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수) 영국이 나를 부른다.
역사속 영국의 오늘
1996년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불교 최고문서 발견.
(1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자작나무에 기록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문서임.)
드디어 출발이다!! 지난 며칠 여행 준비로 꽤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토요일에 강아지 세 마리를 동물 병원에 맡기고 본격적으로 여행 짐 준비를 했다. 동남아 골프여행 1주일 정도에는 짐 싸는 시간이 30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거실에 가방을 펼쳐놓고 보니 의외로 챙겨야 할 물건이 많다. 사흘 동안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니 어느새 캐리어가 꽉 찬다.
아침 9시 반에 호출한 콜 밴을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경기여파인지 공항에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키오스크 단말기로 간단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친 뒤 면세점 구경과 대한항공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낸 후 KE 907편 13시 15분 출발 런던 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기내식 두 번과 영화 몇 편 그리고 약간의 불편한 잠을 잔 뒤 11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한다. 세 번째 방문이다. 아내와 작은아들의 여권을 같이 들고 나 정도 나이의 잘생긴 남자 심사자 앞에 선다. 여행자 카페에 올라왔던 글들을 보면 런던 히드로 공항의 입국 수속이 까다롭고 허가를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여 약간 긴장을 한다.
심사자가 간단한 질문을 한다.
방문 목적이 뭔가요?
여행입니다.
얼마나 머무시나요?
한 달(입국 신고서에 써져 있다. 잘 보고 말해라!)
런던에만 계시나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도 여행합니다.
좋은 여행되세요!
"땡큐!"
1987년 처음 영국 입국할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는 중동 근무를 마치고 첫 해외여행으로 스위스 ⇢ 로마 ⇢ 파리 ⇢ 런던의 증명사진을 찍는 초급자 수준의 여행 일정이었는데 파리에서 영국으로 입국할 때 심사원과 언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국민 소득이나 경제 규모로 볼 때 영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 국력성장을 이룰 때인데 심사원 아가씨가 마치 불법 이민이나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꼬치꼬치 물으며 약을 올렸다. 나는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불뚝 성질로 런던 구경 안 하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심사원에게 ‘너희 조상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훔친 물건들을 구경하러왔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아가씨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통관 도장을 찍어주었었다.
세관 통과를 하고 짐을 찾은 후 출국장을 나서니 큰아들이 기다린다. 직장 생활을하다 어학의 필요성을 느껴 2012년 9월 14일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나왔는데, 이번 여행지를 영국으로 선택한 것도 큰아들이 런던에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다. 작년 출국장에서 배낭과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눈에 아지랑이를 피웠는데 지금 보니 무척 반갑다! 그래, 10개월 동안 혼자서 외로움을 견디고 잘 지냈니?
짐이 많아 숙소까지 택시를 타자고 하니 요금이 아주 비싸게 나온다고 하여 공항에서 시내 중심지 ‘패딩턴’ 역까지 가는 급행 전철을 타고 그곳에서 숙소까지 런던 택시를 이용한다.
숙소인 IBIS Whitechapel 호텔은 런던의 동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 범죄가 많고 빈곤한 지역이었는데 올림픽을 비롯한 동측 런던 재개발 사업으로 발전을 하
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구세군 활동이 세계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호텔 바로 옆에 중동 사람들을 위한의 교회인 ‘모스크’가 있다. 이곳은 중동 사람들이 많이 다니며 상권을 형성한 지역이라 어두운 측면이 있을 것 같은 선입견이 생기기도 하지만 안전한 지역이다.
6월27일 (목) 헨리 8세를 찾은 리즈성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972년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IRA)간의 무기한 정전 발효
어제 도착 후 일찍 잤는데 시차 때문인지 밤에 여러 번 깼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간단한 뷔페이다. 정식 조찬에는 못 미치지만 오늘 하루 열심히 활동하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
오늘은 리즈 성과 켄터베리를 가는 날이다. 이곳 영국 현지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투어를 하는 한국 회사는 세 군데가 있는데, 제일 먼저 시작하였고 가장 인기 있는 ‘자전거나라’, 그 바로 뒤를 따라 추격하는 ‘핼로 유럽’ 그리고 이
곳 런던에서 막 뿌리를 내린 ‘러블리 런던’이 있는데 오늘은 ‘러블리 런던’에서 진행하는 투어에 참가한다.
