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0년대

두 달간의 가족여행 2부 도전의 길 1 (2009.7월6일~13일)

매직랜즈 2020. 11. 18. 14:34

76일(월) 유럽에서의 첫 운전 파리~암스테르담

 

1995년 넬슨 만델라대통령 방한

1971년 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 사망 ( 누군가 재즈가 무었인가?”하고 묻자 이봐, 뭘 알라고 드나,영원히 모를걸세 라고 대답한 일화가 유명 )

1893년 프랑스 작가 모파상 파리교외의 정신병원에서 43세로 숨짐

 

기차 안에서 푹 잘 잤다~

바르셀로나에서 95분에 출발한 열차는 파리의 오스텔리츠역에 아침9시에 도착하였다. 기차안 식당칸에 가서 간단히 우유와 빵을 사서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아침식사로 먹었다. 이렇게 먹을거 가지러 갔다 올땐 마치 내가 아빠 새가 되어 둥지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아기 새 들에게 먹이를 넣어주는 장면이 연상된다..

 

여행의 2부 시작!!

 

오스텔리츠역에서 차를 찾는 Euro Car 까지는 지하철 16정거장이고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곳 이어서 파리 지하철 지도에 표시해 두었는데, 캐리어 들고 지하철 옮겨 탈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서 그냥 택시 정거장으로 고고싱~

 

간신히 캐리어 5개가 실리는 택시를 타고 출발. 길의 모습이 마치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가는 듯하다. 세느 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출발한 택시는 시뗴 섬의 노틀담 사원을 만나게 해주고, 좀 지나서 에펠탑이 보인다. 멋지다! 기다려라! 에펠탑..

너가 무척 바쁜 몸인줄 알지만 8월엔 꼭 너의 머리 위에서 파리를 굽어 보리라..( 파리에 여러번 왔지만, 꼭대기는 단 한번만 갔었다 )

 

유로카에 도착하여 차를 인수 받았다. "시트로엥사의 피카소 C4 " 여권과 계약서를 보여주니 바로 차를 인계해준다.

꼼꼼히 물어본다,, 특히 네비 작동법은 큰 아들과 같이 설명을 듣는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컴퓨터등의 작동은 빠르니까..

연료주입구 위치 확인, 트렁크 여는법, 기본 작동 방법, 크르즈 운전법 ( 정속 운전법 ),등등

 

~ 애로 사항이하나 생겼다!!!!!!!!!!

캐리어 큰거 4개만 트렁크에 들어가고 기내용 작은 캐리어는 트렁크에 안들어 간다. 퍼즐 맞추기식으로 가방을 가로 세로로 아무리 돌려봐도 안 들어간다.. 뭐야~ ~ 한국에서 물어 볼땐 트렁크 용량이 600리터라고 했는디...

기내용 캐리어 버리고 싶당~ 뒷 좌석의 공간이 다소 넓어 뒷 좌석에 실었다. 운전 하는 나는 뒷 좌석의 불편함은 모를 뿐이고..

목적지로 인근 카르푸와 네델란드 민박집 그리고 파리 시내 한국 슈퍼를 입력하였다 ( 내 미니 컴에 미리 입력된 파리의 한국 슈퍼마켓 리스트를 직원에게 보여주며 어디가 제일 가까운지 물어봤다 )

 

처음 운전하는 파리 시내! 처음에 약간 버벅거리는 센스를 발휘하며, 연료를 넣었다. 난생 처음 주유기를 잡고 기름 넣는것 같다. 주유구에 주유기를 넣고 기름을 넣는데 넘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득 차니 레버가 내 손가락을 튕겨낸다. 48.3유로.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카르푸로!

 

카르푸에 들러 기본적인 물품을 준비한다. 올리브 오일, 후라이 팬과 테팔 냄비, 일회용 접시, 과일, 음료수등등.. 그 와중에 아내는 속옷 세트와 향수 하나를 은근 슬쩍 카트에 담는다. ! 185유로.. ( 뭐뭐만 빼도 .... )

한국인 가게 ' K-마트 '란 곳에 갔다. 가게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권 발행기를 동작 시킬려니 잘 안된다. 가게 사장에게 물어니 파리는 휴가중이라 8월까지 거리에 주차 무료란다.. 아싸! 몇 유로 안 내도 즐거워하는 나~~

한국인 가게에선 라면 10봉지, 밥 해먹을 찹쌀 2킬로. 참기름, 비빔 고추장, 육게장 , 그리고, 부루스타와 가스 4개를 샀다. 남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버너식 연료를 많이 사용하던데 아까 카르푸에서 봤는데 사용법이 어려울것 같아 포기하고 한국식 부르스타를 선택했다.

 

마트 바로옆에 일본 스시 집이 보인다. 들어가 보니 주인은 중국인이다. 간단한 꼬치, 김밥, 만두 세트를 먹고 드디어 출발!

당초 파리에서 암스텔담까지 오늘내 갈수 있을지 몰라서 민박집 예약을 안했는데 네델란드의 민박 주인에게 물어보니 보통 6시간 내에 온다는 말에 자신이 생겨 바르셀로나에서 출발 전 예약했었다.

 

거리는 540킬로미터! 오전 9에 파리 도착해서 오후 230분에 출발이다. 물론 예상된 출발 시간이긴 하지만..

네비가 시키는 데로 하니 별 문제없다. 바로 고속도로로 올려 국경 근처인 Lille까지 가고 ( 고속도로 이용요금이 14.6유로. 비싸다 ) 릴레에서 벨기에 국경 통과한 후 큰 아들과 교대를 한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 이렇게 고속도로에서 운전 하는거 처음 옆에 타보지만, 애써 태연한척 한다. ( 발끝에는 힘주고 있다!! ) 비까지 내린다. 그래도 뭐 어찌겠어 하고 아들을 턱~ 믿는다.

운전하는 옆 모습을 보니 마치 젊은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도착 200킬로를 앞두고 다시 내가 운전 한다. 국내에서 매일 운전하고 다니는 아내는 자신이 없다고 뒷 좌석에서 코치만 한다.

 

민박집 도착하니 830. 여섯 시간 운전이다. 앞으로 이런 날이 많을것이다.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렇게 매일 여섯 시간씩 운전하면 무슨 관광을 하느냐고.. 그렁지만 운전하면서 차창 밖을 지나치는 풍광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고 북유럽의 중요 포인트는 노르웨이의 멋진 자연을 보러 가는 거니 괜찮다고 안심시킨다.

