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0년대

2018년 시릴리아 여행 (2월11일~16일)

매직랜즈 2021. 1. 5. 16:53

구정 연휴를 이용하여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이런 짧은 여행은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여인의 향기'라는 카페에서 주관하는 여행의 내용을 보고 또 그 즈음 시칠리아에 대한 '오지의 마법사'등의 프로그램을 보고 결정 하였다. 아래의 글들은 '여인의 향기'카페에 올린 내 여행기를 옮긴 글이다. 

2월11일 (일)

드디어 오늘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일주 여행을 가는 날이다. 보통의 경우 나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여행을 계획하여 떠나는데, 이번에는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여인의 향기라는 카페에서 알게 되고, 시칠리아를 일주하는 나오기 드문 여행 상품을 보고 놓치기가 아까워 두 달 전 결정해버렸다.

 

신청하고 난 후에 검색을 해보니 MBC에서 '오지의 마법사 시칠리아편을 방영한 것을 알게 되어 시청하였고,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시칠리아 편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몇 편의 영회가 눈에 들어왔지만 시네마 천국만 보고 왔다. 말론 브란도의 강한 연기가 인상적인 대부를 볼까 생각했으나 시리즈로 나온 거라 생략했고, 꼭 보고 싶었던 맬리사라는 영화는 올레TVVOD 서비스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분들의 여행기도 읽어보고 나름 알차게 준비를 한 편이다. 강아지 세 마리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어제서야 짐을 정리를 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25분이지만 설 연휴 기간이라 공항이 매우 혼잡할거라 예상되어 집에서 10시에 출발하는 콜밴을 예약했는데, 출발 20분 전 쯤 확인 전화를 하니 콜밴 기사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펑크를 낸다. 무척 당황스럽다. 지난 1월초 태국 골프여행을 다녀오며 이용한 적이 있고 차고 비교적 새 차이고 기사분도 친절하여 명함을 받아 두었는데 이런 일이 생긴다. 황급히 카카오 택시를 불렀지만 대형 택시가 없다고 뜬다. 과거 몇 번 이용한 콜밴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 마침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다하며 20분내 온다고 한다. 다행이다. 한 편 미안하기도 하다. 차도 좀 낡고 하여 미리 예약 안 했는데 차를 새 차로 바꿨다!

 

공항에 도착하여 같이 갈 가이드 카이씨를 만나 티켓과 일정표, 멀티 어댑터 등을 받고 탑승 수속을 한다. 인상이 편안해 보인다. 출국 보안 검색대 통과에 시간이 엄청 걸린다. 이런 날 검색 창구를 좀 더 개방하여 주면 좋겠는데, 검색도 세심히 하니 승객이나 검색 요원이나 모두 피곤하다. 이탈리아 항공은 탑승구 배정이 변두리로 되어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여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팁승구에 대기하니 잠시 후 탑승 수속을 한다.

비행기 안의 12시간은 지루함과 찌부둥함의 연속이다. 몇 번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가져온 책도 읽어보고, ‘라라랜드’, ‘시크리트 에이전트등의 영화를 보고 잠을 잘려고 노력하는 등 몸을 뒤척거리다가 드디어 로마 공항에 도착하지만 아직도 여정의 끝이 아니다. 로마 공항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비행기는 긴 통과 여객 탑승 통로를 한참을 걸어야 했고 또 별도의 보안 검색을 한 후 탑승구로 이동을 한다. 탑승구를 확인하고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탑승구가 바뀌어 다시 이동. 드디어 탑승! 로마 공항에서 팔레르모 공항까지는 국내선으로 한 시간 거리이다.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져 바로 한 시간 꿀잠을 잤는데 깨어나니 착륙을 한다.

 

공항의 짐 찾는 컨베이어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국내선만 이용한 승객과 국제선에서 환승한 승객의 컨베이어가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국내선 이용객의 대가 컨베이어에 한참 서 있다, 공항 직원의 안내로 다시 이동하여 짐을 찾는다. 공항의 규모가 아주 작기에 전광판 안내시설이 없고 카트도 1유로를 내야 이용할 수 있다. 공항에서 숙소인 Mercure hotel까지는 30여분 거리. 이 호텔은 과거 힐튼 호텔로 사용되었는데 최근 내부 시설을 수리하여 이름도 바뀐 4성급 호텔이다.

 

호텔 도착하여 짐 정리하고 자리에 누어니 12일 아침 1시 반이다. 무척 긴 하루였다.

 

2월12일 월요일

어제 밤 늦은 시간 호텔에 도착하여 방에 들어가니 창문은 열려있고 방은 매우 차서 급히 창을 닫고 히터를 으로 했지만 바뀐 잠자리와 시차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어 2~3시간 정도 잔 것 같다. 그래도 아침 9시 출발이고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으니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다. 식당에 내려가니 아침 식사 내용이 4성급 호텔 치고는 괜찮다. 차려진 음식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아란치니’! 집에서 방송을 보니 아란치니는 우리 고르께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맛이 좋다하여 먹어보니 겉은 바삭하게 튀겼고 속에는 모짜렐라 치즈와 밥이 들어있다. 이 호텔에서는 작은 크기로 만들었는데 방송에서 본 거는 하나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될 정도의 크기였다.

