도 모르는 3분짜장이 들어있네.. 액체물 기내반입 금지 규정으로

다시 누군가에게 줘야할 상황인데, 과감히 큰아들 시켜 다시 밖으로 나가 부치는 짐으로 보냈다..

 

검색대와 출국심사대 사이에서 큰아들 기다리는데, 정말, 액체류 반입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젊은이는 후라이드 치킨과 음료수를 검색대에서 배속으로 보내고 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푸두코트에서 아침을 먹었다. 해물된장찌게와 돈까스 덥밥등 4인분이 34,000원...

 

3년전 유럽여행시는 우리 네명모두 내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했는데, 이번엔 2명은 이코노미 2명은 비즈니스이다. 중간에 암스테르담 경유하였다가 다시 마드리드로 가는 노선이다.

 

 

암스텔담까지 오는 동안 영화 4편보고 2번 식사하고 한번 라면 먹었더니 도착하였다 ( 11시간 )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 라스트 하비찬스 ', 드웨이 존슨 주연의 '워치 마운틴' ( 외계인 관련 영화 ), 리암니슨 주연의 '테이큰'

( 극장에서 감명깊게본 영화인데 한번 더 보게 되는군.. ), 크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감독의 '그랜토리노'( 제법 작품성이있는 영화이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주인공 노인이 소심한 이웃 중국 청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장열히 산화하는 영화 )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그 악평높던 소매치기들이 거의 없는것 같다, 짐가방이 다섯 개라 택시타기가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마침 밴차량같은 택시가 그 많은 대기 택시줄에서 우리차례 근처에 서있다. 무지 반갑다.. 운이 좋다.

택시비 31유로에 짐값10유로를 달래서 41유로 달래서 줬다. 두 대 타는것보다 경제적이지 생각하면서...

 

택시를 타고 민박집에 도착하니 오후 8시. 대충짐을 풀고 민박집 근처의 거리로 나왔는데 이 시간에도 선그래스를 껴야할 정도로 햇빛이 강렬하다..

 

도착기념으로 사진 한장!

 

어느 상점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

 

민박잡 근처의 작품인데, 히프에 광이난다! 하도 만져서...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이 밤 10시인데, 이제 어둑어둑해진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 한국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정말 많이 움직인 하루였다!!

 

내일의 자전거 나라 투어를 위해 취침!!


622일(월) 톨레도와 마드리드의 폭염 속에서)

 

역사속 오늘

2002년 한국,아시아 첫 ‘4강 신화달성.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 53 승리

1998년 북한 잠수정 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사차 적응이 안되서 인지 잠을 많이 설쳤다. 여행 준비시 조사해 보니 한인 민박이 여럿 있는 이곳 마드리드이지만 호텔에 자야하나, 민박에 자야하나하고 가장 많이 망설일 정도로 맘에 드는 민박집이 없었는데, 그래도 한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한식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민박쪽으로 선택하고 여러 민박중 제일 평이 괜찮은 편인 곳에 4일간의 둥지를 틀고 그 첫날인데, 100점 만점에 잘봐줘서 61점 정도...

 

가져온 내 컴퓨터를 켜기 전 거실의 컴을 사용할려니 애들 둘이 ( 주인집 아이들 인듯 )앉아서 계속 두시간정도 하고 있길레, 아저씨 컴좀 하자고 하니 멀뚤 멀뚱 쳐다만 보고 비켜줄 생각을 안한다 " 너 한국말 모르는 아이구나.. 꼭 한국 사람같이 생겼네! "하고 한마디 해주고 방으로 들어 왔다.

 

오늘은 '자전거 나라'의 똘레도/마드리드투어 하는 날!

 

불 꺼진 우리 방에 책 한권 가지러 들어갔다 깜깜해서 침대에 부딫쳐 오른발 정강이가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피도 약간 나오고..( 이 상처는 스페인을 벗어날 즈음 딱지가 떨어졌다 )

만남의 장소인 시내 래트로역까지 9시까지 가야 하는데 아침을 9시에 준다니.. 아침에 약간의 신경전을 하고, 820분에 차려주는 짜짱 밥에 김치를 먹고 지하철 타고 가니 그래도 가까운 곳이어서 9시에 도착했다.

지하철 타고 가는 중 내가 서있는 앞에 한국인 인듯한 예쁜 여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지하철 안내도를 보며 우왕좌왕하고 있자 , 우리에게 말을 하는데, 세상에! 오늘 우리 투어를 담당하는 가이더라고 한다! 이런 우연이...

장경인 가이드 3년차 미혼!!!

 

오늘 가이드 신청한 사람이 26! , 너무 많은거 아닌가? 무선 수신기와 이어폰을 나누어 준다 ( 일반 35유로,학생 20유로+ 한국에서 예약비 인당 2만원 )

누군가 젊은 청년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이 먼 곳 스페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어제 타고온 비행기의 남자 승무원이다! 여승무원 9명과 투어한단다.. 이런 행운이!!!! 젊고 예쁜 아가씨들과 오늘 투어를 같이 다닐 생각하니 저절로 즐거워 진다.. ( 입에 침좀 자주 딱아야 겠다~~ )오늘 하루 내내 즐거웠당~~ㅋㅋㅋ

 

미리 지하철 탈 때 끊은 Zona-T 하루권 ( 10.4유로 )으로 시내버스타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선착순으로 줄을 선

우리 일행은 운좋게 50분걸리는 똘레도행 직행버스에 탑승하였다. ( 완행은 한시간 30)Zona-T 하루권은 마드리드 시내와 똘레도 까지 가는 시외버스까지 하루 동안 공짜이다.

 

자전거나라' 가이드들의 일반적인 특징하나!

정말 열성적으로 가이드를 한다. 2006년 이태리와 체코에서도 그랬고, 오늘도 가이드가 쉴새 없이 감동을 준다.

기업체의 직원들이 이정도 열정으로 뭉쳐있으면 그 기업체는 크게 성공하기 마련이다.

유사 현지 한국인 여행사도 많이 생겨났지만, 자전거 나라는 독보적인 존재인것 같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가이드가 스페인의 소매치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행 준비중 가장 신경 쓰였던게 스페인 소매치기일 정도로 다녀온 분들의 여행기들을 읽으면 사건,사고가 무지 많고 유럽 소매치기의 원조 지역 같은 곳이 스페인인데, 바르셀로나 지역이 더 심하다고 한다.

-여권과 많은 돈은 꼭 숙소에 두고 다닐것!

- 가방은 항상 앞으로 메고 다니고 식사때도 옆에 두지 말것.

-멋진 남자나 여자가 당신에게 다가오면 당신이 미남이어서 ( 예쁘서 )가 아니고 당신 가방이 예쁘서 다가 오는것이니

긴장의 끈을 늧추지 말것 등등..

 

똘레도 가는길은 거의 올리브 밭이다. 스페인과 그리스등이 전세계 올리브 생산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단다.

차안에서 가이드가 무선기를 이용해 노래 몇곡을 들려주고 디제이 역활을 훌륭히 한다.

첫곡은 스페인 대표적인 기타곡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1904년 작곡가 타레가 ( 1851~1909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근대적 기타 주법의 창시자 )가 사랑하는 여인 콘차부인에게 실연당한 추억을 달레고자 알함브라의 분수소리를 듣고 작곡했다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기타곡 로망스와 비슷한 느낌!

그 외에 카르맨, 세르비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등 스페인과 관련된 명곡 몇곡을 해설과 함께 들으니 어느새 똘레도에 도착하였다..

- 똘레도 성입구 -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 가이드가 자세히 설명을 한다 ( 참 공부 많이 노력했다는 느낌!! )

 

스페인을 이베리아 반도라고 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이베르족이 넘어와서 이베리강 근처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유래되었으며,

그후 페니키아인들이 와서 카디스 해상도시를 세웠고, BC 2세기경에는 로마가 침입하여 포에니전쟁을 일으켜 ( 하니발 장군 ) 600년간 로마의 속국이 된다.

476년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족이 훈족의 침입을 피해 대이동을 하여 고투족이 이베리아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고투족은

왕위세습이 안되어 계속 전쟁이 이어 십자군 운동 ( 레콩키스타운동 )으로 1085년 똘레도가 수복되고 1561년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까지 이곳 똘레도가 수도로 있었다.

이 레꽁키스타 운동의 주역은 이사벨라 여왕이다. 이사벨라는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 발견하게 지원하였다.

스페인의 주요 요리로는 빠에야, 하몽등이 있다. 빠에야는 해물 볶음밥 정도로 생각하면 되고, 하몽은 염장 돼지 뒷다리를 말한다. 돼지를 얼마나 염장했느냐에 따라, 또 그 돼지가 뭘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  낮에 먹은 하몽 샌드위치 -

 

마드리드 시내에는 헤밍웨이가 자주 애용했다는 하몽 요리 전문점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보틴' ( 1725년 창업 )

이 있다. 모래쯤 꼭 갈 예정임.

