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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김영옥’을 읽고

매직랜즈 2020. 11. 18. 13:02

2011년 8월에 본 책이다.

 

책을 손에 쥐는 순간 가벼운 전율이 온 몸을 휘 감는다. 라듸오 방송에서 625특집으로 이 분에 대한 방송을 듣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을 수 없었을테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무척 뿌듯하다.

 

미국, 한국, 프랑스, 이태리에서 최고의 무공 훈장들을 받았으며,미국 전쟁 영웅 16인에 뽑혔으며,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 최고의 군인이다.’ ( 존 코백 중령 ). ‘ 내 휘하에 있던 500만 군인 중에 최고의 군인이다 ’( 마크 크라크 미 5군 사령관 )이란 절대적인 찬사를 들을 자격이 있는 분인데, 우리는 알지 못하고 지냈는데 , 그 분의 발자취를 책으로 만들어 낸 한우성 작가 덕분에 이 귀하신 분의 행적을 알게 되에 참으로 기쁘다. 서점에 이 책이 절판되어 책을 어렵게 구하여 보게 되지만 그 감동으로 보면 책값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겸손으로 자기의 영웅담을 한사코 숨겨 오시다가 한우성 작가의 끈질긴 설득으로 자기의 전장 스토리를 비롯한 일생을 밝혔다는 내용도 놀랍다. 8월의 독서내용인데 7월 하순에 받아서 731일까지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충격과 감동이 휘몰아오고, 이 분의 리더십 앞에 나는 너무나 초라하지만, 진정 이분을 닮고 싶은 욕망이 커진다.

 

이분을 친일파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의 군에서의 활동과 일본인 부하들을 통솔하며, 전우애와 리더십을 발휘하는 내용을 안다면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분은 이순신 장군이 환생하여 다시 태어나신 것 같은 기분이고, 진정한 애국자이고, 진정 영웅이 없는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영웅이다.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어보고 이분의 기개를 조금이라도 닮아간다면 우리나라는 단번에 초일류국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으로만 접하게 된 게 너무 아쉬워 자료를 찾던 중 MBC 방송에서 2005년 다큐먼터리로 만든 김영옥 대령 소개 내용이 있어서 보았는데, 대부분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어서 책보다는 감동이 훨씬 덜하다.

 

 

책의 내용

1910년 독립 운동가인 아버지 김순권씨가 미국으로 가서 막노동, 편의점을 거쳐 자리를 잡아가며, 191942녀의 장남으로 김영옥은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창한 영어와 성실성으로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가게도 잘되지만,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지원을 해서 집안은 늘 돈에 쪼들린다.

 

영옥이 12세 때 하지 않은 일을 영옥의 소행이라 생각한 어머니가 회초리로 이실직고를 하라고 할 때 회초리 세 개가 부러질 때까지 아니라고 강직하게 말할 정도로 정직하고 성실한 소년으로 성장하며, 사회주의가 열풍으로 젊은이들의 사상을 현혹할 때 다양한 독서를 하여 그 논리를 반박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여, 전시 인력이 부족해진 미국은 아시아계를 군인으로 받아드리기 시작하면서 영옥은 입대를 하고 장교후보생이 되어 일본계 미국인 소대의 소대장이 된다. (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아는 대대장 터너 중령이 다른 부대로 보내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영옥은 그 부대를 지휘한다. )

 

급조된 일본계 2소대는 규율 및 복장이 엉망인 오합지졸이었는데, 실전 위주의 훈련을 통해 강한 소대로 키운다. 이탈리아 최전선인 살레르노지역에 투입되어 ( 내가 유럽 여행 시 가본 항구인데 그때는 몰랐다. )항상 중대의 최전선에 서서 병사들을 독려하고 타고난 지형지물에 대한 판단능력으로 독일군을 상대로 연승을 하며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회복을 하고 중상을 입은 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하트훈장을 받는다.

 

독일군의 군세를 파악하기 위해 부하와 단둘이 전선을 넘어 독일군 포로를 잡아와서 독일군의 허를 찔러 대승을 하고,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영옥의 진면목은 일본계 부하 소대원들의 가슴속에 깊은 존경과 신뢰심을 심어주며 부하들에게 사무라이 김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치열한 전투 속에 죽어 나가는 사병들을 보며 내가 만약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평생을 내가 속한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바치겠다라고 결심한다.