미탕 장소인 ‘레이번스 코트 파크’역에 8시 반경 도착하여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오더니 오늘은 단체투어인데 우리 가족만 투어에 참가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리즈성 까지는 차량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 가이드는 런던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가이드는 작년에 있었던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 체육회 관계자와 선수들의 현지 적응에 관한 업무 지원을 했다고 한다(체육회와 같이 일한 자긍심이큰 것 같다. 오늘 옷차림도 선수단복 상의를 입고 왔다). 작년의 런던 올림픽에서 불황의 여파로 많은 관광객들이 지갑을 닫고 숙박 시설 이용을 최소화한 관광을 하여 현지관광에 종사하신 분들은 생각보다 큰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넉넉하고 성격 좋게 생긴 가이드는 나의 좀 화려한 의상 스타일과 조여사의 탱탱한 얼굴을 보고 우리 부부는 40대 중반 큰아들은 대학생으로 보았다고 과장을 한다. 대화중에 우리 가족이 2009년 2개월간 여행한 이야기를 듣더니 어떻게 가족과 두 달의 여행을 다닐 수 있냐며, 나보고 남자들의 경계대상 1호 남편이라고 한다.
리즈 성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료를 보니 인당 22파운드인데 이 입장권은 1년 1일간 유효하다고 되어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우리는 입장 후에 다음 오실 분들을 위해가이드에게 이 표를 양도했다. 입구 근처의 호수에서 그 귀한 ‘블랙 스완’ 두 마리가 우리 근처에서 헤엄을 치며 우리를 반겨 준다.
오늘 날씨도 쾌청하고 우리가 운이 좋은 것 같다. 관리 대상인지 발목에 인식표를 차고
있다. 리즈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여러 마리의 오리들이 호수와 길가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고 공작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나무 그늘 밑에서 얌전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리즈 성까지 가는 길은 약간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처럼 꾸며져 있는데, 경치가 좋고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하는 전통 영국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리즈 성은 프랑스의 침공을 대비한 남부 지방 여러 성 중 하나인데 성이 아름답게 지어져 헨리 8세를 비롯한 왕들이 왕비들을 위해 증개축을 하였고, 1926년 영국계 미국인인 베일리 부인이 이 성을 샀으며 1974년 그녀의 사후 유지에 따라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내부에는 역대 왕족의 초상화, 침실, 도서관 등이 있는데 헨리 8세와 여섯 왕비의 초상화가 보인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영국 역사적 인물 중에 하나인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의 사진자료가 인터넷에 별로 없어 여행 중에 꼭 찾아봤으면했는데 이곳에서 찾았다. 헨리 8세의 이야기는 여행 후반부에 언급하기로 한다.
성 안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몇 가지의 요리와 샐러드가 있는데 간단히 먹어도 인당 20~25파운드 정도 비싼 편이며 맛은 보통이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은 비싸기 때문에 출발할 때 점심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를 사가지도 오기도 한단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리즈 성이 아름다워 다시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이곳 성 주위를 돌아보는 보트투어도 있지만 생략하고 걸어 나오는데 미로가 보인다. 이 미로의 출구 근처에는 약간 높은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위에서 시설 요원이 미로에서 헤매는 관광객에게 큰 소리로 길을 유도해 준다. 일단 미로에 들어서면 출구를 자력으로 찾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도 남들처럼 헤매며 가고 있는데, 앞서가며 당황하던 어린이의 부모가 언덕 위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유도하는걸 보며 그 어린이 뒤를 따라가서 출구 쪽 언덕에 갈 수 있었다. 언덕위에서 보니 정말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며 출구를 찾고 있다.
잘 가꿔진 꽃밭에는 여러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고, 소풍 나온 가족들이 어린 아이들과 즐겁게 뛰노는 장면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려가는 길은 코끼리열차를 타고 내려간다. 코끼리열차를 기다리는데 노약자를 위한 차가 와서 그들을 태운다. 이곳도 다른 유럽의 나라들처럼 복지는 상당히 배려하는 것 같다(이 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역사와 배경, 주변 정원 등의 내용이 상세히 나오므로 설명은 생략한다).
리즈 성에서 출발하여 30분쯤 가니 캔터베리가 나타난다. 영국에서 가장 중세의 도시 형태가 잘 보존된 곳이 이곳 캔터베리와 요크시라고 한다. 캔터베리 성당에 이르는 길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거리의 음악가와 행위 예술가들이 제법 눈에 띈다.