 

스페인은 17개의 자치구로 되어있으며, 각 구마다 개성 ( 개 같은 성질 )이 너무 강해 현재 바스크족등 몇 개의 구에서 분리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바스크족은 스페인 열차 테러 등의 각종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바르셀로나인들과 마드리드인들의 반목도 굉장히 심해 2002년 대한민국 올림픽에 마드리드인 감독이 대부분의 선수들을 기용함에 있어 대부분 마드리드인 선수로 기용했는데 4강에서 우리에게 5:3의 승부 차기로 지자 바르셀로나인들은 '고소하다'고 했다고 한다 ( 오늘이 2002년 그날이다!! 그날의함성, 홍명보의 포효~!! 눈에 선하다. )

 

똘레도는 유럽의 다른 중세도시들이 그러한 것처럼 성 주위를 강이 흐르고 있고 ( 강이름 Rio Tajo 따호강 ) 성안에는 대성당, 광장등이 있다.똘레도 성안에는 120개의 골목이 있고, 골목 잘못 들어가면 미로처럼 되어 있어 헤어나가 힘들지만, 중앙에 광장이 있어 그 광장으로 빠져나와 다시 가고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마 외적의 침입시 수비를 위해 그런것 같다.

똘레도에는 스페인 최대의 대성당이 있어며, 유대인+아랍인+스페인인들의 삶이 묻어있다

 

똘레도는 철의 산지로 유명하여 반지의 제왕,300등의 영화에 나오는 무기들을 생산하였고 전시된 곳도 많다.

 

이곳 출신의 유명한 화가로는 엘 그레꼬가 있다. 엘 그레꼬는 크레타섬 출신으로 이곳 똘레도에서 37년을 살며, 성당의 요청으로 다양한 성서상의 인물들을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잘 묘사하였다.

똘레도의 특산 먹거리로 '마사판'이라는 과자가 있다. 이 마사판은 주로 수녀들이 만들어 더욱 유명해졌다.

 

좁은 골목들중 주요 골목에는 길 위로 직사 광선을 피할수 있게 천을 골목 천정 쪽으로 설치해서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듯 하다.

똘레도 대성당은 회교도들이 사용했던 곳을 성당으로 개조한 곳이다. 성당 입장의 예의로 남자는 모자를 벗고 들어 가야하며,

입장료는 7유로이고 내부 사진 촬영은 안된다.

중세 시대에는 이곳 성당 앞 광장에선 마녀 심판이 자주 열렸다고 한다.

-  효도 관광 나온 외국인들 .. -

 

중세의 성당에는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문맹율이 높아서 그림으로 역사를 표현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에는 어떤 화가가 그리던 간에 , 스페인이던 로마이던 간에, 지켜가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를 우리는 '도상학-즉 그림을 읽는 법'으로 해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무 십자가를 메고 있거나 양가죽 옷을 입은 이는 세례자 요한이다.

세바스찬 성인은 화살 맞고 돌아가신 모습이고, 베드로는 열쇠 두 개를 팔에 걸치고 있다.

이런 일정한 패턴 때문에 혹자는 중세 그림은 주제만 중요하고, 원근법이 무시되었기 때문에 '중세그림은 죽었다'라고 표현까지 했다. 아뭏튼 중새 그림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는데, 스페인에서 이를 타파한 화가가 '엘 그레꼬이다 '

엘 그래꼬의 그림은 극 세밀 주의, 극 사실 주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화가는 흰색, 검정색, 빨강색을 잘 다뤄야 한다'라고 했다.

똘레도 성 내부 관광을 마치고, 성 전체를 볼수 있는 외부 전망대가 있는 호텔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 버스비 0.95유로 )

호텔의 테라스에 전망대가 있는데 똘레도 성 전체를 볼수 있다.

 

오늘 낮 기온이 38. 그러나 그늘에 있으면 그리 더운줄 모른다. 우리 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사광선을 피할 수 없는 도로위에선 상당히 따가운 햇살이 피부를 자극한다. 하나라도 더 이야기 해 줄려는 가이드의 열성 덕분에 마드리드 도착하여 왕궁과 스페인 광장까지의 가이드 투어를 마치니 8시가 넘었다. 무지 강행군 한 셈이다.

 

내일은 세고비야를 관광한다. 자전거 나라와 함께...

 

623일(화) 기타와 관련이 없는 도시 세고비야

1956년 연합군 수풍댐 공격

1961년 세계 12개국이 조인한 남극 조약 발효

200314세 재미교포 미셸 위, US여자 아마 최연소 우승

 

오늘은 자전거나라의 세고비아 투어를 하는날!

세고비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고비야 기타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이다.

어제간 똘레도는 마드리드 남쪽이었고, 세고비야는 북쪽이다. 이곳 스페인은 북쪽이 남쪽 보다 잘 산다고 한다..

 

민박집에서 또 아침 식사 땜에 싱강이한다. ' 오늘도 자전거 투어 가세요?'하고 물어보네.. 콱 그냥~~

식은 밥과 계란 말이, 김치로 아침을 급하게 먹고 약속 장소로 간다.

9시 투어인데 8시쯤 준비해 주면 좋을텐데, 830분 정도가 되어 준비되니 먹는 우리도, 준비하는 이도 서로 피곤하다.

 

9시에 모임 장소로 가니, 어제의 꽃밭은 다 어디로 갔나? 어제 같이 다녔던 멤버 중에 승무원들은 다 빠지고 우리 가족 4, 대한항공 기장부부, 엄마 모시고온 여승무원 모녀, 남자 대학생 두명 해서 총 10명이다. 가이드는 이재훈 31세 꽃미남 총각..

 

마드리드의 지하철 요금은 1회권 1유로, 10회권 8유로, 1일권 10.4유로이다.

세고비야 가는 시외버스 요금은 12.48유로.. 세고비아로 가는 고속 버스의 차장으로 멀리에 프랑코의 150미터짜리 십자가가 보이는데 거리가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첨부함. 돌 십자가의 높이 150M인 이곳은 프랑코가 전쟁 포로를 이용해서 1940~1958년까지 공사하여 만들었으며, 나중 자신도 여기의 성당에 뭍힘 --

 

세고비야에 도착하니 제비가 많이 날고 있다. 공기가 깨끗한 증거란다. 이곳 온도는 마드리드보다 약 3~4도가 낮다고 한다.

스페인사람들은 단것을 좋아하는데 막대 사탕 '추파춥스'도 스페인에서 나왔다.

스페인의크기는 남한의 5배 인구는 4500만 정도..

-  마요르 광장에서 본 세고비아 성당 과 수로교  -

 

세고비아의 최대 명물은 역시 완벽하게 보존된 '로마 수도교"라고 할수 있다. 2층 아치형 구조로 된 화강암으로 시공한

이 수도교는 길이 760미터이고 전체의 경사도는 1도미만이다.

 

접착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돌을 쌓아 시공했다.. 정말 놀랍다.. 정밀한 설계도에 의해 시공되었다고 한다. 이 수도교의 목적은 높은곳의 물을 끌어와서 세고비아로 공급하기위해서이다. 수도교의 끝에서 시내로는 파이프를 뭍어 시공했는데, 로마인들은 쉽게 연마할수 있고 가공하기 편한 납관을 사용하여, 납중독이 많았다고 하고 그뒤 이슬람인 들이 동관으로 교체 했다고 한다. 수도교의 발상이 참 놀랍다.

 

수도교와 세고비야 시내 관광을 마치고 가이드가 추천해주는 현지 식당에서 우리 일행 모두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곳은 새끼돼지 요리가 유명한 지역인데 10명이 한 마리정도 먹을 분량이라고 한다.

이곳의 명물인 해물 스프와 ( 우리 해물 된장찌개와 비슷 ), 새끼돼지 요리, 스테이크, 음료수 , 와인 한병을 시켰다.

가이드의 전달만 받다가 일행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 대한항공 기장은 여행을 여러번 다닌것 같다.

대학생들은 스페인~영국~프랑스~ 터키~ 러시아 일정으로 78일 예정이란다. 엄마를 모시고온 여 승무원은 시집을 갔단다!!

( 아내가 예쁘다고 창찬을 많이 했는데... ) 어제 나온 승무원들의 미모가 대한항공 승무원 평균 이상의 미모라고 하자, 실제로 미스코리아 지역 출신도 있고, 평균 이상이라고 한다. ~~

 

식사비가 191유로 나왔다. 와인은 내가 주문했기에 우리 가족이 100유로를 내고, 기장님 부부 50유로 승무원 모녀 40유로 대학생들은 나머지 11유로를 내었다.. 회기 애애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  식당에 걸려있는 하몽  -

 

점심 식사후 세고비야 성내 '백설 공주'의 모델이 됐다는 알 카사르성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실은 백설공주와 관련된 어떤 전시물이나 기념품을 발견 할 수 없었다. 독일 퓨센 지방의 노인슈반스타인성과 모습이 비슷하다.

 

이 성에 콜럼버스가 양민 학살 죄로 감금된바 있고, 그 콜롬버스의 후견인이었던 이사벨라 여왕도 어렸을때 이복오빠인 엘리께의 암살 기도로 이곳에 갇혀 살았다고 한다. 이사벨라는 동물들을 키우면서 이 동물들을 이용해 암살기도를 맊았다고 한다.

--  이사벨라 여왕을 표현한 창문의 스태인드 그라스 와 오늘 투어의 일행들과 기념 사진 -

 

포병학교로 이용된적이 있어 내부에 포관련 시설도 많이 있었다.

 

이곳 세고비아는 인형극 축제가 유명하다.

 

스페인은 복권 문화가 매우 발달되었는데, 그중 '온세 복권'은 장애인들이 판매하며, 매일 당첨자가 나오는 방식이다.

