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0년대

영국여행 2013년 2부 브레이브하트 2(7월9일~16일)

매직랜즈 2020. 12. 19. 16:29

7월9일(화) 네스 호 공룡은 내가 잡는다.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951년 영국 최초의 상용 컴퓨터 ‘마크1’ 출시

오늘은 스카이 섬에서의 3박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스코틀랜드 서북쪽과 중앙지역 하일랜드를 본 후 괴물이 나오는 네스 호를 갈 예정이다. 이곳 스카이 섬에서 느낀 점을 표현한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겠지만 중급 여행자인 내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은 자연의 풍광보다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예쁘고,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는 자연이 빚어낸 다양한 형태의 바위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면 이곳 스카이 섬은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고 호흡하는 곳 중에서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 @그리스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 아래 : @노르웨이 북쪽 섬 로포텐 제도 

숙소의 탁자 위에는 아침 도시락이 4.5파운드라며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Healthy Option- Breakfast Bags – 4.5£
Consist of
Nutri-Gain Fruit Breakfast Bar, Highland Oatcakes,
two butter portion, marmalade portion, Fruit Juice
Available from Reception
도시락은 별로 먹고 싶지 않고 어제 간식까지 4회의 식사를 했기에 오늘은 늦은 아침을 10시반경 먹고 저녁은 다섯 시 경으로 식사를 두 번만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처음 들른 곳은 엘리언 도난 성(Eilean Donan Castle)근처로 호수의 물줄기가 급히 굽어지는 곳에 성을 만들어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한 곳이다. 성 안에는 자세한 역사물들이 있고 볼 것도 제법 있다지만 어제 던 베건 성에서 그 시대의 모습을 충분히 보았기에 입장은 생략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어제 온전히 잘 보존된 성을 봤으니 오늘은 네스 호 크루즈를 한 후 반파된 ‘어카트 성’을 볼 계획이다.

중간에 들른 어느 호텔에서 늦은 아침을 한 뒤 하일랜드의 중앙지역 분지인 곳으로 향한다. 이 중앙 지역은 다른 하일랜드와 달리 수목이 제법 울창하고 멀리에 눈이 덮힌 영국에서 가장 높은 벤 네이비스산(4406피트)이 보이며 이 분지 지역의 가운데에 2차대전시 전사한 장교들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네스 호까지 가는 길에서 좀 벗어나 우회해야 올 수 있는 지역이지만 우리는 이곳 전몰장병을 기리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가슴에 간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진1: 1935~1945년의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장교 추모 동상. 사진2: 영국에서 제일 높은 벤 네이비스 산. 사진3: 간이 추모 동산. 사진4: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민속악기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어린이. 

 

어제 숙소에 늦게 도착하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수면이 충분치 못하여 운전하시는 목사님의 상대를 해드리지 못하고 좀 졸았는데 목사님도 피곤하신지 운전을 힘들어 하신다. 내가 대신 못해드려 미안하기만 하다.

@네스 호 도착하여 찍은 기념사진  @다리를 움직이는 시간을 알리는 시계와 다리  ◀ 네스 호 안내 표지판    ▶ 괴물 네스의 사진 

네스 호를 유람할 수 있는 포트 아우구스투스에 한시 반경 도착하니 두시에 출발하는 쾌속 보트가 있어 얼른 표를 사서 대기한다(30파운드/인). 보트를 타기 전 상하 일체형 두꺼운 옷과 구명조끼를 나눠주어옷과 조끼의 부피만큼 긴장을 하고 승선하여 보니 보트에는 열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는데 열두 명이 탑승을 하여 나와 큰아들은 보트의 양 옆에 앉았다. 선장의 안내로 진행되는 이 투어는 한 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왠지 괴물 네스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쾌속선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호수 위를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상쾌함을 동시에 느낀다.

오늘 우리가 네스 호의 괴물을 만나지 못한 불행(?)은 성인 콜롬바(521~597)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네스 호의 괴물은 어카트 성 앞에 자주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콜롬바 성인이 돌 십자가를 들고 괴물을 향해 물러가라고 한 이후로 이 호수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나라 안동댐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곳 네스 호는 깊이가 200~260미터로 영국 호수 중 담수양이 가장 많으며 깊이가 깊고 물색이 검어 네스 같은 괴물이 산다는 전설이 생긴 것 같다. 그저 평범한 호수인데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그 이야기가 관광의 재미있는 요소로 등장하여 이곳 네스 호 크루즈가 인기가 높다. 호수의 물 자체는 맑고 투명한데 물위에서 보면 검은 색으로 보이는데 아마 물속의 광물질이 검은 색이어서 그런 것 같다.

물살을 가르며 상류로 올라가니 발전소가 보이고 인공으로 만든 섬도 보인다. 또한상류에 있는 반쯤 부서진 어카트 성(Urquhart Castle) 근처까지 보트는 다가가 이 성의역사와 부서진 사연을 듣는다.

 이곳 물은 늘 차가워 수영하기 어려운 곳인데, 성 근처에서 용감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수영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배가 지나갈 때 만드는 파도 위를 고무보트가 의도적으로 통과를 하는데 이때 보트는 청룡열차를 타듯 호수 위를 춤을 춰 좌석이 아닌 보트의 튜브위에 앉은 나는 짜릿한 두려움을 느낀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마침 요트들이 북해 쪽으로 가기 위해 ‘스핀 브릿지’가 옆으로 열리고 배들이 갑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상류의 갑문이 열리고 물이 들어와서 요트의 수위를 높여 나가는 갑문 개방 방식의 운하 통과 장면이 연출된다. 스카이 섬 쪽 대서양에서 출발한 요트들이 북쪽의 북해로 가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육지의 큰 호수들을 운하로 연결하여 내륙을 통과해 북해로 나갈 수 있다. 수위를 올리려고 급히 내려오는 물살에 견디기 위해 요트 위의 사람들이 요트를 고정하고 당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1: 스핀 다리가 열리며 통과하는 배. 사진2: 수위를 올리기 위해 상부 갑문을 열어 내려오는 물살과 버티는 요트. 사진3: 갑문을 여닫는 제어 박스와 조정하는 사람. 사진4: 유난히 더 더웠던 오늘 날씨에 두터운 민속의상을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남자. (사진 찍으려니 ‘통에 돈부터’라고 눈짓을 한다. 상술과 상술의 만남이다.) 

 

호수에서 본 어카트 성(Urquhart Castle)을 보기 위해 차를 돌려 상류지역으로 30분 정도 이동하니 성이 보인다. 반쯤 부서진 성인데도 이 성이 인기가 좋은 이유는 성과 자연의 조화가 아름다워 많은 영국 관광 책자에 이름이 올라간 곳이며 성의 탑 부분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관광객이 그곳까지 올라갈 수 있기에 인기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부서진 성당이나 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먼저 1400년대의 종교 개혁 시 가톨릭을 지지하던 세력들과 프랑스의 연합공격으로 파괴된 곳을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세인트 앤드류 성당이다. 그 다음이 자코바이트의 난으로 부서진 성들인데, 하노버 왕가가 왕위를 차지하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사후 그 후계자로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되었던 ‘스튜어트 왕가’의 부활을 노리며 하일랜드 지역에서 군사력을 잘 갖춘 성주들과 그 동조자들은 두 차례(1715,1745)반란을 일으키는데(우리 역사에서 보면 궁예나 견훤의 난으로 보면 이해가 쉽게 될 듯하다.) 이 ‘자코바이트 난(Jacobite Rebellion)’을 진압하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 함대의 연합으로 파괴된 대표적인 성이 오늘 보는 어카트 성과 내일 볼 던 로타 성이다.

그 외의 성들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침공하면서 파괴되었거나, 후손이 끊겨 자연스레 훼손된 경우이다(여행을 다니면서 부서진 성과 성당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개념이 잡히지 않아 여행 후 좀 더 자료 조사를 해보니 개념이 잡힌다).

중세의 성은 성주 및 일가를 위한 장소이기에 서민들은 귀족들에게 냉대를 받았으며, 프랑스 함대가 이 성을 폭격했을 때도 적극 가담하여 수비를 하지 않았고, 성은 주인을 잃고 복구되지 않고 버려졌지만 후대들이 잘 관리하고 보존하여 관광 수입을올리고 있다. 특히 이 성이 잘 알려진 것은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 로버트 번스가 그의 글 속에 과거의 이야기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 한다.

▲ 성 입구에서 가족사진  @성의 주 탑   ▼ 대포와 돌 탄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성인 7.9파운드) 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다섯시 반이 넘었다.
숙소는 이곳 인버네스 근처에 정했기에 근처에서 아주 저렴하고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숙소=34파운드/인).

@오늘의 간단한 저녁 식사

710() 산 넘고 바다 건너

 

역사 속 영국의 오늘

영국 최초의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는 1553710일 즉위하여 9일 만인

1553년 메리 1세에 의해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힘.

 

이곳 숙소는 별채를 빌렸는데, 우리만 사용하는 방 둘 거실과 식탁이 있다. 아침 식사도 식탁에 미리 차려져 있는 간편식이어서 커피와 차를 끓이고 빵을 구워서 어제 우리가 사온 과일을 같이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설거지와 짐 정리를 끝내고 별채를 나서니 주인 여사가 나와서 잘 가라고 인사한다. 나름 무난한 집이다.

 

 

숙소를 나와 10분 거리에 ‘Divich Fall’이라는 폭포가 숲속에 있다하여 가벼운 산책을 하는데 산림이 울창하여 맑은 아침 공기속의 피톤치드를 가득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폭포는 아니지만 숲속의 좋은 경치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인버네스 도심에는 한인 사회도 활성화 되어있으며 북해 인근 도시 중 크고 아름답고 특히 인버네스 성에서 교회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로맨스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하여 우리 부부도 그 길을 걸으며 데이트해 볼까 했는데 차를 주정차 할 수 없어 포기하고 근처의 돌고래 전망대로 간다. ‘Dolphin & seal visitor center’라는 이 전망대에는 망원경으로 바로 앞 바다의 돌고래가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챨리라고 이름 붙여진 돌고래와 그 친구 한 마리가 센터 앞 바다를 헤엄치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다, 요트가 다가오면 요트 주위를 맴돌기도 한다. 아내는 이곳에서 돌고래 반지를 몇 개 샀는데, 알고 보니 주위 온도에 따라 색깔이 세 가지로 변하는 반지였다고 더 사야했는데 하고 아쉬워한다.