 

민박집 주인은 이곳에서 신학 공부를 하시는 이곳 생활 6년차 되신 분.. 어린 아이가 둘 있다.. 짐 풀고 , 샤워하고 안주인에게 저녁 식사를 부탁했다.. 저녁 10시에 저녁을 먹었당~

 

오늘 하루 스페인에서~프랑스~벨기에~ 네델란드.. 4개국을 24시간 안에 다닌 셈이다...

 

내일은 암스텔담 시내를 잠깐보고 차를 몰고 네델란드의 대 제방을 구경한 후 가능한 한 코펜하겐까지 가보다가 중간에 캠핑장에 들릴 예정이다. 숙박 예약도 전혀 안된 상태이지만, 잘 되겠지...

 

77일(화) 머나먼 코펜하겐 (암스테르담~함부르크)

 

2003년 국내 사스 ( SARS )비상방역 114일만에 종료

1998년 박세리 US여자오픈 골프 대회에서 우승

1933년 소록도 나병촌 완공

1930년 명탐정 셜록 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 사망

 

이곳 암스텔담 민박에는 기업체에서 출장 나온 남자와 그의 부인, 그들의 다섯 살 짜리 아이가 며칠째 숙박하고 있는것 같다. 그 남자분의 업무 덕분에 우리도 아침을 730분에 먹는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일찍 먹는다. 당초에는 바로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 이었으나, 가이드 책을 보니 마담 터소우 관이 인기가 높다고 해서 그기만 가보기로 한다. 마담 터소우관은 유명 인사들을 밀랍인형으로 똑같이 만들어 전시하는 곳으로 몇 년전 영국에 갔을때 인기가 좋았던 곳이었는데, 이곳 암스텔담에도 진출했나 보다.

민박집에서 암스텔담 중앙역까지는 철도 네 정거장. 시내가 아니어서 일반 배낭객 들에겐 약간 불편할 수 있겠다.

우리는 차를 민박집에 세워두고 철도로 이동한다 ( 왕복 10유로, 유레일 소지자는 공짜)

중앙역에 도착하니 비가 퍼 붓는다. 역사 안에 갇혀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커피와 잡담을 홀짝홀짝~~

비가 그쳐 가지만 약간씩 오고 있어서 걸어서 10분 거리라는데 그냥 택시를 탔다 ( 15유로 달란다. ! )

런던처럼 줄이 많이 서 있지는 않지만, 인기가 좋아서 제법 붐빈다.

성인 21유로, 학생 18유로! 입장료 무척 비싸다. 입장 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이 나를 반기며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포즈를 취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공짜가 아니란걸 알기에 패스~ ( 나갈 때 사진 찾으면 8유로 내야 한다는거.. )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거인 밀랍 인형이 나와 네델란드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어서 이동하는 곳은 유령의 집! ~ 싫다. 12세 이상, 심장 강한자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일행 20여명 중 어쩌다 보니 성질 급한 내가 제일 앞에 서 있다. 어둠 컴컴한 복도를 지나며 공포스런 ( 그냥 듣기 싫은 ) 소리가 나오며, 귀신복장의 인형들이 내 앞까지 나타 났다 사라지고...

이곳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유명 인사들이 나타난다. 고르바 쵸프, 피어스 브로스난, 최근 작고한 마이클 잭슨 ( 잭슨의 발 아래에는 추모의 꽃송이들이 놓여 있다 ), 마릴린 몬로등등등...

역시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과 친해지길 원하나 보다. 각종 밀랍인형들 속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증명사진 찍기에 바쁘다. 나도 피어스 브로스넌등 몇 사람과 같이 찰칵!

 

 

마담 터소우관을 나오니 하늘이 맑아진다. 중앙역까지 걸어가면서 암스텔담의 정취를 감상한다. 운하가 발달한 도시여서 그런지 운하를 이용한 크루즈 관광이 인기있지만 날씨도 쌀쌀하고 갈 길도 멀어 도심 사진 몇 장 찰각하고 그냥 기차를 타고 민박집으로 고고싱~

그런데,

내리는 역을 착각하여 몇 정거장 지나쳤다. 다시 돌아와서 민박집 주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코펜하겐을 향하여 출발!

 

먼저 네델란드의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진 대제방 ( 30킬로미터의 제방 )을 향해 간다. 대제방의 중간정도에 육교가 설치된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서 보니 양측 수위와 물 색깔이 제법 차이가 난다. 바람이 엄청 분다. 이 공사를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었겠지.. 마지막 물막이에는 '정주영식 공법'이 쓰였을까? 그 전 이었을텐데 궁금하다.. 암튼 유속이 빨라 엄청

애를 먹었겠지..

 

대제방을 건너기 전부터 차가 기름이 떨어져 간다는 신호를 준다. 그 신호 후 70킬로 정도는 연료 주입없이 달릴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괜시리 불안해 진다. 더구나 대제방은 30킬로미터의 길이이고.. 주유소가 제방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보인다.

차에서 내려 기름을 넣을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아 종업원을 불러 물었더니, 대형차 주입구란다. 크으~

 

승용차 주입구에 가서 넣고 다시 출발 ( 45유로, 42리터 ) 암스텔담에서 코펜하겐까지는 900킬로미터 정도의 먼 길이다.

우리가 오후 230분에 출발 했으니 코펜하겐까지는 가기는 힘들것 같고, 덴마크의 어느 마을에 도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는데 네비가 가끔 말썽을 부린다. 가다가 어떤 로타리 ( Round About )에서 갑자기 ' If possible, do U-turn '이라고 한다. 침착하게 로타리를 한 바퀴 돌고 가라는 방향으로 가니, 다시 그 로타리가 나오며 또 가능하면 유턴해볼레? ’ 라고 한다. 누구 놀리냐? ~ 조수석의 아들이 침착하게 지도에 나타난 큰 도시 방향으로 가자고 해서 그리로 가니 방향이 맞지만, 2~30분은 그냥 허비했다.

네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몇 가지 이해되지 않은 발음이 나온다. 시내에서 좌우회전 할때는, Turn Right ( Left )라고 말하는데 고속도로에서 교차로를 빠져 나올땐 ' (?) Right ( Left )라고 말한다. 이틀 동안 들었지만 아직도 빼'가 무슨 단어 인지 모르겠다... 아시는 분?