이곳의 최대 복권은 '크리스마스 복권'으로 1등 당첨금이 6~7천억 정도이며, 1조가 넘어 가기도 한다. 물론 한사람이 아닌 여러명이 당첨되는 경우가 많다. 복권 당첨 중계 방송은 5~6시간정도 생중계를 하며, 이 크리스마스복권은 사기위해 1시간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금은 수입의 40%이상이며,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다, 2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막내의 대학 등록금이 600유로 정도인데, 3자녀의 막내의 등록금은 단돈 6유로로 이는 출산을 장려하기위한 정책 중의 하나라고 한다.

 

스페인인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한끼 식사를 하면서 2시간이상 대화를 하고, 술집에서 맥주한잔으로 한 시간 이야기하고, 2차가서 또 맥주 한잔으로 한 시간 이야기 한단다.

우리 가이드가 현지인집으로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간적이 있는데 ( 보통 9시정도에 저녁을 먹는다 ) 12시반경에 나오면서 일찍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몇 번씩 이야기 하고 나왔다고 한다. 보통은 새벽까지 먹으면서 이야기한다고..

 

가이드가 스페인인들의 투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과거 귀족들의 놀이문화였던 이 투우는 현재 많은 동물애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속 번창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3명의 투우사가 6마리의 소를 죽이는 순서로 진행된다. 원형 투우 경기장은 대부분 지정석이며, 좌석은 2.3유로~60유로까지 천차만별이다.

방목 중이던 소를 경기장의 어두운 곳에 24시간 대기 시켰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오게 하여 30분 이내 죽이는 방식이다.

5월은 마드리드 투우축제기간으로 매일 투우가 열리며, 그 외 기간은 주로 일요일에 열린다.

 

소가 경기장에 나오면 여러 명의 보조원들이 상처를 내고 물러간다. 두 번째는 '삐까도르'라는 말을 탄 투우사가 고리모양의 긴 창으로 소등에 6개의 작살을 찌른다.

세 번쨰 나오는 투우사는 이 경기의 주인공으로, 흥분한 투우를 붉은 망토로 여러번 불러들이는 묘기를 보이는데 노련한 투우사 일수록 이 망토를 몸 가까이 부친다고 한다 ( 투우의 뿔과 머리가 바로 코 앞으로 지나갈 정도로 ). 그리고 단칼에 소의 심장에 칼을 꽃아야 한다.

그러면 관중들은 '올레 ( 잘한다)!라고 열광한다. 죽은 투우는 말 세 마리가 끌고 나가며 시내 래스토랑에서 고기로 판매된다.

 

투우장의 소가 살아서 나갈수 있는 세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1. 튀쳐 나오다가 지풀에 넘어지는 소 ( 부정탄다고 안 죽인다 )

2. 나와서 싸울 생각않고 쉬고 있는 소

3. 사람이 다쳤을때 ( 등에 창이 안 꼽혔을때만 )

이 세 가지의 경우에는 흰 소들을 풀어 투우를 밖으로 유인해간다.

 

잘하는 투우사에게는 소의 귀를 잘라서 준다. 그리고 최고급 투우사는 입장수입의 1/3정도까지 주는데 그 금액은 대략

23,000명 입장 * 100유로/( 입장료 ) * 1/3 이니 그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투우사로 데뷔하는 시합의 경우 전 시합의 입장권이 5유로 정도 이다!

 

스페인의 플라맹고에 대해 알아본다.

 

이집트 북부에 거주하던 이집시( 집시 )들이 스페인으로 올라와서 처음엔 손금 봐주는 직업등을 전전하다 사업이 안되자,

소매치기를 하게 되고 이를 미워한 스페인 정부 정책으로 산악지방의 동굴로 피신하며, 자신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플라맹고라는 춤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 춤이 스페인 전역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김태희가 플라맹고 전통의상을 입고 LG 핸드폰 선전차 춤 춘곳은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 지방인데, 플라맹고는 마드리드등의

북부보다는 세비야,그라나다 등의 남부 지방에서 더욱 발달 하였다.

 

내일은 미술관 투어를 받기로 한 날이다. 사흘을 연이어 투어 받는게 무리이지만, 가이드 투어 회사의 투어 일정표가 요일별로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

 

6월24일(수) 미술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채우며!

 

1901년 피카소 19세로 파리에서 개인전

1901년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출생 ( 1933년 8월7일 하네다 공항 이륙후 50분만에 추락 사망 )

1886년 개신교,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오늘은 미술관 투어를 하기로 한날! (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 ) 평소에 내가 문화 시민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시간내어 여행 나왔을 때가 아니면 언제 마음의 양식을 풍성하게 할수 있으랴..

오늘도 민박집에서 아침을 아슬 아슬하게 얻어먹고, 만남 장소인 ,래트로'역으로 나갔다.

오늘은 우리 네명에 중년 여자분 두명, 총 여섯명이 다닌다.

알고보니 미술관 투어는 6명이 초과하면 로컬 가이드를 쓰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 똘레도 대성당 투어시 로칼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써야 했는데, 이 친구들은 한국말 모르니 그냥 자전거나라 가이드 옆에만

졸졸 따라만 다녔다. 2006년 폼페이 갔을 때도 로컬 가이드를 대동했는데, 그때는 가이드가 50대 였는데, 마지막에 원형극장에서 '산타루치아' 노래를 한곡 한 것이 유일한 역할이었는데 이번 똘레도 성당 투어에선 그냥 따리만 다녔다. )

 

참가하는 인원이 소수이다 보니 미술관 투어는항상 신청이 조기에 마감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이드를 받으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차이가 정말 많다.

가이드는 어제 세고비아 했던 이재환 가이드인데,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자전거 나라에 입사하여 이곳 스페인에 나온지

만 2년 넘었는데 정말 스페인에 대해 공부를 많이한거 같다. 그 놀라운 지식!!

 

스페인의 역사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 711년 아랍인들 침입하여 800년 지배

- 1492년 합스부르크 왕가 탄생

- 1700년 부루봉 왕가

- 1930년대 프랑코 독제 시작

- 1975년 입헌군주제 시작

스페인은 프랑코 시절부터 관광을 주력 산업의 하나로 육성했는데, 인구 4300백만의 이 나라의 주요 수입원은 관광이다.

한해 7000만면 이상이 다녀가는데 최근 경제위기의 여파가 이곳에도 나타나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은 부루봉 왕가의 까를로스3세가 자연사 박물관으로 오픈시켰는데, 1808년 나폴레옹 침공시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되다 8년뒤 1819년 핀투라 ( 그림이란 뜻 )전시관으로 됨.

현재 유럽의 3대 미술관의 하나임 ( 유럽 3대 미술관 : 이태리 우피치, 영국 갤러리 미술관, 스페인 프라다 미술관 )

 

래트로 전철역에서 미술관을 걸어서 가는데 중간에 래트로 공원을 통과하는데 공원내 곳곳에 특이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숲이 좋아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료는 성인8유로 학생 4유로, ( 사진 촬영 불가능 )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본 작품은 1500년대 '보쉬'의 작품인 " 쾌락의 정원 " 특이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3폭짜리 마치 우리 병풍 같은 구조의 중간 폭이 큰 그림인데, 왼편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팅 시키는 장면

중간에는 유리 구 안에서 행복해 하는 남녀도 있고 ( 육체적 행복은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진다 ), 호수에 앉아있는 여자 주위로 남자들이 말을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 외에 초현실적인 장면 들이 많아서 마치 우주 시대를 연상케 한다.

세폭 째에는 지옥의 장면인데  새가 사람을 먹는 장면, 구토하는 인간 ( 식욕에 대한 형벌 ), 색욕에 대한 형벌, 말을 안들었던 사람이 귀를 잘린 그림, ...

세폭의 뒤에는 마치 지구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바라보고 있다는 표시란다.

1500년대에 이러한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자체가 신기해 진다.

- 사진 촬영이 안돼 엽서의 사진을 찍었는데 화질이 안 좋아 인터넷 사진 이용함. 그림을 확대하여 보면 더욱 재미있슴- -

 

"바보치료"- 보쉬

머리가 돈 사람을 망치로 쳐서 기절시켜 뇌수술을 하는 장면 (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그림이 참 재미있슴 )

 

트라 안젤리코 ( 조르지오 )의 "수태고지 " ( 하나님의 빛으로 마리아가 임신을 한후 인심하는 장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등의 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그렸다 )- 안젤리코는 주교직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화가로 남았다.

 

보디첼리 ( 데카메론- 10명위 사람이 10가지씩의 이야기를한 총 100가지 이야기-으로 유명한)의 "나스타지오 이야기"

튕기는 여자와 쫒아가는 남자- 이 남녀는 과거의 이런 커플들이 지옥에 가서 계속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그여자는 다시 살아나서 또 도망다니고.. - 하는 장면을 보고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튕기지 않고 결혼하게 만든다는 우화적 그림..

 

안드레아 델 사르또의 " 아브라함의 승리 "- 100세에 90세의 아내를 임심시켜 아들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이삭을 제단의 재물로 바치라고 하자 믿음이 강한 이브라함이 아들을 칼로 내리 칠려는 순간 아브라함의 신앙심을 충분히 확인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중지시키는 장면 -표정이 압권이다.