이 호텔에서 2 박을 하기에 간편히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선다. 우리 일행은 총 19명의 여행객에 한국에서 같이 온 여행사 소장 카이씨와 이태리에서 오래 산 현지 가이드 김종민씨까지 21명이다. 여인의 향기라는 카페이름 답게 여성분들이 반 이상인 것 같다. 가이드 이름은 한국의 12일 출연자 김종민과 같지만 본인 표현을 빌리면 가수 최성수씨와 비슷하게 생겼고, 목소리는 디제이 김기덕과 비슷하다고 편하게 접근하려 노력한다. ‘뽀뽀뽀동요를 성악가 버전으로 한곡 부른다! 성량이 풍부한 편이다. ‘95년에 공부하러 나와 현재까지 이태리 본토에서 살고 있다고. 기사 분은 에리꼬라는 전통 이탈리아인이다. 매일 아침 본조르노 에리꼬라고 인사하면 서로 즐겁단다. 에리꼬씨의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는데 친절하고 성실하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 일행들의 무거운 짐들을 매일 승하차 시키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일하시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버스가 마시모 극장 앞을 지나간다. 대부 3에서 이 극장이 나왔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말론 블란도의 명대사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만 생각이 난다. 팔레르모는 이태리 마피아의 본고장이었다. 땅의 지주들이 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어깨들을 고용했고 이들이 마파아로 발전해 미국을 포함한 각지로 진출한다. 이태리 정부의 노력과 많은 성직자, 검사들의 희생으로 마피아는 거의 사라졌고, 현재의 시칠리아 사람들은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칠리아에 대한 오해가 3가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오해는 시칠리아는 이태리 남부의 작은 섬이다라는 것인데 면적이 우리 제주도의 14배인 27,000 제곱미터이다. 두 번째 오해는 대부분의 시칠리아 사람은 이태리인이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의 다양한 국가의 지배로 그리이스인, 로마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위에 언급한 범죄와 마피아의 무서운 도시라는 오해인데 지금은 대부분 소탕되어 안전하다고 한다. 팔레르모의 공항 이름이 팔레르모 팔코네 보리셀리노공항인데 마피아 제거를 위해 노력하다 살해당한 두 판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시칠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3족 메두사인 트리나크리아 Trinacria이고 또 하나는 무어인의 머리이다. 3족 메두사의 세 발은 3개의 꼭지점으로 이루어빈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라 섬을 의미하며 풍요를 상징한다. 무어인의 머리에는 전설이 있다. 아랍의 부유한 무어인이 이곳에서 시칠리아 여인에게 끈질기게 구혼하여 둘은 사랑에 빠졌는데 어느 날 무어인이 유부남인 걸 안 여인은 무어인의 머리를 잘라 화병으로 만들어 바질은 키웠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랑의 징표로 헤어질 때 남자의 이나 심하면 중요부분을 취하는 설화들이 있는데 여기 여인들은 더 무섭군~

 

시칠리아 섬의 역사는 이탈리아 본토의 가장 오래된 3,000년의 역사도시 나폴리보다 더 오래 되었으며 ㅊ최초의 정착지는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였다고 한다. 신들이 사는 영역에서 거인 족이 살게 되고 선사시대의 인간이 살았고 시켈족, 그리이스 인, 가나인(페니키아인)들이 살며 문화가 융성해갔으면 카르타고, 로마, 사라센, 노르만, 스페인, 프랑스, 합스부르크가문 등의 다양한 지배를 받았지만 다양한 문화들이 골고루 잘 섞여 공존하는 곳이다. 피자의 원조도 나폴 리가 아닌 시칠리아 섬이며 본토와 다르게 음식이 그리 짜지 않고 좀 투박하면서 내츄럴한 맛이라 한다. (나는 여행 중 우리 음식을 한 끼도 안 먹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 체질인데 이번 여행에서 이태리 음식을 잘 즐겼던 것 같다. 물론 곁들인 와인의 덕도 있지만..)

 

버스는 약 80Km, 한 시간 반을 달려 체팔루에 왔다. 가이드의 구수한 해설 덕분에 졸지도 않고 잘 왔다. 체팔루는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 한 편 덕분에 갑자기 유명해진 평범한 시칠리아의 항구 도시이다. 도착한 곳은 해변 가의 한 곳인데 영화에서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관객들의 열화같은 요청으로 극장주 모르게 영화를 상영한 곳이다. 극장에서 영사기 방향을 외부로 하여 건물 벽을 스크린삼아 영화를 상영하여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영화를 보던 장면이 생각나는 곳이다. 해변 가라 바람도 불고 날씨도 쌀쌀하지만 잠시 머물며 여유를 느껴본다.

 

시네마 천국의 많은 부분은 팔라초 아드리아노라는 마을에서 찍었고, 그곳에는 시네마 천국 영화 촬영 때 사용되었던 자전거를 비롯한 물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마을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 토토는 영화관 영사기사인 알베르토를 만나 영사기 사용법과 인생을 배운다.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 여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힘든 삶을 이어가지만 밝은 천성을 가졌다. 마을 공터의 벽에 영화를 상영하던 알베르토는 영사기 발화로 두 눈을 잃는 화재를 당하고 어린 토토가 간신히 구해낸다. 성장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은행지점장의 딸과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성장한 토토에게 알베르토는 마을을 떠나 넓은 세상에 가라고 조언하고 토토는 따른다. 유명한 영화 제작가가 된 토토는 여러 여자를 전전하고 마을에는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 알베르토의 사망 소식에 고향에 내려와 알베르토의 장례를 치르며 과거 영화관 사장을 비롯한 지인들을 만나고 영화관이 폭파 해체되는 현장에 있게 된다. 알베르토가 남긴 유작 키스신 장면(상영당시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모은) 테입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보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다.

 

체팔루에 도착하여 조금 걸으니 해변 백사장이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 나타난다. 시네마 천국 영화가 아니었다면 관광객이 팔레르모에서 오기 힘든 곳이고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향이 바닷가 도시인 나는 방파제를 걸으며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통해 고향의 느낌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해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버스를 타고 체팔루 성당으로 간다.

체팔루 두오모는 노르만 양식의 거대한 성당으로 1131년 루제로 2세가 시칠리아의 종교적 본거지로 지으려했던 만큼 장엄미가 그만이다. 외부는 첨두아치의 장식성이 뛰어나고 양쪽에 들어선 4층 종탑 꼭대기의 장식은 이슬람 영향을 보여준다. 내부의 모자이크와 판토크라토르화는 순수 비잔틴 예술의 걸작이다. 두오모의 전면에 있는 판토크라토르 모자이크는 특히 머리 가르마가 인상적이다. 무스를 발라 잘 빗어넘긴 것 같은 정돈된 머리 형태가 다른 어떤 판토크라토르 상보다 확연하기 때문이다.