 

다음 목적지인 보병 요새(FORT GEORGE)로 가는 길에 출입을 통제하는 골프장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스코티시 오픈이 진행되고 있다. 며칠 후 우리가 라운딩 할 세인트 앤드류 올드 코스의 예약 확정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인데 문득 그 생각이 난다.

이 보병학교는 찰스 황태자가 훈련을 받은 곳이기도 하며 1979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도 황태자가 토마호크 미사일 담당으로 참전하여 더 유명한 요새이다. 목사님은 연회비 10만 원정도의 헤리티지 카드를 가지고 계신데 이 요새를 포함한 영국 내 930개의 재단관리 성을 무료로 입장 할 수 있고 동반자는 10%의 할인과 기념품 구입비용도 10% 할인이 된다. 오디오 가이드가 입장료에 포함이 되어 영어 가이드 리시버를 받아 요새를 산책한다.

 

@ 사진 1:  가족이 있는 장교 숙소 .  사진 2:  독신 장교 숙소 .  사진 3:  북해를 향해 배치된 대포 .  사진 4:  기념품 가게의 정교한 상품들 .

이 요새에는 장교와 일반 병 막사(장교의 막사에는 부인도 같이 살았다고 마네킹으로 전시되어 있다.), 탄약고, 감옥 등이 있으며 위치가 북해의 전략적 요충지여서 외부에는 각종 대포들이 있다.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은 꽤 긴장을 하며 다닌 듯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로 잘 알려진 비극의 성 코더 성(CAWDOR Castle)을 외부에서 간단히 구경하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데 가격대비 음식 맛이 훌륭하다. 며칠 전 던 베건 성의 카페에서 먹은 간단 점심보다 가격은 반, 맛은 배인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관광지 내에선 물가가 비싼 것 같다.

 

@3마녀의 예언으로 국왕 던컨을 죽이고 왕이 된 맥베스. 왕권의 유지를 위해 수많은 피비린내를 일으키지만 결국은 자신도 살해되고 만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피비린내는 느끼지 못했는데 소설이 허구여서 일까?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 최대의 국립공원인 ‘Cairngorms National Park’의 산을 다섯 개쯤 넘어야 하는 브래마르이다. 가는 길에 Carr-Bridge라는 작은 마을에 들러 보았다. 이 마을의 돌다리가 매우 유명한데, 마을 이름도 이 돌다리 이름으로 했다. 18세기 초반 현지인들과 관광객이 불편을 느껴 171711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다리위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꽤 높은 약10미터의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인데 서로 경쟁이나 하듯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다.

 

산을 몇 개 넘어 어느 산 정상에 스키장이 보인다. 온도도 7도 정도 낮아 보이고 바람까지 불어 쌀쌀해진다. 조금 더 가니 사람 키 보다 높은 바위가 하나 서 있는데, 구멍을 뚫어 구멍을 통해 보는 세상이란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바위이다. 바위의 네면에는 뜻을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글이 새겨져 있다.

 

 

WARM YOUR SOUL BEFORE YOU GO

TAKE A MOMENT TO BEHOLD

AS STILL SKIES OR STORMS UNFOLD

IN SUN RAIN SLEET OR SNOW

 

오늘의 최종 목적이인 브래마르(Braemar)에는 다섯 시 반경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목사님이 추천한 스테이크 하우스로 향한다. 넉넉하게 생긴 여주인이 목사님을 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우리들도 환대를 한다. 전원이 지역의 특산물 안심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는데 정말 부드럽고 맛있다(식사비 125파운드/5). 며칠 전 질긴 소고기를 먹을 때 목사님이 이곳 고기의 맛을 호언장담했는데 모두들 만족한 표정이다. 내일이 둘째 아들 생일이어서 근처 가게에서 산 작은 케익에 식당에서 준비한 소리 나는 초 하나를 꼽아 식당 주인과 함께 둘째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시식을 하니 오늘 하루도 무척 행복하게 보낸 것 같다. 4년 전 스톡홀름의 한국인 민박집에서 맞이했던 성대했던 둘째의 생일잔치도 생각이 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노인들의 공놀이 게임을 잠시 관람한다. 흰 공을 포스트로 하여 두 팀의 사람들이 30미터쯤 후방에서 공을 굴려 흰 공에 가장 근접하게 공을 굴린 팀이 이기는 게임인데 공에 회전을 주어 마치 볼링공 굴리듯 공이 휘어져 흰 볼에 접근하는 게 흥미롭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경기에 참여한 한 노인이 룰을 나에게 설명해준다.

 

711() 자코바이트 난의 격전지!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533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파문을 당하다

 

벌써 여행 기간의 반이 지났다. 스코틀랜드의 일정도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애초 일정을 상의할 때 전적으로 목사님 추천 일정으로 잡았는데 장소 선정 기준은 지극히 스코틀랜드적인 곳을 집중으로 보는 것으로 하여 다른 관광객이 가지 않은 지역이라도 꼭 봐야 하는 곳을 위주로 잡았다고 한다. 오늘 가야할 곳은 작지만 전통이 있는 양조장 로열 라크나양조장과 엘리자베스 2세 현 여왕이 태어나 자란 발모랄 성’(BALMORAL) 그리고 자코바이트 난의 최대 격전지였던 던 노타 ’(DUNNOTTAR CASTLE)을 방문하고 몬트로세(MONTROSE)’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 하일랜드에서 봤던 장발소가 보여 가까이 다가가 찍었더니 경계하며 콧김을 뿜는다 .  어제 자기 동료를 먹었다고 노한 것 같다 .

우리가 머문 숙소는 인기가 좋은 집인지 방이 조기 예약 완료되어 우리 가족만 머물고 목사님은 건너편 할머니 민박집에 자리 잡았다. 방 안에 케익 세 조각을 랩으로 싸서 먹을 수 있게 두었고, 아침에는 식사도 푸짐하고 든든하게 제공해 주었다(아침 식사 체크 시트에 시리얼 대신 죽을 신청했는데, 양이 많아 스코티시아침까지 먹으니 배가 불뚝해진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길을 나서는데 날씨가 무척 쾌청하다.

 

로열라크나양조장은 11시부터 정식투어가 시작이지만 자주 오신 목사님이 부탁하여 우리는 열시 반부터 내부투어를 시작한다. 먼저 시청각 자료를 오분 정도 시청하는데 이 지역의 맑은 물과 보리만을 주 원료로 하여 싱글 몰트 위스키를 생산한다. 이곳에서 작년 여왕 재임 60주년을 맞아 한정판 위스키 20병을 생산했는데 한 병당 10만 파운드였다고 하며 그중 한 병은 이 양조장에 보관되어 있고 한 병은 헤롯백화점에 있단다. 8병만 만든 윈저 다이아몬드는 시가 3억인데 그중 한 병은 한국에 있다고 하니 누가 보관 중인지 궁금하다. 영국에는 300개의 양조장이 있으며 그중 많은 양조장들이 조니 워커사에 합병되었다. 이 양조장은 1달에 3,000병 정도 생산하는 소규모 양조장이지만 옛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며 이름 앞에 로열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위스키의 테스트 방법으로는 먼저 냄새를 맡아보며,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위스키의 향이 확 퍼지면서 그 위스키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12위의 위스키 소비국이고 위스키 시장은 점차 싱글 몰트의 방향으로 간단다. 제작 공정에 따라 몇 개의 방으로 이동하여 견학을 하는데 방마다 온도가 다르다.

 

1. MILL ROOM : 보리를 잘게 가루를 내는 공정이며 이 과정에서 예전에는 스모키한(향이 강한고 보관이 용이) 보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보리를 잘게 가루를 내는 과정에서 겨를 분리하고 보리 가루의 입자 크기를 균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TUN ROOM : 이스트와 보리로 만든 엿기름을 섞어 저어 주는데 보리 가루 입자의 크기, 젓는 속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5일이 지나면 9도의 막걸리가 된다.

 

3. STILL HOUSE : 2단계의 과정이 있으며 1단계는 9도의 막걸리를 23도로 만드는 단계, 2단계는 68%의 원액으로 만드는 단계이다. 이 과정은 용기 속의 액체가 끓어오르는 정도를 체크하는 유리를 보면서 진행한다.

 

4. RECEIVE ROOM : 과거에는 68%의 위스키를 생산했으나 요즈음은 63.5%로 생산하며, 오크통에서 2%는 사라지는데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며(증발이 주 원인인 것 같음), 이 같은 현상을 엔젤 세어라고 한단다.

 

5. 교육용 작은 창고 : 이 창고안도 다른 내부 시설처럼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우리끼리만 있으니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다른 양조장과 같이 여기도 오크통은 한번 이상 사용한 통을 사용하는데 미국에서는 새 통을 사용하여 보관한다. 이 창고 안에 있는 27년산 통과 1973년산 통의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는데 오래된 것이 스모키한 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오크통을 막아서 팽창하여 액의 누출을 막는 큰 코르크를 보고 아내가 신기해하자 안내자가 두 개를 선물로 준다.

시음실 앞에 우리가 앉아 있는데 중국에서 온 기자단 일행들이 다른 진행자의 안내를 받으며 우루루 몰려간다. 나처럼 메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보고 20명의 기자보다 내가 더 낫다고 칭찬을 해준다. 이곳 싱글 몰트 위스키는 방법에 따라 몇가지 향이 나는데 컵을 가슴 근처에서 흔들어 주면 사과향이 나며 손가락에 적셔 손등에 바르면 건초 냄새, 그리고 이곳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바닐라 향이 난다고 한다. 나는 향을 맡으며 시음은 못하고 있는데 아내는 홀짝 홀짝잘 마신다. 기념품 가게에서 위스키에 대한 책자와 마시기 무난한 싱글 몰트 위스키 한 병을 사서 다음 목적지인 발모랄 성으로 간다.