 

독일화가 두르 ( 뉘런베르크 출신 ) 독일 마르크화의 100마르크 뒷면에 초상이 들어갔던 인물

대표작 " 아담과 이브 " 인체 비례론, 균형 잡힌 인간을 8등신으로 묘사

천재 미켈란 젤로가 존경했던 인물이다, '신을 닮은 인물은 화가밖에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베네치아 화파의거두 "티치아노" ( 1485~ 1576 )

합스브르크 왕인 까를5세의 화가를 했으며, 왕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합스부르크 왕들의 특징은 근친혼을 많이 한 탓에

주걱턱이 많고 곱추 왕도 있었다. 까를 5세도 심한 주걱턱이었는데 그림에는 수염으로 잘 커버하여 그렸으며, 실제 카를5세는 입이 잘 다물어 지지 않아 식사를 할떄 많이 흘렸다고 한다.

티치아노는 왕과 귀족의 초상을 많아 그렸는데 그림을 배달 시키면서 쪽지로 " 그림이 맘에 들지 안아도 그린이가 티치아노 임을 잊지말라!!! "라고 했다한다.

 

램브란트의 '아르테미사'

남편 화장한 후 그 뼈가루를 와인에 타서 마시는 아르테미사 부인의그림

가난했던 램브란트는 부자 아내를 얻어 사치생활을 즐기게 되고 4남매를 낳았으나 셋은 죽고 막내 아들 하나 남았는데 아내가 죽어면서 유언으로 '재산의 반은 아들에게 반은 남편에게 주는데,남편 몫은 만약 남편이 재혼하면 박탈한다 '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의 유모가 죽은 아내와 너무 닮아 보모를 사랑하게된 램브란트는 결국 아들에게 돈을 타쓰게 되었다..

 

루밴스- 5개국어에 능통했고 외교관도 했다.

화가의 평균 작품수는 2000점이 한계인데, 1주에 한 작품 그릴정도로 왕성한 작품활동

그림을 그리면서, 제자에게 작업 지시를 하면서 중요한 브리핑를 들었다고 한다..

"파리스의 심판 "  " 3미신" " "가니메데스" " 래르마 공작 "등의 작품이 있으며, 특히 래르마 공작'에는 말이 마치 튀어나올것 같은 뛰어난 작품

 

*** 죽기전에 꼭 봐야할 명화 ***

디에고 발라스커스 의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의 가장 중심에 작품이 위치함

앞만 바라보고 있는 공주, 그 공주를 달레고 있는 난장이 시녀, 말을 거는 시녀, 뒤의 거울을 통해 보이는 팰리페 4세

그리고 이 장면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

멀리서 보면 입체감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

-많은 화가들 ( 피카소는 44점을 패러디함 )이 이 그림의 부분, 또는 전체를 패러디했다.

고야의 " 옷벗은 마야 " " 옷 입은 마야 "

최초의 여성 누드화 -이로 인해 종교 재판을 받음, 82세에 사망

얼굴이 마치 요즘의 합성 인듯한 느낌

" 거인 " 고야의 작품으로 알았으나 최근 엑스레이로 조사한 결과 그의 제자 작품으로 판명,

 

스페인의 축구 : 20개팀 38경기가 열리며,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는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기만큼 열기가 뜨겁다. 2007/2008년 시즌에는 마르리드가 원정 경기에서 바르셀로나에 1:0으로 이긴후 홈에서 4:1로 이긴바 있고, 올해 경기에선 바르셀로나가 홈 경기에서 5분을 남기고 2:0으로 이기고, 어웨이 경기에서 6:2로 이겨 완승을 하였다. 이 경기의 최고 싼 티켓이 500유로 였다. 축구에서 제일 열광하는 팬 계층은 노인들이다.

마드리드는 올해 7월 중순 문선명씨의 '피스컵'이 열릴 예정이고,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할려고 준비하고 있다.

- 근처 현지인 식당에서 먹은 오늘의 요리 메뉴 중 일부 -

 

소피아 미술관 :  후래쉬 켜지않고 사진 촬영 가능

 

입장료: 일반 6 유로, 학생 3유로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시 조각 박물관으로 사용하다 정신병원으로 개조되었다.

레이나 왕비 소피아 왕립 미술관이 정식 명칭이다.

 

루이스 피카소 파블로 ( 1887~1973 - 피카소는 엄마의 성이다 ) : 어렸을때 부터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처음 세상에 나오는 순간  숨을 안쉬어 삼촌이 담배연기를 얼굴에 불자 기침을 하며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피카소가 말하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말은 ' 연필 ' 이었다 한다. 피카소의 아버지도 화가였는데 어릴떄 비둘기를 그리는

피카소를 보며 소질을 알고 그림학교에 입학 시켰다.

처음에는 선배들의 그림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청색시대 ( 1901~ 1904 ) 이때 그림은 피카소가 주로 파란 물감을 많이 사용한 시대로 20살이 되기전이었다.

- 장밋빛 시대 ( 1904~1905 ) : 주로 붉은 계통그림

피카소는 공식적으로 7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 여자가 바뀔때 마다 그림풍이 달라졌다.

1. 페르난도 올리비에 ( 파리의 유부녀 )

2. 폐결핵으로 죽음

3. 러시아의 발레공연단 여자 -  피카소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음

4. 마리아 테레제 ( 당시 17세 ) - 딸을 낳음

* 여자가 바뀔때는 한 여자와 완전 단절이 아니고 중첩의 가간을 가졌다

5.도라 마르 ( 사진 좋아하는 지식인 )

6. 프랑소와 질로 ( 현재 생존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피카소를 찬 여인이다 )

   피카소의 여인들이란 책을 써서 대박 난바 있다.

7. 자클린 ( 피카소 70살떄 40살의 자틀린과 결혼 )

피카소는 91세에 사망. 말년에는 남의 그림을 패러디함. 여자를 통해 예술혼을 승화시킴

 

달리 ( 1904~ 1989 ) : 콧수염이 특징, 그림에 천재적 소질이 있었으며,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것 즐겼다.

" 나와 미친이의 차이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것이다 "

" 나는 가끔 엄마 초상화에 침을 뱉고 싶다 "

라파엘로를 존경했으며, 남편이 있는 여자 갈라를 만났는데 서로 사랑에 빠져 갈라를 이혼 시키고 , 결혼했다

성화를 그리기 시작하였고, 갈라가 죽고나서 예술혼이 없어지게 되어 그림을 안 그렸다

 

소피아 미술관의 대표 작품 : 피카소의 ' 게르니카 '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지방 이름인데, 히틀러가 신기술 폭탄을 실험하기위해 이 도시의 80%를 파괴하였다.

스페인 정부는 반전 그림을 피카소에게 요청하였고, 1937년 한달 만에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다섯 번째 부인 도라는 이 그림의 단계별 촬영을 하였다 ( 이 단계별 그림도 같은 장소에 전시됨 )

죽은 아이를 안고있는 엄마, 잘린팔, 불탄 건물, 가슴이 드러난 여자, 울부짖는 여자가 그림속에 표현되어 있다 ( 잘보면 )

 

 저녁식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식당 " 보틴 " 에 가서 했다. ( 기네스 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

메인 요리는 아기돼지 구이인데 돼지를 세 번 이상 구워 껍질이 아주 바삭거리고, 살 맛은 아주 쫀득쫀뜩하다..

오늘 미술관 투어를 같이한 중년 여자분 둘과 가이드, 우리 식구 4명이 식사했고 요금은 170유로가 나왔다. ( 와인 두병포함 )

오늘 투어를 정말 잘 받았고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오늘은 물심 양면으로 양질의 식사를 한 기분 좋은 날이다...

 

특히 어제와 오늘 너무 알찬 투어를 하게 해준 우리 꽃미남 가이드 이재환씨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내가 투어 내용을 너무 상세히 써서 이재환씨께 누를 끼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625일(목) 자유 여행- 마드리드를 떠나며

1852년 건축가 가우디 출생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1951년 미 CBS방송, 최초의 상업 컬러 TV 방송 개시

1966년 김기수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참피언 도미 ( 승리를 확인한 김기수는 귀빈석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달려갔고, 대통령은 손수 챔피언 벨트를 채워주었다 )

 

 

모처럼 느긋하게 일어나서 9시쯤 아침을 먹고 ( 4일 있는 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다. ), 오늘 야간 기차 이동을 위해 짐을 싸놓고 왕궁으로 향했다.

 

역시 가이드가 없으니 좀 쳐지는 느낌.. 왕궁은 입장료가 성인 8유로, 학생 3.5유로

들어가서 왕과 그 일가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를 둘러보고, 각종 생활 도구가 전시된 갤러리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의 가마 같은 기구가 유리창까지 달려 잘 보전되어 있는게 인상적이다 ( 사진은 못찍는다... )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이 왕궁은 무척 붐빈다. 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고...

 

왕궁 구경을 마치고 스페인 광장으로 걸어갔다.

 

- 왼편 : 돈키호테의 작가 새르반테스의 조각과 돈키호테 조각,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를 읽고 있는 세계인들의 조각. 오른편 : 동키호테 부분만 찍음 --

동키호테 1편은 1965년에 발간되었으나 인기가 없었다.

나폴리군에 입대하여 왼팔을 크게 다쳤고,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5년 하는등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세비아에서 세무관으로 근무하다 잘못되어 1년간 감방살이를 했다.

동키호테21614년 출간되고 1616년에 사망하였다 ( 세익스피어와 동일한날 사망!! )

동키호테에는 690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며 세르반테스는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장 구경을 갔다. ( 입장료 15유로 , 학생할인 안됨 )

한국에서도 축구장에 거의 가지 않는 내가 마드리드까지 와서 축구장 구경을 하다니...