 

판토크라토르화의 묘사의 특징은 먼저 세 방향으로 빛을 발하는 헤일로(halo)라는 광배가 있는데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얼굴은 눈이 크고 코는 좁고 길며 작은 입술을 갖고 있는데, 큰 눈은 세상을 편협되지 않게 두루 살피고, 좁고 크게 굴곡진 이마는 지혜를 상징하며, 길고 좁은 코는 고귀함의 표상으로, 냄새로 상징되는 세상의 유혹에서 거리를 둔다는 의미다. 입술이 작은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명상적 성품을 뜻한다. 갈색 머리는 중앙에서 가르마가 되어 있고, 축복을 상징하며 들려있는 오른손의 손가락은 예수, 크리스트를 의미하는 알파벳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왼손은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당 내부에서는 후래시 사용 안 되고, 셀카봉도 사용 못한다. 성당 내부에는 전면의 예수 상을 포함하여 5명의 예수가 표현되어 있으며, 천정이 아랍식으로 표현된 성당은 이곳이 최초이다. 벽 상부에는 성서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의 있고, 겅 바울과 베드로의 일생에 관한 부분도 있다.

 

성당에서 나와 우리 일행은 두 개조로 나뉘어 성당 주변 한 팀, 로까산 올라가기 한 팀으로 나눌려 했으나 전원 등반에 찬성하여 로까산에 오른다. 그리 높은 곳이 아니지만 오랜만의 등산이라 땀이 좀 흐린다. 계단 곳곳에 짐승들의 배설물이 있어 조심하여 올라간다. 정상에서 아래 체팔로의 바닷가를 바라보이는 풍경은 힘든 등산 뒤여서인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터가 일부 남아있다.

 

산에서 내려와 광장에서 휴식을 취한 후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식당 : AlPorticiolo) 메뉴는 전식으로 리조또이고, 본식으로 야채와 오징어 튀김이며 디저트는 샤베트이다. 시칠리아에서 처음 하는 이태리식 식사이기에 래드 와인을 한 병 마셨는데, 맛이 그리 훌륭한 편은 아닌 일반 와인이다. (매 끼니마다 와인을 마셨는데, 래드 와인의 경우 식당에서 판매하는 와인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인지 그저 그런 맛이었고 화이트 와인 일부는 맛이 아주 좋았었다.) 그래도 술 한 방울 피 한 방울인데 남겨둘 수는 없어서 아내와 둘이 한 병을 비우니 취기가 올라온다.

버스를 타고 팔레르모로 가는 동안은 등산과 수면 부족, 식곤증으로 다들 졸면서 간다. 팔레르모는 페니키아인들이 처음 들어왔고, 9세기에는 로마/비쟌틴이 12세기에는 아랍인들이 지배하였다. 괴테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도시라 말하였고, 아랍풍과 노르만 양식이 혼재된 건물들이 많다. 우리는 포르타 누오보문(을 통과하여 마시모 극장 까지 이어진 거리를 걸어가며 여러 장소를 탐방한다. 포르타 누오보 문(1535)은 카를로스 5세의 튀니지와의 전쟁 승리 기념문이다. 문하부에는 아랍인들이 부조되어 있는데 이 문은 새로운 문이란 뜻이다.

교차로에 있는 콰트로 칸티라는 건물은 ’4 개의 모서리라는 뜻의 건물인데 외벽 1층에는 4계절의 여신들이, 2층에는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왕들이, 3층에는 산타 아답타 등 4명의 성녀가 조각되어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광장이 보이는데 분수대가 있다. 프레토리아 광장의 프레토리아 분수주위에는 30여개 나체 조각상이 있다. 알몸에 인체 주요부위를 노출한 채로. 대성당 갈 때는 이 분수 앞을 지나야 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수치의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광장 옆에는 두 개의 교회가 나란히 있는데, 왼쪽은 마르토라나 교회인데 바로크 양식이고, 오른쪽은 산 카탈도 교회인데 12세기 건축물이고 빨간 돔을 보면 전형적인 아랍풍 건축 양식이다. 빅밴처럼 생긴 시계탑이 있는 대성당은 내부에 왕들의 묘가 있고, 노르만 양식의 교회이다. 12세기 지진으로 무너진 아랍성당 자리에 세워졌다. 내부는 고딕과 바로크양식이다. 노르만 궁전은 아랍양식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여 아랍-노르만 양식을 만들었다.

 

비가 계속 와 주 의회 의사당으로도 사용 중인 팔라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왕실 전용 성당 작지만 비잔틴 양식 내부로 아름답다. 주 의회 의사당과 화랑으로 사용 중이기에 우리는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의원들의 좌석에 앉아 회의를 하는 시늉을 해본다.

마시모 극장이 오늘 관광의 종착지인데 내리는 비가 멈추지 않고 날도 빨리 어두워져 우리는 일단 호텔로 돌아가고 마시모 극장은 내일 아침 몬레알레로 출발하기 전 보기로 한다. 저녁 식사는 친친Cin Cin’이란 이태리식 식당에서 했는데 반주로 래드 와인을 곁들였다. 나는 요즈음 저녁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에 식사 후 2차 자리는 생략하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다.

Hotel : Mercure Palermo Excelsior

 

2월13일 화요일

오늘은 어제 비가 와서 제대로 못 본 마시모 극장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18세기에 지은 1350석 규모의 큰 극장으로 영화 대부 3편의 하이라이트 마론브란도가 암살당하던 장소이다. 실제로는 영화촬영 당시 수리중이어서 세트를 지어서 촬영했다고 한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건물이고 내부로 들어갈 수 없기에 다음 목적지인 몬레알레로 향한다.

몬레알레의 두오모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내부 공간을 가진 성당이다. ‘두오모는 이탈리아 여러 곳의 성당 이름인데 라틴어로 도무스(신의집)’이란 뜻으로 교황청에서 내려진 대주교가 거주하는 성당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지 전에 이 성당을 지어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하는 모습의 동상이 좌우로 서있어 인상적이다. 내부의 모자이크 그림들은 기둥들을 기준으로 하여 내부는 구약 성서의 각종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다뤄져 있고 기둥 외부는 신약 성서의 내용들이 다뤄져 있다. 아랍~노르만~비쟌틴 문화가 서로 융합된 독특한 성당이다. 그림들의 내용은 아픈 처녀를 낫게 하는 예수의 기적, 하느님이 천지 창조 후 휴식하는 모습,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베드로 등의 그림이 있다. 전면에는 크고 화려하게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어제 체팔루의 성당에서 본 예수상과 그림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지만 색체는 훨씬 화려하고 크다.