성당은 10파운드쯤 내고 입장해야 하는데 앞으로 많이 볼 것이고 오늘의 일정상 멀리서 사진만 한 장 찍고 가까운 펍에서 맥주 한잔하기로 한다.
우리는 근처의 15세기부터 있었다고 되어 있는 펍에 들른다. 영국에는 각 지방마다지방의 맥주가 있는데 ‘에일’이라고 불리며 ‘사이다’라고 불리는 마치 스파클링 와인과 비슷한 맛의 백주에 가까운 음료도 있고 여성들이 좋아하는 ‘스텔라’라는 맥주도 있어 각각 한 잔씩 시켜 맛을 본다.
이것저것 맛을 보다보니 한 500CC는 마셨나보다. 나오는 길에 잘 꾸며진 강가의 아름다운 산책길이 보인다. 얼마 전 개인전을 한 모 여사님에게 이곳 사진을 보내주면 좋아할 것 같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에 취해 런던으로 돌아오는 두 시간동안 차 안에서 숙면을 취했다. 원래는 6시가 투어 종료인데 가이드와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아서 윔블던 역 근처 의 한국 식당을 소개받아 가이드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한다. 추천 받은 갈비탕과 양념개장, 뚝배기 불고기, 김치전으로 저녁을 먹는다. 모두 50파운드 정도로 낮에 먹었던 부실한 점심에 비해 맛은 두 배이고 가격은 반이다. 역시 한국인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해~
6월 28일 (금), 잊지 못할 런던대첩, 그 현장을 찾아서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976년 최후의 낙원 세이셸 공화국 영국으로부터 독립
오늘은 웨일즈 지방의 수도 카디프로 가는 날이다. 당초에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이곳 카디프와 인근 스완지시티 등지를 돌아보고 북쪽 에든버러로 갈 예정이었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못하여 오늘 이렇게 당일로 런던에서 하루 만에 둘러보기로 한다. 카디프 관광은 우리 가족끼리 가이드 없이 투어를 할 예정이었는데 최근 카디프에서 민박 하시는 분을 알게 되어, 그의 소개로 전문 가이드는 아니지만 가이드를 하는 학생을 소개받아 투어하기로 하였다.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9시 15분 기차로 출발한 우리일행은 두 시간 정도 걸려 카디프에 도착했다.
카디프에 도착하니 어릴 때 해외를 나와 이곳에서 11년째 살고 있고 3개 국어에 능통한 한국인 아가씨가 가이드로 우리를 반긴다. 역에서 나와 차로 이동하니 금방 카디프 성에 도착한다.
얼마 전 이곳 카디프 성에서 여왕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 93세인 필립공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아서 얼마 살기 힘들지만 89세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최장수 재임 기간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앞으로 4년은 더 왕위에 있을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영국 기록은 64년간 왕위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이라고 한다.
성곽을 보면 빨간 벽돌 아래는 1000년 전 모습이고 그 위는 복원하는 표시를 하였다. 우리는 가이드 아가씨가 미리 예약해둔 12시 현지인 가이드를 받는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방 6개 정도와 옥상 정원을 안내하며 이곳 성의 역사와 각 방의 이야기를 하지만 영어가 녹슨 나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가이드 아가씨와 큰아들로부터 요약 보충 설명을 듣는다. 어떤 방에는 많은 존이 있는데, 두 번째 존은 돈을 많이 벌어서, 셋째 존은 돈을 탕진해서 유명하다. 방의 벽에 있는 타일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은 아이들을 위해 이솝우화, 로빈 후드 이야기, 로빈슨 크루스, 이솝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어떤 방은 천정에 열두 달과 계절을 표시하고 밤과 낮을 표시하였다.
옥상 원래 정원으로 만들어졌는데 자연적으로 비를 통해 정원을 관리하였는데, 지금은 비닐로 덮어놓았다.
식당에 있는 테이블은 중앙에 둥근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 포도나무를 꽃아 분위기를 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보통의 성은 성 주위로 물이 흐르게 하고 언덕에 있는데 이 성은 평지에 있다. 서기 75년경 이곳을 점령한 로마군은 로마요새를 세웠고 11세기 정복 왕 윌리엄 1세가 성벽 안에 아성을 지어 완성했다.