축구장내의 각종 시설을 잘 활용하여 투어 코스로 만든 이곳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스페인 축구의 역사, 주요 인물, 각종 트로피, 선수들의 옷, 축구화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컴퓨터로 유명 선수들과 같이 기념 촬영하는 사진을 합성하여 ( 라울등의 유명한 선수와 같이 사진을 찍는 합성 ) 9~11유로를 받는다.

선수 대기실, 기자 회견장, 관중석 등등 거의 모든 주요 시설을 개방해 두어서 비싸긴 하지만 알찬 투어를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요르 광장에 들러 각종 퍼포먼스와 행위 예술을 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6시쯤 민박집으로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9시에 택시를 불러서 포르투갈행 기차가 가는 차르마틴역으로 이동하였다. 민박집 주인에게 우린 4인이라 짐이 많으니 밴형 큰 차를 불러 달랬는데 온 차는 일반 택시이다. 결국 큰 가방 하나는 뒷 좌석의 큰 아들 무릎위에 얹었다 ( 이 나이에 내가 하리~ ) 아들이 투덜거린다..ㅋㅋ 길이 엄청 막혔지만, 여유있게 출발한 덕에 약간의 여유시간을 가지고

기차에 탑승했다. 열차는 1025분 출발하여 리스본에 725분에 도착하는 스페인 열차 ( renfe )이다.

 

갑자기 70년대 영화 '리스본 특급'이 생각난다. 알랑 드롱 주연의 액션 영화였는데 주로 열차에서 찍었으니, 저예산 영화였던거 같다. 우리는 한국에서 유레일패스를 구입할 당시 야간 침대차 4인실로 예약하였는데, 좌석번호를 보니 41,42,45,46이다. 이거 분명히 4인 침대실을 예매했는데, 6인실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탑승하고 보니 중간 번호는 빈 4인 침대칸이 맞다.

간단한 옷걸이, , 귀마개, 치약, 칫솔, 비누가 개인별로 갖추어져 있고, 실내에서 간단하게 세면을 할수 있게 되어 있다.

열차표와 유레일패스를 승무원이 가져간다 . 아침에 다시준다고.. ( 유럽의 야간 열차는 늘 이런 시스템이다. 이번에는 여권은 안 가져가는구먼.. 과거엔 여권도 챙겨갔는데... )

 

밤에 자다가 화장실 갈려하다 ''를 했다. 유럽 야간 열차는 소매치기가 많이 설쳐서 침대칸 내에 보조 잠금 장치로 체인으로된 줄을 걸게하는, 흔히 볼수있는 잠금 장치가 있는데, 이 보조 잠금장치 ( 체인으로된 )의 줄이 끝까지 가지 않아 문을 열지를 못하고 한20분 낑낑거리다가 ( 잠글땐 억지로 줄이 당겨 졌는데... ) 아내의 머리핀으로 나사를 풀어 고리를 해체하고서야 화장실을 갈수 있었다.. ~~머리핀이 드라이브 역할을 할 줄이야....

 

626일(금) 항해의 본고장, 리스본

 

1977년 고리 원자력 1호기 최초 발전

1967년 전력 부족으로 20시 이후 TV방송 중단

1943ABO식 혈액형 분류법 개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한 란트 슈타이너 사망

 

아침 725분 정시에 기차는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민박집의 주소를 가지고 택시를 탔다. 여기 택시는 짐칸이 더욱 좁아

4개의 큰 트렁크와 한 개의 작은 트렁커중 2개만 실린다. 할수없이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탔다. 잠시의 이산가족이지만

불안한 느낌이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짐값까지 합쳐 대당 6유로, 15유로를 내고 1유로만 거슬러 받았는데, ( 다주면 싸울까봐 ) 그래도 내차 기사가 1유로 더 챙겨 갈려다 둘이 잠시 옥신각신한다....

 

민박집은 리스본에 하나밖에 없는 한국인 민박집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실내 도착하니 너무 깨끗하고 젊은 여자주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마드리드의 그 민박집과 너무 비교가 된다. 마드리드의 그 집은 마드리드 민박집 7~8개중 제일 평판이 좋은 집으로 구했는데도, 방 좁고 청소 안되어 있고 주인의 아들 딸들 버릇 없고, 도로 변이라 차 소음 무척 심하고, 전체적으로 교통 편리하다는 장점만 있었는데, 이집은 분위기가 벌써 청결, 친절, 맘에든다.. 가격도 마드리드보다 싸고.. ( 마드리드 120유로/4인 가족 , 리스본 100유로/4인 가족 )

일찍 도착한 덕에 아침도 먹을 수 있었는데 돈을 주니 극구 사양을 한다. 아침 먹고 리스본에 대한 브리핑까지 해준다.

봐야할 곳, 가는 방법 등등... ( 리스본 지도까지 한 장 주니 난 감동이다!!! ) 아기가 하나 있는데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낮갈이도 없는게 너무 귀여워 아내가 안고 사진 하나 찍었다.

 

일일권을 샀는데, 오늘 완존 본전 뽑았다. 지하철, 트램 버스등을 10회 이상 탔으니까.. 추가로 시내에 위치한 전망대가 있는 산타주스타 건물의 엘리베이터'도 공짜!

일단 28일 세비야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기위해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Jadrim역으로 갔다. '아침 9시 출발에 오후 530분 도착이란다. ( 134유로 ). 어휴! 피곤한 하루가 되겠구나.. 밤 버스도 있지만, 어제 밤 기차로 와서 28일도 밤에 이동한다면 가족들의 원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71일에 바르셀로나 가는 밤차를 또 타야하기도 하고..

 

버스를 예약하고 리스본에서 꼭 보고 싶었던 곳 시내 서부에 위치한 벨렝지역의 " 제로니무스의 수도원"" 발견 기념비"를 보러갔다. 제르니무스 수도원 ( 입장료 성인 6유로 )은 엔리케 항해 왕자의 위업을 기리고,또한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마누엘 1세가 1502년에 착공했는데, 수도원 규모로는 섬세하면서도 유럽 최대 인듯한 규모다. 내부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이 높게 안치되어 있다.

내부의 회랑이 특색이 있는데, 일단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1층은 보디아크', 2층은 그가 죽은 뒤 '주앙 데 카스티요'의 작품이어서 회랑의 문양이 서로 다르다.

 

수도원에서 대략 4~500미터 떨어진 곳에 발견 기념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1960년에 엔리케 항해왕자의5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높이 52미터의 기념비인데, 선두에 왕자가, 그뒤에 천문학자, 선교사등이 뒤따르고 있다.

벨렝 지구를 너무 많이 걸었다. 식당 찾기도 귀찮고 해서 가까이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러서 햄버거랑 감자 칩으로 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맥도날드에 간거다.

 

시내로 돌아와서 경사도가 매우 심한 산악 트램을 한번 타보고 , 정상 부근에서 약간을 쉬면서 보니 멀리 산 언덕에 상 조르조 성 이 보인다.

 

바이사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여 여행책에서 추천해준데로 28번 트램을 타고 시내구경을하는데, 트램 내에 소매치기 발견!!! 비좁은 차안을 휘젓고 다니는데 서 있는 내 옆으로 이동해 온다. 앉아있는 현지인 아줌마가 눈으로 나에게 '조심하라고' 신호를 준다. 인상 한번 쓰고 내가 경계를 하니 트램 뒤쪽으로 무대를 옮긴다. 김새고 기분 나빠서 트램타고 시내 구경하는걸 포기하고, ' 산타 주스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리스본 시내를 위에서 둘러 보았다.

저녁에 포르투갈의 민속춤 "파두"를 볼 예정이어서 오늘 투어를 접고 숙소근처로 이동 할려니 큰아들이 리스본 언덕 위에 있는 " 상 조르즈성"을 구경하고 가잔다. 피케이라 광장앞에서 37번 버스를 타고 성으로 올라가는데 경사 길에 폭이 매우 좁아 곡예운전을 하며 버스가 올라간다. 이성은 율리우스 케사르 시절 로마인들이 요새로 건설했는데, 그후 서고트족,이슬람 교도, 기독교도의 왕등 수백년 동안 성의 주인이 바뀌어 왔으며, 높은 곳에 위치한 덕에 리스본 시내의모든 역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성이다. 성안에는 가설 무대가 있는데 관중은 거의 없이 미니 밴드가 애절한 곡을 여러곡 연주하며 열창을 하고 있다 ( 이 노래가 파두임을 민박집 와서 알게 되었다. )

6월27일(토) 유럽 대륙의 서쪽 끝 호까곶

 

198488올림픽도로 개통

1970년 경부 고속도로 완공

1880년 장애인의 희망 헬렌 켈러 출생

 

오늘은 유럽 대륙의 최고 서쪽인 로까곷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 식사를 어제 새로온 이들과 같이 먹는데, 교수와 제자들 모두 8명 정도 되는것 같다. 어제 파리 경유 리스본으로 밤 늦게 왔는데 짐가방 몇 개가 분실되어 난감해 한다.. 유럽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는것 같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봐도 안타깝다.