 

작년 2012년은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으로 이 성에서 축하 행사가 열렸는데로열 라크나양조장 사람들도 초청되었다고 한다. 성 입구에는 안쪽의 주성 근처까지 이동하는 코끼리열차를 운행하고 있고 내부 시설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도 받을 수 있다. 카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뒤(숙소에서 가져온 케익과 과일) 성을 둘러본다.

 

넓은 잔디밭이 잘 관리되어 있으며 각각 다른 방향에서 성을 촬영해 보니 느낌도 조금씩 틀린다. 정원은 의외로 소박하고 오히려 성의 규모로 볼 때 좀 초라해 보였는데 여왕의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는 증거란다.

 

성 내부의 BALL ROOM만 공개를 하여 들어가니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특이한 것은 여왕이 입었던 여섯 벌의 드레스가 전시된 것인데 19582월에 입은 은빛 드레스는 허리 라인이 아주 잘 살아있는데 201011월의 드레스는 거의 일자 형태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머니의 침실, 식당, 옷장들에 대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성을 나와 연어가 가을에 많이 거슬러 올라온다는 DEE강을 따라 가벼운 산책도 하고 숲속의 맑은 공기를 호흡하다 다시 차를 달려 해변 도시 스톤헤븐(Stonhaven)’에 잠시 들러 해변의 시원한 바람과 경치를 느껴본다. 관광 자원이 제법 많이 있는 지역이지만 우리가 방문할 주 목적지는 아니어서 그냥 잠시 쉬었다 간다.

 

자코바이트 난의 격전지였던 ‘DUNNOTTAR CASTLE’로 향한다(입장료는 인당 6파운드이며, 개인의 성이라 헤리티지 카드 할인은 안 된다). 이곳에서 최후까지 6개월간 왕관과 칼을 지키고자 항전한 용사들의 희생은 역사에서 별 의미도 없어지고 왕관과 칼은 자연스레 에든버러의 성으로 옮겨져 보관중이다.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이 요새 같은 성은 함락이 무척 힘들었을 거라는 짐작이 가며 부서진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성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오늘의 종착역인 몬트로세(MONTROSE)’로 향한다. B&B에 여섯시 경 도착하니 주인 할머니가 친절히 맞이해주며 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는데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느낌이 든다. 아직 저녁 식사 전이라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하니 어제 온 손님들에게도 추천한 호

텔의 식당을 소개한다며 만족할거란다.

 

짐을 정리하고 식당에 가니 할머니가 예약을 해 주셨는지 지배인은 바로 예약석으로 안내를 해준다. 역시 추천한 것처럼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으며 가격도 착하다.

 

내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앤드류골프장의 올드 코스에서 라운딩을 해야 하는데 3개월 전에 예약 신청을 했는데도 예약이 되지 못했다. 대신 이곳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고 세인트 앤드류골프장은 산책을 해볼 예정으로 한다. 아쉽다.

 

712() 가장 오래된 골프장, 세인트 앤드류 올드 코스!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771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211개월간의 1차 탐험을 마치고 귀환(남극 대륙을 발

견하는 임무가 있었지만 실패하고 뉴질랜드를 발견함)

 

오늘 아침 B&B의 식당에서 보니 손님이 많다. 방도 여러 개이고 전문적으로 민박을 하는 집이다. 아침식사로 나온 호밀죽은 걸쭉하여 내 입맛에는 좋았지만, 스코티쉬 조찬은 그동안 많이 먹어서인지 질리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니 벌써 방 청소하는 아가씨들이 방을 옮겨 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다. 주인 할머니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5분 거리의 골프장 로열 몬트로세 골프장으로 향한다.

 

@ 주인 할머니가 사진 찍으러 나오기 전 ,  정원이 잘 가꿔진 이집 마당에서 장기 투숙객인 두 노인이 나에게 농담을 건네며 쉬고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앤드류 올드 코스72, 3일 그리고 12일을 대기 예약으로 석 달 전에 올렸는데 부킹이 안 되어 오늘 이곳에서 라운딩하고 올드 코스는 견학할 예정이다. 이곳 여러 코스중 제일 어려운 메달 코스에 도전한다.

 

그렌 이글 골프장보다는 많이 쉽게 라운딩 할 수 있는데, 러프지역의 풀이 많이 누워있어 페어웨이를 벗어난 공을 쉽게 찾을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공을 칠 수도 있을 정도이다. 18홀 동안 버디도 하나하고 공 하나로 경기하다 마지막 홀에서 한 개를 잃어 버렸다.

이곳도 영국 오픈이 자주 열리는 곳인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아침 9시에 왔는데 913분에 라운딩을 할 수 있었고 라운딩 비용도 인당 50파운드의 저렴한 편이다. 경기를 마치니 오후 한시가 되어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햄버거와 오믈렛을 시켜 먹는데 식당의 분위기가 마치 시골 식당처럼 아주 편안하다.세인트 앤드류 시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이 이 도시로 몰려와 있다. 108홀의 이 골프장 주변에는 모래가 고운 백사장이 있어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하는 사람도 많고, 한국의 골프장과는 달리 라운딩을 하지 않아도 평상시 그린과 페어웨이에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 있다.

 

@ 사진 1:  올드 코스 스타터 사진 2:  퍼팅 연습장 .  사진 3: 가장 오래된 쥬블리 코스 앞 ,  사진 4: 1 번 홀 페어웨이 .
@사진1: 세인트 앤드류 골프장 클럽 하우스. 사진2: 코스 진행실. 사진3: 영국 골프 박물관. 사진4: 유명 골프 선수들의 그립 모형물 @장래 멋진 프로 여자 골퍼의 탄생!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올드 코스 주위에 몰려있다.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도 하고 주변의 캐디 하우스와 여러 시설을 보고 우리는 올드 코스 1번 홀에서 증명사진을 찍는다.

 

1번 홀은 18번 홀과 페어웨이를 같이 사용하며 러프도 풀이 낮아 라운딩 시 난이도가 다소 낮은 코스이다. 1번 홀에서 경기자들의 티샷이 끝나자 우리는 페어웨이 중앙을 가로질러서 18홀 쪽에 위치한 돌다리 근처로 가 18번 홀 경기자들의 티샷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유명한 돌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니 이 골프장에 왔음을 실감한다. 18번 홀의 경기자들도 이 돌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잭니클라우스는 이곳에서 은퇴경기를 할 때 돌다리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8번 홀 경기자들을 따라 페어웨이 위를 걸어가서 그들이 막 끝난 18번 홀의 그린을 밟아 본다. 18번 홀의 그린은 큰 그린이고 거리도 적당하여 쉽게 파 온이 가능해 보인다.

라운딩은 못했지만 즐거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고 오늘 라운딩을 못했으므로 다음에 다시 올 핑계가 생겼다.

 

차를 몰아 근처의 세인트 앤드류 대학교로 간다. 이 대학교는 왕세손 윌리엄이 다닌 학교이며 그의 부인인 평민 출신 크리스가 같이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윌리엄이 이 학교에 진학한다는 소문이 돌자 그

해 여학생들의 입학 신청이 평소의 25배가 넘었단다. 학교 주변의 카페에는 윌리엄과 케이트가 만난 곳

(WHERE KATE MET WILLIS)이라고 선전한 곳도 제법 있다.

 

오늘이 졸업 600주년 기념식이 있는 날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고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 할머니들이 눈이 띈다.

 

이 도시의 마지막 방문 장소는 세인트 앤드류 성당이다. 개신교에 의해 장악된 이 성당은 스코틀랜드 가톨릭 측의 요청으로 파병된 프랑스함대의 폭격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개혁의 선구자 존 녹스목사는 이곳에서 함대의 포로가 되어 19개월간 잡혀있다 석방되었으며 제네바에서 J. 칼뱅을 만나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에든버러에 돌아와 개혁파 교회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속에서 있었던 역사의 진실은 계속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세인트 앤드류 시의 이름은 예수님의 제자 중 성인 앤드류의 시신이 떠내려 와 이곳 도시로 흘러 들어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영국 내 대표적인 교육의 도시이며 스코틀랜드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도시이다. 골프의 발상지로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도시에 찾아왔는데 겸손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우리가 스코틀랜드 여행을 시작한 처음 지점인 에든버러의 목사님 댁이다. 평소에는 도로에서 뒤에 오는 차량들에게 양보를 많이 하며 안전하게서행 운행을 하시던 목사님도 가족이 보고 싶은지 고속도로에서 평소와 다르게 속도를 내고 달리고 있어 마음이 들떠 보인다. 여섯시 사십분 경 도착하니 사모님과 예쁜 딸 한나가 우리를 반겨준다.

 

목사님이 미리 말씀해 두셨는지 식탁에는 부대찌게, 제육볶음, 계란말이, 깻잎, 김치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한상 차려져 있다. 얼마 만에 먹는 한식인지 모르겠다. 감동의 맛을 느끼며 식사를 하니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스코틀랜드 여행 중 비교적 많이 맛집에서 식사를 하여 한식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식을 먹으니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는 한식이 최고야!

 

713() 역사와 낭만의 도시 에든버러!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837년 빅토리아 여왕 버킹엄에서 집무 시작

 

아침에 아들들과 아내는 토스트와 양식으로, 나는 밥을 먹고 오늘의 행선지 에든버러 시내로 향한다. 아침 9시가 조금 지났는데 벌써 더워지기 시작한다. 이곳 대부분의 집들은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리 덥지 않다고 하는데 오늘은 목사님이 에든버러에 거주하신 7년여 동안 가장 더운 날인 것 같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우리의 날씨와 다르게 오전 9~11시 사이가 가장 더우며 오후에는 바람이 불고 다소 시원해지기 시작한다.