성을 나와 조금 걸으니 시청과 카디프 박물관이 나타난다. 박물관 내부의 주요 전시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급히 둘러만 봤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
오늘 방문의 주요 목적인 밀레니엄 경기장에 들른다. 2012년 올림픽 축구경기에서 표가 매진된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 한번은 결승전 경기이고, 다른 한 번은 한국과 영국의 경기였다. 7만 5천명을 수용하는 이곳 카디프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영국과의 경기는 한국 관객이 300명이었고 나머지는 영국 응원 관객이었다. 특히 이번 영국 팀은 영국 사상최초로 스코틀랜드등과 단일팀을 구성하여 나온 경기인데 우리에게 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 경기를 이겨 필연적으로 일본과의 3, 4위전을 이곳 경기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8월 11일 새벽 3시 45분. 드디어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서울 광장에서는 밤을 새워 응원의 열기를 높여가고 있었고, 이곳 현지에서도 원정 나온 응원단들이 목에 피가 나게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벌인 경기여서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전반 38분 박주영은 하프 라인 부근에서 상대 수비수가 놓친 공중 볼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이후 질풍 같은 단독 드리블로 골문까지 내달렸고 놀란 일본 수비수 4명도 달려들었다 그러나 박주영은 현란한 속임 동작으로 수비수들을 농락한 뒤 오른발 강슛을 날렸다. 제대로 걸린 슛은 상대 골키퍼 곤
다 슈이치의 손을 스치고 골문 오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반 12분에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도왔다. 정성룡의 골킥을 받은 박주영이 쇄도하던 구자철을 보고 헤딩 패스로 연결했다 구자철은 드리블 뒤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렸고 골문 왼쪽에 정확하게 꽂혔다. 2:0으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우리에게 질질 끌려 다녔다. 감격의 2:0승리다.
멕시코 금메달, 브라질은 펠레의 저주로 은메달, 그리고 한국은 올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 같은 동메달!
경기에서 이기고 아주 기분 좋은 댓글들이 인터넷을 달궜다.
‘1골 1도움 박주영, 병역브로커 등극’, ‘박주영, 원숭이 네 마리 농락’, ‘김기희 3분 만에 전역’, ‘이 양반(박주영)이 그 유명한 박시탈 이라면서요??’ 박종우 선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승리의 세리머니로 동메달을 한참 후에 받게 되었다. 이왕할거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세리머니를 하지.
2:0 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일본 네티즌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의지 부족으로 완패했다”, “멘탈(정신력)의 차이다”, “병역혜택 때문에 졌다” “이럴 거면 왜 스페인에 이겼는가. 이런 결말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만 자야겠다”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 오려면 일본까지 헤엄쳐서 와라”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또 “일본이 잘하는 플레이 나왔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볼 돌리기” “백패스 하나만큼은 월드클래스”등 패배를 인정하는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한편, 한국 네티즌들은 개그콘서트의 ‘갸루상’ 말투로 댓글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추꾸서느수가 아니무니다, 저는 추꾸르 하지 않았스무니다. 사람이 아니무니다”는 유행어 댓글도 눈에 띄었다.
광복절을 불과 며칠 앞둔 이날의 경기는 정말 온 국민에게 통쾌함을 주었고 오래 기억에 남고 주요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입에 오르내릴 것 같은 명 승부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영원한 치욕이겠지만.
카디프 베이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는다. 약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2층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러 맥주와 샐러드 파스타를 먹는다.
바닷가라 그런지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걸어서 근처 산책을 하니 바로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가 나타난다.
전면에 새긴 글은 “이 돌에서 지평선을 노래한다. 영감의 용광로로부터 마치 유리 같은 진실을 창조해내다”라는 문장이다. 이 글은 웨일스 출신의 유명한 여류 시인 귀네스 루이스(Gwyneth Lewis)가 지었다는데, 이 곳이 예전부터 철강, 광산 산업이 유명해서 이런 문구가 나온 것 같다. 지금 웨일스는 미술 디자인 예술 도시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건물 전면은 산화구리를 입혔고, 글자들은 속이 창이어서 밤에는 조명역할도 한다. 내부는 3개의 극장이 있어 각종 공연을 하며 건물의 설계도 음향 시설에 초점을 두고 한 것 같다.