 

운전기사는 큰 아들로 바뀌고 난 조수석. 독일 구간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불황의 여파에 독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 규모의 인프라 구축 작업으로 경기를 부양 할려는 노력을 하는듯하다. 고속도로의 많은 구간에서 공사를 진행중 이어서 서행을 하는데다가 공사로 도로 지도가 바뀐 탓인지 길 없는 공중으로 날라 가라고 하기도 한다.. 지체하다보니 벌써 저녁 8! 아직 해는 밝아있지만 ,함부르크도 못간 상태이고 어디 호텔이나 캠핑장을 잡아야 할텐데, 독일에선 고속도로 상에서 캠핑장을 보질 못했고 호텔을 갈려면 시내로 빠져 나가 좀 헤메야 할텐데 하고 생각하며 고민 하던 중 함부르크를 약 50킬로미터 앞둔 지점 전방의 휴게소에 침대 표시가 있다.

반가운 맘에 들어가니 휴게소 뒤 약간 으슥한 곳에 모텔이 하나 있다. 가보니 용무가 있는 사람은 휴게소로 오라고 표시되어 있다..

샤워장이 있는 방 하나와 ( 78유로 ), 샤워장 없는 방하나 ( 57유로 )를 빌렸다. 처음으로 밥을 해 먹는다. 부르스타에 찹쌀밥을 하고 총각김치와 배추김치 꺼네고 , , 참치 통조림, 고추장등으로 밥을 먹으니 꿀맛이다. 빵먹는것 보다 100배 낫다.

 

숭늉을 만들어 그 물에 커피를 타셔 마셨다. 밥알이 들어 있는 커피! 그대는 마셔 봤는가? 하하하.

 

샤워하고 식구들은 벌써 꿈나라에서 놀고 있고 나는 이 글을 마쳤는데, 10시 조금 지났다.

일찍 자고 내일은 조금 서둘러 일어나서 출발해야 겠다. 모래는 꼬옥~ 스톡홀름에 도착해야 예약한 민박집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78일(수) 길이 어려운 도시 코펜하겐

 

1994년 북한 김일성주석 사망

1986년 삼성 반도체 1MD램 개발

1971년 백제 무령왕릉 발굴 ( 출토된 무령왕의 신발 밑바닥 길이가 30cm에 이르러 무령왕이 거인임을 짐작 )

1592년 한산도 대첩 ( 적함 47척 격침, 12척 나포 )

 

어제 까지의 누계 주행거리는 1,015킬로미터.

잠을 일찍 자니 자동적으로 한국에서의 기상 시간에 몸이 마추어 진다. 530분 기상하여 간단히 정리하고 호텔의 조식을 먹으로 간다. 이곳 모텔은 휴게소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조식은 휴게실에서 먹는다. 콜드 조식과 웜 조식이 같이 차려져 있는데, 계란, 베이컨, 등은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 그래서 콜드로 먹었다.

 

635분 출발! 오늘은 코펜하겐에 일찍 가서 관광을 좀 제대로 해 볼려고 한다. 독일 함부르크를 지나 덴마크와의 국경이 나타나며, 이번 여행의 처음 카페리를 탄다. 차와 4인 요금 485 덴마크 크로네 ( 12 만원 ) 독일과 시차가 1시간 있어, 페리 시간은 50분이지만 실제는 -10분이다. 차를 경사로 위로 운전하여 올라가 일렬로 주차하고 갑판에 올라가니, 국경이동 하는 배이라고 술, 담배, 향수등을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노르웨이에서 이런 페리를 많이 타야한다.

덴마크 땅에 도착하니 이곳도 곳곳에 독일처럼 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

차량 네비게이션의 이해 못하는 단어 한가지가 더 있다. 이 네비는 고속도로에서 좌,우로 방향 전환할 때 보통 2.2킬로미터 전방에서 안내를 시작한다. In 2.2 Km, 엣 포크 빼 right ( left )라고 하는데 무슨 단어인지 암만 들어도 모르겠다. 미국에 있는 친구 양사장은 알려나?

 

코펜하겐 도착 100여 킬로 미터전, 아들과 운전을 교대한다. 시내 구간에 들어가니 교통이 복잡하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호텔 예약부터 해야 한다. 주차할 곳도 마땅찮아 일행은 정차를 해서 차에 있고 나는 인포 센타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호텔 사정을 알아보니 매우 비싸다! 북 유럽 물가가 비싸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스페인에 비하면 거의 두배 인것 같다.

 

번호표 차례가 되어 도우미와 상담하여 그중 싼 곳에 4인실을 얻었다.

인포 센타에서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길을 잘 못찾아 거의 한 시간을 헤맸다. 다섯 번 정도 내려서 물어보기를 반복하다 호텔을 찾았다. Cabinn Express 호텔. 사인실이 30만원 인데 ( 주차비 2만원 포함 ) 스페인 세비야의 14만 원짜리 수영장 딸린 호텔과 어제 잔 독일 호텔과 비교해도 비싸기도 하고 좁은 다락방 같은 방에 침대 4개를 기술적으로 설치하여 공간이 매우 좁다.

 

그 와중에 좁은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가족들이 피곤해 해서 4시까지 약 두 시간을 취침하고 거리로 나섰다. 길을 통 모르겠다. 이리 저리 다녀도 책에는 도심이 작다고 되어 있는데, 도심 중앙인 시청을 찾을수가 없다. 열난다!! ( 나중에 코펜하겐을 다녀온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길 때문에 애로 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

 

에라이, 택시를 타고 일단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인어공주 동상으로 갔다 ( 택시비 25,000원 정도- 인어 동상은 영어로 Den Little Havfrue라고 책에 되어 있는데 읽기도 어렵고 해서 그림을 보여주니 알아서 간다 ) ). 포항 앞 바다의 주먹 쥔 손보다도 훨씬 초라하지만, 관광객은 많다. 높이 80센티미터의 이 인어동상은 머리가 잘려나가기도, 부셔지기도, 바닷 속에 던져 지기도 한 애환이 많은 동상이다. 뒤로 보이는 해변의 모습이 더 멋지다.