 

오늘의 길안내는 큰 아들이 하기로 했다. 리스본의 호시우역에서 출발하여, 신트라 기차역에 도착하여 순환버스 434번을 타고 신트라에서 여러 유적을 구경하고, 신트라 역으로 돌아와 다시 403번 버스를 타고 로까곷으로 이동하여 대륙 최서단을 구경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까사이까스'로 가서 해변과 예쁜 집들을 구경하고 열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하루 코스이다. 이 코스는 포르투갈 오는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 가는 필수 코스여서 민박집 식당의 게시판에도 가는 방법등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호시우역에서 인당 12유로의 티켓을 구입하여 ( 열차, 버스 무료 ) 신트라로 간후 434번을 타고 좁은 산길을 올라간다. 마치 미시령 고개 축소판 같은 길을 꼬불꼬불한 산길을 버스가 잘도 올라간다. 신트라의 유적지는 이 산길 속에 있는데, 왕궁~헤갈레이라궁전~모루스 성터~'페나궁전'순서로 산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있으며 하이라이트인 페나 궁전은 이 산 제일 위에 있다. 순환 버스로 가다가 중간 중간 내려 구경하다 다음 순환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식이다 ( 배차간격 : 20)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숙소에서 나왔는데, 산길 속이라 바람도 불고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아내와 작은 아들은 추워서 컨디션 다운이고 큰아들과 나만 열심히 다닌다. ( 이곳 올때는 꼬~옥 옷차림을 든든하게 할것. 산속이라 추워요~~ )

 

모루스 성터에 내렸다. 별로 볼것도 없는 다 무너진 성터인데 입장료를 받는다. 그냥 외부만 둘러보고, 실내에서 커피를 뽑아 추위를 달래며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 한 여름에 추워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

다음은 신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 "페나 궁전 "

독일 퓨센의 루드비히 2세의 노이슈반스타인성과 비슷한 스타일인 이 성은 루드비히 2세의 사촌인 페르디난두 2세가 건축을 지시하였다. 이슬람, 고딕, 르네상스, 마누엘등의 각종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이 건축물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구경하고 있는데 백설 공주 차림의 여자가 어린이들을 데리고 왔다. 현지어로 이야기를 해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 성의 스탭들과 큰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이 듣게.. 아마 교훈적인 이야기를 나누는것 같다... 아이들의 표정이 귀엽다.

 

성 내부엔 가구며, 장식들이 화려함의 극치다. 촛대 하나가 높이 50센티미터에 부피 꽤나가는 은으로 되어 있고 초를 꼽아 불을 밝히는 샨데리아도 무척 화려하다..

- 백설 공주 차림의 보모, 내려 가는 차안의 덩치 있는 아가씨들 뒷 모습-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내려가다 왕궁에 내려 겉만 구경을 했다. 날씨도 쌀쌀하고 해서 구경하기도 귀찮다.

테라스에 좌석이 많은 식당에 들어갔다. 종업원들이 밖에서 식사하면 더 운치 있다고 권하는 걸 추워서 안에서 먹겠다고 했다. 우리 들어가고 한 30분 지나니 손님들이 실내로 많이 들어온다. 내가 들어가면 손님을 잘 온다면서...

키 크고 멋진 젊은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자랑스런 대한국인이다 짜샤~~

빵과 치즈 올리브를 서비스로 주길래 "오브리가두( 감사합니다 )"라고 했더니 한국말로 오브리가두는 뭐냐고 뭍는다.

이야기해주니 다른 종업원들 에게도 전파를 한다. 아마 이 여행기를 읽고 여기를 오는 한국분 들에게 나중에 써 먹을려고?ㅎㅎ

 

주방장 추천 샐러드 ( 아내), 피자 ( 큰아들 ), 햄버그 ( 작은 아들 ), 스파게테 ( )그리고 맥주 500과 음료수..

73유로정도 나왔다. 음식도 맛있고 맥주도 맛있다. 여행 나와서 낮에 틈만 나면 식사때 맥주를 마시게 된다.

 

식사후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역 근처에 가서 로까곷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여행은 기차, 버스를 자주 갈아타는데, 중간 중간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많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동한다면 더 효율적인 여행이 될 터인데 애초에 계획을 정할 때 스페인/포르투갈은 도둑도 많고 차의 타이어를 펑크를 낸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여행 사이트에 많이 올라와 져 있어서 이렇게 다니기로 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차로 다니고 싶다...

 

로까 곷은 바람이 불긴하지만 햇빛이 강해 춥지는 않다. 가을 하늘처럼 맑고 높은 하늘엔 구름이 떠가고 저 멀리 대서양의 수평선이 보이고,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고... 풍경이 참 멋지다.

국내 CFNO MORE AHEAD MORE AHEAD로 바꾸는 선전이 생각이 난다. 대륙 최 서단에 와서 더 갈곳이 없지만,

이 지점을 시발점으로 하여 새로운 전진을 해야한다!! (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

 

이번 여행에서 대륙 최서단인 이곳 로까곷과 대륙 최 북단인 노르웨이의 노르카프곷을 가는게 중요한 목표중의하나인데, 하나는 오늘 달성했다. 1시간 이상을 여기서 보냈다. 인포메이션에서는 대륙 최북단에 왔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9.9유로에... 봉투값은 별도로 1유로 달란다.. 상술이 놀랍다.. 원래 한 증명서에 한사람 이름만 써 준다는데 난 나와 큰아들

이름이 함께 들어간 증명서를 받았다.. 인포메이션의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데 문짝에 보니 역시나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겼는데 우리나라 글씨도 군데 군데 있다.. ***야 사랑해! ( 이 말을 왜 화장실에 쓰느지?... )

 

카스까이스를 가는 버스를 30분정도 기다렸다. 카스까이스는 해변 도시인데 해변가가 많다.. 해변가에서 즐겁게 노니는 다양한 사람들을 즐겁게 구경하고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주인 잘못만나 고생이다..ㅎㅎ

내일은 다시 스페인으로 간다.

하루 종일 ( 9시에서 오후 530분까지 )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벌써부터 좀이 쑤시는 기분이다.....................

 

별로 배도 고프지 않고 해서 슈퍼에서 약간의 빵과 맥주한병, 과자, 요플레, 과일 등을 사서 숙소에서 간단히 요기들을 하고 난 맥주를 마시며, 이글을 쓴다....

 

628일(일) 버스타고 하루종일 이동 (리스본-세비야)

 

1979년 석유 수출국 기구 기준유가 59%인상

1958년 스웨덴월드컵서 브라질 우승, 펠레 일약 스타로 부상

1950년 한강 인도교 폭파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살 ( 1차 세계대전 빌미 )

1800년 조선22대왕 정조 승하 1712년 프랑스 사상가 루소 출생, 1577년 화가 루벤스 출생

 

오늘은 다시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았는데, 어제 밤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더니 아침에도 멈출 줄 모른다. 서 유럽이나 북 유럽에선 비가 자주 오는 편인데 이곳은 비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한다. 민박집에서 아침을 7시에 먹고 ( 여기는 마드리드 민박처럼 아침 먹는데 고생 않고,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준다. ) 어제 가방 잊은 사람들은 동국대에서 왔는데, 어제 저녁 짐을 찾았다며, 이틀 동안 밤 늦게 소란을 피워 미안하다고 한다. 다행이다.

 

폴투갈의 민박집 '리스보아'는 이곳 리스본에 하나밖에 없는 민박집인데도 정말 깨끗하고 맘씨 착하고, 애기도 예쁜 민박집이다. 어제 로까곷 간다고 나오는데 대문 앞에서 아기가 인사로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발 뒷부분 굳은살 미는 도구 선물로 하나 드렸다. 싼 거지만 감사의 표시로...

민박집이 골목에 있어서 택시가 잘 오지 않는다. 할수 없이 큰길까지 약 100미터의 경사 길을 비 맞으며 걸어가서, 택시를 탔다. 바닥이 자갈돌로 되어 있어 매우 미끄럽다..짐이 한차에 다 실리지 않아 올떄 처럼 2대에 나뉘어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인 자르딘 역에 위치한, Sete Rios 터미널에 가서 탑승수속을 하고 버스의 짐칸에 짐을 싣는데 하도 불안하여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짐칸 문을 닫을때 까지 밖에 서서 확인후 버스에 탑승하였다. 오전 9시 출발하여 중간에 포르투갈 제 3의 도시 파루에서 한 시간 쉰 후 ( 버스가 정차한 후 운전기사가 폴투갈어로 뭐라하는데 쉰다는 표시인것 같다.. 몇분 쉬냐고 물어니 영어가 안되니 종이에 숫자로 표시한다 ' 13:45 "거의 한 시간을 쉬는군... )

 

세비아에 저녁 640분에 도착하는 그야말로 완존 하루 동안 이동이다.. 오다보니 날씨도 개고, 맑고 깨끗한 시골풍경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곧 시들해지고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졸다 깨다 하면서 지루한 버스 여행길을 마쳤다. 오다보니 낮은 철탑에 ( 절연체 애자수를 보니 십만 볼트 이상 송전선로인것 같은데 ) 새들이 집을 지었다. 어떤 철탑은 대 여섯 개까지 있었는데, 정전 사고가 나면 대형이겠다 생각했다. 전기 쟁이라고 눈에 그런게 잘 보인다..

 

세비야에는 한국인 민박집이 없다.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을 했는데 호텔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깝다고 되어 있어서 오늘 머물 Lux SEvilla 호텔을 예약했는데, 1박에 142,000원으로 예약했으니 엄청 싼 편이다. 와서 보니 아파트 타입의 호텔인데 수영장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다.. 다만 인터넷이 않되 아쉽지만...