들어올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계속 내린다. 두오모에서 수도원까지는 바로 얼마 되지 않기에 서둘러 이동을 하여 수도원 내부를 감상한다. 마치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이곳의 기둥에도 두우모와 마찬가지로 각종 이야기들을 함축한 조각들이 그려져 있다.

 

비가 계속 내려서 버스까지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 생각하여 근처 광장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추워진 몸의 온도를 올려본다. 비가 좀 그쳐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다른 버스가 도착해 있다. 버스 안에 한 쪽 천정에서 결로에 의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었는데 (내 자리와 앞자리 창 측) 한국서 같이 온 미스터 카이가 바로 교체를 지시한 것이다. 여행객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버스로 약 40분 정도 이동하여 해변 가 시골마을인 알카모의 식당으로 간다.(식당 : RISTORANTE LA BATIA) 이곳에서의 식사는 전에 영국 여행 시 Skye섬의 ‘3 굴뚝 식당에서 경험했던 멋진 맛과 분위기 못지않은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준다. 종업원은 순박하였고 식사에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정통 이탈리안 식사였는데 무한 리필되는 화이트 와인과 별도 주문한 좀 더 좋은 와인 덕분에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지고 비로소 우리 여행팀들이 한 팀으로 융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비가 왔고 식사 시간이 길어져 오늘 일정이 2시간 정도 늦어지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는 한 시간 거리의 절벽 위에 세워진 중세 도시가 있는 에리체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들리지 않는 이유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기도 했지만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안개가 많이 끼고 제대로 볼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의 5%도 들리지 않는 곳이라 한다. 버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위태위태하게 잘 올라간다. 북유럽의 헤어 핀도로보다는 도로 폭이 넓고 상태도 양호하지만 올라가는 내내 가슴을 졸인다.

 

해발 750미터의 정상에 오르니 성 입구가 나타난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옷을 많이 껴입었지만 바람은 옷 속을 파고든다. 어떻게 이렇게 절벽위에 성을 만들었을까?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여서인지 성내부의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가이드가 아침에 에리체 날씨를 확인할 때 비오고 안개가 많이 껴서 관광하기 힘들다는 예보를 봤다고 오는 동안 걱정했는데 바람은 불지만 경치는 환상이다. 비너스성 앞의 경치가 제일 좋은듯하다. 모두 이끼 낀 돌 벽이 있는 성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보다는 규모가 적지만 절벽위에 만드느라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이끼로 가려진 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성안에 거닐며 좀 더 신화와 전설을 느끼고 싶지만 날씨도 춥고 늦은 시간이어서 성은 닫혀져 있다.

오늘의 관광은 여기서 끝이지만 내일의 목적지인 신전의 도시 아그리젠토를 향해 두 시간을 간다. 비를 맞고 추위에 떤 하루이지만 멋진 점심 식사와 황홀한 절경을 구경한 탓에 모두들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과거 성악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노래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 가이드 김종민씨가 어두워진 버스안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몇 곡 들려준다. 어제 내가 오솔레미오음반이 있으면 들려달라고 했을 때 없다고 했는데 오늘 생음악으로 그의 솜씨를 뽐낸다. 훌륭한 실력이다! 박수를 치며 브라보! 앵콜!!”하니까 그 뒤 몇 곡 더 들려준다. 성악을 하다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하게 되었고 처음엔 자존심이 강해 관광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했는데 인생을 살아보고 나이가 들어가니 생각이 다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젊은 시절 인생을 살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다르다고 느끼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한 때가 많아서 감정이 상하고 친한 사람과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를 겪었다.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닌데 왜 그때는 그리 내 고집만 피웠는지..

 

신들의 도시 아그리젠토로 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830분이 넘었다.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하기로 예정 되어 있었지만 낮의 훌륭한 식사의 여운을 좀 더 길게 느끼고자 우리 기족은 저녁 식사를 생략하기로 한다.

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니 언덕위에 각종 경관 조명을 한 신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약간 환상적인 느낌이다. 신전이 언덕 위에 있고 그 아래에는 아무 조명도 없으니 마치 신전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난다. 그리이스 아테네나 이곳의 많은 신전들이 왜 언덕위에 지어졌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신전을 건설한 후 제물을 바치고 돌아서 내려갈 때 대리석 색 기둥들이 밝은 달빛을 받아 둥실 둥실 떠다니며 춤출 것 같은 느낌을 그 시대 사람들은 느꼈을까?

 

Hotel : Colleverde Park Hotel

 

2월14일 수요일

 

이 호텔은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다. 아침 식사 전 정원으로 나가보니 여러 과일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고 멀리 콩코르디아 신전이 보인다.

오늘은 터키인의 계단이라 불리는 레알몬떼해변에 있는 스칼라 데 트루키(SCALA DEI TURCHI)’ 와 신전의 계곡을 보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이태리 3대 모자이크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이 있는 피아자 아르메니나를 보고 다시 차를 두 시간 타고 이동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도시 시라쿠사로 이동한 후 저녁을 먹고, 호텔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터키인의 계단은 예전에 터키인 해적들이 해변 뒤쪽에 숨어있다 약탈을 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우선 도로변에서 아래로 내려가 약 2Km의 해변 가를 걸어서 이동해야한다. 조금 걸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점점 비바람이 강하게 내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참 자주 비가 내린다. 여름철 많은 관광객들이 수영과 선탠을 하는 명소인 이곳에서 다들 얇은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바지 아래 부분은 비바람으로 적셔진다. 모두 급히 증명사진만 찍고 다시 버스로 올라탄다.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비 한 번 맞았다. 버스에 올라타니 다들 추위에 떨고 있다. 서둘러 차의 온도를 높이고 손수건으로 옷의 물기를 닦아내면서 신들의 계곡 아그리젠토로 향한다. 여름 성수기에 왔으면 영화 맬리사에 나오는 장면처럼 뜨거우며 강열한 인상을 주었을 곳인데, 강한 느낌이 남겨지는 곳이 되기는 했다. 당초 일정에 없던 곳이고 나를 포함한 손님들의 요청으로 여행사에서 배려 차원에서 넣은 곳인데 우리는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아그리젠토로 이동하니 비가 좀 그친다. 이 곳은 계곡을 내려가면서 견학하는 법과 올라가면서 보는 법이 있는데 우리는 걷기 편하게 내려가면서 견학하기로 한다. 아그리젠토의 신전들은 기원전 6세기 그리이스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침략, 로마의 지배, 아랍, 노르만인들이 순차적으로 장악해가면서 이곳의 신전들도 많이 파괴되었다. 화합의 신이라 불리는 콩코르디아신전은 중세에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화합의 의미여서인지 거의 원형이 잘 보전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오고 있다.