 

처음 찾아간 곳은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로슬린 채플이다. 영화에서는 채플 내 지성소에서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 것처럼 되어 있어 실제와는 다르다. 채플측은 피해가 커서 책의 출판 가처분 신청을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여 법원에서 기각 되었다. 9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10분 전에 도착하여 보니 벌써 관광버스가 관광객을 내리고 있다. 10시에 영어 가이드투어를 실시하지만 우리는 목사님과 채플 내 여러 곳을 다니며 먼저 설명을 듣는다.

 

 

 

이 지역은 싱클레어 가문의 땅이었고 이 성당은 그 가문의 예배당이자 납골당이다. 중세 유럽의 잘나가는 귀족 가문들은 다들 영지에 자기네 성당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 세례를 받고 성인식하고 결혼식하고 죽으면 묻히고 그랬다. 로슬린 채플에는 싱클레어 가문의 족보까지 전시되어 있다.

중세 교회의 타락과 개혁에 대해 목사님에게 설명을 듣는다. 특히 성소와 지성소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중세 르네상스 이전에 교회가 타락하여 면죄부를 팔고 성당 내의 지성소에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이 묻히고 하여 종교 개혁가 존 녹스 목사는 ‘1. 행위로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2. 말씀(성경)으로되돌아 가야한다 3. 우리의 소원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다라고 강조하며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우리는 목사님에게 설명을 잘 들어 영어 가이드투어는 조금만 듣다가 다음 목적지인 칼튼 힐로 향한다.

 

칼튼 힐로 가는 도중 아서왕의 의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내려 사진 한 장 찍는다. 올라가 보고 싶지만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에든버러를 둘러싼 3개의 언덕 칼튼 힐, 블레이드 힐, 아서 시트 힐 중 두 군데는 올라갔으니 만족한다.

 

칼튼 힐은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는 시내의 경치 좋은 동산 정도로 생각한 나는 언덕에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가 서려 있음에 놀랐고 에든버러의 사방이 다 보이는 멋진 경치에 또 놀란다. 저 멀리 에든버러 구시가의 여러 명소가 보인다. 칼튼 힐 바로 아래에는 정부 청사가 있으며 에든버러 성 아래의 하얗게 보이는 집은 건축가 람세이가 지은 집으로 당초 성의 하인들을 위한 집이었는데 지금은 전망이 좋아 방 두 칸짜리 월세 600만 원 정도란다.

 

그 옆에 까만 건물이 에든버러 신학대학인데, 1910년 이곳에서 열린 13명이 참석한 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한 윤치호(윤보선 전 국가수반의 작은 아버지이며 소설 에서 숭례문 담을 뛰어 넘어 다녔다는 분이다.)5분간의 연설로 대한민국을 소개하는데 조선은 대단한 나라(선교사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그들의 인식을 공유할 기본 마음 자세가 되어있는 국민들)이며 조선인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선교사 보다 더 큰 사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만약 선교사를 보낼 의향이 있다면 최고의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한다고 연설하셨다고 한다. 참 훌륭하신 분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이곳 에든버러에서 수학했으며 고고학을 전공하셨다.

 

그 아래 시계탑이 있는 건물은 발모랄 호텔이며, 언덕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보니 ‘leith이 보인다. 이곳은 과거 해적들의 소굴이다. 해적들은 상대편 배를 포획하여 보물을 빼앗기 위해 대포를 설치하지 않고 상대 배를 올라가서 나포하고 그 배들 중 가장 좋은 배를 이곳에 가져와 불태우며 축제를 벌였다.

 

◀  스코틀랜드 국민 작가 로버트 번스 (1759~96)  기념탑 .  탑 주변에는 평소 그가 좋아했던 꽃들이 심어져 있다 .  ▶  트라팔가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넬슨 기념탑을 배경으로 .

이 언덕에 우뚝 솟은 탑은 넬슨 기념탑인데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의 솟아 있는 넬슨 동상보다 더 규모가 커고 멋져 보인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이듬해에 이곳에 넬슨이 탔던 빅토리호의 형상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잉글랜드 인들이 런던에 다시 동상을 세웠다. 관광 책자에 보면, 에든버러의 스콧 기념관의 높이가 트라팔가르 광장의 넬슨 동상보다 5미터 높다고 나와 있는데, 여기 칼튼 힐의 넬슨 기념탑은 언덕 위에 있어 훨씬 더 높다.

 

칼튼 힐이라는 이 언덕은 1727년 국가가 사서 관리하며, 스코틀랜드인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넬슨 기념관 바로 옆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미완성 건축물이 있는데, ‘내셔널 모뉴먼트라고 하는 이 미완성 건축물에 젊은이들은 힘들게 올라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칼튼 힐을 내려와 우리는 내셔널 갤러리로 간다. 여기는 런던과 달리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작품 사진촬영이 허용된다. 빠른 걸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감상해보는데, 중세 시대의 종교적인 그림은 도상학을 조금 안다고 이제 이해가 좀 되어 가고 있고 그동안 나름 공부를 하여 그림을 보는 눈이 좀 높아졌지만 역시 한계가 있기에 사진기에 담아 나중에 좀 자세히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명화들 중 나에게 나를 찍어봐~’ 하며 손짓하는 명화를 사진으로 담아본다.

 

 

@El Greco(1541~1614)의 작품 ‘1590년의 우화’ / 주로 종교적 그림을 많이 그린 엘 그레코가 다른 주제를 다룬 작품 중 뛰어난 작품이 이 ‘우화’이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설 이 있기도 하는데 그림 옆에 써진 내용은 이렇다. ‘소년이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은 감각적 열 정이 일어나는 것이며 원숭이는 부덕의 상징이고, 옆의 넋 나간 표정의 남자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우리의 어리석고 원초적 본능으로 욕망이 표출 된다’ 나의 느낌: 소년은 호기심으 로 반쯤 넋 나간 상태이고(한쪽 눈은 감고 있다), 욕망의 환상에 대한 경험이 있는 어른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했으며, 원숭이는 소년의 행동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즉, ‘인간의 본 능적 열정은 잘 관리되지 않으면 위험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Martinus Rørbye(1803~1848) 의  ‘ 로마 캄파니아의 양치기 소년들 .’ Rørbye 는 덴마크의 위대한 화가의 한명으로 여행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  이 그림은 로마와 알바노 사이에 있는 캄파니아 지방의 어느 겨울 아침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그의 스승에게 쓴  1835 년  3 월  31 일자 편지에 나타나 있다 .  소년들은 추울 때 이렇게 모닥불을 피워 손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

 

오귀스트 로뎅  (Auguste Rodin 1840~1917) 의 작품  ‘ 키스 .’ ‘ 지옥의 문 ’ 에 포함된  ‘ 파울로와 프란체스카 ’ 의 준비 과정 중에 탄생한  ‘ 키스 ’ 는 로댕의 대리석으로 만든  ‘ 키스 ’  작품 세 가지 중의 하나이다 .( 하나는 파리 로뎅 박물관에 ,  다른 하나는 코펜하겐에서 보관 )  로댕은  19 세기의 타고난 재능의 프랑스 조각가로 그 이전의 작가들은 비너스나 큐피트를 동원하여 사랑을 표현했지만 ,  그는 이렇게 인간의 육체를 사랑의 직접적인 표현 매체로 적용하여 세속적이고 일상화된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 .

로뎅의 작품 중 우리가 가장 잘 알고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의 2층 조각 전시실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 속에 있는데,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을 묘사한 작품이다. 로댕은 지옥의 문을 제작하는 도중 만난 지성과 미모의 여성 카미유 클로텔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데 카미유 클로텔의 조각 능력은 로댕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고 한다. 지옥의 문 바로 옆에는 울며 매달리는 카미유 클로텔과 그 앞에서 마귀처럼 묘사된 아내에게 끌려가는 로댕의 조각도 있다.

이곳 갤러리의 식사도 깔끔한 편이라 하여 점심을 간단히 여기에서 해결하고 에든버러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공원으로 간다. 공원 입구에는 꽃시계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공원 내 천사 상이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에든버러 성은 천사 상과의 멋진 조화를 보이며 한 폭의 그림 같은데, 이 천사 상이 있던 자리에는 과거에 저수지가 있었고 이 저수지에는 마녀 사냥으로 체포된 이들을 사슬로 묶어 던졌다고 한다(사슬을 풀고 나오면 마녀가 아닌 걸로 했다지만 살아나온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메워 이렇게 천사 상이 세워져그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브레이브 하트영화에서 월리스 역을 맡았던 멜 깁슨이 분장했던 모습을 재연한 거리 행위 예술가가 보인다. 통에 1파운드를 넣어주고 같이 사진을 찍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이라 하니 바로 강남 스타일춤 흉내를 내며 너스레를 떤다. 성으로 올라가는 아내의 미모에 반한 멜 깁슨이 저녁 9시에 봐!’ 하여 ?’ 하고 물으니 바로 꼬리를 내린다.

 

72일 갑작스런 배 아픔으로 성의 일부분만 보았기에 오늘 더 상세히 보기 위해 비싼 입장료를 다시 지불하고 성의 주요 장소들을 탐방해 나간다. 규모는 작지만 성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의 하나인 에든버러 채플의 창에는 세 성인의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세인트 콜롬바, 세인트 앤드류, 세인트 자일스(품에 뛰어든 사슴을 구하다 손등에 화살이 박힌 모습)’이다. 채플 외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채플에서 결혼

식을 올렸는지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우아하게 걸어 나와 잔디에서 포즈를 잡고 악사는 풍악을 울린다. 순식간에 부근에 있던 관광객들이 몰려 장사진을 친다. 노르웨이의 트론해임에서도 결혼식을 보았는데 오늘도 운이 좋은 것 같다.