근처에 마치 배를 뒤집은 것 같은 현대식 디자인의 독특한 건물이 보여 물어보니 웨일스 국회의사당이라고 하여 들어가 본다. 간단한 보안 검색을 받고 내부로 들어가보니 주 회의실도 잘 볼 수 있게 유리로 360도 둘러 싸여 있다. 외관과 내부 모두 개방과 투명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의 국회의원들은 대화와 협의를 잘 하겠지.
국회 바로 옆에는 시계탑이 있는 붉은 색의 깨끗하고 품위 있게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외벽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항만 관리소, 국회 안내 센터로 사용되다 지금은 웨일스 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시간은 네 시가 넘었는데 열정적인 가이드 아가씨는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겠다고 근교에 있고 웨일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케어필리 성(Caerphilly Castle)에 가자고 하여 그곳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퇴근하는 차량들로 도로가 매우 막힌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에도 다 못가서 꿩 대신 닭이라고 근처의 ‘Castle Coch’만 들러 급히 증명사진만 찍고 다시 카디프로 가서 런던 행 기차를 탄다. 오늘은 초보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6월 29일 (토), 마음에 양식을 쌓는 미술관투어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861년 영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사망
오늘은 헬로 유럽사의 단체 미술관투어를 받는 날이다. 주말에는 지하철 노선 일부를 축소 운행을 하는데 우리가 있는 화이트 채플역도 정상 운행이 안 되어 만남의 장소인 피카딜리 서커스 역에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지하철로 가서 환승하여 도착했다. 숙소에서 좀 일찍 출발하여 시간이 남아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다 에로스 상 아래에 가니 가이드가 도착하였다.
오늘 투어는 단체투어인데 신청자가 없어 우리 가족만 진행한다고 한다. 이런 미술 공부보다는 짧은 기간에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초급 여행자들이 이해는 가지만 인문학이 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같아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월리스(Wallace) 갤러리에 도착하였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여성적 섬세함이, 18세기 미술은 로코코 시대로 남성적 섬세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은 로코코 시대의 미술품이 가장 많이 잘 보관된 곳이다.
미술관투어의 내용은 그림 해설 위주로 작성한다. 해설 내용의 대부분은 현지가이드분들의 상세한 설명과 국내에서 미술품에 대한 청강 내용을 위주로 작성하였다.
이 방의 서가에는 브리타니카 백과사전도 전시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백성들이 많은것을 알면 안 되는 시기여서 백과사전의 공개가 금지되었다.
여기 작성된 자료들은 월리스 갤러리 작품의 극히 일부분을 설명하였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로코코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이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코쿨드 갤러리
방직업을 하던 사무엘 코쿨드가 만든 갤러리로 작지만 알찬 갤러리로 그의 부인과 딸이 좋아해서 수집하였는데 그림을 임대하여 1달이 지나서도 맘에 들면 구입하였다고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미술관과 갤러리의 공통점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미술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위주여서 대부분 일정액의 관람료를 받지만, 갤러리는 상업적으로 판매를 할수 있기에 대부분 무료로 작품을 관람한다. 최근에는 갤러리에서 카페나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시 관람 후 시간을 보내기에도 더없이 좋다.
쇠라가 2년 동안 그려 1886년 완성한 그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신인상주의 화가로 평가되는 그는 인상주의 색채원리를 체계화하고 인상주의가 무시한 질서를 다시 구축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뮤지컬로 패러디되어 미국의 작곡 작사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이 1984년 뮤지컬 ‘조지와 함께 한 일요일 공원에서’라는 공연을 통해 쇠라의 삶을 재평가하기도 했다.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지붕에 6색 기가 걸려 있는데 이는 동성애자들을 지지한다는 표시이다. 영국 내에서 동성애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안내데스크의 가방을 보관해 주는 남자 직원이 굉장히 상냥하게 보이는데 한 눈에도 동성애자임을 알 수 있다(교황이 브라질을 방문하여 동성애자들을 수용하는 의견을 말씀하셨다는 뉴스를 책을 편집 중에 들었는데, 인간의 절대적 가치 기준의 범위가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2000년 테이트 모던이 개관하면서 영국에서 활동했거나 영국 화가의 미술품만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되었고 터너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영국은 미술계의 변방이었지만 약 200년 전부터 지속적인 교육과 투자로 지금은 현대 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이곳에 고정 전시되고 있는 작품 중 라파엘 전파화가들의 작품이 유명하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라파엘로처럼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린 이상주의 세계를 부인하고 르네상스 이전의 순수하고 사실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자신들
의 예술을 발전시켰다.