 

처음 마주한 신전은 해라 신전이다. 신전의 기둥들은 가로 6, 세로는 가로의 두 배에 한 개를 더한 개수로 제작되었는데 이 비율이 황금 비율이라 여겼다. 기둥의 돌은 통돌이 아닌 4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돌 사이사이에는 지진 등으로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납을 넣었다고 한다. 신전의 바깥쪽은 바치는 제물을 준비하는 제단이 있으며 모든 신전은 태양을 향하는 방향으로 지었다. 신전의 지붕은 나무로 제작되었다는데 현재는 대부분 흔적이 없다. 지금은 기둥이 흙이나 돌 자체의 색깔로 보이지만 건립 당시에는 회 반죽을 입혀 대리석 색깔이 나게 했다. 이 곳은 지역 자체가 바다 속에서 융기한 지역이어서 돌 표면에 조개껍질이 붙어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신전 앞에는 벚꽃 같은 꽃이 핀 나무들이 있는데, 이 나무들은 아몬드 나무라 한다.

신전들의 계곡 주위에는 약 13Km의 성벽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았고 성벽 곳곳에 반원형 구멍이 파여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인의 무덤이었다 한다.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콩코르디아 신전이 저만치 보인다. 남들보다 걸음을 좀 빨리하여 이 신전에 먼저 왔는데 그 이유가 있다. 2천년 이상 된 이 신전과 근처의 수령 천년(700년이라고도 한다.)의 올리브 나무, 그리고 근래 만들어진 날개가 부러져 누워있는 이카루스 청동상3개를 한 화면에 제대로 담아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비도 그치고 근처에 사람도 없어 제대로 된 사진 몇 장 건졌다!

이 신전은 기둥 전체가 원형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신전이고 해라 신전과 크기가 정확히 똑 같은 19미터에 41미터의 크기다. AD6세기 성당으로 사용되었고 내부에는 3개의 구역이 있는데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있고 삼각형의 천정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신전이다!

 

헤라클래스 신전은 크기가 다른 신전보다 더 큰데 가로 5, 세로 15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다. 기둥에 석회를 바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1922년 기둥을 포함한 신전의 부분들을 복원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신전은 제우스 신전이다, 1인자라는 자리는 남들이 항상 시기 질투하는 자리이고 틈을 보이면 공격당하기 쉬운 자리이고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제우스 신전도 마찬가지이다. 기둥 하나 남아있지 않고 신전의 흔적만 남아있고 복원되어 누어있는 기둥을 받치는 거인의 형상 하나만 비를 맞고 있다. 여행의 고수들은 이런 빈터에서 과거의 영광을 떠 올리며 회상에 잠긴다고 하는데, 나는 다시 강해지는 비를 피해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점심 식사 하는 곳은 해산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AKROPOLIS’라는 식당으로 약 30분 이동하여 있다. 전식에 비린 생선이 들어간 파스타, 본식에 청새치 구이가 메인인 요리이고 디저트는 없다.

 

오늘 점심에는 도곡동 사시는 멋진 여성분이 화이트 와인 세 명을 쏘았다. 역시 여성분들은 어려운 래드 와인 보다는 마시기 좋고 단맛도 느껴지는 화이트를 좋아하나보다. 나 역시 화이트 와인이 싫지 않다. 오늘 점심이 해산물 요리이기에 마시다보니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기분파 아내가 한 병 더 마시자하여 나도 같이 더 마신다.

 

분 좋은 식사 후 이동하는데, 가이드가 틀어주는 거리의 음악사가 녹음한 기타 곡을 들으며 다들 꿈나라로 빠져든다, 두 시간의 이동이지만 금방 도착한 느낌이다. 가는 중간에 차안이 시끄러워 잠시 잠을 깼는데 창밖을 보니 양떼가 도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르크스 아울렐리우스 황제가 건립을 하게 한 이 곳은 1,100년대의 산사태로 흙이 10미터 이상 덮어져 존재 자체가 역사 속에만 있던 지역인데 1850년대부터 발굴이 되어 공개되었고 현재도 계속 발굴과 복원이 진행 중이다. 이태리 본토의 화산재가 덥혀 보존된 폼페이처럼 완벽히 그 시대의 생활상이 남아있고, (완벽은 아닌 것 같다. 폼페이는 갑작스런 화산 폭발로 사람들도 그대로 산 채 매장되었는데 이곳은 그런 흔적은 없는 듯하다.) 특히 여기의 작품들은 이태리 3대 모자이크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모자이크 작품은 주로 튀니지 출신 장인 두 명이 만들었는데, 한 명은 신화의 내용을, 다른 한 명은 자연을 주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곳의 규모는 4천 평방미터 정도이며 사우나 시설, 수영장, 핼스 클럽, 남녀 스파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처음 만나는 모자이크는 올리브 잎을 들고 손님을 환영하는 모자이크다. 5명이 서 있는데, 가운데가 주인이며, 양옆에는 자녀들, 바깥쪽은 하인으로 손에는 뷰티케이스를 들고 있다. 그 외에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 4계절을 표현한 작품, 식사하는 작품, 사냥하는 작품이 그려진 식사 공간 등이 있다. 사냥하다 멧돼지에 받친 사람과 어이없어 하는 표정의 동료의 모습이 무척 해학적이다. 방들은 대부분 창문이 없는 구조이다.