 

독일군이 이탈리아에 구축한 2개의 전선 중 남측인 구스타프라인을 격파하고 북부의 고딕라인의 중심인 벨베데레 전투에서 적진에 빠진 사단장을 구하고 대대장 싱글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 김영옥 대위는 작전 참모로 활동하며, 당시 교전 수칙상 연대 포병의 지원을 받지 않는 대대급 전투에서 연대 포병의 전투 지원을 받는 작전을 시행하여 큰 성과를 얻으며, 중령 보직인 사단 작전참모직을 제의 받기도 하지만 100대대를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은 김대위는 이 제안을 금방 잊었다.

 

이탈리아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100대대는 독일군의 마지막 전선인 프랑스 브뤼에르 전선에 투입된다. 실전 경험이 없는 달키스트 사단장의 무모한 작전 명령을 무시하고 최전선을 직접 척후병과 함께 탐색을하고 탱크부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작전으로 이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둔다. ‘비퐁뗀느전투에서 사단장의 무모한 진격 명령으로 100대대는 많은 피해를입고 영옥은 큰 부상으로 몸이 차가워져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중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마취없는 수술 치료를 받으며 당시 처음 개발된 페니실린을 임상으로 투여받으며 다시 살아난다.

 

인종적인 차별을 넘어 탁월한 전투 지휘로 특별 무공훈장, 은성 무공훈장,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한 영옥은 2차 대전의 정전으로 1946년 군복을 벗는다.

미국에서 코인 빨래방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사업가로 성공하는 영옥은 한국전이 발발하자 다시 군대에 자원입대한다.

 

배치를 위해 일본에 도착한 영옥은 한국어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후방에 있어야 한다는 ( 통역의 절대 부족 ) 미군의 방침이 있는데, 최전방 7사단 지역에 배속되기를 희망하고, 이탈리아에서 대대장이던 싱글스 대령의 도움으로 한국어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국으로 온다. 부산으로 와서 이승만 대통령도 만나고 전방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중 눈 덥힌 길에서 헐벗은 어린아이들이 식량과 연료를 구하는 걸 보고 기차의 동료들의 협조를 얻어 풍족한 자신들의 전투 식량을 나누어 준다.

 

7사단 지역에 배치된 김영옥 대위는 31연대장 맥캐프리 중령으로부터 연대 작전 참모 자리를 제의받지만, 거절하고, 한국인 유격대 베니데 그룹을 인솔하고 혹한의 전방의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적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본대에 전달한 후 귀한하니, 맥캐프리 중령의 간곡한 부탁으로 소령급이 대상이 되는 정보 참모로 부임한다. ( 2차대전시 영옥의 활약상을 전해들은 연대장이 자기의 소령 두 명을 타 연대에 주고 영옥을 배치받는 Horse Trading을 했다 )

 

전투를 압둔 31연대는 엄격하고 예리하기로 소문난 아몬드 군단장에게 검열을 받는데 영옥이 멋지고 훌륭하게 브리핑을 함으로써 전방 투입 명령을 받는다.

소양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에 밀려 우왕좌왕 사기가 떨어져 후퇴하던 한국군과 함께 다리를 지켜 미군과 한국군의 안전한 철수를 도왔고, 연대장의 두터운 신임으로 작전 참모도 겸임하게 된다.

 

전투 경험이 없는 메이슨 중령의 1대대가 전투 중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1대대장은 30Km후방에 샤워하러간 걸 알고, 직접 병사를 끌고 가서 적군에 포위된 A,B,C 중대를 구출한다. 영옥에게 사건의 개요를 들은 연대장은 영옥에게 1대대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 형식적인 대대장은 소령급 한 명이 있고 )

영옥의 지휘아래 1 대대는 구만산 전투에서 대대의 첫 승리를 얻는다. 중공군 공포에 젖어있던 1대대는 첫 승리 후 영옥의 지휘아래 A,B,C중대를 차례로 선봉에 두어 승리를 얻어 대대의 사기를 높여 나가며 치열한 탑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이태리전투에서 이어 두 번째 은성 무공훈장을 받는다.