이왕 택시 탄거 다시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간다. 코펜하겐의 발상지에 세워진 크리스티안 보르성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가 아주 싹싹하고 영어도 잘한다. 가는 길에 여왕이 거주하는 아말리앤보르 궁전쪽으로 돌아서 가며, 여왕이 검소한 편이라고 한다. 완존히 영어 가이드이다. 뉘하운 운하 근처를 통과하며 이곳이 가장 코펜하겐 다운곳이라고 설명해 준다.

운하 양 옆으로 음식점들이 주~욱 들어서 있다.

 

코팬하겐은 건물들이 다 고색창연하여, 건물 외부를 임의로 수리 할수 없다고 한다. 크리스티안 보르성 앞에 내렸다. 지금은 국회 의사당과 여왕의 알현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바로 옆으로 시청사가 보인다. 가이드가 있는 입장만 가능하다. 시청사의 높이는 105.6미터이며, 시 조례로 코펜하겐 시내에서 시청사 보다 더 높은 건물은 짓지 못한다.

시청사 앞의 광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잠시 구경하다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하여 서둘러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은 현지식으로 먹을려고 했으나, 아내가 굳이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로 카레 라이스르 준비해줘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 맥주 한캔! ~ 며칠 만에 마셔보는 맥주인지.. ~~~~~ 좋다.

 

호텔은 후졌지만, 인터넷이 되니 봐준다...

 

내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도착하면 나흘간은 민박집이다. 그중 하루는 결혼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는 부산출신 결혼한 여성분이 가이드를 해줄 예정이다.

 

오늘까지의 누계 운전 1,383킬로미터 ( 오늘은 300킬로미터 정도만 운전했다 )

 

79일(목) 말뫼대교를 지나 스웨덴으로 (코펜하겐~스톡홀름)

 

1971년 키신저 극비 중국방문, 주원래 스상 만남 ( 닉슨의 방중 포석 , 핑퐁외교 )

1966년 한미 행정협정 ( SOFA ) 조인

660년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

 

아침을 호텔에서 콜드 블랙퍼스트를 먹고 8시에 스톡홀름을 향하여 출발! 680Km의 만만치 않은 운전길이다.

 

코펜하겐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스웬덴과의 국경인 올레순 대교에 이르렀다.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말뫼지방을 잇는 이 대교는 20007월에 개통되었다는데 , 마치 우리나라 영종도의 영종대교를 미리 가보는듯한 느낌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중 어느 나라에서 공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통행료는 국경 통과한 스웨덴에서 받는다.

통행료룰 내고나니 바로 국경 경찰 훈남이 다가온다.

 

경찰 훈남 : 잠시 검문이 있겟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 스톡홀름에 간다 ( 짜샤! )

경찰 훈남 : 며칠 있을겁니까? 목적이 뭡니까?

: 4~5일 있을거고, 관광하러 왔다.

경찰 훈남 : 차안의 미남 미녀들은 누구 십니까?

: 내 가족들이다 ( 보면 모르겠냐? 짜샤! )

경찰 훈남 : 안녕히 가십시요!

: 그래 ( 니들이 수고가 많다~ - 개콘 버전 )

 

며칠간 운전하며 느낀 이곳 유럽의 고속도로 운행방법을 내 나름데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도로는 대체로 편도 2차선의 길인데, 1차선은 추월 차선 2차선은 주행차선이다. 캠핑카를 비롯한 화물 차량들은 주로 2차선을 달리는데 평균 시속이 90~100 Km/h 정도이고, 승용차는 주로 2차선을 달리며 평균 시속이 120~130 Km/h정도이다.

1차선은 비워 두는게 원칙이며, 추월시만 달리는데 이때 속도는 보통 130~140 Km/h 정도이며, 추월하고 나서는 곧바로 주행차선으로 복귀를 한다.

 

교통 시스템이 나름 합리적이고 매너가 좋게 운전들 하는것 같다고 말하자, 옆에서 조수 역할을 하는 아내가 ( 오늘은 아내가 조수석에 타고 큰 아들은 뒷좌석에서 취침중.. )반론을 제기한다 " 그건 니 생각이고 ( 개콘 버전 ), 도로에 차량 운행 댓수가 많지 않아서 그렇게 할수 있는거지, 우리 나라 고속도로처럼 기본 차량 댓수가 많으면 할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중간 중간에 들런 휴게소의 시스템도 다른 나라와 좀 틀린다. 드라이빙 레인지 골프 연습장이 있는 휴게실이 많고,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로 이르는 길이 단순하게 빠져 나갔다 들어오는 것이 아닌, 빠져나가서 국도로 약 500m~ 1Km를 가서야 휴게소가 있고 고속도로로 들어올때도 교차로도 있고 해서 잘 봐야한다. 실제로 아들이 운전할 때 길을 잘못 들어 스톡홀름 방향이 아닌 코펜하겐쪽으로 5Km 정도를 갔다가 돌린적이 있다 ( 네비가 미안한지 외길에서 ' If possible, do U-turn! '이라하는데 어디서 차를 돌리냐? )

스웨덴을 오니 도로에 운행하는 차량의 종류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마가 튀어나온 캠핑카와 앞에서 끌고 가는 바퀴달린 캠핑카가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애초 여행 계획시 캠핑카 임대도 고려해봤으나, 캠핑카는 전부 수동운전이고, 차량 크기가 미니버스 수준이며, 늘 똑같은 좁은 잠자리이어서 ( 무었보다 수동운전이란 점이 불안해서 ) 선택에서 제외 되었다.

 

중간에 아들과 바톤 터치! 아들이 운전중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

모니터에 ESP/ARP system faulty! 라는 경고 문자가 떤다. 급히 차량을 인근 휴게소에 세우고 프랑스의 시트로엥에 전화를 걸어 정비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별 문제 아니니 안심하고 타도 된단다. 시동끄고 좀 있다 출발하면 없어진다고... 실제로 다시 시동을 켜니 없어진다. ~~

 

스웨덴 입국할 때부터 오락가락 하던 비가 도착하고 나서도 그칠줄 모른다. 오늘은 편안히 휴식을 하자!