 

 

꽈드로 정원 앞에 서니 세 건물이 보인다. 왕실 보물 창고인 로열 팰리스’, 크롬웰에게 쫓긴 왕당파의 마지막 집결지 그레이트 홀’,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때까지의 전사자의 혼을 기리는 현충원이 있다.

 

왕실 보물 창고는 두꺼운 금고문과 창살문을 통과하는 3중 보안 장치가 있으며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 있다. 모나리자의 그림처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보며 떠날 줄 모른다. 천연 진주가 120개 박힌 왕관과, , 셉트, 칼집, 그리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운명의 돌이 한 케이스에 있고, 벽 쪽의 다른 케이스에는 화려한 진주 목걸이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왕관과 진주 목걸이에 빠져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돌의 존재가 이곳에 있음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무슨 돌이기에 이곳에 있는지 의아해 하며 지나기도 한다.

 

운명의 돌에 관한 역사는 구약 성경의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시절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의 임종 때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사게 되어 도망 생활을 한다. 광야에서 한 돌을 베고 잠을 자는데, 천사와 하느님을 만나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이삭은 가진 전 재산을 예물로 드리며 예배를 하였다. ‘베델이라는 곳에 있던 이 돌은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서기 500년경 아일랜드로 옮겨지고 846년 달리아다 왕국의 새로운 수도인 스코틀랜드의 퍼스에 옮겨져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행사에서 새로운 왕이 이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에서 무릎을 꿇고 왕관을 받았는데, ‘스콘의 돌(Stone of Scone)’이라 부르기도한다. 1296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빼앗아 가서 런던 웨스트 민스트 사원에서 대관식 의자에 끼워 넣고 잉글랜드 왕의 대관식에 사용하였다.

 

1950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이 돌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하여 몇 달 후 범인이 밝혀지고 돌은 웨스트 민스트 사원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이 사건은 과거 이 돌을 약탈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분리 독립 운동을 촉진하는 불씨가 된다. 토니 블레어 정권은 약탈 700년 만인 1996년에 이 돌을 스코틀랜드에 반환하여 에든버러 성 안에 다른 보물들과 함께 보관 중이다.

 

현충원의 성소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책자가 있는데 여성들의 이름이 있는 책자도 보인다. 지성소 내부에는 큰 글씨로 사면에 새겨진 글귀가 보이는데 위에 한 구절, 아래에 한 구절의 글귀가 있다.

 

성안에는 이 외에도 전쟁에 대한 전시실, 전쟁 포로들의 생활 공간, 외부의 침략에 대비한 우물, 제임스6세와 메리 여왕에 대한 자료와 사진, 중세의 복장에 대한 전시 공간 등이 있었다.

 

OTHERS ALSO THERE ARE WHO PERISHED UNKNOWN

THEIR SACRIFICE IS NOT FORGOTTEN AND THEIR

NAMES THOUGH LOST TO US WRITTEN IN THE BOOKS

OF GOD. 부족한 실력으로 번역하자면 (성소의) ‘책자에 기록되

지 않은 이름 없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책자에는 기록되어 있을 것

이다또 하나의 구절은 THE SOUL OF THEIR RIGHTEOUS

ARE IN THE HAND OF GOD. THERE SHALL NO EVIL

HAPPEN TO THEM. THEY ARE IN PEACE. 그들은 하느님의

품안에서 평화롭게 있다.

사진 촬영이 안 되기에 좋은 글귀인 것 같아 노트에 적어 보았다.

 

로열 마일의 길에는 많은 크로스(Close-좁은 골목길)가 있다. 우리는 그 크로스 중 대표적인 곳인 작가 박물관 근처의 바닥에 명언이 새겨진 레이디 스테어스 크로스(Lady Stair’s close)에 갔는데, 길 바닥에는 스코틀랜드 저명 작가들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명언 중 2개만 소개하면,

. Go back far enough and all humankind are cousins (거슬러 오르면 모두가 사촌이라는 이 말은 요즘 SNS의 발달로 친구 5단계만 건너면 미국 대통령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

- Naomi Mitchison(1897-1999, 백년 이상을 살았던 분이군!)

 

. And yet, and yet, this new road will someday be the old road, too(이 새 길도 언젠가는 오래된 길이 된다는 이 말은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는 듯하다.) Neil Munro(1863~1930)

@부자였고 학식이 풍부하였기에 사람들은 그의 발가락을 만지며 ‘나도 그렇게 되길’ 하며 사진을 찍어 발가락이 반질반질한다. 파리의 성심 성당 안에 있는 성인의 발가락은 너무 만져 아예 엄지발가락이 반쯤 사라져 버렸다.

유물론을 주장했던 철학자 흄(David Hume)의 동상이 보인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며 이성을 중시한 철학자라면 흄은 경험을 중요시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지각곧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칸트에게 영향을 주었다.

로열 마일 거리는 많은 관광객들로 항시 붐비는 거리이기에 많은 행위 예술가들이 있다. 2일에 본 얼굴 없는 사람과, 의자 없이 앉아 있는 사람, 피에로 분장을 하고 통에 돈을 넣어주면 구성지게 노래 부르는 여인. 오늘 하루 바쁜 일정의 우리 발길을 못돌리게 한다.

 

에든버러 시 의회 앞에는 존 녹스 목사의 무덤이 길 아래에 있다. 그 분은 유언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마라고 했는데 후세의 사람들은 이렇게 표시를 해 두었다.

세인트 자일스 성당의 현판에는 성인 자일스가 사슴을 품에 안고 손등에 화살을 맞은 조각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한국 전쟁의 기록이 책자로 전시되어 있다. 내부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너무 훌륭하여 오르간의 뒤로 돌아가 보니 한 음마다 건반들의 움직임에 맞춰 하모니를 이루며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다.

오늘은 갈 길이 바쁜 하루이다. 신도시 거리를 지나 여왕의 선박 로열 요트 브리타니아를 보기 위해 항구로 달린다. 오후 4시 반에 입장이 종료되기에 바쁜 우리는 지름길로 가서 간신히 시간 맞춰 입장 할 수 있었다(가족 입장료 35파운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무척 반가웠고 이 배의 주요 시설에 대해 29개의 주요 장소를 설명하는 오디오는 무척 상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요령이 적힌 안내판. 조작이 간단하다. ▶ 여왕이 앉았을 자리에 앉아 가이드를 듣고 있는 아내. @다이닝 룸과 여왕의 거실
▶ 해안가 산책 보트

1. 선장의 선교 : 선장은 해군사령관이다. 그 다음은 해군중령.

3. 기 갑판

4. 선장의 주방, 침실, 욕실

6. 롤스로이스가 전시된 차고 : 차가 없을 때는 맥주 저장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7. 베란다 데크 : 갑판 위의 넓은 부분. 이동식 풀이 설치되기도 한다.

 

8. 선 라운지: 여왕이 매우 아끼던 공간, 아침

식사를 자주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

9. 여왕침실: 무척 검소하게 꾸며졌다.

10. 에든버러 공(남편) 침실

11. 왕가 침실: 배의 유일한 더블베드가 있는방. 찰스와 다이애나의 신혼여행 시 이 방을 사용.

12. 대기실: 해상 신사 클럽.

13. 전교실: 아침과 점심은 자유롭게 먹지만, 저녁은 격식과 복장을 엄격히 갖춰 먹음.

14. 소장품실

15. 왕실, 장교, 사병 음식 준비실

16. 여왕과 귀빈 다이닝 룸

17. 여왕의 거실

19. 남편의 거실

20. 응접실

21. 하사관과 병장실

22. 파견군인 병영, 선내 매점

25. 병원, 수술실

26. 세탁실

27. 해안가 산책용 소형 보트

28. 기관실

치키치키 뱅뱅이라는 발전기 (1953~1997,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용 가능한 발전기)빠른 걸음과 여유 있는 마음으로 즐긴 요트투어는 주요 시설만 보는데 대략 한 시간걸렸으며,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봤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바쁜 하루 일정에 아직 남아 있는 코스가 있어 발길을 돌려 코난 도일이 살았던 집과 셜록 홈즈 동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코난 도일이 런던에서 활동한 걸로 알고 있으나 실제는 이곳 에든버러에서 활동하였고, 그 당시 귀족들의 만연한 서민 무시(성 내의 귀족의 살인도 거리의 백성에게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많았다.)행동에 반감을 가졌던 백성들은 셜록 홈즈를 읽고 대리만족을 느꼈단다. 도일의 집은 도시개발로 흔적이 없어졌고 그의 집이 있었다는 동판만 어느 벽에 있고, 홈즈의 동상은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장소에 홀로 서있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에든버러 도착 첫 날부터 목사님이 적극 추천하신 돼지고기 스테이크 집이다. 저녁 여섯시 반에 미리 예약을 해 두었기에 오늘 하루 일정을 바쁘게 보냈다. 역시 맛집이라 들어가니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다 차있고 종업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추천하신 돼지 앞다리 스테이크 4개와 소 등심 스테이크 하나를 시켜 먹었는데, 목사님은 돼지 스테이크 먹는 법을 설명해 주신다. 접시에 담긴 반숙 계란, 오이, 별도로 시킨 파인애플 조각들을 고기에 올려 먹으면 제각각 맛이 달라

보인다고 하여 그렇게 해봤더니 역시 다양한 맛을 느끼게 된다. 스코틀랜드 와서 먹은 식사 중 최고의 식사 탑 3에 든다고 하겠다.

 

에든버러만 봐도 최소 며칠은 봐야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약식으로 다니고 말았다. 라운딩 못한 세인트 앤드류 올드 코스와 함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에 온다면 로열마일 거리를 좀 더 여유롭게 걷고,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 에든버러 시내의 각 크로스들, 로열마일 아래 동네들을 좀 더 자세히 다녔으면 좋겠다.