그라나다의 한국인 민박집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 스페인 남부 지방인 이곳 세비야에서 꼬르도바 ~그라나다 구간은 이동이 애매해서 그라나다의 민박집 주인에게 픽업 및 가이드를 부탁해 놓았다 ) 내일 아침 픽업하러 오겠다고.. 그러면서 오늘이 일요일이니 저녁에 이곳 세비아의 투우 경기장에서 하는 투우를 보라고 한다. 오늘은 투우사 경력 5년 미만의 투우사들이 나오는데, 가격이 11유로에서 최고 좋은 자리가 50유로라고 하니 싼편이다.

그런데,,,,,,

가족들이 다 싫어한다.. 나도 한편으론 징그러운 생각도 들고 보고 싶기도 하고.. 생각이 반반이었는데 포기해 버렸다.

 

수영장에 가서 간단하게 수영하고, 숙소에 들어와서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로 식사 준비를 해서 김 반찬해서 간단하게 저녁을 때웠다.

 

629일(월)  세비야 / 꼬르도바 김태희, 한가인이 춤췄던 세비야!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1987년 민정당 노태우대표 629선언 발표 ( 대통령직선제 개헌 포함 8개항 )

1900년 어린왕자 작가 생텍쥐페리 출생

 

호텔에서 잠을 자니 아주 편하다. 1층 식당에 아침 8시에 내려가 ' 콜드 브랙퍼스트'를 나름 맛있게 먹었다.

아시는 분들만 아시겠지만, 콜드는 계란 후라이나 베이컨등 아침에 요리하여 내놓는 따끈한거 제외한, 바로 세팅 가능한 빵,우유, 쥬스, 콘 프레이크, 치즈, 햄등만 준비된 거죠~~

 

아침먹고 짐 정리 하는중에 그라나다의 민박집 주인이 픽업 하러 와서 전화가 온다. 세비야 시내로 나왔다.

스페인은 애연가들의 천국이라 한다. 담배 가격도 싸고 필 장소도 많다. 아직까지 우리처럼 규제가 심하지 않는것 같다.

오페라 '카르맨'의 주인공 카르맨이 여공으로 일했던 담배 공장이 지금은 대학교 캠퍼스가 되어 있다. 관광객의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어서 수업 중에도 교실 밖에서 구경이 가능하지만, 오늘은 방학중 이라는거 -_-;;

스페인은 입학은 프리, 졸업은 심사인 방식인데 대학교 졸업율은 20%도 않된다고 한다. 대신 초등 학교 등에서는 교육이 무지 자유롭다. 초등학교 1학년이 1년동안 배우는게 숫자 1~10을 배우는 정도라는데 조금 과장해서 말 하는듯 하다.., 민박집 주인인 젊은 청년도 자녀 교육땜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가게 이름에 ~리아 라고 많이 붙어 있는데 ~가게 라는뜻. 단 롯데리아는 복권 파는데 이라는군..ㅋㅋ

 

스페인에는 광장이 많은데, '누에바'는 새로만든 광장, ‘ 스페인 광장 은 특별한 행사가 있는 곳 ( 이곳 스페인에 와서 마드리드와 세비야에서 스페인 광장을 봤으며, 로마에도 스페인 광장이 있다 ) 그리고 '마요르'는 영어의 메이저란 뜻으로 큰 광장을 말한다.

 

스페인 광장에 왔다. 내가 본 스페인 광장중 제일 멋지다!!! 김태희가 춤추고 한가인이 달렸던 그곳이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 관광객과 행위 예술가, 장사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스페인 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남녀 사이에 가서 박수를 치며 사진한장 찰칵..

 

광장의 규모도 크고 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건물이 좌우 대칭인 길이가 대략 200미터는 넘을것 같은 건물인데 현재는 관공서로 사용한다고 한다. 미국 스타벅스가 스페인와서 다 망하고 철수를 했는데 이곳 세비야는 아직도 건재하다는데 그 이유는 세비야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 광장을 뒤로하고 세비야의 주 볼거리인 '커세드랄 과 히랄다 탑 "으로 향했다. 오전 11시부터 개방이어서 근처 카페에서 래몬 맥주인 ' 끌라라 '를 한잔했다. 새콤하면서도 특색이 있다.

스페인 전통은 맥주 한잔시키면 "따빠'라는 무료 안주가 나오는데 따빠는 접시란 말로 우리나라의 타파웨어라는 제품도 이 따빠라는 말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곳 사람들은 맥주 한잔으로 한 두시간은 먹기에, 맥주에 김 빠지지 말라고 맥주잔 위에 접시를 덥어 주다가 그 접시에 팝콘등의 공짜 안주를 주기 시작했다는데, 여기는 관광지여서인지 무료안주를 안준다. ~~

 

그라나다에는 알함브라 맥주가 유명하다니 꼭 마셔봐야지,,,

 

스페인에 회교 문화가 들어온 배경을 가이드가설명해 준다. 아시는 바와 같이 회교도에는 강경파인 시아파와 덜 강경파인

수니파가 있는데, 중동에서 패권 다툼의 결과 패한 수니파 왕족이 아프리카 모르코에 둥지를 틀고 지내다가 바다 건너 불과 12Km의 이곳 물좋고 살기좋은 세비야를 발견하게 되고 이곳으로 건너와, 불과 10년만에 스페인 전국을 지배한 아랍인들은 그후 이사벨라 여왕이 물리치기까지의 800년간 이곳 스페인에 문화를 전파하면서 첫 수도를 꼬르도바'에 둘째는 ' 세비야'에 세 번쨰는 '그라나다'에 수도를 세웠다.

 

성당 출입에는 성인 8유로, 학생2 유로이며, 똘레도의 엄격한 성당과는 달리 모자 써도 되고 사진 찍어도 된다.. 좋다~~

성당 안에는 콜럼버스의 관을 왕 4명이 메고 있는 상이 있다. 그만큼 콜롬버스는 이곳에서 위대한 사람이다.

콜럼버스가 여러 나라를 돌면서 신대륙의 가능성을 역설하고 투자를 권유했으나 다 문전 박대 당하고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는다. 그것도 이사벨라가 의회의 승인을 못얻어 개인이 가지고 있던 패물등을 모아 배 세척을 마련해 주었는데, 신대륙이라는 큰 부동산이 손에 들어온 거다. 중세의 부동산 투자자이며 복부인이다.

 

스페인인들은 아랍인들에게 그렇게 좋은 문화 유산을 받았으면서, 신대륙에 가서는 주민을 학살하고 잉카제국의 문화유산을 망가뜨리고 돈 되는것을 무작정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성의 또 하나의 명물 '히랄다 탑'은 올라가는 길이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한다. 올라가보니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종루가 있고 , 종을 정시에 자주 치는것 같다. 높이는 94미터인데 노인들은 올라오면서 많이 힘들어 한다.

 

이곳 스페인의 3대 회교 성지는 조금전 본 세비야 대성당, 꼬르도바의 메스끼따, 그리고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차를 타고 꼬르도바로 향한다. 도착하니 3.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2시간을 달려오느라 점심 시간이 많이 지났다. 가이드가 아는 중국 식당에 가서 탕수육, 완탕, 소고기 볶은 밥, 볶은 국수등을 푸짐하게 먹었는데 35유로 정도 나왔다. 패스트 푸드점과 비슷한 요금이다...

 

길거리의 온도계를 보니 38! 그런데 가이드는 많이 시원한 날씨라고 한다.. 보통 43도정도 올라가는데 오늘은 좀 낮은편이라나.. 하긴 습도가 높지 않으니 그늘에선 시원하고 햇빛을 직접 받으면 따끈하다,,

이곳은 중세 유럽 최고의 도시로 목욕탕이 8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 문화, 기독교인 문화, 회교도인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입장료는 8유로씩 ( 학생 할인 없슴! )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 못지않은 모스크를 건설하려고 4차례에 걸쳐 증축하여 완성하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점령하면서 많이 파손되었는데 이사벨라 여왕이 파괴를 중지시켜 그나마 많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수 있었다. 원래 모스크 사원은 내부가 밝은데 기독교인들이 출입문 5개를 막아버려 현재는 어둡지만, 기둥이나, 천정이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며 유물 전시실에는 상형 문자가 새겨진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문자를 자세히 보니 아랍인들 글과 거의 유사하다.

 

- 메스키타의 첨탑이 보이는 골목안 ( 세계를 간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골목으로 하얀 벽에 제라늄 화분이 걸려있는 골목이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멋진 사진이 나온다고 해서.. )--

스페인에서 아랍인들의 유적이 가장 온전히 보존된 곳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꼬르도바 구경을 마치고 그라나다로 출발!!

민박집 사장은 우리를 위해 오늘 하루 그라나다~세비아~ 꼬르도바~그라나다의 총 800Km가 넘는 강행군을 했다..

생각해보니 7월에 내가 운전해서갈 북유럽도 700~1,000Km를 하루에 달려야 하는 길도 있을것 같다.