 

2대대와 함께 청병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옥은 야간에 소수 병력을 이끌고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적전을 파악하고 B중대를 이끌고 고지 점령에 나서는데 두려움에 고개를 쳐 박고 있는 중대원에게 전투를 독려하기위해 B중대장과 총알이 날아오는 능선 위에 서서 전투를 독려하는 미친짓을 하여, 고지를 점령한다.

수안산에 있는 중공군을 아침 830분에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옥은 야간 전투에 익숙한 중공군의 허점을 찌르며, 야간 행군으로 대대병력을 이끌고 적진을 통과하여 정시에 공격을 개시하여 승리를 이끈다.

 

31연대의 진군의 속도가 늦은데 불만을 품은 호그 군단장은 7사단장 페렌보 소장에게 541고지를 오전 중 함락하지 못하면 연대장을 직위해제하라는 명령을 받고, 영옥은 훌륭히 임무 수행을 완료하여 대대장의 무한 신임을 받는다. 아군의 오인 폭격으로 큰 부상을 당한 영옥은 오사카 병원에 후송되어 다리를 절단해야 될지도 모르는 중상에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다시 31연대로 복귀한다. 연대장 맥캐프리 대령은 피붙이가 돌아온 것처럼 기뻐하며 영옥을 소령으로 진급시키고 동양인 최초의 대대장으로 임명한다. 영옥은 동부전선을 현재의 위치로 38선 북방 60Km이상올린 주역이 되며 신화로 되었다.

 

전쟁 중에도 박애주의 정신을 발휘하여 경천애인사라는 고아원을 만들고 꾸준히 지원 활동을 하였다. 특히 부대에 남는 보급품과 봉급 등으로 지원하고 타 부대원들도 스스로 지원하게끔 장교의 의사 결정과정에서 제외시켜 자발적인 지원이 되게 하였다.

 

지리한 휴전 회담 속에서 소모적인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 부임하여 장성 진급을 노리는 웨스트 모어랜드 대령으로부터 오성산 함락전투를 제의 받으나 사단 병력으로도 함락하기 힘든 현재의 상황임을 깨닫고 본국 송환 권리가 있어 미국 본토 육군 보병학교에 배치된다. 웨스트 대령은 결국 오송산 전투를 감행했으나 ( 쇼 다운 작전 ) 영옥의 예언대로 오성산 전투는 쌍방의 치열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함락되지는 못하고 31연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으나 정치적인 모어랜드 대령은 장성으로 진급한다.

 

중령이 된 김영옥은 미국 군사고문단의 일원으로 다시 한국에 부임하여 한국의 전시 동원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하우즈 사령관에게 큰 신임을 얻고, 박정희 대통령이 30,33사단의 보병 2개 대대를 수도에 주둔시켜 미군과 마찰을 빚었는데, 전투 중 끈끈한 인연을 맺은 채명신 장군과의 실무 협상으로 쌍방이 원활하게 협상을 종료한다. 미군의 한국 양민 학살 사건인 노근리 학살의 진상 조사단에도 참가 하는 등 한국은 그의 큰 애정과 관심 대상이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큰 고생을 한 영옥은 강인한 정신력과 UCLA의료진의 도움으로 회복되고, 정계 진출의 유혹을 뿌리치며, 박애주의 정신으로 김영옥 중학교를 설립 하는 등 재미 한인 일인들을 위한 많은 사회활동을 하다 2005년 암투병 중 사망한다.

 

 

그의 일대기는 각본없는 한편의 드라마이며, 감동 그 자체다. 영웅이 없는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삶은 정신적 지주같은 존재이다.

 

책 내용에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있으나, 형제와 아내와의 이야기는 거의 없어서 궁금증이 있었지만, 영웅의 본질을 손상할 정도는 아니다.

 

요즘 서울시와 민주당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각 당의 사활을 걸며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니 양당 모두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이들 정치인들이 우리 김영옥 대령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인들에게도 필독 책으로 읽게하고 싶다.