4미터에 길이 66미터에 이르는 긴 공간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로마, 이집트, 인디아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방은 비키니입고 있는 여인들이 표현된 방이다. 배구하는 모습의 여자 2, 시상하는 모습, 등이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미국의 비키니섬 핵폭탄 실험 4일 이후인 19467월 프랑스 디자이너가 발표한 비키니보다 무려 1,700년 이전에 이런 의상이 보편화 되었다니 놀랍다.

 

모자이크 작품들은 4mm10mm 두 종류의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며, 1제곱미터를 작업하는데 6일정도 걸리고 36,000개의 조각이 필요하다. 이런 작품들에 녹아있는 원천 기술의 덕분에 현재 이탈리아는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차를 타고 다시 두 시간을 이동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도시 시라쿠사에 도착했다. 소형차들은 출입이 자유롭지만 대형차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통행세를 내야하는데 대략 40만원 이다. 그리고 대형차는 구 시가지에는 출입할 수 없고 구시가 내부만 이동하는 버스를 이용하던가 아니면 걸어서 다녀야 한다. 아침에 터키인의 계단에서 시간이 좀 지체되었기에 이곳 도착이 늦어졌는데 우리는 구시가지 안에 있는 ‘ARCHIMEDE’ 식당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간다.

우리 테이블에는 카이씨 부부와 아이, 사업 시행하는 여성,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앉았다. 다른 테이블의 숙녀분이 래드 와인을 쏘았는데, 시칠리아에서 마셨던 다른 래드 와인들과 별 차이가 없다. 가격이 문제는 아니지만 이태리 와인의 좀 더 깊이 있는 맛을 기대했는데.. 와인 리스트를 달라하여 체크해보니 오지의 마법사에 출연한 윤정수팀이 마신 에트나 로즈가 와인리스트에 보인다! (대부분의 와인이 15유로이고 이건 18유로이다. 그 이상은 리스트에 없다) 한 병 시켜 맛을 보니 와인 색깔이 좀 더 연하고 맛도 너무 순하다. 병을 자세히 보니 이름은 같지만 윤정수팀이 마시고 방송에 나온 와인처럼 있어야 할 장미 문양이 없다‘. . 식후에 디저트와 함께 나온 알콜 들어간 음료는 마치 식혜를 연상케 하는 단 맛의 술이다.

 

내일은 에트나 화산을 올라가는 날이다. 산위에는 눈도 오고 기온은 영하 14도가 예상된다는데 추위에 약한 나는 걱정이다. 날씨 예측을 잘못해서 얇은 옷을 많이 가져왔는데 최대한 껴입어야겠다.

호텔은 큰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내부의 시설은 보통이다. 방 안 마루는 청소가 덜되어 있고 방 내부가 좁고, 시설들도 소박하다.

Hotel : Grand Hotel Villa Politi

 

2월15일 목요일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설 안부 문자나 톡을 보내온다. 여행을 나와서 설이 실감 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소식전하는 사람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이 호텔의 아침 식사는 컨타넨탈 스타일로 스크램블이나 베이컨 등의 익히거나 구운 음식은 나오지 않지만 과일이 많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직접 가져다주어 가져온 커피를 타 마시니 기분이 좋다. 이 호텔은 중세 대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인데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보름씩 묵고 가곤 했다 한다.

오늘은 시라쿠사 시내와 고고학 유적지들을 보고 에트나산을 올라가는 일정이다. 고고학 지구와 시라쿠사 구시가를 안내하는 로컬 가이드는 귀가 아주 큰 분인데 정년퇴직을 하고 부업으로 하는 듯하다. 고고학 지구의 입구는 고대 재단으로 시작하는데 이 재단에서 한 번에 백 마리 이상의 재물을 바치곤 했다. 시라쿠사에 맨 먼저 정착한 그리이스인들은 이곳의 땅이 비옥해서 밀, 올리브, 와인 농사를 했고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레몬과 오렌지가 재배되는데 레몬은 1년에 4번 수확할 수 있어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는 레몬은 이탈리아 전체 생산의 90프로 이상 차지한다.

고고학 지구 내 그리이스 극장은 객석을 만들기 위해 통 돌을 그대로 가공하여 만들었다. 그 덕분에 지진 피해도 거의 없이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다. 1914년 이후 지금까지 5월과 6월 두 달간 그리이스식 공연을 하는데 하루 3,4천명의 관객이 온다고 한다. 극장 바로 옆에 2층 정도의 집 같은 구조물이 보이는데 망루였다고 하며 한때 방앗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극장 뒤 파여진 부분이 많은 바위 속에서 큰 물줄기의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이 물은 30Km밖의 산에서 온다고 하며 이 물줄기도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작품이다. 바위 곳곳이 파여져 있는데 1,200년 전 비잔틴인들의 무덤이다.

 

채석장 쪽으로 가니 바위들의 중간 중간에 암모나이트 화석이 보인다. 바다에 있던 부분이 융기하여 지금의 채석장이 되었다. 돌을 채석한 공간에는 5,60년 전 밧줄을 만드는 작업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공간이 밧줄의 건조에 적합해서이다. 큰 공간이 하나 눈앞에 나타난다. ‘디오니소스의 귀라는 공간이데,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풍화의 화가 카라바쵸가 이곳을 와 보고 이름을 붙였다. 디오니소스 왕은 폭정을 하고 남을 의심했는데, 채석장 인부나 죄수들을 이 공간에 가두고 그들의 불평을 들었다고 한다. 가이드가 서 있는 지점에서 소리를 내니 16배 확산되어 메아리치며 동굴 전체에 울린다. 동굴 공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음침하여 예전 노예였던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고학 지구를 지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르티지아 섬으로 간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든 아폴로신전이 먼저 나타난다. 기원전 580년에 만들어졌는데, 가로 6, 세로 17개의 기둥이 세워졌다는데 파르테논 신전보다 150년 전에 만들어졌다. 비잔틴 시대에는 성당으로 아랍시절에는 사원으로 다시 노르만 시대는 교회로 사용되곤 했다.