 

아내가 낮에 민박집 주인에게 부대 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저녁 식사에 부대 찌개가 나왔다. 마드리드에서 자전거나라 투어를 하며 만났던 일권이 학생과 그 후배를 이곳에서 만났다. 저녁에 부대 찌개를 먹으니 황홀해진다. 여행 나와서 처음 먹는 한국 요리 ( ? )이다. 다른 배낭 여행객이 두고 간 소주도 한 병을 나누어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630일(화) 아! 멋진 그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2002년 한일월드컵 폐막 - 브라질 사상 5WO 우승

1983KBS 이산 가족찾기 생방송 시작-온 국민의 눈물 바다 1189가족이 상봉

1980년 성산대교 개통

1936년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간

1905년 아인슈타인,특수 상대성이론 완성

 

오늘은 이곳 스페인 여행의 백미라고 할수 있는 알함브라의 궁전을 방문하는 날이다.

알함브라의 궁전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세기 이곳에 머물던 미국인 극작가 워싱턴 어빙이 소설로 " 알함브라의 이야기 "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페인 여행하기 전 한국에서 최소 한달전에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한 ' 낫소르 왕조 궁전 '을 비롯한 곳곳에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다 ( 낫소르 궁전은 매 30분 단위로 400명씩 입장을 제한 시킨다. 미리 예매한 시간에 가서 줄서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

2006년 여행 당시 예매를 다 해놓고 못 가본 곳이어서 더욱 더 방문해 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민박집 주인의 차로 5분 거리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38도 인데도 멀리보이는 씨에라 네바다산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이 산에서 녹은 물이 흘러내려 이 궁전의 정원 분수등에 물을 공급한다.

정원 분수는 자연 압에 의해 분수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니 1200년대의 사람들의 발상이 참 놀랍다.

- 기둥에 납을 충진한 모습, 어빙이 머문 방에 있는 현판 --

그 시절에 뇌수술도 했다고 하며 리스본 대지진 때에도 건물이 파손되지 않았다고 한다 ( 기둥의 중간 중간에 납을 채워 넣어 완충작용을 시켜 내진 설계를 했다고 한며 실제로 기둥의 납을 확인 할수 있다 )

파르탈 정원과 헤네랄리페- 14세기에 건설 되었으며,나스르 왕조의 여름 별장이었다. 정원에는 측백나무를 심어 그 그늘로 그림자를 만들어 시원하게 하였다. 조경이 빼어나다.

 

나폴레옹은 성을 함락 시킬때의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던 생각에, 나중 철군을 하게 될 때 남아 있던 병사에게 폭파를 명했으나 그 병사가 폭파를 시키지 않음으로써 보존이 되었다 한다.

 

나스르 왕조 궁전 -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는 섬세함과 정밀한 건축의 결정체이다. 예전의 화려했던 표면의 색상들은 세월의 흔적으로 빛이 옅어 지긴 했지만, 건축물의 아기자기함과 섬세함은 달리 필설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 내 능력 밖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

나스르 궁전 안에는 크게 3부분이 있는데 1) 메수아르궁 2) 코마레스궁 3) 라이온궁이 있는데 셋다 빼어난 건축물이지만,

특히 라이언궁에는 사연이 많아 사람이 더욱 붐빈다.

안뜰의 동쪽에는 제왕의 방으로 역대 제왕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데 복원 공사 중 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북쪽에 있는 두 자매의 방에는 중앙 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크기와 모양이 똑 같은 방 2개가 있어 후세에서 그렇게 부르게 된 방이다.

남쪽의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피의 사연이 있는 방이다. 왕의 후궁중의 하나가 병사와 바람을 펴서 그 후궁의 출신 가문인

아반세르헤스 일가의 남자 36명을 이 방에 초청하여 모조리 살육하여 그 피가 라이언 분수를 통하여 안뜰까지 퍼져서 그후로 아무도 이방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살육의 자리에 서 있으니 왠지 섬뜪한 느낌을 감출수 없다.

 

나소르 궁전의 마지막 방은 "알함브라의 이야기"를 집필한 워싱턴 어빙이 묶었다는 작고 초라한 방이다. 별 장식도 없고 벽에 그가 머물렀다는 현판만 남아있다.

 

알함브라 궁전 한쪽에는 1500년대의 스페인 국왕인 카를로스5세가 자기의 신혼여행 시절 이곳 알함브라에 머물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궁전이 있는데 알함브라 궁전에 비해면 너무 떨어진다.

 

민박집에 돌아오니 3. 늦은 점심을 라면으로 먹었다. ( 5유로 ) 이번 여행중에 처음으로 먹어보는 라면이다. 꿀맛이다.

낮 온도가 엄청 더워 민박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플라맹고 관람 및 야경구경을 하기로 했다.

 

집시와 플라맹고에 대해 민박집 주인이 설명해준다.

학설에 따라 이집트인을 가르키는 '이집시안'을 줄여 집시라고 한다는 분들도 있는데, 이분의 주장은 틀리다.

인도의 민족들 중 징지스칸의 칩입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일부는 체코에 거주하며 동유럽에 뿌리를 내리고

일부는 모르코 등지에서 생활하다 이곳 스페인 남부의 세비아, 그라나다등지에서 유랑 생활을 하다 이사벨라 여왕이 그라나다왕국을 정복할 때 도움을 준 댓가로 처음으로 이곳 그라나다에 거주 허가를 받아 산 높은곳에 동굴을 파고 생활 했다고 한다. 거주 허가가 났지만 생활이 궁핍하고 어려운건 마찬가지였고, 자기들의 삶의 애환을 춤으로 표현 한것이 플라맹고인데, 처음 시작은 그라나다에서 했으나, 그 당시 남부 지방에선 세비야가 가장 무역이 활발하고 상업이 크게 성행하여 세비야에서 플라맹고가 더욱 발전했다고 한다. 이렇게 발전하던 플라맹고는 현대에 이르러 그 섹조가 많이 야해지고 이상한 쪽으로 발전하자 스페인의 유명한 학자가 " 달러를 위한 플라맹고만 있고 영혼이 깃든 플라맹고는 죽었다"라고 이야기 한것이 시발점이 되어 다시 정통 플라맹고를 살리는 운동이 전개 되고 있다고 한다.

 

주로 동굴에서 하는 플라맹고가 유행인데, 플라맹고에서 주의해 볼 점은 무희가 아니라 무희를 춤추게 하는 가수 ( 깐떼 )의 가창력이 얼마나 높느냐 이고 가수의 가창력에 의해 무희의 춤은 더욱 승화 된다고 한다.

우리가 본 플라맹고는 대중 플라맹고인데 한국인 단체 관광객과 엄청 많이 왔다( 35유로/, 저녁 930~11시까지 공연 간단한 맥주나 음료수 제공됨 )

무희의 춤 사위는 그 열정이 더해감에 따라 온몸으로 자기의 한을 표현 하는것 같다. 마치 무당이 신이 내려 작두위에서 몰입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희가 발로 무대를 차며 스텝을 밟는것은 ' 내땅을 갖고 싶다'라는 강열한 욕구의 표현이라 한다.

그러나 이런 열광적인 공연도 시간이 길면 조는 사람이 있기마련, 그래서 중간에 이집트 여인의 밸리 댄스가 맛보기로 약 5분간 선을 보인다. 젊고 예쁜 무희가 잘록한 배 부위를 드러내 놓고 히프를 튕기는데 졸 남자는 없는것 같다..

특히 남자 무희의 플라맹고가 압권이다. 파워가 넘치며, 몰입해서 땀 방울이 무대 위에 뚝 뚝 떨어지며 연기를 하는데 정말 신들린듯한 몸짓이다. 어제 세비야에서 동굴 플라맹고를 보고온 학생들은 귀속말로 어제의 동굴 공연은 더욱 좋았다고 한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러 산위로 올라가 멋진 야경을 감상한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니 유체 이탈 현상 으로 이 멎진 광경이 제대로 찍혀 지지 않는다. 고급 카메라를 가져온 아들도 촬영이 쉽지 않은것 같다. 다시 이동을 하여 집시들의 마을 근처에서 그라나다 시내를 내려다 본다. 우리만 다니면 절대 오지 못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어두운 곳이다. 밤에 이렇게 나와서 밤 하늘과 야경을 보는것도 오랜만이다. 이곳 그라나다에도 북두칠성이 하늘에 높이 떠 있고 오리온좌가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는듯 빛나고 있다. 야경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길에 10여명이 카페에 몰려가서 맥주,콜라등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는데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민박집 주인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혼자 여행온 여자 교수, 이렇게 5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서는 맥주를 시키니 공짜 안주인 ' 따빠'로 대구살 튀긴것을 세접시나 준다. 고마워서 주인과 사진 한장 찰칵!

나 혼자 두잔 마셔서 미안해서 내가 냈는데 14유로! 너무 싸다. 젊은이들이 다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한다.

 

젊은이들을 잠깐 소개를 하자면. 30세 남자 대학생 ( 태권이 )25세 태권이 후배는 마드리드 자전거 나라에서 두 번이나 같이 투어를 했는데 이곳 민박집에서 만났다. 여자 30세 미인형인데 회계사라고 한다. 우리 큰아들에게 '귀엽다'고 하길레 내가 학생보다 오빠일걸 ( 대략 30세 이상은 되어 보이는 얼굴 ) 하고 우리 아들 27세인데! 하니, 너무 젊어 보인다고.. 그래서 내가 학생은 24? 하고 물어니 30세라고 말하면서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여자는 단순하다!ㅋㅋㅋ

또 하나의 30세 배가 좀 나오고 통통한 남자는 모모 은행에 다닌다는데, 나중에 아들에게 들어니 잘난채를 많이 하더라는..

 

민박집에 들어오니 밤1!! 이렇게 까지 늦게 깨어 있었던 적이 최근에는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