사진 원본의 용량을 줄여서 올리니 원본의 질감과 느낌이 많이 떨어져 아쉽지만, 여기 올려 진 그림들이 오래토록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요즈음은 인문학과 과학의 통합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통섭’의 결과로 많은 과학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인문학의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더욱 활성화되어 나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재목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6월30일(일), 영국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994년 영국의 추리 소설가 로빈 쿡 암으로 사망(의사 출신 작가로 의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대표작으로 ‘바이러스’, ‘돌연변이’ ‘코마’ 등이 있다.)
오늘은 ‘자전거 나라’의 영국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투어를 하는 날이다. 만남의 장소인 ‘토튼햄 코트 로드’ 역에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근처의 맥도널드에서 차 한잔을 한 뒤 약속 장소로 가보니 약 30명의 관광객이 모였다. 가이드가 나눠주는 수신기와 이어폰을 장착하고 영국 박물관으로 간다.
영국 박물관은 과거에 우리에게 대영 박물관으로 불린 곳이다. 이는 영국을 따라하는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에게 전파되었는데 최근에는 영국 박물관으로 불려야 한다고 하여 바로잡았다. 이곳은 몬테기오라는 귀족의 집이었는데, 한스가 모았던 자료를 공개하면서 ‘학습에 대한 열망이 있으면 무료로 하라’고 하여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한다. 년 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문제가 생겨 전시 방식을 순환 전시(Room to room display) 개념으로 바꾸고, 재배치와 증축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 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 28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늘 오전 몇 시간에 주요 전시실만 보기로 한다. 이 곳 유물은 사진 촬영은 되나 건드리지는 말 것을가이드가 당부한다.
1. 이집트 관
BC 3500년경 농경문화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석상은 신이나 왕을 표현하는데 석상의 얼굴이 바뀌는 것은 왕조가 변경됨을 뜻한다. 이집트는 방어가 유리한 주변 지형의 영향으로 약 3100년간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로마에 의해 멸망된다. 이집트인들은 이승과 저승이 함께 있는 것이며 갔다 올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왔다. 유물중에 벽과 문의 형상을 한 유물이 있는데 병풍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9~11왕조의 3명의 석상에서 얼굴 형상이 달라진다. 이때는 ‘히소스’ 문명이라 불리며 ‘정면성의 원리’가 있다. 즉, 존엄스러운 것을 나타내고자 했던 이집트인들은 신체의 각 부위가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는 방식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만 3미터 정도인 석상이 보이는데 이는 아미노데포 3세이다. 무력이 아닌 대화로가장 아름다운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다. 책을 쥔 그의 왼손은 그가 공부를 많이 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 관에서 꼭 봐야 할 유물은 당연히 ‘로제타스톤’이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발견하였으나 넬슨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군인들의 석방 조건으로 이 돌은 영국으로 넘겨졌다. 탁본을 프랑스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연구를 하였는데,21년간 의미 문자로 접근하여 해석이 어려웠으나 성각 문자로 인식된 후 7일 만에 97%를 해석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40세에 사망을 하였는데 지금도 후학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이 돌의 글 내용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덕망을 칭송한 글이라 한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왕 이상의 왕으로 군림하였으며 문서를 조작하여 자신의 치적을 강조하기도 했다. 람세스 2세가 벌인 피라미드사업은 복지사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무직자나 농한기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했다는 설이다. 67년간 61번의 결혼을 하며 130명의 자녀를 두었고 딸과 결혼한 경우도 있었다. 그의 석상 가슴에 구멍은 운반을 위해 뚫은 구멍인데 벨조니가 11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가져왔다. 이 시대의 석관은 영국에서 욕조로 사용되기도 했다. 풍뎅이는 생명의 힘을,
솔방울은 영생을 뜻하며 부엉이는 지혜를 의미한다.