 

이곳의 숙소는 여행 준비중 가장 기대를 많이 한 민박집이다. 대치 500평의 집에 올해 첨으로 민박집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의 집인데 안주인은 싱가폴의 외국기업에서 근무하다 영어 공부에 대한 책도 쓴 분이며, 남편은 어머니가 박정희 대통령시절 서독 간호사로 나왔다가 스웨덴으로 이주한 분의막내 아들로 한국말이 약간 서툴지만,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다.

-  이집 안 주인이 쓴 두권의 책  --

 

집이 너무 맘에 든다!! 마당에는 잔디가 심어져 있고 중앙의 국기봉 옆에 키큰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있다. 정원이 평평한게 아니고, 바위도 있고 경사도 있고, 작은 나무들과 꽃들도 심어져 있어 너무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우리 돈으로 약 6억 한다는데, 1억 정도 지불하였고 나머지는 30년 분할 상환한다고 한다.

무었보다 이 근처 집들이 다 이런 스타일 이어서 동네가 산소 덩어리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저절로 건강할것 같은 그런 기분이 나는 곳이다..

배낭 여행하는 젊은이들에겐 약간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철도로 약 10분 떨어져 있어, 차량으로 철도역까지 바레다 준단다.

안주인의 한국인 여자 친구분들 두분이 휴가차 와 있고 23살의 배낭여행 학생이 와 있다. 저녁으로 김치 찌개와 염소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 젓갈, 김등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음식이 정갈하며, 맛있다.

 

식사후에 남편분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710일(금) 여름인데 선선한 스톡홀름

 

2001년 가수 탤런트 등 유명 연애인 MBC 출연 거부 선언

1931년 노르웨이, 그린랜드 합병선언

1900년 파리 지하철 개통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많이 흐리다. 기온도 많이 내려간것 같아 오늘은 두꺼운 폴라티를 입고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었다.

정성이 가득한 아침을 먹고 ( 이곳 민박집 최고다! 주인 부부의 인정이 넘치는걸 느낀다 ) 기차역까지 안주인이 배웅해줬다.

스톡홀름 3일 패스를 샀다 ( 성인 200, 학생 120 크로네 ) 스톡홀름 중앙역 까지는 7정거장! 암스테르담에서 처럼 역을 지나치는 실수를 안하기 위해 각 도착역의 이름을 노트에 적었다. 숙소로 돌아갈 때 확실히 하기 위해..

 

중앙역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해줄 부산 출신 미시분을 만났다. 대학교부터 이곳 스톡홀름에서 다녔고, 세 살된 아들을 둔, 똑소리 나는 분이다 ( 현재 대학원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단다. )

중앙역 밖을 나가니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이곳은 도심의 느낌이 산뜻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도시이다.

 

제일 먼저 들린곳은 시청사. 중앙역에서 조금만 걸으니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시청사가 나타난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파티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는 황금의 방이 있다는데, 오늘은 패스..

시청사의 뒷 바다쪽에는 기사의 성과 남섬, 교회와 아파트 그리고 나무숲이 적절히 어우러져 자연과 문화가 너무나 조화가 잘 이루어지 느낌이다.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건 아닌것 같다.

북유럽 4개국의 국기는 다 십자가가 바탕이다. 핀란드는 흰 바탕에 파란 십자가, 덴마크는 빨간 바탕에 흰 십자가, 아이슬란드는 진한 파랑바탕에 빨간 십자가, 그리고 스웨덴은 파란 바탕에 밝은 노란 십자가가 있다 ( 햇빛과 바다를 상징하지만, 파란눈에 금발 여자를 뜻하기도 한단다.. )

스톡홀름은 강이 아닌 바다에 면한 도시여서인지 나에겐 친숙하게 느껴진다. 10여년전 타워 팰리스 현장 근무시 이곳으로

출장을 한번 나왔다. 그때는 겨울이어서 파커를 입고 시내를 다녔던 생각이 난다 ( 조명 관련 출장!! )

 

세르게이광장 : 항상 데모를 많이 하는곳이다. 우리가 간 시간이 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데모는 없었지만 ( 저녁에 돌아올때 보니 데모를하고 있었다 )

사회주의 나라 이면서 입헌 군주제를 취하고 있어, 약간 아이러니 하지만 ( 군주제 철폐를 위한 데모도 많단다 ), 전체적인 분위기는 약간 온건한 좌파적 색체의 정치를 한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올해 71일부터 1231일까지 스웨덴이 유럽 연합의 의장국이라고 되어 있다. 화폐가 유로화가 아니어서 많이 불편을 느끼는데 몇차례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는데, 최근 유로화는 강세, 스웨덴 크로네는 약세여서, 여론은 유로 화폐 도입을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절도있는 군인들은 아니지만 , 그래도 군악대 까지 동원하여 제법 관광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오늘 교대식에는 특별히 남부 지방의 군악대도 같이 참여하여 남부 군악대 지휘자의 지휘로 아바그룹의 맘마미아의 곡 3곡 정도를 연주한다. 내 앞에 서 있던 아가씨 3명이 흥에 겨워 음악에 맟춰 춤을 춘다. ( 댄싱 퀸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는것을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동영상 화면을 보여주지 못해 유감이다 )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때는 인당 100크로나 ( 17,000원 정도 , 이정도면 싼 금액이다.)정도의 식사가 많다. 파스타와 생선요리, 돼지고기 요리, 그리고 빠질수 없는 맥주 한잔!!

 

버스를 타고 스웨덴 민속 공원인 스칸센에 갔다. 스웨덴의 전통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하셀리우스가 전국의 150동의 건물을 수집하여 1891년에 이곳에 오픈하였다. 우리 나라의 용인 민속촌과 비슷하다.