 

714(),영욕의 세월을 간직한 글래스고, 턴베리 골프장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953년 영국, 미국, 프랑스 외상 회의에서 한국 휴전 후 중국 재침 시 공동제재 합의

 

목사님의 집에서 이틀 원기보양한 우리는 오늘부터 12일의 장도의 길을 나선다. 사양길로 접어든 공업화의 도시 글래스고를 방문한 뒤 오후에 골프를 하고 그 다음 날은 낚시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장거리 원정길이다.

 

가난한 발명가 제임스 와트와 부자 은행가 볼튼의 만남은 산업 혁명의 불길을 당겼고 글래스고는 산업혁명으로 가장 눈부신 발전을 해온 도시이다. 선박 분야에서 이들의 장점인 볼트 조임 방식을 탈피한 우리나라의 용접 건조 방식에 밀리기 시작하여 여러 분야에서 산업의 주도권을 뺏기고, 대부분의 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어 도시는 황폐해져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지금은 사이언스 시티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고 최근 사이언스 박물관이 문을 열어 과학의 원초 기술을 키우는 등의 재기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도시이다. 한때 스코틀랜드 전 인구의50%250만의 인구가 전성기에 집결된 곳이지만 지금은 70만 정도로 줄어 심각한 사회 문제를 겪는 중이다.

 

영국 내 1위의 고딕방식 건축물이 웨스트 민스트 사원이라면 이곳 대성당은 영국 내 2위 규모의 큰 대성당이 있다. 성인 뭉고가 세운 이 성당은 종교 개혁 이후에살아남은 스코틀랜드 유일의 성당이다.

 

▲  이곳 출신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톤의동상과 글래스고 대성당 .  ▲  가로등에 설치된 글래스고 대성당을 세운 성인 몽고의 도상학 상 물고기 ( 약혼반지를 물에 빠트리고 울고 있는 사람을 보고 성인 몽고가 기도를 하니 물고기가 반지를 가지고 나옴 )

 

@  그래스고우 성당 외부와 내부

 

글래스고 대학교도 영국 내에서 꽤 유명한 대학으로 옥스퍼드, 캠브리지, 세인트 앤드류 대학에 이어 영국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대학으로 지금은 4만 명의 학생 중 1만 명이 중국인일 정도로 중국의 해외 진출은 활발하다. 크고 웅장한 이 대학교의 주 탑은 보는 나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웅장하고 멋있는 전형적인 고딕 방식 건축물인데 사진으로 담아보니그 웅장함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 캘빈 그로브 미술 & 박물관의 전체 모습과 건물 전면에 위치한 성인 몽고 동상 ( 글래스고에서 성인 몽고의 동상을 찾으려면 여기로 오면 된다 .)

성인 뭉고의 동상이 전면에 있는 캘빈 그로브 미술관과 박물관은 이 도시 또 하나의 자랑 거리이다. 내부에 다양한 그림이 걸려진 전시실에는 훌륭한 그림이 많이 전시되고 있어서 다 자세히 보고 싶지만 갈 길이 급한 우리는 한 시간 만에 주파를 하고, 찍은 사진을 나중에 감상하는 것으로 합리화한다.

 

@ 에 드워드 베어드 ( E d w a r dBaird) 의  ‘ 미확인 항공기 , 1942’ 라는 이 작품은 전쟁의 공습 상황에서 인간의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세 사람이  ‘ 몬트로즈 ’ 시의 하늘을 보며 긴장하고 있는데 하늘에는 어떤 항공기도 보이지 않는다 .

 

@‘오감의 우화(The five senses)’라는 이 작품은 Gerard de Lairesse(1640~1711)의 1688년 작품으로 다섯 가지의 감각(만지기, 맛보기, 듣기, 보기, 냄새 맡기)을 두 여인과 세 어린이를 통해 표현하였다. 1. 오른 손 위에 앉은 앵무새가 손가락을 쪼자, “아야!”하는 여인. 2. 즙 많은 복숭아를 든 여인은 맛을 의미한다. 3. 가운데 소녀의 들려진 손끝에 있는 흰 장미는 냄새의 상징이다. 4. 왼쪽의 트라이앵글을 연주하는 소년은 소리를 의미한다. 5. 계단에 앉아 거울을 가리키는 소년은 보는 것을 의미한다.

Paul Cezanne의 글과 그림도 보인다. " I want to conquer Paris with an apple" 세잔의 사과를 평생동안 연구한 사람이 피카소라고 한다.

 

@ Henry Raeburn 의  1810 년 작품이다 . 1900 년대 초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공무원 초상화이다 .  스코틀랜드 군인들은 이 복장으로 세계 여러나라에 파병되어 싸웠다 . 레이번은 예비 스케치없이 바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렸다 . 1822 년 기사 작위를 받고  1823 년 스코틀랜드 왕실 초상화가로 임명된다 .

 

 

@ 헨리 레이번의  1800~10 년대 작품  MR and Mrs Campbell do Kailzie.  레이번은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초상화가로 각광을 받았다 .  부유한 귀족이 레이번의 에든버러 스튜디오에 와서 최상의 옷을 입고 찍은 작품이다 .

 

@복도에 전시된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

점심 식사는 목사님이 예전에 관광객들을 인솔하여 들른 곳으로 갔는데 바로 캘빈 그로브 근처에 있다. 홍합 요리와 대구, 농어, 청새우가 들어간 피쉬엔 칩스’, 샐러드,햄버거를 시켰는데 모두 다 맛이 좋다(5인 식사 60파운드).

 

 

@여행 중 우리 가족은 대부분의 식사를 이렇게 폭풍흡입으로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하고 다시 캘빈그로브로 향한다. 식사 중에 생각해보니 이런 멋진 곳을 한 시간에 다 돌아본다는 것은 예술 감상에 대한 우리의 무식을 폭로하는 것 같았고 또한 예술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하기 전후의 사람 마음이 틀려진다더니, 오후 일정을 감안할 때 시간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Joh n Knox 라는 화가가 그린 ‘North Western View from Ben Lomond, about 1834) 라는 작품이다 .  종교 개혁가 존 녹스목사와 이름이 똑같아 놀랐다 .  이 화가는 글래스고 주변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  이 그림에서 그는 사람을 그림에 등장시켜 자연의 광활함을 보여 주고자 했으며 ,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이용해 자연의 규모를 실감나게 그렸다 .

 

@Robert Herdman 의  1867 년 작품  ‘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의 처형 (Execution of Mary, Queen of cot)’ 이 그림에서 메리 여왕은 가톨릭 신앙심이 충만하여 성스러워 모이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메리 여왕은 참으로 기구한 일생을 살았다 .  영국 역사에서 메리여왕은 둘인데 하나는 헨리  8 세의 큰딸이며  ‘ 피의 메리 ’ 라 불리는 잉글랜드의 여왕 (1516~1558) 으로 헨리  8 세의 사후  37 살에 왕이 된다 .  아버지가 만든 성공회를 부정하며그 추종자  300 여명을 처형하여 피의 메리라는 별명을 얻는다 . 5 년 정도 왕위에 있다 난소암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사망한다 .( 정신 착란증으로 사망했다고도 한다 .)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1542~1587)은 생후 9개월에 대관식을 치르고 여왕이 된다. 6살 때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와 약혼하여 프랑스로 건너가 6개 국어를 유창하게 할 정도로 배우고 총명하였으며180Cm가 넘는 큰 체구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한다. 프랑스에 온지 10년 만인 1558년 왕태자 프랑수아와 결혼하였고 남편이 왕이 되자 프랑스 왕비가 된다. 그러나 남편이 즉위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1565년 단리경과 결혼한다. 1566년 남편 단리는 임신한 메리의 앞에서 그녀의 비서를 죽이고 그녀를 감옥에 가두는데, 그녀는 탈출하게 되고 다음해 단리는 목 졸린 시체로 발견된다. 얼마 후 메리는 보스웰 백작과 결혼하는데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충돌한 메리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지만 메리는 감금되고 18년간 유폐 생활을 하다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158728일 사형장에서 참수 당했다. 한편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후계가 없어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로 내려와 제임스 1세가 되어 양국의 왕이 된다. 그녀의 드라마 같은 인생은 몇 차례 영화로도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제임스 와트(1736~1819)와 그의 발명품 증기기관, @캘빈 그로브 내의 박물관에 전시된 동물. 박물관의 규모도 크고 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 우리가 뽑은 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  아내는 이 그림의 제목을  ‘ 나의 내면의 모습 ,  열정 !’ 이라고 붙였다 ! ( 아내가 그림의 발레리나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은 생략 ) John Lavery(1851~1941,  아일랜드 출신 화가 ) 가  1910 년 그린  ‘ 안나 파블로바 (Anna Pavlova)’ 라는 작품이다 . 1896 년 런던으로 이사 온 그는 초상화 그리기에 집중하여 곧 유명한 초상화가로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인 러시아 출신 안나 파블로바의 초상화도 그리게 된다 .

이 작품은 그의 스튜디오에서 그렸는데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조를 주어 마치 그녀가 무대에서 발레를 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안나 파블로바(1881.2.12.~1931.1.23.):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발레계의 거장에게 발탁되어 10살 때부터 발레를 배운다. 가녀린 몸으로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하기 힘들어하자 스승은 우아하고 시적인 표현을 연습하게 하고 열정적인 연습으로 결국 대성한다. 대표작인 빈사의 백조에서 처절하게 날개짓을 하는 백조를 완벽하게 표현한 그녀는 위대한 발레리나의 반열에 오른다. “신은 재능을 주시고 노력은 그 재능을 천재로 만든다.” 그녀의 유명한 명언이다.

 

너무나 좋은 작품들이 많고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전혀 뒤지지 않을 알찬 곳이지만 소개는 여기까지만 한다. 다음에 또 그래스고우를 가고 싶다면 바로 이 박물관 때문이다.

박물관과 다양한 이벤트 실을 본 후 서울의 명동처럼 붐비는 이곳의 1번지 거리인 보채남 거리(Buchanam St)를 산책해본다. 산책 중에 아내가 하도 보채서 향수 한 병을 산다. 보채남 거리에서 보채는 사람에게는 꼭 사줘야 한다!