2. 메소포타미아 문명(들)
탁 트인 땅에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흘러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동적인 문명이며 이집트와 달리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어 생전에 화려하게 꾸미는 걸 좋아했다(영화300에 보면 이 시대 왕이 극도의 치장했음을 보여준다). 왕이 귀걸이와 태음력 시계를 차고 있으며, 솔방울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산소통을 메고 잠수를 하여 강을 건너 마차를 다시 조립하여 적에게 공격하는 것을 표현한 것은 마치현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 시대에는 사자들이 많아 사자 사냥 그림이 매우 섬세하게 일련의 과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화살을 세 개 맞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죽어가는 사자,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수사자, 날라 가는 화살, 도망가는 사자 등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이 시대에 전쟁에서 포로들을 잔인하게 대하여 결국에는 복수에의해 나라가 망하게 된다.
3.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
18세기 중반 영국 외교관인 엘긴은 약혼녀에게 줄 신혼집을 꾸밀 장식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을 가져온다. 오스만 트루크와 13억에 계약을 하고 반출을 하였으나 오는 도중 프랑스에 포로로 3년 반을 있다 석방되었는데 약혼녀의 배반으로 이 조각들은 필요 없게 되고 결국 영국 정부로 넘어와서 1988년에 이방에 전시하게 된다. 실제로 파르테논 신전에서 조각상들은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 다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반환을 요청했지만 영국은 거부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신고전주의 건축물로서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다 아테네를 다스릴 왕을 뽑는 경쟁에서 올리브를 가져온 아테나와 말을 가져온 포세이돈을 제우스가 비교하여 아테나의 승리를 결정한다(그리스인들은 흡연율이 높은데 올리브를 많이 먹어 흡연에 의한 사망률은 낮다고 한다).
조각에는 소를 제물로 신전에 가져가는 인간들이 보이고 신들의 조각은 얼굴이 다 훼손되었는데 전쟁으로 다른 편의 군사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한다.
신화에서 아테나 여신의 탄생배경을 보면, 제우스신이 자신을 능가할 신이 나타나길 두려워해 먹어 버렸는데 어느 날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 대장장이 신인 아들 헤파이도스에게 머리를 쪼개보라고 하니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을 하고 마차를 탄 아테나가 나타났다고 한다.
4. 미라 관
파라오가 죽으면 옆구리를 절개하여 내장을 꺼내 4개의 항아리에 담았다. 뇌는 코로 도구를 넣어 빼내 버렸다. 42일간 방부 처리를 하고 붕대를 감아 71일 후 관에 넣어 풍뎅이, 솔방울등과 함께 피라미드로 옮겨둔다. 사자의 서라는 그림을 보면 검사의 신, 안내자 겸 저울을 다는 신, 죄가 판명될 경우 벌을 주는 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은 자가 내서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판명하는 재판이 열린다. 가운데 저울에서 왼편은 흰옷의 파라오가 오른편에는 심장을 올려 42가지의 죄를 심판한 뒤 무죄이면 파랑색 인형들 의해 이승으로 돌아온다. 이 일련의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5. 한국 관
2000년 9월 들어옴. 영국 박물관의 유물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훔쳐온 것이지만, 한국관은 우리나라의 기부로 만들어진 유물 전시 방이다. 13년간 채워지고 있는 중이며 한광호 박사의 노력이 크다. 승효상 교수가 가끔 와서 강의하기도 한다.
영국 박물관의 관람을 마치니 한시가 넘었다. 우리 일행은 내셔널 갤러리 근처로 가서 식사를 하고 일행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 태양을 즐기는 런더너들과 함께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잔디에서 한가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본다. 모처럼의 이런날씨에는 야외 관광 일정이 잡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내가 조절할 수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셔널 갤러리
이곳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지만 사진 촬영은 엄격히 안 되며 작품 앞에서 손을 올리거나 작품 앞에서 물을 마셔서도 안 된다. 과거에 작품이 훼손된 사례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존 줄리어스 앵거스타인이 36점의 작품으로 1824년 전시를 시작하였는데 1991년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되었다. 이곳은 중세시대,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 인상주의 작품만 전시되고 있다. 즉, 1250년부터 1900년까지의 작품이 전시되며 2400점의 그림이 있다(아래의 그림들과 설명 자료는 여행 전 강의 들을 때 수집한 자료와 가이드분이 이야기 해준 해설,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들을 정리한 것이다).