 

1700년대 바로크식 광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광장에는 시라쿠사 주요 귀족의 빌라와 대주교의 집, 그리고 지금은 성당으로 사용 중인 두오모가 광장 중앙에 있다. 바로크 양식의 성당 외부는 화려한 반면 내부는 심플하게 되어있다. 고대 신전을 개조한 흔적이 보인다. 성당 뒤쪽의 기둥은 신전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곳도 아랍인, 노르만인들이 그때마다 자기들의 문화공간으로 사용하여 잘 보존되고 개축이 되었다.

구 시가지를 끝으로 시라쿠사 탐방을 끝내고 버스에 올라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에트나 화산으로 가는 도중 가이드가 안내를 하는데, 오늘은 폭설로 산 진입이 불가하단다. 그래서 오늘 저녁 도착 예정이던 숙박지 타오르미나를 일찍 가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잘 보존되고 사용 중인 그리이스 극장을 보고 자유 시간을 갖자고 한다. 타오르미나 구시가지는 절벽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리스 극장으로 이어지는 예쁜 골목길에는 각종 기념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점심 식사를 하는 식당은 이곳에서 꽤 유명한 식당인 듯 손님이 많다. 우리는 절벽 아래의 멋진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 석에 앉았다. 분위기가 좋은 식당이다. 우리 일행들 중 이탈리아에 와서 피자 한 번 못 먹었으니 점심을 피자로 하자고 한 사람이 있었고 나도 동조하였는데 이곳 코스 요리를 먹기 전 미리 주문하여 통 화덕에서 직접 구운 피자를 가져다준다. 역시 이탈리아 피자는 토핑이 거의 없음에도 참 맛이 좋다!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세 병 주문했는데 이번 시칠리아 여행 중 마신 와인 중 가장 맛이 좋다! 한 병을 더 시켜 우리 테이블 전용으로 해 두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빌려가 다시 한 병을 더 시켜 마신다. 아내도 오랜만에 맛있는 와인 마신다며 즐거워한다. (그 맛을 잊어버리기 전에 구입해 볼까 하고 국내 들어와서 신세계와 이마트에 문의해보니 외국 식당에서 판매하는 와인은 거의 수입을 안 한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그리스 극장으로 가기 위해 골목길을 걸어간다. 골목 자체가 낭만이 있어 보이고 유럽의 다른 오래된 도시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골목길들이 떠오른다. 몽셸미셸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비좁은 골목길, 중세가 잘 보전되어 예쁜 기념품 가게가 많은 독일 로텐부르크의 골목길, 산토리니의 이아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각종 인형샾들과 샾을 지키는 귀여운 강아지들..

 

타오르미나는 니체가 이곳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했던 곳이며 세계 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다. 그리스 극장은 시라쿠사의 것보다 규모가 큰데 이곳 객석은 시라쿠사와는 달리 돌을 채석장에 가공하여 설치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이 극장은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의 한곳이다. 앞으로는 이오니아해가 펼쳐져있고 뒤로는 애트나 산이 받쳐주고 있는 든든한 배산임수의 명당 터이다!

이 멋진 극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곡 듣기로 하고, 성악을 전공한 가이드 김종민씨에게 청해 한 곡 부탁하였는데, 이태리 가곡 무정한 마음을 열창한다. (10여년 전 폼페이 관광 때 현지인 가이드가 해설은 않고 현지 한국인 가이드와 우리 일행을 따라만 다니다 극장에서 산타루치아를 불렀던 생각도 났다.)

 

무정한 마음또는 은혜를 모르는 마음이란 우리 제목이 있고 ‘Catari Catari’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제목의 카타리는 사랑한 여성 이름이며 헤어진 여성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노래를 하는 도중에 가사에 있는 카타리를 외칠 때 가사의 애절한 느낌이 매우 잘 살아있는 것 같다!

 

이태리 성악을 전공하고 그 길을 향해 달렸으나 현실이 녹녹치 않아 꿈은 접었지만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객석에 앉은 우리가 진심을 담아 브라보! 앵콜을 외쳤고 그는 우리의 반응에 만족하며 한 곡 더 부르려는데 이곳 안내원이 제지를 한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정한 안내원. 앵콜곡은 못들었지만 멋진 노래 한곡을 이 멋진 장소에서 들었으니 아주 만족이다! 이번 시칠리아 여행 중에 오늘 같이 기분 좋게 해 뜬 날이 있었는가? 타오르미나같은 낭만의 도시에서 우리 성악가의 이런 열창을 들은 한국 여행자들이 있었을까?

 

다시 아기자기한 길을 돌아 숙소로 온다. 낮에 마신 기분 좋은 와인 탓에 저녁은 생략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한다.

 

 

Hotel : EXCELSIOR PALACE

 

2월 16일 금요일, 설날!

벌써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아쉬운 여행이다. 이번 시칠리아 여행은 여행사의 참 잘 기획된 작품이다. 다만 겨울이라 추위에 민감한 편인 나에겐 조금 불편했지만 날씨 좋은 여름에 다시 한 번 와보고 싶게 만든다.

어제는 그리스 극장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일찍 들어왔는데 저녁 식사를 생략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한밤 바람소리에 놀라 잠이 깼는데, 절벽위에 지어진 호텔이라 그런지 바람이 매우 세차고 거세다. 밖에 서 있었다면 날아갈 정도의 태풍급 위력의 바람이 불었다. 잠이 깨서 한 시간 정도 어제의 일기를 노트붘에 담고 다시 잠이 들어 모처럼 긴 시간 잠을 잤다.

 

이 호텔은 구시가지 끝자락의 절벽위에 지어졌다. 버스로는 올라올 수 없는 곳이기에 7층 높이의 주차 빌딩 아래에서 짐을 내리고 (호텔 포트들이 운반해 준다) 승강기로 올라가서 조금 걸어 들어가 체크인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어 싫지는 않다. 풍광이 좋기에 일찍 일어나신 분은 설날 아침 일출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려주셨고 나도 창밖으로 보이는 산신령님이 살 것 같은 애트나산을 바라다 본다.