 

 

▲ 맑고 화창한 날씨여서 많은 관광객들이 보채남 거리에서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 “이 사진 찍고 아까 봐둔 향수 사러 가자!” 하며 보채는 아내.

이제 오늘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턴베리 골프장으로 향한다. 브리티시오픈이 네 차례 열렸으며 특히 1977년 대회에서 잭 니클라우스와 톰 왓슨의 대결은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라고 불릴 명승부였다. 내년 2014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골프장인 페블 비치가 이곳을 벤치마킹했을 정도로 유명한 이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게 된다니 무척 기쁘다! 턴베리 골프장에 도착한 우리는 전동 트롤리 하나와 수동 트롤리 3대를 신청하고 클럽 하우스 내부를 둘러본다. 이 골프장은 유명 인사들이 라운딩을 자주한 골프장으로 유명하며 특히 오늘 우리가 라운딩하는 바다와 등대가 보이는 아일샤 코스는 인기가 좋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파파로티, 찰스 황태자 같은 유명 인사들이 라운딩했다는 사진이 클럽하우스 곳곳에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오후 다섯 시가 우리의 티업 시간이다. 한국에서는 오후에 일을 볼 수 있기에 새벽 골프를 선호하였는데, 이곳은 오후 4시 이후 골프가 황금 시간이다. 1번 홀티 박스에서 진행자와 인사를 한 후 드라이브를 치는데 멀리 등대가 보인다.

홀이 진행될수록 등대와 바다는 가깝게 혹은 약간 멀리 보이더니 9번 홀이 시작될 때는 바다와 갈대밭, 그리고 등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우리 앞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200여 곳 이상의 골프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골프장은 처음인 것 같다. 9번 홀에서는 경기자들이 모두 사진을 찍느라 진행이 더뎌 지기도 한다.

 

우리는 뒤에 쫓아와 신경 쓰였던 2명의 경기자들을 이곳에서 패스시키고 그늘집에 마련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이 아름다운 곳에서 좀 더 머물다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며 10번 홀 공략에 나선다. 이번에 영국 와서 가장 어려웠던 골프장은 그렌 이글CC’이고 가장 기억에 남을 골프장은 세인트 앤드류가 아닌 이곳 턴베리 골프장이다.

 

세인트 앤드류의 올드 코스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명성 때문에 유명하지만 실제의 라운딩에서는 재미를 더하지 않지만 여기는 매 홀마다 등대와 바다가 조화를 이루며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멀어졌다 하며 재미를 더한다. 바다를 끼고 운동하는 골프장은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데, 이곳은 바다에 등대까지 있어 마음을 시원하게 하며 알 수 없는 설렘을 주기도 한다. 등대가 이토록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종종 인생의 이정표로 등대가 인용되듯, 어느새 사람의 마음에 깊이 고향처럼 다가와 있기 때문이 아닐까?

 

16번 홀에서는 프로 사진사가 그린 주위에서 경기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여 혹시 한국에서처럼 경기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에서 사진을 판매하나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다.

 

라운딩이 끝난 후 씻지 않고 바로 숙소가 있는 스트란래어(stranraer)로 출발한다. 스트란래어는 과거 항구 도시로 번성하였으나 바닷가에 진흙이 들어차면서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지금은 오지의 어촌 마을로 변해버린 곳이다. 오후 아홉시 반에 출발하여 숙소로 향하는데 바다 건너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가 보인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일정을 안 맞아 못 가보는 지역이다. 그곳을 바라보는 석양의 바다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진 한 장 찍어본다.

 

오늘 머무는 숙소는 네비게이션으로도 위치가 안 나오는 지역이며 스트란래어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는 목사님의 소개를 받은 곳인데, 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 목사님이 기다리다 함께 이동해 현지인의 숙소로 안내해주셨다.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고 호남형인 이 목사님은 어떤 부름을 받고 오지인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실까?

이곳의 주민들은 일생에 세 번 교회에 가는데 그 중 한 번만 자발적으로 가고 자발적으로 나간 한 번은 결혼식 날이라는 농담이 있다. 종교는 있지만 생업이 바빠서 교회에 자주 못 오는 주민들을 위해서 목사님은 호떡을 구워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며 선교 활동도 하시고 한국에서 책도 몇 권 내신 훌륭하신 분이다.

 

715(), 바로 이 맛에 낚시를 한다.

 

역사 속 영국의 오늘

1215년 영국의 왕 마크나 카르타(대헌장, Magna Carta)에 서명

 

오랜만에 아침에 닭 우는 소리를 듣는다. 어제 오후 턴베리 골프장에서의 환상적인 라운딩 후 늦게 도착하여 자료 정리도 못하고 열두시쯤 잠들었다. 방안의 공기가 제법 차가워 반산반의하며 준비해온 내복 하의를 입고 잤는데, 세상모르게 편하고 깊은 잠을 잤다. 이 집의 주인 싸미 씨는 한국을 아주 좋아하는 분인데, 5파운드만 주면 잠자고 목욕을 할 수 있는 한국(찜질방)이 아주 좋다고 한다.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B&B들은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이 집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우리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실내에선 신발을 벗고 다니는데, 내 생각에도 합리적인 것 같다.

 

아침 식사는 우유를 넣고 끓인 오트밀죽과 베이컨을 줬는데, 우리가 좋아할 거라며 김치를 꺼낸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김치를 매일 먹는다고 하는데, 이곳 목사님 교회의 집사로 있으면서 목사님과 친하여 김치도 가져다 먹는단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스코틀랜드 최남단 곶 Mull of Galloway로 산책을 간다. 영국 일정을잡으면서 영국의 서남단 콘월 반도를 갈려고 계획하다 거리가 멀고 최소 그곳에서 1~2박을 해야 하는 일정이어서 포기했는데, 운 좋게 콘월 반도와 비슷한 분위기의 등대로 간다.

 

@ 스코틀랜드의 목장 주변에서 많이 본 ,  목장 지역 근처의 길 바닥에 설치된 장치 .  차량과 사람은 통과하지만 발굽이 두개인 동물은 절대 통과할 수 없다 ./  양들이 자기들 이야기 한다고 다 나를 쳐다본다 .

당초 오늘은 아침에 낚시를 하고 에든버러로 돌아가 느긋한 오후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오늘의 들 물이 오후 3시경이라 하여 고기 잘 잡히는 오후 시간에 낚시를 하고 오전에는 등대를 방문하기로 한다.

 

숙소인 스트란래어에서 등대까지는 시골길로 한 시간 가량 걸렸는데, 경치가 너무 좋다. 멀리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벨파스트가 보이는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이고 청정지역이라 잘 관리 되고 있는데, 등대 박물관에 들어가니(인당 2.5파운드) 등대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있다. 신호의 방법, 등대 불 점화 순서, 영국의 등대 위치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 철새에 관심이 많으신 목사님

안개가 낀 날은 ‘Fog Horn’을 울리는데 그 위치는 등대보다 더 아래 절벽 쪽에 설치되어 있어 계단을 내려가 보니 철새들의 둥지가 많이 보이고 그 것을 관찰하기 위한 카메라도 여러 곳 설치되어 있다.

 

@ 스코틀랜드 전 지역의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국화 ,  엉겅퀴 .  잎에 달린 날카로운 가시로 인해 해적이나 외적들이 산속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  덴마크 측후 병이 스코틀랜드 군의 진영을 염탐하러 가서 엉겅퀴 가시에 찔려 소리를 질러 발각되어 체포되고 ,  그 후 덴마크는 오히려 역습을 당해 패하는데 ,  이 사건을 계기로스코틀랜드에서는 엉겅퀴를 국화로 했다고 한다 .

 

@한 지역을 지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 흔히 보는 표지판인데 ‘다시 돌아오는 것을 걱정하지 마라!’ 즉, ‘또 와!’의 완곡한 표현. 영어 고어인지 게일어인지 모르겠다.

등대 구경을 마치고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목사님과 우리 목사님의 친분이 두터워 그 덕에 우리 가족은 오늘 점심에 초대되어 방문하니 한식을 한상 차려주신다.

들깨를 넣은 육개장, 맛있는 김치, 고사리나물, 젓갈류, 모든 음식이 맛있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니 포만감이 밀려온다.

 

이곳의 수백년 된 교회가 술집으로 팔릴 위기에 한국인 목사님이 인수하여 운영하신다는데, 제법 규모가 큰 교회이다. 포교 활동의 일환으로 주민들에게 호떡을 구워 나누어 주었는데 , 반응이 좋아 세계의 배낭 여행객들에게도 소개되어 호떡을 매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아직 종교가 없지만 먼 외국에서 열심히 선교하시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약간의 헌금을 내었더니 반가워하시면서 자신의 저서 한 권을 주신다!!

 

휴식을 취한 후 민박집 주인이자 선장인 싸미 씨와 배낚시에 나선다. 오전보다 물이 많이 들어와 갯벌이 물로 채워지고 있는데, 우리는 부두가 등대 근처에서 큰 배 옆에 붙여둔 작은 싸미 씨의 배로 이동하여 바다로 나간다.

 

▲ 우리가 탄 배는 큰 배의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배의 옆에 붙인 더 작은 배이다. 배 두 척 을 옮겨서 탄다. ◀ 이~만한 고기 한 마리만 잡고 철수하겠다며 큰 소리 치는 아내!

낚싯대를 넣고 잠시 후 작은아들이 첫 고기를 올린다. 이곳은 고등어가 잘 잡힌다고 하는데, 제법 씨알이 좋은 대구이다.

잠시 후 아내와 큰아들까지 고기를 잡는데 목사님과 나의 낚싯대는 잠잠하다. 조금 뒤 목사님마저 낚아 올리고, 모두 여러 마리를 올리는데 내 낚싯대는 계속 잠잠하여 지켜보던 싸미 씨는 내 낚싯대의 가짜 미끼 줄을 바꾸어 준다. 그리고 얼마 후 제법 큰 고등어 한 마리를 낚았다. 손맛이 아주 좋다.