내부에는 실제 그 장소에서 살았거나 근무했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민속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직물을 짜거나 그 가게에 맞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유리공장~ 목공소~방아간 같은 기계공장 ( ' 눈은 절대 바꿔 낄수 없으니 작업 중에는 꼭 안경을 끼고 작업할것'이란 문구가 써있다 )~ 신발 만드는 집~빵집~ 말 안장을 만들던 사람의 작업장과 집~1800년대 노동자가 사는 집 ( 집은 작고 초라한 단칸짜리의 구조이며, 벽에는 그 당시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곳에 사는 여인이 말하길 ' 지금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이는 시골 사는 사촌인데 취직 할려고 이곳에 와서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고, 남편은 기계 공장의 숙련공이고, 자기는 전업 주부라고 한다 )~옛 인쇄소 ~1930년대의 철물점 사장 집과 가게 ~ 식료품점~ 약국~ 1800년대 스웨덴 농촌 농가와 그곳에서 뜨개질 하며 있는 여인~우체국장 집과 우체국 ~ 스웨덴의 원주민이었던 북방 민족 '사미족 ( 라프족 ) '의 원시 구조의 집 등등 다양한 종류의 주거 및 생활 환경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스칸센 내부에는 동물원도 있어 스웨덴의 다양한 동물들이 있다. 특히 북쪽 지방에서 살고 있는 순록들이 인상적이다. 아마 북극권으로 차를 몰고 가다보면 저 녀석들은 많이 볼수 있겠지.. 우리나라의 용인에 있는 민속촌도 여기처럼 다양한 공간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바사호 박물관에 갔다. 걸어서도 멀지 않는 거리에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함이라는 이 배는 1628810일 출항하자마자 침몰해 버렸다. 무게 중심을 잡는 바닥 부분이 좁았으며, 무게를 잡는 각종 돌들의 무게가 120톤 이었는데 배 상부의 대포와 각종 장비등의 무게와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고 후세의 사람들이 분석했다고 한다. 침몰한지 300년이 지나 진흙 속에 있던 배를 인양하여 복구하는 다큐멘트리 영화도 상영을 한다. 이곳 바다는 염도가 약해 겨울에 잘 언다고 하는데 약한 염도로 인해 부식의 정도가 약해 거의 완벽한 복원이 되어 있다. 길이 62미터, 11.7미터 의 금칠을 한 화려한 전함이었는데 한쪽 벽면에 그 당시 화려했던 배의 일부분을 재현해 놓았다.

1979~1988년에 14,000개의 조각들을 분석하여 맞추는 작업, 1990년 박물관 건립, 실패한 전함을 이렇게 복원하여 관광객을 유치 하는것도 참 아이러니이다. 우리나라의 거북선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복원하여 전시해 놓으면 더 인기가 있을텐데...

 

원래 5시까지 계획되었던 일정이 한 시간 정도 늦어 졌다. 가이드분께 미안하다. 오늘이 주말이어서 저녁에 남편과 아이와 오봇한 시간이 계획되어 있는것 같은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와인을 몇병샀다.

 

711일(토) 둘째 아드의 생일파티

 

1987년 세계인구 50억 돌파

1934년 패션 제왕 조르지오 아르마니 출생

 

오늘은 가족끼리의 자유 일정. 스톡 홀름 시내에서 약간 먼 거리에 있는 곳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기로 했다. 오늘은 아들이 출발부터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한다.

 

제일먼저 들른곳은 '드로트닝 홀름 궁전 ' 책에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연상케 한다고 되어 있으나 비엔나에 있는 쉔브런 궁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 입장료 성인 120, 학생 60크로나- 중국 성 관람 포함 )1662년 착공하여1756년 까지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의 방이220개나 되는 3층 궁전이 완성되었다. 현재 왕과 왕비가 거주하고 있어서 일부 시설만 개방해 놓았는데 내부는 어느 왕궁이나 그러 하듯이 역대 왕과 왕비의 초상화, 성화, 가구 등등이 전시 되어 있다.

 

왕이 살고 있기에 근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군기가 많이 빠져 있는 것 같다.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정원이 화려하고 넓으며 관리가 잘 되어 있어 한가로이 거닐어 본다. 정원의 길이가 약 3킬로는 넘어 보인다.

본성과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중국성이 있다.

거리도 멀거니와 숲속에 숨어 있어 찾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외관이 중국 스럽지 않아 건물 내의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18세기 왕이 왕비를 위해 지어 줬다는데 상상력을 기초로 지었다고 한다. 내부의 전시품들도 유물적 가치가 적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박스홀름 섬 ' 어제의 가이드분이 드로트닝 홀름 성과 이곳 박스 홀름섬을 추천해 줬는데, 박스 홀름은 스웨덴의 손꼽히는 휴양지 라고 한다.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골목길에 세워두고 짧은 시간 둘러본다, 주로 요트 선착장이 주요 시설인 이곳은 많은 개인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주변의 풍경이 예쁜 작은 마을이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 이 두 곳을 볼려면 전철,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곳이어서 이 두 곳만 보는데 하루 일정이라 했으나 우리는 시간이 많이 남아 스웨덴의 북동쪽 Lidingo 섬에 위치한 ' 밀레스 고덴 ' 이라는 조각 공원에 들렀다.

가다보니 우리가 타고 핀란드로 이동해야할 실야 라인'의 큰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는 곳이 보인다. 원래는 밀레스의 저택으로 사용된 곳인데 지금은 그의 작품과 그가 수집한 회화와 조각 들도 전시되어 있다 ( 어른 90, 학생 65 크로나 ).

야외 조각 공원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주로 역동적인 모습의 인간과 동물을 잘 표현해 놓았다.

인디언 얼굴, 포세이돈 얼굴 ( 1930 ), Dancing Girl ( 1917 ), 말 머리 ( 1926 ) 등등...

 

 

오늘은 둘쨰 아들의 생일이다.

 

주인 내외분께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는데, 너무나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해주신다. 삼겹살과 돼지 등갈비, 그리고 닭 다리를 바비큐하여 준비하고, 마당에서 직접 키운 상추까지 차려 주시는데 감동 먹었다. 아내도 무척 즐거워한다. 우리 가족외에 이곳에는 안주인의 시집안간 친구 두 분이 일주일째 계시는데 내일 한국에 가신다고 한다. 이 두 분이 풍선과 고깔모자 등의 준비를 해 주셨다. 너무나 인정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저녁을 먹었다. 오늘 아침 다른 관광지에서 이곳에 오셨다가 내일 귀국하는 교직원 두분 ( 이분들은 40대 처녀 )그리고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이 확정된 여대생 한명 , 주인 내외까지 총 11명이 성대하고 푸짐한 식사를 했다.