사실과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네덜란드에서 방앗간을 하는 부모 사이에 태어나 14살에 그림을 시작하여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20세가 안 되어 개인 그림 사무실을 여는데 마침 네덜란드의 경기도 호황이어서 그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시장의 딸인 사스키아(Saskia)와 결혼하지만 두 차례의 유산을 하고 세 번째 태어난 아이 티투스(Titus)는 병약하여 평생 그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다. 그 와중에 아내마저 죽고 아이의 세 번째 보모인 핸드리키에Hendrickje)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은 않고 동거를 하는데 이 당시 동거는 불법이라 핸드리키에는 감옥에 간다. 돈을 써 석방되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고 그가 그린 집단 초상화는 인기를 받지 못하여 가난해졌다. 핸드리키에 마저 사망하고 아들 티투스도 장가를 보냈는데 사망한다. 그는 유태 마을로 들어가 63세에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죽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렘브란트와 정 반대의 길을 걷는다. 19세에 이탈리아로 유학 간 그는 6개 국어를 구사하여 교황청 외교관이 되고 찰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곧 부자가 된다. 24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 중 많은 그림은 제자의 그림에 마무리를 한 거라고 한다. 루벤스의 그림은 현대 일부 여성들이 가져야 하는 필수품이 샤넬 가방처럼, 당시 귀족에겐 그런 존재였다.
특히 그가 그린 한국인(The Korean)이라는 드로잉은 서양화가가 그린 최초의 한국인그림이란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주목해서 본 그의 작품은‘파리스의 심판’이다.
작품 해설에 앞서 먼저 파리스의 심판과 관련된 신화의 내용을 알아본다. 펠리온 산에서 특히 발이 아름다워 ‘은빛 발’이라 불리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테티스를 흠모하는걸 보고 ‘만약 테티스가 신의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를 능가하는 자가 될 것’이라 하여 제우스의 마음을 돌리고 신과 인간의 최초의 결혼식이 되었다. 모든 신들이 초대되었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나서 축하연 자리에 황금 사과 하나를 둔다. 이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이 있었는데, 헤라, 아테나, 비너스 이 세 여신은 서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우겨 신들에게 심판을 요청했지만, 보복이 두려운 신들은 다 거부하고 제우스가 심판을 맡게 되는데 그도 두려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긴다고 선언한다. 파리스가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는 트로이가 불에 타는 꿈을 꾸어 불길하여 파리스를 산속 양치기가 키우게 하여 성장했는데 그의 앞에 세 여신이 나타나, 헤라는 엄청난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뛰어난 지혜와 명예, 비너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물한다고 하자, 파리스는 비너스의 편을 든다.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유부녀 헤레나를 사랑하게 되어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하고 결국 트로이 전쟁으로 비극의 결말을 맞는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가로 터너를 들 수 있다. 산업 혁명의 시대에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고 많은 변화의 시기였는데 어느 날 신문을 보고 전함 테메레르 호의 퇴역을 알리는 기사를 본 터너는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 속 노을은 한 시대가 지고 있음을 말하며 저무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007시리즈의 최신작 ‘스카이폴’보면 나이 들어 퇴역을 앞둔 007이 이 그림을 보며 자신의 신세와 이 함정의 신세가 같음을 생각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직은 퇴역할 때가 아니라고 다짐을 하며 악당을 잡으러 나간다.
내셔널 갤러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고흐의 해바라기인데 지금은 네덜란드의 고흐 특별전에 불려가 지금 이 갤러리에는 없지만 그의 작품 ‘의자’ 등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고흐의 아버지는 죽은 고흐의 형 이름인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그대로 붙였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져 그의 정신 이상 행태는 시작된다. 고갱과의 합류가 확정되었을 때 기뻐서 해바라기 14점을 고갱의 방에 그렸는데그의 사인이 들어간 작품은 현재 천억에 육박한다고 한다.
미술이나 인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공학도인 내가 보는 시각과 전문가의 시각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고, 나의 미술품을 보는 눈은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된 좁은 상식을 나타낸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림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면서 많은 미술 학도들의 그림에 대한 분석과 시대 조류 등을 읽으니 나의 느낌은 그들에 비해 조족지혈이란 느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그들의 차원이 존경스럽고 놀라움을 느낀다.
많은 미술품을 보아 마음이 풍족한 하루가 되었지만 배는 고프다. 큰아들이 몇 번 가 봤던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차려진 음식은 맛있었지만, 조금 매워 기침을 하게 되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매워 기침을 하며 서로 보고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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