 

@싸미씨의 집. 강아지, 닭, 오리, 돼지를 키우고 있다.

아내는 일곱 마리 정도 잡고 신이 났다. 한 마리만 잡아 체면치레한 내가 시간도 좀 지나고 하여 그만 나가자고 하니, 배 타기 전에는 잠시만 있자고 하던 아내는 열 마리 잡을 때 까지 있자고 우기며 계속 낚싯대를 드리운다. 그러나 이젠 물길이 바뀌어 입질도 뜸해지고 모두의 낚싯대가 잠잠하여 결국 세 시간 정도 하다 뭍으로 철수를한다.

오늘의 총 어획량은 목사님 열 마리, 아내와 큰아들 일곱 마리, 작은아들 여덟 마리, 선장인 싸미 씨 여러 마리, 나는 씨알 좋은 것 한 마리를 잡았다! 고등어와 대구가 제법 푸짐하게 박스에 있어, 큰 비닐 백으로 옮겨 차에 실고 에든버러로 출발한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다!! (싸미 씨의 집 숙소 이용료와 배 이용 요금을 합해도 평소 다른 곳에서 우리 다섯 명이 이용한 숙소 이용료 보다 싸다. 이곳 목사님의 소개로 와서 좋은 곳을 잘 이용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은 바다낚시의 여파로 피곤한지 차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고, 나는 컴퓨터를 꺼내어 사진 자료를 정리하면서 목사님과 대화를 계속한다. 차가 거반(Girvan)이라는 도시를 통과하자 목사님은 거반의 부자에 관한 일화를 말씀해 주신다. 어린 아들 하나와 생활하던 어느 부자가 그 아들이 병으로 죽자 상심하여 초상화를 잘 그리는 무명의 화가에게 아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거실에 걸어 두고 보면서 지냈다.

 

그는 그림을 좋아하여 유명 화가의 그림도 다수 보관하였다. 부자가 사망하고 난 후 상속자가 없는 부자의 그림들은 거반 시에서 시의 법에 따라 경매를 통하여 팔아 시의 수익금으로 했는데 무명의 화가가 그린 아들의 그림은 팔리지 않아 이 집의 늙은 하인이 자신의 급여로 이 그림을 인수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공증된 유언장을 열어보니 내 아들의 그림을 가진 자에게 전 재산을 상속 한다.”라고 되어있어 그 하인은 상속받은 재산으로 이 시에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참 인생은 알 수 없는 드라마이다.

 

목사님 사모님은 고기 많이 안 잡아오면 문 안 열어주신다고 했는데, 다행히 나 아닌 다른 분들의 성공으로 10시쯤 도착하여 문은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716(), 국경을 넘어가며 본 해리포트 성

 

역사 속 영국의 오늘

2002년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군 (IRA), 과거 폭력행위 첫 사죄

 

평소와 다르게 사모님이 주방에서 조금 일찍 음식 준비를 하셔서 보니 오늘 떠난다고 어제 잡은 대구로 탕을 끓이고 고등어는 조림을 하여 한상 차려 주신다. 직접 잡은 고기이기에 더욱 맛있다. 곧 한국에 나오실 일이 있다하여 8월에 서울에서 식사 초대하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배웅하던 한나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8월에 아빠랑 같이 서울 올 때 보자! 예쁜 선물 줄께!

오늘은 뉴캐슬까지 가는 일정으로 길목의 작은 도시들과 해리포트 촬영으로 대박난 성 안윅을 볼 예정이다. 출발하여 조금 지나 골프장이 나타나는데 바로 디 오픈의 예선전이 열리는 뮤어필드의 링크스 코스인 굴란CC이다. 앞에서 잠시 쉬면서 골프장 주변 풍경을 담아간다. 이곳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도로에서 그린으로 접근이 용이하여 경기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내일부터 디 오픈 대회가 열리는 뮤어필드CC 근처로 가니 차량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골프장 입구까지 가 보려고 시도했지만 행사 진행 요원이 2마일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오란다. 갤러리로 구경하는 것도 어려워 보여 우리는 바로 길을 떠난다. 우리는 더 멋진 골프장에서 라운딩한 사람들이야!

 

우리가 지금 지나는 곳은 영국 지도상에서 동쪽의 꼽추 등처럼 튀어 나온 부분인데 이곳은 ‘North Berwick’이라는 작은 항구 도시이다. 섬 하나가 큰 인기를 끄는 곳인데 바로 ‘Bath Rock’이라고 하는 바위섬으로 과거에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 지나는 곳은 Dunbar라는 지역으로 이곳은 종자 닭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의 종자 닭도 이곳에서 많이 들여왔다고 하는데 여기서 부화를 시켜 일정 기간이 지난 닭을 수출한다.

 

@ 던바의 주민 수영센터 .  우리는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

여기서 잠시 쉬며 해변 과 주민 수영 센터를 구경한 뒤 근처에 맥도날드 식당이 보여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들러 햄버거를 먹어본다. 목사님은 몇 년 만에 처음 먹는다고 하는데, 나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

.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와서 우리는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안윅 성으로 향한다.

 

길 표지판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경계라는 표지판이 보이더니 곧 잉글랜드 땅으로 진입하는데 오늘 잉글랜드 땅에서 가는 처음 목적지인 안윅 성이 보인다. 영화 해리포트의 촬영 덕분에 일약 스타성이 되어버렸으며 지금은 막대한 관광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많은 성들이 청교도 혁명으로 파괴되었는데 이 성은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규모도 커서 옛 성주들이 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목사님의 헤리티지 카드 덕분에 목사님은 무료입장이고 우리 가족은 할인을 받지만 입장료는 비싸다.

성 안에서는 해리포트와 관련된 많은 이벤트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지나친 상술을 보인 것 같아 씁쓸

하다(입장료는 성인 14.5파운드이며, 1년유효하다).

 

사진1, 2: 각종 연극이나 행사를 위한 무대. 사진3: 여왕의자에 앉은 아내. 사진4: 스코틀랜드와의 국경을 지키며 스코틀랜드인에게 조급쟁이(Hotspur)라는 별명을 얻은 헨리 퍼시. 헨리 4세에게 반란을 꾀하다 전사한다.

 

해리포트가 빗자루를 타고 공중 경기를 하는 장면에서 착안하여 마법사로 분장한 사람이 어린이들을 모아 마법을 가르쳐 준다며 줄을 서게 한다. 우스꽝스런, 그렇지만 어린이들 입장에선 진지한 표정과 말로 마술을 가르쳐 줄 것처럼 하지만 도무지 끝이 안 보여 조급쟁이 성주처럼 우리는 조급증을 내며 끝까지 보기를 포기하고 성 내 다른 곳들을 구경한다.

 

@ 영국 어린이들의 순수한 표정이 너무 아름답다 .  이 어린이들이 커서 해리포트의 작가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가 될 수 있겠지 .

놀이공원에 설치된 귀신의 방도 있고 활쏘기 행사장, 올빼미와 독수리 날리기 행사장 등의 다양한 행사가 있었고 성 내부에 들어가니 다른 성에서 보지 못한 규모의 큰 서고가 있고(1475년에 출판된 책도 있었다.), 화려한 중국 도자기 실, 저녁 식사 후의 담화장인 ‘The Saloon’에는 많은 그림과 화려한 시계와 피아노, 자개농도 보인다. 그 외 수집실과 많은 방들이 있지만 대충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출발하였는데 뉴캐슬 근처에서 하루 쉴 예정이다. 뉴캐슬의 위성도시인 ‘Morpeth’에서 B&B를 찾다 근처의 민가에서 물어보니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준다. 길가에 B&B가 보여 그 집의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로 일단 문의했는데 방이 없지만 일단 와보라고 한다. 차를 임시 주차하고 그 집을 방문하니 멋지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동네의 다른 B&B를 약도까지 그려가며 친절히 안내를 해 준다. 안내해 준 B&B에 도착하니 맘씨 좋게 생긴 배 나온 아저씨가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빈방이 많다하기에 인기 없는 집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별 네 개를 받은 집이다. 4인 가족실이 있어 우리 가족은 이 방으로 결정했는데 방값이 99파운드로 무척 저렴하다. 잉그리시 블랙퍼스트 포함 가격인데, 스코틀랜드의 다른 민박집에서 평균 인당 35~40파운드였는데 여기는 인당 25파운드이니 대도시인 뉴캐슬에서 방을 잡지 않고 위성 도시에 잡길 잘한 것 같다.

 

짐을 푼 뒤 저녁 먹을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한 집을 소개해 준다. 이 민박집에서 왔다고 종이를 보여주면 20% 할인을 해준다고 하여 그 식당을 갔는데 손님들이 꽤 많은 집이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했는데 요금은 20% 할인까지 받아 26파운드이다. 낮에 간단히 먹은 맥도널드보다 더 저렴한 가격이다! 아주 맛있는 식사는 아니지만 가격 대비 꽤 좋은 집이다!

 

 

▲  저녁 식사를 한 식당  ▼  공놀이 게임을 즐기는 동네 할아버지들

 

식사 후 마을 이곳저곳 산책을 하는데 노인들이 공치기하는 코트도 보이고 강물이 맑지는 않지만 강가엔 보트가 있고 나름 평화롭고 괜찮은 동네인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을 만났는데 개가 귀여워 우리 일행이 잠시 강아지를 살피니 말문의 열린 강아지 주인은 강아지가 자기 손을 문 이야기부터 세상사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는다. 자기는 지난 10년 동안 직업을 가지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사회 보장제도가 잘되어서 그렇게 지낸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지금까지 늘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한 나는 이 사람처럼 직업없이 무위도식 하는 것이 편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잉글랜드 탐험이다. (여기까지가 2부 입니다. 3부는 725일까지 런던과 주변 잉글랜드 지역 탐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