너무나 맛있고 감동적인 저녁 식사이다. 샴페인 까지 준비해 주시고 나에겐 작은 패트 병에든 귀한 소주까지 주신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의 별명을 '진공 청소기 ' 가족( 음식을 마지막 반찬 까지 남김없이 알뜰하게 잘 먹어서 )이라고 붙였는데 오늘은 너무 많이 차려 주셔서 고기가 많이 남았다. 40대 처녀 분들은 이번 여행에서 김치를 처음 먹는디고 너무나 좋아한다. 역시 우리에겐 김치가 최고야~

 

40대 처녀분이 오늘 시내 투어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을 감라스탄 지역에서 보았다고 한다.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경호원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묶는 민박집에도 며칠 전 여자 경호원이 며칠 묶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 소화도 할겸 아내와 동내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싱그러운 바람 속에 공기가 너무 맑은 전원 주택들 사이로 거닐고 있으니 아내가 우리도 이런 전원 주택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겐 잔 손길이 많이 가는 이런 전원 주택 생활은 금방 실증이 날것이지만, 아내에겐 동의를 했다.. 나도 이런곳에 살고 싶다고...

 

동내 한 바퀴를 돌고 집이 있는 코너를 돌아 가는데 주인 남자분이 오트바이를 타고 대문을 나선다. 혹시 우리를 찾아 나서는가 하고 크게 불렀더니 산책 나간 우리가 안 들어와서 혹시 헤메일까 찾으러 나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서독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의 22녀중 막내인 이분은 결혼 할때 까지도 한국어가 많이 서툴렀는데 지금은 많이 유창하단다. 그렇지만 한자어에서 유래된 약간 어려운 단어 같은 것은 아직도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 분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시대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 보는것 같아 가슴속 뭔가 감동이 스며든다.

이집 앞마당에는 아침에 노루들이 가끔 와서 상추와 각종 풀을 뜯어 먹는 적도 있다고 해서 며칠 아침 일찍 지켜 보았지만 내 눈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 한국으로 가는 여자분 들과 안주인은 헤어짐이 아쉬워 식탁에 둘러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고, 나는 남자 주인과 마당 안쪽의 소파에 앉아 이런 저런 인생살 이이야기를 나누다 들어왔다. 한가롭고 기분 좋은 오후 시간이었다...

 

712일(일) 유럽에서의 첫 골프

 

1982년 이탈리아, 12회 월드컵축구 대회에서 서독 꺽고 우승

1979년 차범근, 서독 축구팀 프랑크푸르트팀 입단

 

오늘은 스톡홀름 시내를 좀 더 보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생일 파티를 마치고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귀국이 예정되어 있는 4명의 미혼 여성 교직자들과 , 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8월부터 회사 취직이 예정되어 있는 여학생과 안주인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중에 큰 아들이 참여를 하여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큰 아들 왈 ' 여학생과 단둘이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으니, 우리는 골프나 치러 가란다. ( 사실 골프장을 마지막 날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같이 여행온 자녀들의 눈치를 보던 중이었다. )

잘됬지뭐!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하다.

아침부터 아들과 그 여학생은 꽃 단장 하느라 분주하다. 덕분에 우리 골프하러 갈 시간만 좀 늦어 졌다.

 

네 명의 처녀들을 남자 주인이 공항으로 태우고 가고, 난 아들 커플과 아내를 태우고 기차역으로 가서 두 사람을 내려주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 작은 아들은 안주인과 같이 있어라고 하니 밀린 컴퓨터 작업 하겠다고 다녀오란다. )

집에서 불과 9 Km의 거리에 있는 멤버쉽 골프장이다.( Botkyrka GK - 보시르꺄 골프장 )

인당 450크로네 ( 우리 돈 약 6만 오천원정도 - 주말 요금이니 주중엔 더 싸겠지.. ) 910분경 도착했는데, 아마 동양인의 방문이 거의 없었던지, 환대를 해준다. 1040분 정도에 둘이 라운딩 할수 있다고 해서 조인해도 좋으니 일찍 해 달랐더니 940분에 다른 부부 팀과 조인해서 하란다. OK! 골프채를 빌렸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고 그냥 무료로 빌려주는데, 그런데로 칠만한 채이다. 아내와 같이 한 세트로 번갈아 치기로 했다. 돈을 내고 나니 끌고 다니는 수동 카트의 골프채 고정 부분 쇠뭉치를 카운터에서 넘겨준다. 밖에 있는 수동 카트에 연결하고 조인할 부부와 인사를 했다. 조인 한 부부는 현지인이고 이곳 멤버이면서, 자기 소개로 ' Green Keeper '라고 한다. ( Mr. Rune Stromgren , Mrs .Eva Stromger ) 60대 부부인데 납자는 키가 크고 덩치 좋은 편이고 여자는 아담한 편이다. 마치 김모모 회장 부부가 연상이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 다 라운딩 중 담배를 자주 피운다는거!

그런데 그린 키퍼가 뭐하는 사람인겨? 물어보진 못했지만, 그냥 그린 잔디 보수하는 사람 같지는 않고, 전체 골프장을 관리하는 중요 멤버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플레이 도중 아내가 우드 3번으로 두 번째 샷을 하던 중 샤프트가 부러졌다. 당황해 하는 아내.. 전반 3홀 정도 지날 때 진행 요원이 카트를 타고 오길레 이야기했더니 오래된 샤프트라고 자기 내들이 미안하다며, 바로 다른 채 가져다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너희 부부와 같이 치는 분들은 그린 키퍼 부부야~~!! (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 - 개콘 버전 ) "한다. 아마 평범하게 잔디 보수만 하는 분들은 아니가 보다!!

 

 

난 양잔듸에선 아이언 샷할때 잔디를 파며 하는 스타일이라 ( 대부분의 프로들이 그렇게 친다 ) 치고난 후 파여진 잔디를 제자리로 보수를 하니 이사람 좋아한다..

매너하면 이매너야~~

플레이는 즐거웠지만, 국내에서 골프 칠때 동반자들과 늘 즐거워 했었던 나의 입은 좀 심심했고, 낮선 곳이어서 스코어도 평소 실력보다 조금 높게 나왔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의 허락하에 같이 사진도 한 장 찰칵! 9홀이 지난뒤 2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라운딩하여 끝난 시간은 150!

 

오는 길에 차에 기름넣고 ( 473크로네, 42리터) 숙소로 돌아와서 컵 라면이나 먹을까 했는데, 안주인이 국수를 비벼 먹는다고 같이 먹자고 한다 ( 고맙쥬~~ )- 맵게 먹어서인지 저녁에 장이 쓰려 고생 좀 했다.