오늘은 어제 못간 애트나 화산 등반을 하고, 여행의 마지막 도시 카타니아의 시가지를 보고 여정을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애트나 화산은 높이 3,350미터로 유럽에서 높은 편의 산은 아니다. 이 화산 관광은 버스가 해발 2,000미터 까지 가서 곤돌라를 타고 500여 미터 올라간 뒤, 설상차를 타고 분화구 근처까지 가보는 코스이다. 차안에서 가이드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며 기분 좋은 등반이 될 거라고 확신을 했지만 한 시간 가까이 산길을 굽이굽이 버스로 올라갔지만 통제선에 가로막혔다. 날씨는 매우 맑지만 어제 내린 폭설로 도로 곳곳에 눈이 쌓여있고, 눈사태가 날 수도 있어 체인을 감아 올라가도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야지만 좀 머뭇거리다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산을 내려간다. 남은 시간은 운전기사가 추천한 근처의 아치레알레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관광을 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치레알레는 작은 시골 도시이다. 동양인 관광객이 잘 안 오는 지역이어서 신기한지 쳐다들 본다. 성당이 12시에 문을 닫는다하여 내부 구경을 한다. 작지만 소박하고 나름 스토리텔링요소가 있는 성당이다. 인근 광장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을 울린다. 크게 명료하게! 동방의 등불인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반기는 듯 즐겁게 울리는 것 같다! 예정치 않은 도시이지만 한가하게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동행해온 여행 소장님이 미리 식당에 점심 주문을 하여 우리는 식당에 가자마자 세 가지 종류의 피자와(어제 차안에서 피자가 먹고 싶다고들 하여 특별 주문했단다.) 세 가지 종류의 파스타를 먹고 디저트로 여러 가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식당 주인의 손자인 9살 소년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 곁을 맴돈다. 과일 형태의 푸딩 두 개를 냅킨에 싸서 가져와 손을 내민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한참 어리둥절해하다 맛을 보니 단맛이 강한 푸딩이다. 우리 일행 중 9살 소년에게 같이 사진 찍어보라고 하니 쑥스러워 멀리 달아난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 카타니아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2013년 등재된 도시이다. 베토벤과 함께 '2B'로 불리던 벨리니의 고향이고, 성녀 아가타의 전설이 녹아있는 곳이다. 아가타 성녀는 이 지역 유지의 딸로 태어나 재색을 겸비했는데 당시 로마 집정관이 청혼을 하자 성녀는 거절하고 결국 집정관은 불에 달군 칼로 가슴을 떼어내는 고문을 하여 성녀는 생을 마감하였고 4대 성녀 중 한 분으로 불린다. 이곳 두오모 성당에는 벨리니와 아카타 성녀의 무덤이 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도시 곳곳을 탐방한다. 알카라 광장, 카를 5세의 벽을 지나 중심 광장에 섰다. 성녀의 기적 덕분인지 성당은 큰 화산 폭발에도 잘 보전되었다. 광장에는 작고 검은 코끼리 동상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를 등에 올려놓고 있는데, 이 작품을 조각한 수도사 작가는 로마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 장수의 상징이라 여겼던 코끼리를 이 광장에 세웠다 한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시칠리아 대표적 관광지이다 보니 집시 소매치기 소녀, 걸인들이 보인다. 유럽의 대도시 곳곳에서 활약하던 그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손이 빠른 유럽의 집시들은 잠시 방심하는 사이 순식간에 관광객의 재물을 가져간다. 우리 일행 중 정의의 사도 14살 소년과 카이씨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열중한 우리 일행의 뒤로 살며시 접근한 집시소녀를 차단하며 일행의 안전을 지키려 노력한다!

 

대관식의 길을 지나 우루시오 성(해안의 성이란 뜻)’앞에 섰다. 성 앞에 깊게 파여진 해자로 흐르던 바닷물 덕분으로 1269년의 큰 화산 폭발에도 성은 무사히 보존되었다. 성 바로 앞까지 흘러온 용암이 굳어 검은 돌로 변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성을 지은 페드리코 2세는 카타니아 사람들에게 비호감의 성주였다 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말고기 판매상들이 있는 가게 골목을 지나고 장의사들이 모여 있는 상점가를 지나 성당의 길로 들어서니 5개의 성당과 5개의 수도원이 있다. 중세 이곳 수도사들은 귀족의 자녀들을 강제로 수녀나 신부로 만들어 백성들의 원한을 많이 사게 되어 성당마다 안전 방편으로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에게 돌려 준 대주교의 동상 앞을 지나 대학 광장에서 두 시간에 걸친 카타니아 도보 관광을 마무리 한다. 1400년대에 시칠리아 최초의 대학이 이곳에 세워졌다.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 이곳 상점가들을 둘러본다. 손녀가 입으면 예쁠 것 같은 옷과 아내의 요가복 몇 벌을 산다. 저녁 식사는 트립 어드바이즈에 등록된 이탈리아 식당에서 한다.(‘트립어드바이저 앱은 여행자들에게 참 유용한 앱이다. 근처의 잘나가는 식당을 순위별로 추천해 주어 과거 아이슬란드나, 하와이 여행 시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비씨지 않은 하우스 와인을 마셨는데 시칠리아에 와서 마신 레드와인 중 내 입에는 제일 낫다. 과일 맛이 풍부하며 진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저녁 식사라 다들 할 말이 많은 듯하다. 테이블마다 화기애애하다! 우리 테이블에서도 소장님과 아내가 연신 와인을 추가하여 마시고 지난 일주일간의 여행담을 신나게 이야기한다. 음식이 어떠냐며 테이블들을 돌아다니던 가게 주인은 맛있다면 손가락을 뺨에 대고 부오노라고 말하란다~ 파스타는 서울에서 내가 즐겨먹는 스타일처럼 치즈가 촉촉이 베여 맛이 좋았고 메인으로 나온 소시지와 돼지고기도 맛이 좋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가게 주인과 아내가 같이 한 방 찰칵!

오늘 묶는 호텔은 우리가 첫 이틀 팔레르모에서 잔 호텔과 이름이 같은 체인점이다. 깨끗하고 친절한 호텔이다. 알찬 시칠리아 관광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오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같이 온 모든 일행 분들도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체 톡방에 그동안 올리지 못한 좋은 풍경과 서로의 멋진 모습들을 공유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아디오스 시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