 

낮잠을 한숨자고 밀린 글 쓰고, 메일 보내고 하니 어느듯 저녁 시간이 되었다. 사진 용량 줄이는 법도 안주인에게 배웠다. ( 배우고 나니 여행 나와서 지금까지 메일 보내면서 용량 큰 사진 보낸다고 엄청 고생했는데 간단한 방법으로 용량을 줄여 보낼 수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

 

시내 나갔던 큰아들이 여학생과 같이 들어온다. 어제까지 둘이 존칭어를 사용했는데, 들어오면서 이야기 하는걸 들어니 서로 말을 놓는다. 여학생 25세 아들 27! 니들이 참 좋을 나이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작은 아들과 마을 산보를 나갔다. 동네가 한적하다. 길을 가다보니 노닐던 토끼가 우리의 인기척에 놀라 숨어 버린다.

스웨덴의 마지막 밤인데 아쉽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일정을 조금 줄여서라도 노르웨이 마치면서 서부 유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이집에 며칠 더 머물고 싶은 심정이다.

 

남자 주인분과 맥주 한잔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스웨덴의 밤은 흘러만 가고 오늘 일기도 마무리된다~~

 

713일(월) 유람선 실야라인

 

1995년 김대중, 정계 복귀 선언

1930년 제 1회 월드컵 우루과이어 개막 ( 우루과이 우승 )

 

오늘은 오후에 Silja ( 현지에서는 '실야'라 부르지만 한국에선 '실자'라고 불린다 .- 이곳에서 바이킹라인과 더불어 해상운송의 2대 축이다 )Line을 타고 핀란드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남자 주인과 아쉬운 이별을 나눈다. 어제 저녁까지 매일 저녁 나와 같이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비록 나이는 띠 동갑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어른스럽고, 한국적 사고와 스웨덴식 사고를 함께 가지고 있어, 같이 이야기 할수록 뭔가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남자 끼리이지만 깊은 포응을 나눴다..

 

배타는 시간은 오후 5시 이후이어서 식사 후 마지막으로 동네 산책을 한번 한 후 근처 약 10Km떨어진 곳에 있는 IKEA매장으로 구경을 갔다. IKEA는 세계 각국에서 호평을 받는 조립식 가구 매장인데 , 한국에선 한국 남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아 철수 했다고 한다.( 어느 한국 남자가 싸다고 집에서 가구를 세밀히 조립 합니까? )

책에 나와 있는 관광 코스는 아니지만, 매장이 매우 크고 조립식 가구 등의 생활 용품을 싸게 파는 곳이라 구경해 볼겸 방문 했는데, 매장의 규모가 매우 컸다. 당초 둘러만 볼 생각이었는데, 이것 저것 손이 가기 시작한다.

강아지 모양의 베게들 3개 사고, 실내 슬리퍼, 숟가락 세트, 여성용 츄리닝 한 벌 등등을 사고 매장에서 간단한 점심겸 식사를 한후 숙소로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고 스톡홀름과 이별한다.

 

안주인이 김치, 젓갈 등등을 챙겨준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큰 아들도 안주인에게 '지금까지 묶은 민박집 중에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지냈다'고 인사를 한다.

이집은 올해 4월에 민박을 예정할 때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되어, 내가 예약순 으로는 거의 1번이었다고 한다.

영어 공부에 대한 책도 출판하고, 싱가폴과 이곳 스톡홀름에서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등 ( 이번 우리가 있는 동안은 휴가를 냈다고... ) 생활력이 강하고 미인이며,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북쪽으로 여행하고 노르웨이 여행을 마치고 내려 올때 시간이 난다면 다시 오고픈 곳이다.

아내도 '마음을 두고 간다'며 아쉬움을 달랜다.

 

실야 라인의 선착장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 터미널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시간을 보내다, 긴 대기차량의 대열에 끼어 탑승 수속을 한시간 정도 기다리다 승선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입출항하는 배를 바라보니 엄청난 규모이다. 내가 본 배중에 제일 큰거 같다.

5월 중순경 4인실을 예약 할려 했으나 , 예약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2인실 두 개를 예약했다. 그것도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비싼 이인실... ( 속쓰리다 ).

큰 기대를 않고 방을 확인했는데 ( 바르셀로나로 이동시 탄 야간 열차의 2인실이 훌륭했지만 좁아서 약간 불편한 기억이 나서 그런 정도이겠지 하고 큰 기대를 안했다 ) 방도 제법 넓고 여러 시설이 매우 잘되어 있다!!

2층부터 10층까지의 9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 사우나 ( 수영장도 있다는데 문이 잠겨 확인을 못했다 )

3,4: 주차장

5,8,9: 객실 ( 5층 일부 회의실 )-객실은 양측 창 측에 면한 객실과 창밖 풍경을 볼수 없는 내부 객실이 있다.

6: 슈퍼마켓 ( 각종 주류, 화장품 일반 용품 판매하며 왠만한 공항의 면세점 규모보다 큼 ),카페테리아

Moon light dance bar.

7: 뷔페 식당, 각종 바 ( 위스키 바, 와인 바, 피아노 바 - 연인들이 앉아 생음악을 신청하며 듣고 있다 ,게임장,

happy lobster ( ? ), 시가 바- 담배 피는 곳 , )

6층과 7층에 제법 큰 규모로 Star light Palace라고 되어 있는 곳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 이용해 보신 분? )

 

배를 타고 6,7층을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들뜬 분위기이다. 그러나, 평범한 관광객이며 지성있고 냉철한 나는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슈퍼 마켓에서 맥주 한캔 ( 21크로나- 3000원 정도, 동전이 그정도 남아서 처분 할려고 고민중에.. )을 사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걸어 다녔다.

 

식당에선 고급 해산물 요리로 유혹하고 있지만, 우린 미리 승선전 간단한 식사를 한 관계로 패스!

배를 타고 바라보는 석양이 새롭고 무척 아름답다.

배의 규모가 커서인지 선실 내부에서 조금의 미동도 느껴지지 않고 마치 배가 정지해 있는 느낌이다.

나이가 좀 더 들어 크루즈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기면 이런 배를 다시 탈수가 있겠지!

 

이렇게 또 하루 여행지의 추억이 물결과 함께 흘러가고 인생도 함께 흘러가고 있다 ( 맥주 한 캔에 시인이 된 느낌이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